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30화 (30/346)

제30화 잔평객잔에서 생긴 일 (1)

“워워.”

지강백이 모는 마차는 관도와 이어진 객잔 거리로 들어섰다.

산양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서안에서 종남을 거쳐 산양까지 이어지는 마지막 관목 같은 곳이라 과객이 많이들 거쳐 가는 장소기도 했다.

지강백은 고삐를 당겨 속도를 줄였다.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묵고 내일 다시 길을 달려 산양에 도착하는 게 나을 것이다.

땅거미가 짙게 드리워진 객잔 거리는 수많은 과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렇게 번화한 곳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섯 살 이후로는 양영천과 단둘이서 그 고즈넉한 산 정상에서 지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지강백은 약간 들뜨는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거리를 분주하게 오가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그 자체로 볼거리였다.

하지만 그도 잠깐, 곧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상한 일이로군.’

무인이 너무 많았다.

길을 걷는 이들 열 중 다섯이 무인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였다.

아무리 세상 물정에 어둡다 하나 이게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여봐라, 몸종아.”

마부석 뒤의 작은 창이 열리며 용천휘가 고개를 내밀었다.

지강백이 즉시 얼굴을 구겼다.

“왜?”

“어허. 이 시원찮은 종놈 같으니. 말버릇이 고약하다. 주인님께 어디 토막말인 게냐.”

“…….”

지강백의 얼굴에 갈등이 스쳐 갔다.

주먹을 꾹 움켜쥐는 모양새가 이걸 한 대 때릴지 말지 고민 중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종일 마차를 탔더니 몸이 곤하다. 객잔에서 하루 묵어야겠다. 적당한 곳을 찾거라.”

“적당하다면 어떤 곳이…… 입니까.”

“그런 것까지 일일이 말해줘야 하느냐? 쯧쯧. 무능한 것 같으니.”

탁.

그리고 창이 닫혔다.

“망할…… 아주 신이 났군그래.”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이 울끈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몸종 노릇은 용천휘가 저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시키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강백이 억울한 것은 그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종용했던 사부였다.

“대체 이런 일로 무엇을 배우라 하신 건지.”

하지만 사부님이 반드시 배울 점이 있다 하셨으니 찾아내 배울 것이다.

지강백은 용천휘의 말대로 적당한 객잔을 찾아 주변을 훑었다.

* * *

“다 왔다. 내려…… 내리십시오.”

지강백이 마부석에서 내렸다.

그와 동시에 점소이가 재빨리 달려와 마차 문을 열었다.

“어서 옵쇼! 친절과 성실로 가족처럼 모시는 잔평객잔이올습니다! 말고삐는 이리 주시고요, 옳지, 자 그럼 총 몇 분이십니까요? 식사는 그럼 사 인분으로 준비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이쿠, 이런. 신이 아주 고급이시네. 어쩐지 마차만 봐도 한눈에 보통 손님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습지요. 자자, 조심해서 내리십쇼.”

점소이는 제 소매를 끌어내려 마차의 발판을 싹싹 닦는 시늉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친절하다는 말 하나는 거짓이 아닌 듯 보였다.

“…….”

그러나 마차 안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내리시지 않고요? 아이고, 아직 발판이 덜 닦여 그렇습니까?”

싹싹싹.

점소이는 한 번 더 발판을 닦았다. 아깐 시늉만 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닦은 듯 소매에 먼지가 들러붙었다.

“자자, 다 됐습니다요. 어서 내리십쇼!”

“…….”

그래도 내리는 사람이 없자 점소이가 짜증을 냈다.

“보쇼. 이거 뭡니까? 더 닦아달란 말씀입니까? 나 참. 이거 왜 이러십니까요. 저도 바쁜 몸이란 말입니다. 아, 안 내릴 거면 마십쇼! 손님이 저들밖에 없는 줄 아나.”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점소이가 팔짱을 끼더니 침을 퉤, 뱉었다.

