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소림사행
그리고 다음 날이 밝았다.
지강백은 간만에 사부의 부름을 받아 장문인의 거처가 있는 전진각으로 향했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하고 들어가니 이미 방 안에는 용천휘와 필목현이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지강백은 와서 앉아라, 하신 사부님 앞에 단정히 무릎을 굽혀 정좌했다.
이어 사부님이 하신 말씀은……
“……예?”
지강백이 거듭 물었다.
방금 들은 사부님의 말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탓이다.
“어흠, 이놈. 뭘 그리 자꾸 묻느냐. 그새 청력이 쇠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양영천은 애꿎은 제자를 타박하며 말을 이었다.
“이것도 마침 기회가 아니겠느냐. 이참에 강호로 나가 식견을 넓히고 오라는 게다.”
“그 점은 제자도 아무 이견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자신처럼 부족한 제자를 하산하도록 허락해준 사부님의 하늘같이 넓으신 은혜에.
문제는 그 방식이었다.
“그런데 꼭, 사제의 시동 노릇을 하며 다녀올 이유가 있습니까?”
“어흠, 흠!”
양영천이 헛기침을 했다.
그 바람에 짤똑하니 잘린 토막 수염이 참 어색한 모양새로 흔들렸다.
지강백은 사부의 수염이 갑자기 짧아진 이유를 몰랐다. 한 번 얘기를 꺼냈으나 양영천이 하도 언짢은 표정을 짓는 바람에 차마 더는 묻지 못했다.
어쨌거나.
“그야 네가 밖에 나가 본문의 제자 노릇을 하기에는 아직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니라.”
대환단 얘기가 나온 시점부터 양영천은 이미 마음을 먹었다. 눈 한 번 딱 감고 용천휘의 거래에 응하기로.
대환단은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이제껏 십칠 년간 지강백을 속여 온 거짓말이 들통 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용천휘는 이 점을 아주 쉽게 해결해 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사형이 제 실력을 알아 자칫 자만에 빠질까 봐 저어하시는 겁니까?
용천휘의 말은 십 할 정확한 진실은 아니었지만 대충 비슷하긴 했다.
-그, 그렇지. 강백이는 아직 배울 것도 한참이고 하니…….
-그렇다면 밖에 나가 무공을 쓰지 말라 이르면 되지 않겠습니까?
-강호란 게 어디 그게 가능한 곳이겠느냐. 한 걸음을 걸으면 시비요, 두 걸음을 걸으면 곧장 칼질인 곳을.
무공을 쓰지 말라 일러놓으면 지강백은 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꼼짝 않을 제자였다.
제자가 멀쩡한 무공을 놔두고 어디 가서 얻어터지고 다니는 꼴은 보기 싫은 게 또 사부 마음이었다.
-종남의 제자라는 사실을 숨기면 되지요.
-그게 그리 쉽겠느냐?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용천휘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표정이 몹시 수상해 보였지만, 양영천은 결국 묻고 말았다.
-방법이 있겠느냐?
-물론입니다.
그 방법이란 게, 제 시동으로 위장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는데 듣고 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시동이 무엇인가. 몸종이다.
몸종이 하는 일이라고는 눈치 빠르게 제 주인님 몸시중을 드는 것이다.
돈 좀 있는 집 자식이라면 몸종 한둘쯤은 예사로 데리고 다니니,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고로 엄한 일로 생판 모를 강호인과 시비가 붙을 거리도 없었다.
시비가 붙지 않으면 무공을 쓸 일도 없을 테고, 무공을 쓰지 않으면 저가 제법 잘난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일도 없었다.
양영천은 일각쯤 고민하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깟 몸종 노릇 따위.
대환단을 얻을 수 있으면 석 달이 아니라 삼 년이라도 하겠다고 나설 인간이 태반인 것을.
“아, 뭐 하고 있는 게냐. 어서 갈 채비를 하지 않고. 기왕 나서기로 한 것이니 한 걸음이라도 서둘러야지 않겠느냐. 숭산까지는 먼 길이니라.”
지강백이 입을 꾹 다물고 양영천을 쳐다보았다.
언제나 지극한 공경이 어려 있는 눈에 오늘따라 원망이 스쳐 가는 듯도 했다.
“어흠, 흠.”
양영천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네게 어디 생각 없이 하라 하는 일이 있다더냐. 시동 노릇도 크게 보면 다 네놈이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디 한번 열심히 찾아 배워 보거라.”
“사부님.”
“어허. 이만 나가 보래도.”
양영천은 아예 눈을 감고 지강백을 외면했다. 용천휘가 부채 끝으로 지강백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뭐냐?”
험악한 눈이 용천휘를 향했다.
