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종남파의 비화
“그걸 정말 몰라 묻는 게요!”
대답을 한 이는 염창이었다.
분노로 인해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럼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리 처먹였단 말이오! 대체 우리 큰형님을 왜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빡!
그러다 한 대 맞았다.
“말조심하지 못하겠느냐!”
구악과 왕대환이 참 딱하다는 얼굴로 염창을 보았으나 늦은 감이 있었다.
“말조심이라니! 차라리 날 죽여 내 입을 막아라! 내 어찌 사기꾼 같은 늙은이 손매가 무서워 큰형님을 위하는 이 마음을 감추겠느냐!”
빡! 빡!
그러다 두 대를 연달아 더 맞았다.
“이익! 차라리 죽여…… 읍!”
양영천은 염창도 인정사정없이 아혈을 눌러버렸다.
졸지에 입이 막힌 그가 답답함에 그저 제 가슴만 쥐어뜯고 있는 동안, 양영천은 구악을 향했다.
“내 묻는 것에 답하지 않으면 평생 벙어리로 살게 해주마.”
다행히도 구악은 이중에서 가장 눈치가 빠른 자였다.
“마…… 말씀하시……. 아, 그 전에 무얼 먹였냐 하셨지요? 저희가 듣기로는 작고 둥근 단약이라 하셨습니다. 작은형님 열을 낮추는 약이라고 하였지요.”
처음에는 내가 과연 큰형님을 구박하는 저 악한 늙은이에게 입을 열어줘도 되나 싶었지만, 한번 입이 열리고 나니 말이 일사천리로 흘렀다.
양영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작고 둥근 단약? 틀림없이 그랬더냐?”
“그랬지요. 그것과 아주 닮게 생긴 물건이라 착각했다 한 것도 같습니다만.”
“그런데 독이라 했다고?”
“작은형님 몸에는 약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독이라 했습지요.”
“도합 네 번을 먹였다 했느냐?”
“모두 다섯 개라 들었습니다만.”
“……그럼 이 년 반이겠구나.”
“으잉?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거기에 만년설삼이라. 그렇다면 최소 오륙 년 치는 늘었겠구나.”
양영천이 자꾸만 모를 소리를 하자 구악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만년설삼이라고요? 큰형님이 드신 그게 만년설삼이라는 말씀이십니까요? 독약이 아니라요?”
양영천이 구악을 흰 눈으로 노려보았다.
“네놈 눈에는 내가 제자에게 독이나 처먹이고 다닐 악인으로 보이느냐?”
“그, 그…….”
차마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셋 중 가장 성미가 불같은 염창이 양영천을 향해 제 가슴을 뜯던 손으로 삿대질을 했다.
왕대환도 마찬가지였다. 말이 안 나오니 발을 쿵쿵 구르고 고개를 홱홱 흔들었다.
“저것들이 뭐라는 게냐?”
구악은 감히 벙어리가 될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즉시 입을 열었다.
“분명 독약을 먹이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무슨 말씀을 하시냐는 게지요.”
“독약이 아니라 하면?”
쿵쿵!
쾅쾅!
발길질이 거세졌다.
구악이 말했다.
“아니, 그런 거라면 큰형님 같으신 분이 갑자기 저래 쓰러지실 리가 있겠습니까요?”
“만년설삼이 원래 그런 거라고 하면?”
쾅쾅!
쾅쾅쾅쾅!
“그걸 어째 믿겠습니까요. 그간 진인께서 우리 큰형님을 어찌 대하시는지 저희들도 똑똑히 봤는뎁쇼.”
“그게 다아 이유가 있는 거라 하면?”
쾅쾅쾅쾅쾅!