“내 몸종 강백아.”

용천휘는 점소이가 아닌 지강백에게 말을 걸었다.

그가 내리길 기다리고 있었던 지강백이 눈썹을 치켜떴다.

“이게 적당한 객잔이냐?”

용천휘의 부채가 밖을 한 바퀴 휙 돌았다. 눈이 있으면 너도 저 꼴을 좀 보라는 뜻이었다.

“저 하고 많은 객잔 중에서 기껏 고른 게 이런 곳이야? 입이 있다면 어디 변명이라도 해 봐!”

용천휘의 말에 박자를 맞춘 것처럼, 잔평객잔이라는 글이 쓰인 낡은 현판이 끼익 하고 기울어졌다.

금이 쩍 간 담벼락 위에 둥글게 몸을 말고 해를 쬐던 동네 고양이가 야옹, 하고 울었다.

그 밑으로 동네 개가 다리를 한 짝 들고 담벼락에 오줌을 쌌다.

그 옆에 찌그러진 동냥 그릇을 놓고 엎드려 있던 거지가 개 오줌이 튀었네 마네 하며 수선을 피웠다.

파리 한 마리가 애앵 대며 거지의 머리카락 사이를 날아다녔다.

그 가운데 있는 잔평객잔은 객잔이라는 이름이 용하다 싶을 정도로 허름하고 오래된, 끔찍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점소이가 다시 한 번 침을 모아 뱉었다.

“카악, 퉷! 아, 우리 객잔이 어때서. 좀 낡긴 했어도 아직 문짝 하나 망가진 데 없이 말짱한데. 게다가 요리는 얼마나 맛있는지. 이 근방에서 제일 맛난 요리를 판다고 소문이 자자하지, 암. 한번 먹어 보면 일 년 내내 여기서만 묵고 싶을걸?”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객잔 안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던 그가 갑자기 손을 떼고 우웩, 토악질을 해댔다.

토악질을 마친 그가 객잔 안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이런 미친! 이따위 걸 먹으라고 손님한테 내놓다니! 그래놓고 뭐? 근방 제일 숙수의 자존심에 먹칠을 했으니 돈을 두 배로 내라고? 이건 뭐 객잔이 아니라 산적 소굴 아냐? 이따위로 장사하다가 분명 천벌을 받을 게다!”

객잔 안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쳐나왔다.

“니미, 재수가 없으려니. 한 달 만에 든 손님이 저렇게 말 많은 종자일 건 또 뭐야. 주는 대로 곱게 받아 처먹고 자빠져 잘 것이지. 에이, 장사 방해 말고 어서 썩 꺼져!”

바가지를 들고 나온 그가 안에 든 것을 손님을 향해 휙 뿌렸다.

굵은 소금 알갱이들이 갓 토악질을 마친 손님의 얼굴로 날아왔다.

“으익, 악!”

손님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니미, 재수가 옴 붙으려니 원 별…….”

그러다 주인은 객잔 앞마당에 들어올 것처럼 서 있는 마차를 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 사두마차는 척 보기에도 몹시 비싼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인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어이쿠, 손님이십니까! 자자, 어서 들어오십쇼! 저희 잔평객잔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결같은 친절과 배려로 모든 손님들을 가족처럼 맞이하는 양질의 숙소올시다!”

용천휘는 그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신 부채 끝으로 마차 벽을 탁탁, 쳤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용천휘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잘도 이런 곳을 골랐군그래. 이러면 내가 몸종 노릇을 관두라 할 줄 알았어?”

이런 곳이라는 말에 점소이와 객잔주가 발끈해서 카악, 가래침을 끓어 모았다.

그럴수록 용천휘의 기분은 점점 더 나빠져 갔고, 중간에 낀 지강백은 난처해졌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이 와중에 반말지거리라니. 아주 작심하고 반항을 하는군. 종놈 주제에.”

지강백이 울끈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끝에 도련님 붙여야지.”