용천휘가 싱긋 웃으며 부채를 설렁였다.
“사형은 시동 노릇 해 본 적 있어?”
“……있을 것 같나?”
“그럴 거 같더라.”
용천휘가 턱을 까닥 움직였다.
“따라와.”
“어디를?”
“짐 싸는 법부터 알려줄게.”
“…….”
입을 다무는 지강백을 향해 용천휘가 더욱 활짝 웃었다.
“나는 시동을 부려본 경험이 아주 많거든. 그러니까 내가 잘 가르쳐 줄게. 겁먹을 것 없어.”
“…….”
할 말을 잃은 지강백의 등 뒤에서 양영천의 말이 들려왔다.
“잘됐구나. 어서 가서 배우거라. 어흠흠.”
필목현도 거들었다.
“도련님뿐 아니라 저도 있습니다. 도련님이 영 못 미더우시다면 제가 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
다른 때라면 차라리 안 가겠다고, 시동 노릇 따위를 배우느니 얌전히 수련이나 계속하겠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림이었다.
중원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그곳이었다.
직접 가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중원 무학의 정점이라는 소림의 무공은 대체 어떠할까.
양영천이 대환단이라는 대가를 거절할 수 없었듯이, 지강백 또한 소림사라는 미끼를 그대로 흘려보내지 못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님.”
대답하는 제자의 목소리는 어두웠고, 그를 듣는 사부의 얼굴은 애잔했다.
느닷없는 소림사행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남성 숭산까지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과 소림에서 머무는 시간을 대강 더하니 서너 달이 나왔다.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는 게 양영천의 생각이었고, 용천휘도 동의했다.
서너 달의 외유를 준비하는 시간도 그리 길진 않았다.
지강백은 한 시진도 안 걸려 뚝딱 짐을 싸고 제 처소를 정리했다.
서너 달씩이나 사문을 비울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큰형님. 준비는 다 하셨소?”
깨끗이 정리한 방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있자 왕대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형님 가시는 길에 마땅히 동행해야 한다고 나선 그는 지강백보다 먼저 짐을 꾸려놓은 상태였다.
“그래.”
“아이고, 우리 큰형님은 성격도 참 깔끔하시지. 어째 두 번 다시 안 돌아올 사람처럼 이리 정리를 다 하셨소?”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지강백이 멋쩍은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런가. 원체 짐도 많지 않아서.”
“듣자하니 하산하는 것이 처음이시라 하던데, 그래 마음이 싱숭생숭하나 보오?”
“아니라곤 말 못 하겠군.”
“그래도 길나서면 곧 괜찮아지실 게요. 작은 형님께서 이곳 정리를 다 했으면 어서 나오라 하시던데, 같이 가십시다.”
지강백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왕대환이 바지런히 그 뒤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는데,
“어엇, 잠시 기다리시오!”
내평당 저쪽 끝 방에서 염창이 보따리를 움켜쥐고 뛰어나왔다.
왕대환이 혀를 내둘렀다.
“뭐야. 너도 가려고?”
“아니, 그럼 내가 안 가면 누가 가오.”
“그게 무슨 소리냐? 당연히 내가 가는 게지.”
“원 참. 두목은 그때 부러진 팔 아직 다 낫지도 않았잖소. 무리 말고 그냥 예서 맑은 산공기나 쐬고 계시오. 큰형님은 내가 잘 모시고 다녀오겠소.”
“어림없다!”
그때 그 옆방에서 구악이 나왔다. 그 역시 제 몸집만 한 보따리를 챙겨 든 상태였다.
왕대환과 염창이 동시에 인상을 썼다.
“너는 또 뭐냐!”
“저는 당연히 가얍지요. 제가 아니면 숭산까지 길 안내를 누가 하겠습니까요.”
“뭐? 길을 안다고?”
“암만요. 제가 괜히 귀신눈이겠습니까요.”
왕대환이 잔뜩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원 참. 이리 일행이 많아지면 작은형님이 부담스러워하시지 않겠냐. 어디 나들이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문파에 무공 염탐하러 가는 것인데.”
염창이 냉큼 말을 받았다.
“말 잘했소, 두목. 그러니 두목이 빠지시오. 그 팔로 장기 출타는 무리요.”
“뭐야? 그러는 네놈은! 네놈이 가봤자 어디 쓸 데가 있겠냐!”
“팔 한 쪽 못 쓰는 인간보다야 쓸모가 있겠지. 뭘 내 걱정까지 하시오.”
“이놈이!”
왕대환이 주먹을 휘두르려고 하자 지강백이 막아섰다.
“그만 둬라. 경내에서 소란은 안 돼. 창이 너도 그만 하고.”
