소설리스트

경천동지-34화 (34/346)

제34화 정상(正常)의 무인

“이런!”

지강백은 무너지는 다리를 향해 뛰어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들이 타고 왔던 사두마차는 이미 저 아래로 떨어져 거센 강물에 휩쓸려 가고야 말았다.

“늦은 건가…….”

지강백은 사납게 흐르는 강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다 곧 눈을 크게 떴다.

늦지 않았던 탓이다.

마부를 한 팔로 거머쥔 남궁진현이 절벽에 매달려 있었다.

그를 지탱하는 것은 바위틈에 꽂아 넣은 칼이었다.

“큿…….”

그러나 결코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절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도록 가볍고 얇게 만들어진 남궁세가의 검은 두 사람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칼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칼의 흔들림에 따라 남궁진현과 마부의 몸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잠시만 버티십시오!”

지강백이 즉각 그 자리에 엎드렸다.

몸을 기울이는 것과 동시에 발끝을 세워 지면에 박았다.

퍽!

두 발이 지면을 파고들며 신형이 고정되었다. 그 상태로 엎드린 지강백이 남궁진현을 향해 힘껏 팔을 뻗었다.

“어서!”

남궁진현은 아슬아슬하게 닿아오는 지강백의 손을 잡기에 앞서 아드득 이를 갈았다.

지강백은 점점 더 위태롭게 휘어가는 얇은 칼날이 안타까웠다.

“어서 잡으십시오!”

“내…… 반드시……,”

그때였다.

휘어지던 검이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뚝, 부러져 버렸다.

“엇!”

지강백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남궁진현은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검이 부러질 때의 반동을 이용해 자신의 발등을 밟고 몸을 위로 솟구쳤다.

탁!

남궁진현은 이어서 지강백의 어깨를 밟고 또 한 번 도약했다.

하필이면 오른쪽 어깨였던지라 다친 팔까지 영향이 왔다. 지강백이 욱신대는 것을 참는 동안 남궁진현은 무사히 지면으로 올라섰다.

툭툭.

지강백도 몸을 일으켜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남궁진현은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내 마차는 어디에 있느냐?”

“…….”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마차부터 내놓으란다.

뭐, 그런 어이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들었다. 오죽하면 사자성어로도 있겠는가.

“그건 저도 잘 모르겠……,”

말을 하다 말고 지강백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푸르르르!

마침 저 앞에서 투레질을 하고 있는 말과, 그 말이 묶인 마차와, 그 마차의 마부석에 올라타서 고삐를 쥐고 있는 필목현이 보였던 탓이었다.

이미 한 패인 터라 무슨 말을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눈이 마주치자 필목현이 지강백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은 마치 “어서 이리 와서 합류하시지요. 우리 함께 남궁세가의 마차를 훔쳐 타고 도망치는 겁니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며, 면목 없습니다, 이가주님! 허나 저들이 아주 사이한 술을 부리는 바람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남궁세가의 마부가 필사적으로 변명을 했다.

남궁진현은 그런 마부를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아주 수상쩍은 놈들입니다! 이 함정도 분명히 저놈들이……!”

“시끄럽다!”

남궁진현이 일갈하자 마부가 즉각 입을 다물었다.

남궁진현의 시선이 지강백을 향했다.

지강백은 저도 모르게 몸을 긴장시켰다.

남궁진현은 분명 마차를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또 한 번 그를 막아서야 했다.

부상당한 오른팔이 욱신대며 통증을 호소해 왔다. 지강백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왼손으로 벽운천강권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남궁진현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직껏 손에 쥐고 있던 반 토막 칼을 땅에 내팽개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관둬라.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을 상대하진 않겠다.”

“마차를 되찾지 않으실 겁니까?”

“다음에!”

남궁진현이 진심을 다해 지강백을 씹어 삼키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에 다시 보게 될 날이 온다면…… 그 한 번은 네놈의 목숨을 살려주겠다. 허나 두 번은 없다.”

지강백은 남궁진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놈을 두 번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반드시 오늘의 치욕을 갚을 것이다.”