“그런 개 같……,”

“응? 뭐라고?”

“그런 게 아닙니다. ……도련님.”

도련님이라는 말은 조금 시차를 두고 흘러나왔다.

어쨌거나 도련님 소리를 들은 용천휘는 조금은 만족스러웠던지 표정이 이전보다 부드러워졌다.

그래도 잔평객잔의 한심한 수준이 갑자기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냐. 한번 봐주지. 어서 마차를 돌려라. 이 끔찍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객잔을 찾아.”

끔찍한 곳이라는 말에 점소이와 객잔주가 모아두었던 가래침을 뱉어냈다.

“카악, 퉷! 니미, 어디 그럼 가보시든가.”

“나중에 다시 와 방 달라 애걸만 해 봐라. 그땐 방값을 두 배로 올릴 테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손님으로 왔지만 조금도 손님이 되고 싶지 않은 지강백 일행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저렇게 구는 걸까.

심지어 잔평객잔은 건물이 땅을 향해 손가락 두 마디쯤 기울어 있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천만해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지강백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지금 방을 내어주십시오. 식사도 필요합니다. 값은 넉넉히 쳐드리겠습니다.”

“뭐? 미쳤어?”

탁탁, 다시 부채가 움직였다.

“이 몸더러 지금 저런 곳에서 묵으라는 말이야?”

저런 곳이라는 말은 점소이와 객잔주를 자극했다.

“뭐, 저런 곳? 하, 니미. 값을 세 배로 올려야겠군.”

사이에 낀 지강백이 한숨을 쉬었다.

“모르면 좀 가만히 있……습시오. 다른 객잔은 전부 만실이라 이곳 말고는 빈방이 있는 곳이 없단 말입니다.”

“뭐라고?”

지강백의 말에 의기양양해진 점소이가 삿대질을 했다.

“흥, 그러게 뭘 알고 이런 거니 저런 거니 지껄이든가. 요 며칠 이 동네가 난리가 나서 객잔마다 방 찾는 인간들로 난리인 것도 모르고!”

객잔주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맞아. 그나마 우리 잔평객잔쯤 되니까 이런 난리 통에서도 빈방을 남겨둔 게지. 이곳은 언제나 친절과 배려로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곳이니까.”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잔평객잔에 빈방이 남아도는 이유가 손님에 대한 친절이나 배려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난리가 났다고? 무슨?”

용천휘는 흥미가 도는 모양이었다.

지강백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느 객잔이나 방이 없어 사람들이 곤란해하는 것은 제법 보았……습니다.”

“흐음.”

용천휘가 부채를 파닥였다.

그새 자세를 싹 바꾼 객잔주와 점소이가 양손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럼 방을 준비할깝쇼?”

“뜨거운 물, 맛있는 식사, 푹신하고 깨끗한 침상. 객잔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정직과 신뢰의 객잔, 잔평객잔이올시다.”

용천휘가 코웃음을 쳤다.

“그건 딱 봐도 아닌 것 같고.”

객잔주와 점소이의 얼굴에서 얄팍한 웃음이 사라졌다.

“카악, 퉷! 아 그럼 썩 꺼지든가. 왜 남의 장삿집 길목을 막고 지랄이야. 다른 손님도 못 들어오게.”

“대신 무슨 난리가 있는지는 좀 궁금한데.”

사라진 웃음이 두 배가 되어 돌아왔다.

“어이쿠,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정말 잘 오셨습니다요. 저희 잔평객잔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무려 삼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곳으로, 이 지방 터줏대감이나 다름이 없습지요. 이 동네 낮말 밤말은 모두 저희 잔평객잔에서 키우는 새와 쥐를 거쳐 간다 장담합니다요.”

“그래? 그럼 어디 얘기를 좀 들어보지.”

용천휘가 성큼 마차에서 내렸다.