“대체 멀쩡한 사람을 그리 거짓으로 괄시하고 독까지 처먹일 이유가 무엇이며, 설사 이유가 있다 한들 저희들은 결코 큰형님께서 그리 되시는 꼴을 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요. 저희가 비록 산밥 먹던 놈들이기는 하나 마음 하나만큼은 외길입니다요. 진인이 아무리 장문 자리를 내세워, 음…… 그 자리도 제삼십팔 대 장문인이 망령이 들어 얻은 거라는 소문이 있지만, 어쨌거나 저희들은 오로지 큰형님을,”
쾅!
이번에는 양영천이 구악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소리였다.
왕대환과 염창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아이고, 진인!”
있는 힘껏 양영천을 노려보던 구악의 눈에 눈물이 글썽 차올랐다.
그러나 그 눈물은 차마 흐르지 못했다.
양영천의 눈물이 먼저였던 탓이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들이 감히 내 앞에서 강백이 놈을 위하네 마네 하는 소리를 씨부리는 게냐! 누가 감히! 누가!”
십칠 년간 하나 있는 제자만 바라보며 세월을 지탱해 온 늙은 사부의 눈물이었다.
그것이 어찌 뜨겁지 않을 수 있을까.
“아, 아니 그게…… 지, 진인…….”
“누가 감히 나보다 더 내 제자를 아낀다고…… 흐윽!”
한 방울씩 구르던 눈물이 강줄기가 되었다.
양영천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으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십 칠년간 거짓과 허세로 간신히 추슬러오던 둑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양영천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눈물이 없이는 얘기할 수 없는 사연이.
* * *
제삼십팔 대 장문인이 운명하시던 날이었다.
종남의 모든 제자들은 장문인의 발치에 모여 닥쳐올 마지막을 기다렸다.
슬프고도 엄숙한 시간이었다.
삼십팔 대 장문인께서 고목처럼 파삭하게 마른 손으로 장문령부를 들어 올리셨다.
“제삼십팔 대 장문이 천지신명과 조사님들 앞에 고하노니, 제삼십구 대 장문인은……,”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종남의 팔 장로들은 짐짓 헛기침을 했다.
장문의 임종은 슬픈 일이었지만, 미루고 미뤄왔던 다음 대의 장문인을 결정하는 것도 몹시 중요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종남파는 꾸준히 세가 기우는 중이었다.
한때는 화산보다 우위로 쳐줄 만큼 위세가 드높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구대문파의 말석을 지키는 것도 힘겨웠다.
제자 수는 갈수록 줄었고, 천하무도회에서는 단 한 번도 승리를 얻지 못했다. 일대제자들의 시범 비무조차 그러했다.
지금은 종남파의 대위기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시기에 다음 대의 장문인이 누가 되는가는 중요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제삼십팔 대 장문인의 말씀을 기다렸다.
“……일대제자 양영천으로 한다.”
그 말에 난리가 났다.
양영천은 고작 일대제자였다. 배분이 장문인 다음인 것도, 그렇다고 배분을 무시할 만큼 무공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같은 항렬의 일대제자 중엔 그보다 무공이 뛰어난 자가 훨씬 더 많았다.
결단코 차기 장문직을 맡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죽음을 목도에 둔 장문인을 향해 장로들은 입에 거품을 물었고 다른 제자들은 삿대질을 했다.
이에 삼십팔 대 장문인께서는 남은 내력을 박박 끌어 모아 꽥 고함을 질렀다.
“시끄럽다!”
본당 안이 웅웅, 하고 뒤흔들렸다. 아무리 망해 가는 문파라 하나 그래도 장문은 장문이었다.
제자들이 찔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장내는 다시 엄숙하고 숙연해졌다. 삼십팔 대 장문인의 말씀이 정적을 꿰뚫고 이어졌다.
“내가 영천이를 고른 까닭은 그가 종남의 제자들 중 가장 출중하기 때문이 아니다.”
삼십팔 대 장문인의 주름진 눈가로 눈물이 주르륵 흘렸다.
통한의 눈물이었다.