둘은 그 즉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손을 내렸다.
“아이고, 소란은 무슨. 그냥 장난 친 거요, 큰형님. 원래 우리 형제들이 우애가 돈독하잖소.”
왕대환이 애써 웃으며 염창의 등짝을 팡팡 두들겼다.
어찌나 세게 두드렸는지 묵은 먼지가 풀풀 날렸다.
발끈하려던 염창이 잇몸을 드러내는 희한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오, 큰형님. 우리 산채 우애야 어디 내놔도 안 부끄럽지. 두목, 거 부러진 팔은 잘 들러붙었소? 여기였나?”
우드득.
염창이 왕대환의 팔을 붙들자 괴상한 소리가 울렸다.
왕대환은 비명도 못 지르고 인상만 잔뜩 쓸 뿐이었다.
그사이 지강백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기다린다며. 쓸데없는 짓 말고 빨리 가자.”
왕대환과 염창이 어디 두고 보자며 서로 눈을 흘길 동안 구악이 눈치 빠르게 지강백의 뒤를 쫓았다.
“예, 예. 큰형님. 지금 갑니다요. 어디, 짐이 무거우시면 제가 좀 들어드릴깝쇼?”
“괜찮다.”
“아이고, 괜찮긴요. 아우들이 이리도 많은데 어찌 큰형님이 손수 짐을 드십니까요. 어서 이리 주십쇼.”
구악은 지강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짐을 빼앗아 들었다.
지강백이 쑥스러운 듯 작게 “고맙다.”고 말하는 게 들려왔다.
“내, 내가 들어드려야 하는 건데…….”
순서를 빼앗긴 왕대환이 망연자실 중얼거렸다.
“것 보오. 두목이 괜히 시비를 거니 저런 것도 하나 못 챙기지 않소. 에잇, 쯧.”
염창이 자신의 보따리를 챙겨 들고 걸음을 서둘렀다. 정신을 차린 왕대환이 그 뒤를 부지런히 쫓았다.
* * *
그러나 돈독한 우애를 시험하면서까지 했던 노력은 헛것이 되었다.
“가긴 어딜 간다는 말이냐!”
“너희들은 안 데려갈 건데?”
제자 후보들은 동시에 들려오는 사부님과 작은형님의 말에 망연자실했다.
여기저기서 툭툭, 짐 보따리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림사 구경을 가겠다고 들뜬 제자 후보들은 왕대환이나 염창, 구악뿐만이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봄.
다른 산으로 나들이 가기 참 좋은 계절이었다.
용천휘가 설렁설렁 부채를 저으며 말했다.
“인원이 너무 많아지면 곤란해. 마차를 몇 대씩이나 움직일 순 없잖아.”
왕대환이 고개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마차씩이나! 걸어가도 되오!”
“하남성까지?”
“그, 그야 좀 멀긴 하지만……!”
“그러자면 갔다 오는 데만 반년이 걸리겠군.”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태도에 제자 후보들은 기가 죽었다.
왕대환이 처연해진 얼굴로 양영천을 바라보았다.
“저어…… 진인? 큰형님이 그 먼 길을 혼자서 가실 수는 없지 않습…… 뭐 그렇지 않습니까?”
염창과 구악이 그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영천이 겉과는 다르게 지강백을 엄청나게 아낀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다.
서너 달이나 걸리는 먼 출타를 혼자서 보내는 사부의 마음은 분명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지강백은 출중한 무공 실력과는 달리 강호 사정에 대해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무지했다.
그러니 그들처럼 강호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 동행하면 사부도 한결 걱정을 덜 것이다.
그러나.
“이 고얀 것들. 오냐오냐해 줬더니 아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고 드는구나.”
양영천은 노기를 드러냈다.
제자 후보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 진인……? 왜 그러시는지……?”
“정말 몰라 묻는 게야! 내 이런 것들을 붙들고 대체 무슨 약조를 한 것인지……!”
“음? 약조?”
왕대환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양영천이 지강백의 목검을 빼앗아 들고는 냅다 그를 후려쳤다.
“으앗! 아, 아프잖소!”
왕대환이 펄쩍 뛰었다. 양영천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양어깨와 등짝, 이마와 가슴팍을 연달아 고루 후려쳤다.
“오냐, 앞으로 계속 그리 아플 것이다. 이런 기본 공격도 하나 받아치지 못하는 놈이 어디를 따라나서겠다고…… 흰소리 말고 네놈들은 오늘부터 수련에 매진할 각오나 해두어라!”
이어서 큰 소리로 혀를 찬 양영천이 목검을 도로 돌려주고는 저만치 훌쩍 앞서 갔다.
“음……? 수, 수련이라니?”