그 뒤로 필목현과 채희유가 몹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지만, 용천휘가 저렇게 나오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지강백 일행은 그렇게 잔평객잔의 두 번째 손님이 되었다.

* * *

“……해서, 결국은 다들 호영장의 비극을 구경하기 위해 이리로 몰려들었다는 게지요.”

일 층의 식당은 기대했던 대로였다.

어둡고 더러운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잔평객잔에서 일부러 키우는 놈들이라 주장하는 쥐 떼가 우르르 몰려나와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웠다.

“원 참. 남 죽는 걸 보는 게 뭐 그리 신나는 볼거리라고 우르르 꿀 본 벌떼처럼 달려든단 말입니까요. 하여간 세상만사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했으니…… 쯧쯧. 아, 차가 식습니다요. 그러지 말고 어서들 한 모금씩 쭈욱 들이켜십쇼.”

일행의 앞에는 거무죽죽한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얼핏 독약같이 생긴 그것은 이 지역 특산품이라는 흑차(黑茶)라 했다. 용천휘는 점소이가 차를 내오자마자 우리 몸종 마차를 모느라 고생했다며 그것을 지강백에게 주었다.

지강백은 차마 마시지 못하고 그냥 찻잔째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점소이는 손님이 주문한 차를 마시지 않는 일쯤이야 익숙하다는 듯 입맛에 안 맞으시냐는 얘기 같은 건 꺼내지도 않았다.

그사이 용천휘는 은 한 덩이를 꺼내 찻잔 옆에 놓아두었고, 그걸 잽싸게 챙긴 점소이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꺽 입을 열기 시작했다.

딴에는 친절하고 싶었는지 차를 들라 짬짬이 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또 그게 비극이랄 것도 없는 게, 호영장의 장주, 호곽이 누구냐. 바로 당대의 제일쾌검 남궁진현의 둘도 없는 친우란 말이올시다. 듣기로는 남궁진현이 호곽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벌써 남궁세가를 떠났다 하지 뭡니까.”

요컨대 그런 얘기였다.

당금 강호에는 무연객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무연객(無然客).

말 그대로 인연이 없는 자라는 뜻이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사문이 어디인지 하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이 강호에 나타났다.

무연객이라는 이름이 강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무당파 칠대고수 중 맏이라 알려진 이호 도인을 꺾은 이후부터였다.

이호 도인을 단 삼 합 만에 제압한 무연객은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제 목을 치라 절규하는 그에게,

-나는 은원을 맺으려 함이 아니다. 은원으로 인한 연이 없기를 바란다. 나는 오로지 내가 지닌 무공을 시험하고 싶을 뿐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명호는 무연객이 되었다.

무연객은 그 뒤로 수많은 상대와 비무를 벌였고, 시비를 겪었으며 그가 원하지 않는다 하던 은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무수한 인연들 중, 무연객의 패배는 없었다.

무연객을 꺾었다 말하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어쩌면 무연객은 제 생이 끝날 때까지 그의 고독한 비무행을 계속하리라.

무연객의 이번 비무행은 산양으로 이어졌다.

대대로 산양 땅에 터를 잡은 전통의 무가 호영장의 가주 호곽이 무연객으로부터 첩지를 받은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강호인들은 당장 산양으로 몰려들었다.

무연객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 발이 멀쩡한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산양으로 오고 싶어 했을 것이다.

“제 친우가 웬 정체 모를 인간에게 죽게 생겼는데 남궁진현이 어찌 가만있겠습니까요. 그래서 부랴부랴 비첩에 명시된 그 날까지 이곳 산양에 당도하도록 달려오고 있다 안 합니까. 당대 제일의 쾌검이라는 그인데, 까짓 무연객이 상대나 되겠습니까요? 이번에야말로 무연객이 무생객(無生客)이 되는 게 아니냐 하는 호사가들도 있습니다요.”

점소이는 여기까지 말한 뒤 목이 마르네, 어쩌네 하면서 입을 닫았다.