남궁진현이 홱 몸을 돌려 길을 떠났다.

“…….”

지강백은 그때서야 오른팔을 쥐었다.

왼손이 흥건히 피에 젖었다. 천하제일의 쾌검이 남긴 상처였다.

* * *

다가닥!

“워워.”

등 뒤에서 마차가 멎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필목현이 말을 몰아 다가오는 중이었다.

“저런. 괜찮으십니까?”

그가 지강백의 오른팔을 가리키며 물었다.

거의 동시에 지강백도 물었다.

“이 마차는 어떻게 된 겁니까?”

남궁세가의 마부는 무공을 쓸 줄 알았다.

그가 무기로 쓰는 채찍이 망가지긴 했어도 무공 한 줄 모르는 병약한 도련님과 그의 나이 든 가신에게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목현이 허허 웃었다.

“제가 왕년에 짱돌 좀 던져 봤습니다. 그 실력이 어디 안 갔지 뭡니까.”

“……예?”

“채 약사가 일부러 말을 놀라게 해서 그자가 당황하는 동안 제가 돌을 던졌지요.”

어찌 된 일인지 머릿속에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지강백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채 소저의 신세를 진 겁니까.”

그 말을 들은 것처럼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며 용천휘와 채희유가 내렸다.

지강백의 눈이 먼저 채희유와 마주쳤다.

“아……!”

채희유의 시선은 이어서 곧장 피에 물든 팔로 향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제 귓가를 덥히는 것 같았다.

아직 제법 거리를 두고 있는 손이 금방이라도 그를 쥘 것처럼 내밀어졌다.

지강백은 그 손이 언젠가처럼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느닷없는 폭우 속에 피어난 꽃보다 더 애처롭게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더는 떨리지 않도록.

“채 소저……,”

그런데.

“사형, 다쳤어?”

어느 순간 용천휘가 불쑥 끼어들어 두 사람의 시선을 끊어 놓았다.

“……좀.”

“피가 그렇게 많이 흐르는데 조금이라고?”

“목숨을 구한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덤덤한 지강백의 말투에 용천휘가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죽을 뻔했어? 그렇게는 안 보이던데.”

지강백은 용천휘와 피로 흥건한 팔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사제는, 혹시 눈이 아주 나쁜 걸까.

“그럼 이 팔은 왜 다쳤다고 생각하는 거냐.”

“뭐, 싸우면 다치고 하는 거지. 그런데 사형은 그자를 살려주기까지 했잖아. 그럼 사형이 이긴 거 아냐?”

지강백은 그 생각 없는 말보다도, 용천휘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는 데 더 화가 났다.

“보고 있느니 와서 돕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은 못 했나?”

“돕다니, 뭘?”

“사람을 구하는 일.”

용천휘가 느긋하게 부채를 까닥이며 말을 받았다.

“이 몸은 마차를 바꿔치기 하느라 바빴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용천휘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마차를 바꿔치기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아래 세찬 강물에 휩쓸려 가고 있는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

“내가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구한 건 그 뒤였을 텐데.”

“그래서, 뭐? 이 몸을 강물에 처박으려 했던 나쁜 인간을 도왔어야 한다는 말이야? 내가 왜?”

용천휘의 말은 조금 틀린 부분도 있었다.

지강백은 왜 자신이 그 고생을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냐 묻고 싶었던 것이니까.

그러나 용천휘의 머릿속에는 지강백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인간을 살려주면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할지도 모르잖아. 안 그래?”

지강백이 한숨을 내뱉었다.

“너도 봤듯이 그러지 않았다.”

“음, 그건 좀 이상했어. 왜 그냥 갔지? 나는 분명히 사형이 그자를 구해주면 그자가 올라와 또 한바탕 싸울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정말로 그걸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여차하면 새로 빼앗은 마차를 타고 저들끼리 도망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보통은 목숨을 구해주면 고마워하는 게 도리 아닌가?”