“여기 있는 그 어느 놈도, 장문이 될 만큼 종남파 무학의 정수에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놈이 장문이 되든 똑같을 것이다. 다만 영천이는, 한 가지 다른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무공을 보는 안목이다.”
양영천이 몹시 송구하고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기쁘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 모습에 새삼 분통이 터졌던지 입적까지 단 한 발을 앞두신 장문인께서 대뜸 욕을 하셨다.
“이 머저리 같은 놈들! 내가 그래 고작 눈썰미가 좀 낫다는 이유로 장문인을 고르고 앉았으니……! 이를 어찌할꼬. 대체 이 몸은 무슨 낯으로 조사님들을 뵙는단 말이냐!”
제자들은 침묵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그들 중 태을신공을 십이 성은커녕, 오 성도 달성하지 못한 이가 태반이었다.
검법은 더 한심했다. 천하삼십육검, 태을검법 같은 절기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그 절기들의 기초라는 구상검법을 겨우 익힌 정도였다.
양영천의 자격을 운운할 격이 없는 것은 다들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조사님들을 들먹이며 비통에 잠겨 울던 삼십팔 대 장문인께서 결연히 눈을 치켜뜨셨다.
“그러니 영천이는 듣거라. 내가 이 장문령부를 넘기는 까닭은, 네 안목으로 종남의 모든 절기를 한 몸에 익힐 만한 인재를 찾으라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다.”
그 말을 듣는 양영천의 표정이 구겨지든 말든 제 삼십팔 대 장문인의 유언은 이어졌다.
“명심하거라! 종남의 무학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현묘하고 지난하기에 대성하는 것이 어려울 뿐, 대성을 이루면 그는 반드시 일대종사가 되고도 남음이라.”
끝에 작게 아마도, 라는 말이 붙었던 것도 같다.
양영천을 비롯한 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그간 왜 일대종사가 없었단 말입니까?”
“예끼!”
삼십팔 대 장문인께서는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장 가까이 있던 제일 장로의 머리통을 후려갈기셨다.
“이 무능하고 무식한 놈들! 대성해야 그렇다잖아, 대성을 해야! 이 모자란 것들이 언제 대성을 해봤어야 감이라도 잡지!”
곧 죽을 양반이 무슨 힘이 그리 센지 눈물이 핑 돌았다.
한 대 더 맞을까 봐 ‘그런 장문께서는 뭐라도 하나 대성한 게 있으십니까.’ 라고 묻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회광반조인가. 과연 무섭구나, 할 무렵 장문인께서 정말로 눈을 감으셨다.
“내가 믿을 것은 영천이 네놈의 그 잘난 눈썰미 하나다. 꼭 근골이 반듯하고 기골이 장대하며 눈빛이 형형한 기재를 찾아내어…… 그리하여 이 종남파를…… 다시…… 천하에 우뚝 서게…… 큭!”
제삼십팔 대 장문인이 그렇게 가셨다.
양영천의 두 어깨에는 종남파의 부흥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명이 걸렸다.
그때가 그의 나이 고작 서른셋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어김없이 천하무도회가 열렸다.
무공 실력만으로 따지면 그 아래아래 사제보다도 못한 양영천이 종남파 장문인 자격으로 무도회에 참가해야 했다.
무공만으로 치자면 유감스럽게도 그 아래아래아래 사제가 훨씬 더 우위였다. 만일 사제가 39대 장문이 되어 출전했다면,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영양천은 탈락했다.
고작 서른셋의 나이로 한 문파의 장문인이 되었다는 영양천에게 쏠렸던 세간의 기대는 그 즉시 비웃음으로 변질되었다.
이리 새파란 나이에 구대문파의 장문인이 된 예는 이제껏 강호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무능한 인물이 장문인이 된 예도 없었다.
양영천과 종남파는 온 강호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신호탄이었다.