멍한 얼굴로 중얼대는 왕대환의 어깨를, 지강백이 툭툭 두들겼다.
평소보다 조금 강도가 세긴 했다.
“사부님께서 너희들의 입문을 허락하겠다 약조하신 모양이구나. 잘 됐군. 축하한다.”
“음……?”
왕대환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다른 제자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입문? 아니, 그럼 정식 제자가 되는…… 아니, 대체 언제 그런 약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용천휘의 뒤를 캐오면 정식 제자로 받아달라는 말을 은근슬쩍 꺼내어 들긴 했다.
하지만 그 일이 여차여차 실패하기도 했고, 양영천이 콧방귀로 넘기기도 해서 아직 한참 먼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헉! 그럼?”
눈은 놀란 모양새였지만 입은 벌써 양옆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지강백이 나와 함께 소림에 가자, 라고 해도 가기 싫다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왕대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제자 후보들도 비슷했다.
지강백이 쓰게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서너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부님을 홀로 두는 것이다.
의제들과 정식으로 사제인연을 맺었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놓였다.
“다녀올 동안 사부님을 잘 부탁한다. 사제.”
이어서 지강백은 앞서 간 양영천을 뒤따랐다.
양영천은 벌써 정문 앞에서 지강백을 배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산하는 인원은 용천휘와 지강백, 그리고 필목현이 전부였다.
중간에 채희유가 합류할 테니 소림까지 가는 인원은 총 넷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사부님.”
지강백은 목검과 무복 몇 벌을 꾸린 단출한 짐을 내려놓고 양영천에게 꾸벅 절을 했다.
“오냐, 그래.”
양영천이 뒷짐을 진 채 짐짓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절을 하는 제자를 곁눈질하는 눈가에는 언뜻 물기가 내비쳤다.
“강녕히 계십시오, 사부님.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오냐.”
절을 마친 지강백이 몸을 돌렸다.
“잘 다녀오십시오, 큰형님!”
“아직도 옛 버릇 못 버렸소? 이제 우리도 종남의 제잔데 대사형이라 해야잖소!”
“어, 맞다. 그렇지. 이제 종남파 정식 제자지. 잘 다녀오십쇼, 대사형!”
갑자기 수십 명이나 되는 사제들의 인사가 뒤를 이었다.
지강백은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며 사부님을 잘 모실 것을 신신당부를 했다.
간신히 인사를 마친 지강백은 용천휘와 어깨를 나란히 해서 걸음을 떼었다.
그렇게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등 뒤에서 후다닥 다급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거, 몸조심하거라!”
지강백이 멈칫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어찌 모를 것인가.
연로하신 사부의 목소리가 바람에 나부끼는 새순처럼 떨리고 있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지강백은 등을 돌린 채로 대답했다.
사부의 눈주름 사이로 물기가 고여 있는 것을 본다면 도무지 걸음을 마저 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하느니라. 무공을 감추고, 어디에서도 종남의 제자라 네가 먼저 말하지 말도록 하여라.”
“예, 사부님.”
“허나 그렇다고 상대의 무기가 날아드는데 멀뚱히 서 있거나 하지 말고!”
“물론입니다, 사부님.”
“어디 한 군데 상처라도 나서 돌아오면 가만두지 않을 게야. 내 지팡이가 부러지도록 두들겨 맞을 줄 알거라, 이놈.”
“예. 그렇게 하십시오, 사부님.”
“무사히…… 다녀오너라.”
“예, 사부님.”
“꼭…… 돌아와야 한다.”
“예, 사부님.”
“꼬옥…….”
“…….”
늙은 사부의 당부는 산을 다 내려갈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았다.
용천휘가 지강백의 소매를 잡아당겨 걸음을 채근했다.
“사형. 이러다 해 지겠어.”
“그래.”
필목현이 지강백을 대신하듯 소매로 눈가를 찍으며 말했다.
“이것 참. 제가 다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제자를 아끼는 사부의 마음이 저런 것이로군요. 마치 도련님을 위하는 제 마음을 고스란히 꺼내 보는 것 같습니다.”
“내게 상처가 생기면 그 핑계를 대고 때리고 싶다는 말처럼 들리는군그래.”
“원 참. 너무 그렇게 눈치 빠르게 굴지 마십시오, 도련님. 아직은 풋풋해도 좋을 나이 아닙니까.”
“닥치고 앞장이나 서. 마차는 준비해 뒀지?”
“그런 건 묻지 마십시오. 어련히 알아서 잘했으려고요.”
귓가로 종남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십칠 년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다니던 산길이, 오늘따라 유독 달리 보였다.
아니, 같은 길이 아니었다.
지금 지강백이 걷는 길은 소림사로 향하는 길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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