“에이, 그것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저 남궁 뭐라는 작자는 글러먹었다고. 애초에 우리는 위험을 미리 알려주려고 했던 거잖아. 그런데 길을 막아섰다면서 대뜸 칼부터 뽑아들면 어딘가 이상한 사람 아냐?”

“확실히 이상했지.”

남궁진현이 떠나면서 남긴 말을 더듬던 지강백이 인상을 썼다.

“두 번 다시 보는 날이 온다면 날 살려두지 않겠다고 했다. 그게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할 말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때 용천휘가 바닥에 떨어진 칼을 발견했다.

반으로 부러진, 남궁진현이 버리고 간 칼이었다.

“그런데 저건 뭐야?”

지강백이 대답도 하기 전 용천휘가 그쪽으로 걸어가 아예 다리를 접고 주저앉았다.

“흠. 칼이네? 그런데 왜 부러졌어?”

지강백이 그 자리에 서서 용천휘의 등을 보며 대꾸했다.

“바위가 칼보다 강했던 탓이겠지. 거기에 두 사람의 무게를 감당하기에 벅차기도 한 모양이고.”

“흠. 그렇다고?”

지강백은 보지 못했다.

부러진 칼을 보는 용천휘의 눈이 붉게 변했다는 것을.

사물의 구성, 움직임의 원리, 변화의 시작과 끝을 마치 스스로 그리는 그림처럼 한눈에 볼 수 있는 붉은 눈.

용천휘의 수라안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용천휘는 할 일을 마친 수라안을 거두며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방금 남궁진현의 검이 부러진 이유를 두 눈으로 보았다.

검면 중앙에 가해진 벽운천강권의 잔상을.

그것을 남궁진현도 알았을 것이다.

천하제일의 쾌검이 벽운천강권에 부서졌다.

지강백은 남궁진현에게 패하지 않았다. 남궁진현은 그것을 알았기에 오늘의 설욕을 맹세했던 것이다.

용천휘가 몸을 일으키며 씨익 웃었다.

“정정하지. 남궁진현은 이상한 게 아니라 매우 정상적인 무인이야.”

뜬금없는 소리에 지강백이 물었다.

“뭐라는 거냐.”

“두 번 보는 날이 오면 사형을 죽이겠다고 한 말 말이야. 지극히 정상적이었다고.”

지강백이 혀를 찼다.

“비정상끼리는 통하는 모양이지.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말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역시 지금은 안 하는 게 낫겠어. 그걸 알기엔 너무 이르지.”

그때 두 사람의 사이로 채희유의 조심스러운 걸음이 끼어들었다.

“……도련님. 이제 그만 사형분의 상처를 치료해도 되겠습니까.”

지강백이 고개를 돌려 채희유를 응시했다.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가 방금 전까지 어떤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었는지.

그러자 그 애처롭던 손과 그 손을 잡고 싶던 찰나의 욕망까지 모두 떠올랐다.

“중독과 자상이 겹쳤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채희유에게서는 그 표정들이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지강백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채희유를 보았다. 어쩐지 조금 안타까웠다.

채희유는 지강백이 어떤 눈초리로 저를 보든 상관없이, 입을 곧게 다물고 용천휘만을 바라보았다.

“흠. 뭐, 그래도 되는데…… 하지만 약이 모두 짐칸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마차는 저 강물 아래로 사라졌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게 해주십시오.”

채희유가 용천휘를 향해 반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그 순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고개를 숙이느라 드러난 채희유의 하얀 목덜미가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눈물을 떨굴 때처럼.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채 소저.”

불쑥 튀어나온 목소리에 채희유가 움찔 고개를 들었다.

지강백은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억지로 들어 채희유의 손목을 붙들었다.

움직이지 않는 게 맞는 손이었다. 그런데 오기만으로 움직였다.

“제 손은 괜찮습니다. 채 소저께서 고개 숙이실 필요 없습니다.”

채희유가 고개를 흔들었다.

입술이 벌어지고, 소리가 새었다. 그러나 소리는 결코 말이 되지 못했다.

뒤늦게야 채희유가 손목을 놓아달라는 듯 어깨를 비틀었다.