그 뒤로 종남파에 입문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종남의 제자가 되느니 소림사에서 삼 년간 개 노릇을 하는 게 더 무공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떠돌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 양영천은 직접 기재를 찾아 나섰다. 그렇게 수년간 거지꼴이 되어 강호를 뒤져 마침내 기재를 발견했으니, 그가 바로 지강백이었다.
양영천은 어린 지강백의 손을 꼭 붙들고 종남산을 올랐다.
지난 십 년간 오매불망 종남파의 희망이 될 기재를 기다리고 있었을 다른 제자들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결국 지강백을 등에 업고 산을 내달렸다.
마침내 도착한 사문은 텅 비어 있었다.
양영천에게는 하루 같은 십 년이었지만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하루가 십 년 같았을 것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제자들은 사문에 앞서 희망을 먼저 버렸다.
낯선 먼지만이 겨우 남은 이곳에서 망연자실 넋을 놓았다. 그때 쥐고 있던 작은 손이 없었다면 양영천은 산 채로 제 몸을 조사동에 묻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지강백은 그의 모든 것이었다.
양영천의 모든 것이자 종남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제자를, 고작 돈 몇 푼에 차별한다 했다. 그도 모자라 독약을 먹였다고 했다.
“내, 내가…… 내가 오직 그놈 하나만을 믿고…… 이 모진 세월을 내가…… 끅,”
그간 혼자서만 꽁꽁 덮어두었던 이야기였다. 양영천은 그 한을 이기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울었다.
“행여나 한눈 파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붙들어 두고자 마음에도 없는 구박을 일삼았는데…… 그 마음이 오죽했으면…… 끄윽, 내가…… 내가……,”
눈물 콧물이 엉망으로 묻은 얼굴이 안쓰러웠다.
십칠 년간 이를 악물고 지켜온 비밀이었다. 말할 사람이라고는 지강백밖에 없었지만 결코 말할 수 없는 사람도 지강백이었다.
그렇기에 양영천의 비밀은 뼈에 사무치는 고독이 되었다.
십칠 년간의 고독을 목격하는 제자 후보들의 눈이 축축히 젖어들어 갔다.
왕대환이 양영천 앞에 털썩 주저앉아 그의 주름진 손을 붙들었다.
고만 우시라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그 마음 아주 잘 알겠다고, 그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양영천도 제 손을 쥐는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저를 보며 필사적으로 입을 벙긋 거리는 왕대환을 보며 양영천이 눈물을 닦았다.
“그럼…… 내 말을 믿는 게냐?”
제자 후보들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약조하면 점혈을 풀어주겠다. 대신,”
가슴 속의 한을 털어놓은 것은 개운했다. 하지만 조금 쑥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양영천은 민망함을 감추고자 부러 더 눈에 힘을 주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내 눈과 귀가 되어주어야겠다.”
세 쌍의 눈과 귀가 삐죽 솟아올랐다.
양영천은 그들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둘째 놈을 잘 감시하거라.”
만년설삼뿐이라면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할 것이다.
돈이 많은 집이라 저런 귀한 영약을 철마다 도라지처럼 먹어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소환단을 다섯 알이나 먹인 게 사실이라면 얘기가 틀렸다.
무림과는 일절 연관이 없다는 말도 순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 말은 용천휘의 정체부터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소리였다.
양영천은 자신이 돈에 눈이 멀어 너무도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강호는 사방이 도산검림이요, 용담호혈인 곳이었다.
지난 십칠 년간 그것을 너무 잊은 채 지내왔다. 아직은 종남파라는 이름이 강호에 버젓이 남아 있었고, 그는 이곳의 수장이었다. 종남파의 이름은 제 손으로 지켜야 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수작질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내 알아야겠으니.”
양영천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를 마주하는 제자 후보들도 주먹을 힘껏 쥐어 보였다.
그리 하면 저희도 이제 그만 정식 제자로 받아주시는 겁니까?
라는 희망찬 물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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