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29화 (29/346)

제29화 사형과 몸종 사이

히이이잉!

다가닥다가닥!

종남산에서 산양으로 이어지는 대로를, 한 대의 마차가 질주했다.

몸체부터 바퀴까지 윤이 자르륵 흐르는 사두마차는 한눈에도 튼튼하고 값비싸 보였다.

문제는 마부였다.

마부석에 앉아 있는 이는 얼핏 준수하게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인상을 잔뜩 쓰고 있었다.

부릅뜬 두 눈에는 긴장이 터질 듯했다.

말고삐를 꽉 움켜쥔 손에는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힘줄이 울끈 불거져 나왔다.

그에게 고삐를 붙들린 말들은 그야말로 신들린 듯 달리는 중이었다.

마차 뒤로 까마득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자잘한 돌들이 바퀴 밑에서 튀었으며 그때마다 마차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였다.

얼마나 그렇게 달렸을까.

마차 안에서 쾅쾅,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왔다.

“제발, 좀! 세워! 세우라고!”

마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경이 온통 마차를 달리게 하는 데만 집중되어 있는 듯했다.

덜컥!

마차와 마부석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창이 열렸다.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누군가가 마부석을 향해 뭔가를 집어 던졌다.

탁!

이제 보니 그것은 열 냥쯤 나갈 듯 보이는 은덩이였다.

마부는 은덩이에 맞기 전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냈다.

마부가 힐긋 뒤를 돌아보았다.

“왜?”

“안 들려? 좀 세우라고!”

마부가 혀를 차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차가 멎었다.

덜컥!

마차가 멎자마자 누군가가 안에서 뛰어내렸다.

고운 비단 장포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젊은 청년이었다.

비단보다 더 결이 고운 머릿결이 바람에 흩날렸다.

마차에서 뛰어내린 청년은 땅에 발을 내디뎠다. 청년이 신고 있는 고급 가죽신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장포 위로 두른 허리띠며, 한 손에 든 쥘부채며 모두 예사 물건들이 아니었다.

차림새도 근사했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근사한 것은 청년의 생김새였다.

관옥을 깎아 빚은 듯한 미남이라는 말은 청년을 두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한 가지 흠을 잡자면, 약간 창백해 보이는 안색이었다.

허나 그 탓에 입술이 더욱 붉어 보여 진한 인상을 남기니 흠이라 할 것도 없었다.

마차 옆에 선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으욱!”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쯧쯧.”

마차 안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원, 멀미까지 하실 정도였습니까?”

“……으, 욱! 제길, 말 시키지…… 욱!”

기어코 신물을 뱉어낸 청년이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마부석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너 때문에……, 제길. 똑바로 몰지 못하겠어?”

마부는 말고삐를 쥔 채 눈썹을 까딱였다.

마부라 하면 일꾼일 텐데 표정은 아무리 봐도 제 주인을 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처음이라 그렇다. 마부 노릇이 익숙하지 않아서.”

“익숙하지 않으면 살살 몰아.”

“그러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가뜩이나 창백하던 청년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뭐……? 그게 애쓰는 중이었다고?”

마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거짓말하지 마.”

“진짜야.”

“그럼 머리가 정말 나쁜 모양이로군. 마차 모는 법은 이 몸이 잘 가르쳐줬잖아. 그런데 그렇게밖에 못해?”

마부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마음에 안 들면 네가 직접 몰든가.”

청년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멀쩡한 몸종을 놔두고.”

“…….”

마부는 이제 눈초리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를 마주 보는 청년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

“아, 그리고 그 시건방진 말투 좀 어떻게 해. 몸종 주제에 어디서 주인님 면전에 대고 하대야.”

“…….”

“쯧. 하여간 머리는 나빠서. 지금 몸종 노릇을 하는 중이라는 걸 계속 까먹는 모양이지?”

마부가 주먹을 울큰 쥐었다.

그 손에는 좀 전에 받아들었던 은덩이가 들려 있었다.

“이거나 가져가라.”

퍽!

그가 손을 휘젓자 은덩이가 날아갔다. 청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날아간 은덩이가 마차의 문짝에 박혔다.

누가 보면 돈이 남아 놀아 마차에 은장식을 더한 줄 알 것이다.

청년이 은덩이를 뽑으려고 했다. 하지만 은덩이는 아교 칠을 해놓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포기한 청년은 화를 내는 대신 입꼬리를 비스듬히 꼬아 올렸다.

“또 까먹었군. 이거나 가져가십시오, 겠지.”

일부러인 듯, 부채가 나풀거렸다.

“사형.”

“…….”

청년과 마부는 각각 용천휘와 지강백이었다.

종남산을 떠나온 지 두 시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 * *

“그러니까 제대로 하라고!”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하라고 했다.”

“내가 왜? 사형은 내 몸종이야. 잊었어?”

“그럼 잔말 말고 다시 타. 갈 길이 멀다.”