“아, 안……. 이리 움직이시면 안……,”

그럴수록 지강백의 오기도 강해졌다. 그는 채희유의 손목을 더욱 단단히 붙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이유로 다른 사내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말이, 그렇게 울 것처럼 떨지 말라는 말이 살갗을 통해 전해졌을 것이다.

“나 이거 참.”

용천휘가 혀를 차며 부채를 폈다.

설렁대는 부채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작은 바람이 뺨을 때리자 채희유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이러니까 내가 꼭 무슨 악당이라도 된 것 같네. 내가 언제 하지 말라 했나? 약이 없다니까 걱정해준 거잖아. 내가 속앓이 할 때는 약이 다 짐칸에 있느니 어쩌니 해놓고선.”

용천휘가 투덜대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은 지금 내 몸종이니까 오른손을 못 쓰면 곤란하다고. 알아서 잘 치료해 놔.”

그리고 그가 훌쩍 마차 안으로 올라서서 문을 쾅 닫았다.

용천휘가 사라진 자리에는 지강백과 채희유가 남았다.

지강백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채희유의 손목을 타고 흘러가 소맷자락에 묻었다.

꼭 붉은 꽃이 피어난 듯했다.

“……이제 놓으셔도 됩니다.”

채희유가 낮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아, 그만…… 실례했습니다.”

지강백이 허둥대며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채희유는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지강백에게 말했다.

“소매를 걷겠습니다.”

“예. 편할 대로 하십시오.”

지강백이 오른팔을 내밀었다. 채희유의 하얀 손가락이 여기저기 베여 나풀대는 소맷자락을 조심스럽게 걷어 올렸다.

“피 색을 보니 출혈이 오히려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암기에 발라져 있던 독이 상처를 통해 어느 정도 빠져나간 듯하군요.”

“아, 그럼 해독이 된 겁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하니 독이 그리 가볍겠습니까.”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죄송해하실 건 없습니다.”

“아, 예. 그렇습니다.”

“……?”

“그렇습니다.”

지강백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채희유의 손이 길게 베어진 상처를 아주 조심스럽게 쓸고 있던 탓이었다.

“……서, ……니다.”

그리고 작은 음성을 들었던 탓이었다.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 * *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차에 올라 문을 닫는 순간 필목현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지강백과 채희유가 둘만 남은 것처럼, 용천휘와 필목현도 지금은 단둘이 단절된 공간에 있는 셈이 되었다.

“뭐가.”

용천휘는 마차 벽에 등을 기대고 느긋이 눈을 감았다.

“파루나의 기행(奇行)을 허락하시는 이유 말입니다.”

“그렇다고 내 사형을 팔 병신으로 만들 수는 없잖아.”

“지금이라도 제가 의원을 찾겠습니다.”

“됐어. 너무 속 좁게 굴지 말라고.”

용천휘가 감았던 눈을 가늘게 치켜떴다.

눈앞의 빈자리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너머의 더 아득한 허공을 보는 것인지 통 모를 얼굴로 용천휘가 중얼거렸다.

“저 정도라면 진심이지 않겠어?”

“소야. 파루나란……,”

“노파심도 정도껏 부려. 설마 내 앞에서 파루나가 뭔지 설명할 셈인가?”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소야.”

“알면 말조심하라고.”

용천휘가 다시 느긋함을 가장하며 눈을 감았다.

“그래……. 그가 내 적혈마 후보라는 것을 알고도 마음을 준 것을 보면 적어도 파루나는 이매가 아니라는 셈이지. 일단 그것으로 됐어.”

“…….”

필목현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말조심을 하기 위함인지, 혹은 용천휘의 생각에 깊이 동조하기 위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용천휘는 그의 반응에는 신경 쓰지 않고 명을 내렸다.

“사형이 돌아오거든 출발해. 호영장으로 간다. 지름길이 망가졌으니 다른 길을 찾아야겠군.”

“존명.”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느슨하게 다물리는 입술 사이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대체 누가 지름길을 망가트렸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지강백 일행은 곧 그 답과 마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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