“목이 마르면 이걸 드십시오.”

지강백이 그에게 자신의 차를 내밀었다. 점소이는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에서 퍼뜩 일어섰다.

차르륵.

용천휘가 부채를 펴서 자연스럽게 점소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전에.”

점소이가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예에? 아니 무슨, 설마 저더러 저 차를 마시라는 겁니까요? 아이고, 안 됩니다요. 손님 음식에 손댄 것을 알면 저희 주인 나리께서 경을 치십니다요.”

용천휘가 그를 지그시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안 마셔도 돼.”

“어이쿠, 감사합니다. 손님께서 방금 제 이 미천한 목숨 하나를 살리셨습니다요.”

“음, 그래. 그렇다면 생명의 은인에게 그에 합당한 보답을 해야지?”

“음? 합당한 보답이라니요?”

“얘기는 그게 다가 아닐 텐데.”

그러자 점소이가 표정을 바꿔 손을 내밀었다.

“나, 참. 보자 보자 하니까. 이보쇼, 돈 많아 보이시는 손님. 이 바닥에도 규칙이 있고 금칙이라는 게 있지. 이 바쁜 사람 붙들고 얘기를 들으려면 맨입으로는 안 된다는 거, 그게 상식 아뇨.”

용천휘는 두 말 없이 좀 전보다 더 큰 은덩이 하나를 꺼내 점소이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점소이가 그것을 보고는 눈을 번쩍 떴다.

“저희 잔평객잔은 손님이 왕인 곳이올시다. 그 어떤 얘기라도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제 입이 아무리 묵직한들, 일부러 쪼개서라도 입을 열어얍지요.”

점소이는 아예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무연객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호곽이 아닌 남궁진현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요. 생각해 보십쇼. 남궁세가에 비첩을 보내면 어디 남궁진현 하나만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요? 반면에 처음부터 호곽을 노리는 척하면,”

“친우를 돕기 위해 홀로 나선 남궁진현만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이고, 참으로 명석하십니다요. 바로 그것이지요.”

용천휘가 부채로 점소이의 팔을 탁, 내리쳤다. 그 바람에 은덩이가 데굴데굴 굴러 지강백의 발치로 떨어졌다.

점소이가 얼굴을 붉히며 펄쩍 뛰었다.

“아이고, 손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요?”

“그 얘기만으로는 내가 준 돈의 값을 못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런, 니미. 뭐 그런……,”

대뜸 욕설을 내뱉은 점소이는 스스로 허리를 굽혀 은덩이를 주우려 했다.

그러나 은덩이가 지강백의 발밑에 있는 한 함부로 손을 뻗을 수는 없었다.

왜냐.

지강백이 현재 남의 몸종 노릇이나 하고 있지만, 그의 눈매는 사람 수십 명 정도는 거뜬히 죽였을 법한 살인마처럼 날카롭고 흉흉하기 그지없던 탓이었다.

스스로 은덩이를 손에 넣는 것을 포기한 점소이가 몸을 한껏 낮춰 주변을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무연객은 아주 박색일 거라 합니다.”

“……그래?”

퍽도 비밀스러운 얘기였다.

그러나 점소이는 어디까지나 진지했다.

“암만요. 왜냐하면 이제껏 무연객이 맨얼굴을 내놓고 다닌 것을 본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입죠.”

“그럼 어떻게 무연객임을 알아보지?”

“무연객은 항상 독특한 죽립을 쓰고 다닌다 하대요. 그 밑으로 치렁치렁한 머리를 드리우고 말입죠. 오죽 못생겼으면 얼굴을 저래 꽁꽁 감추겠습니까요.”

점소이의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끼이익.

객잔의 정문이 열렸다. 그리고,

“여기 빈방 하나 있소이까?”

잔평객잔에 세 번째 손님이 들어섰다. 손님은 모두 둘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커다란 죽립 밑으로 긴 머리를 치렁치렁 드리우고 있는 차림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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