“틀렸어. 갈 길이 멉니다, 주인님. 다시 말해 봐.”

“타기 싫으면 마차 뒤에 묶어 줄 수도 있어. 그땐 더 조심해서 몰지. 말만 하라고.”

“이거 곤란한데. 이렇게 건방진 몸종을 다 봤나.”

두 사람의 말씨름이 계속됐다.

“후우.”

마차 안에서 채희유가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군요. 이러다 소림에는 영영 도착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필목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불상사는 피해야지.”

채희유가 마차 밖으로 나갔다.

용천휘와 한창 눈씨름 중이었던 지강백은 채희유를 보자 표정이 더 굳었다.

평소처럼 차갑게 화를 낼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탓이었다.

“갈 길이 멉니다. 제가 손을 좀 거드는 게 좋겠다 싶어 나왔습니다. 필 총관께서는 이런 일을 도우실 분이 아니니 저밖에 없겠다 싶더군요.”

용천휘가 부채를 한 번 퍼덕였다.

“속 안 좋다고 난리 피울 땐 그냥 보고만 있었으면서. 이제야 나서긴.”

“저는 의원이 아니라 약사니까요. 약이 다 짐칸에 실렸는데 어쩌라는 말씀인지요.”

채희유는 이어서 지강백을 향해 말했다.

“말을 너무 험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말도 감정이 있고 사람과 교감을 합니다. 힘으로만 움직이려 하시니 사람과 말 양쪽에 다 날이 곤두서는 겁니다.”

지강백이 멋쩍은 얼굴이 되어서 뒤통수를 문질렀다.

“그게…… 지금껏 말을 다뤄본 적이 없어서요.”

“그러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좀 말을 살피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사형 분께서도 잠시 내려오시지요.”

지강백은 순순히 마부석에서 내려섰다.

채희유는 그가 말과 마주 보게 만들었다.

지강백의 옆에 선 채희유가 손을 뻗어 말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흥분할 것 없어.”

말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희유가 부드럽고 낮은 말을 속삭였다.

“달리는 것은 너희의 일이잖아. 이제껏처럼 달리면 돼.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서 겁먹지 마렴.”

눈꽃 같던 그녀의 어딘가가 봄이 된 듯했다.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다정한 말투였다. 지강백은 제 마음 한구석도 흐트러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말이 푸르르 콧김을 뿜더니 채희유의 손에 제 이마를 비볐다.

“그래, 그래. 내가 같이 있을 거야. 너희들도 조금만 더 착하게 굴어 줘.”

채희유는 네 마리의 말에게 차례로 말을 걸었다. 말들은 모두 그녀의 말을 기꺼이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다.

온순해진 말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하자 채희유는 눈을 한껏 접어 웃었다.

입이 불쑥 열렸다.

“말을 나누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채희유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지강백을 보았다.

말을 대할 때의 그 환하던 웃음이 그새 사라졌다. 지강백은 어딘가에 남아 있을 미소의 흔적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말과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했습니다.”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채희유는 지강백에게 제 손바닥을 내밀어 보였다.

“흥분한 짐승을 달래는 데 효과가 있는 약초를 조금 바르고 온 것입니다.”

지강백은 채희유가 내민 하얀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약초 냄새 같은 건 전혀 묻어 있지 않은 하얀 손이었다.

“그렇습니까?”

“예.”

채희유의 설명을 들으면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지강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당기는 힘을 거부하며 날뛰던 말들이었다. 그런데 채희유가 부드럽게 쓰다듬자마자 온순히 고개를 숙인다.

염주초 열매도 그러했다.

분명 같은 열매인데 채희유가 따서 주면 희한하게도 배앓이를 하지 않았다.

“저는 항상 채 소저가 놀랍습니다.”

“약사가 약초를 다루는 게 대수겠습니까. 놀라워하실 것 없습니다.”

지강백이 정색을 하고 고개를 저었다.

“놀라운 것을 어찌 놀랍지 않다 합니까. 채 소저는 제게 늘 놀랍고……,”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가 말을 끊었다.

“……놀라워서 늘, 궁금한 분입니다. 궁금해서 더 알고 싶습니다. 더 많은 것을요.”

“아……,”

별 얘기도 아니었다.

지강백은 아직 여인을 몰랐고, 여인이 사내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채희유가 늘 새로운 것은 그저 여인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채희유라서 그런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궁금하다 한 것이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런데 채희유는 얼굴을 붉혔다.

양 볼과 목덜미를 붉게 달군 채 당황하여 시선은 갈 곳을 몰라 했다.

“제가 무얼 잘못 말했습니까.”

지강백이 묻자 채희유가 힘껏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 아니……. 아니,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리 당황하십니까.”

“그게, 저는…….”

채희유는 무슨 말을 하려 했을까.

뭔가에 걸린 듯,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이 입술 안쪽에 머물렀다. 지강백은 우물대는 입술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덕에 알았다.

말을 하지 않는 여인의 입술이 어떤 것인지.

안에 고여 있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래서 문득 초조함을 느꼈다.

강제로 어딘가를 쥐어서라도 그 말을 내뱉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나 난폭한 구석이 있었나 싶어 스스로가 놀랐다.

“말씀을 하십시오.”

지강백이 채근하자 채희유가 붉어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하얀 얼굴 위로 곱게 번진 홍조가 꼭 꽃을 보는 듯했다.

눈 내린 겨울처럼 차고 깨끗하던 그녀가 지금 이 순간에는 봄이 되었다. 따스하고 아리따운 봄꽃이 되어 금방이라도 망울을 터트릴 듯했다.

“저는……,”

그녀가 터트릴 망울은 어떤 향기를 뿜을까.

어떤 색을 피울까.

어떤 아름다움을 드러낼까.

그런데 그 전에,

“뭐 이리 오래 걸려? 출발 안 해?”

용천휘의 채근이 날아들었다.

채희유는 순식간에 원래의 차고 깨끗한, 그래서 아무도 필요 없는 혼자만의 계절로 돌아갔다.

“말들은 흥분을 가라앉혔으니 이제 한결 수월히 다룰 수 있을 겁니다. 고삐를 그리 힘주어 당기지 마시고요. 말들도 저를 다루는 사람의 마음을 느낍니다. 말을 너무 어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채희유는 만류할 틈도 주지 않고 곧장 마차 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지강백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사라진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저는, 더 알고 싶습니다. 더 많은 것을요.”

지강백은 방법을 하나밖에 몰랐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스로 알아내면 되었다.

어린 시절 이후로 양영천은 무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어주지 않았다.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스스로 알아내라 했다. 깨닫지 못하는 게 있다면 깨우칠 때까지 두드리라 했다.

“그러니 하나씩 알아내겠습니다.”

담담한 음성이었지만 힘이 실려 또렷했다.

닫힌 문을 넘어서 채희유에게까지 들렸을 것이다.

이어서 지강백은 마부석으로 올라가 다시 고삐를 쥐었다.

또 말들과 씨름할 생각을 하니 잠시 골치가 아팠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말들은 한결 온순해 보였다. 채희유가 손바닥에 묻혀 왔다는 약초의 향이 어딘가에 묻어 효력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다.

지강백이 그녀가 남긴 것들에 아직 취해 있는 것처럼.

“다시 한 번 해보자. 이렷!”

잠시 멈춰 섰던 마차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속도는 가슴이 서늘할 정도였지만, 지금은 마부나 말들이나 한결 더 균형이 잡힌 듯 보였다.

* * *

“……원래 그런 게 네 역할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야.”

채희유가 마차에 오르자 들려온 말이었다.

제 자리에 앉으려던 채희유의 신형이 굳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적당히 하라고.”

용천휘가 슬쩍 턱 끝을 돌려 마차 밖을 가리켰다.

“나는 사형을 쓰다 버리려는 거지 쓰기도 전에 독에 말려 죽이려는 게 아니거든.”

채희유는 눈을 내리깔아 본심을 감추었다.

“암살이 필요하시면 명을 내리십시오. 소야의 뜻이 없이 파루나가 먼저 움직이는 일은 이전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왜 답지 않게 둔한 척이지?”

휙!

용천휘가 채희유의 팔을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채희유의 몸이 용천휘를 향해 훌쩍 기울었다.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까웠다.

금방이라도 겹칠 듯 붙어선 입술로 용천휘가 호선을 그었다. 그 짧은 미소에서는 비린내가 날 것 같았다.

“내 사형이 어떤 사내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이런 식으로 불시에 널 탐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그만 놓아 주십시오. 소야께서 새삼 저를 여인으로서 취하시려는 것도 아닐 텐데요.”

“내 의도를 미리 앞서 논할 불경을 저지를 만큼 내 사형이 각별하다는 소리인가?”

용천휘는 비린 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것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채희유는 속으로야 어떻든 무표정을 유지했다.

“……불경이 되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허나 파루나에게 각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분이시고, 저는 그 사실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뭐, 그렇다니.”

용천휘가 팔을 놓았다. 채희유의 몸이 떠밀린 것처럼 한 차례 휘청였다.

“그래도 조심하라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사형이 의외로 속이 검은 사내일지 누가 알겠어.”

채희유의 눈이 바닥을 향했다.

“……예, 소야.”

용천휘가 채희유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 또한 속으로는 어떻든 평소처럼 느긋한 태도였다.

“그만 앉아.”

“감사합니다, 소야.”

채희유가 자리에 앉았다.

마차 안은 멈추기 이전처럼 고요하고 경직된 수직의 평화를 가장했다.

다각다각…….

경쾌하게 달리는 마차 소리가 무심하게 귓가를 스쳐 갔다.

마차는 소림사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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