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장문인의 재발견
지강백이 앓아누웠다.
늘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움직이던 사람의 자취가 뚝 끊긴 종남파는 묘하게도 쓸쓸한 분위기였다.
“후우……. 거, 어서 나으셔야지. 괜히 우리까지 다 기운이 빠져서는 원.”
왕대환은 성의 없는 비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텅 빈 연무장이 오늘따라 꼭 제 마음처럼 고독해 보였다.
지난 며칠 내내 이 연무장에서 떠들썩하게 어울리던 일이 벌써 거짓말 같았다.
그러다 보니 손끝도 느려져서 비질도 더는 재미가 없었다.
왕대환은 비질할 곳이 아직 절반도 넘게 남은 어수선한 연무장에서 고개를 돌렸다.
“에이, 기분도 영 그렇고. 내일 마저 해야겠네. 쓸 사람도 없는 연무장을 쓸고 닦고 해 봤자지.”
그가 빗자루를 챙겨들고 등을 홱 돌리는 순간이었다.
“두목.”
저를 부르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염라도 염창과 귀신눈 구악이 연무장 저 구석에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왕대환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혀를 찼다.
멀쩡한 사내자식 둘이 딱 붙어 서서 조심스레 손을 흔드는 모습이 낯설다 못해 기가 찼다.
“쉿! 목소리 낮추시오.”
염창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막으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까지 보냈다.
사방이 뻥 뚫린 연무장에서 저러고 있으니 퍽도 안 들키겠다 싶었다.
“아, 무슨 일인데?”
왕대환이 빗자루를 쥔 채 휘적휘적 걸어갔다.
염창이 불쑥 팔을 내밀어 왕대환을 잡아끌었다. 구악은 열심히 누구 보는 이가 없나 살폈다.
“얘기 좀 해야지 않겠소.”
“무슨 얘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 옮겨서 얘기합시다. 혹시 누가 들을지도 모르니.”
“아, 들어선 안 될 얘기가 뭐 있는데? 우리는 진작 손 털지 않았냐.”
“참나. 누가 옛날 얘기하자 하오. 큰형님 얘기요.”
“응? 큰형님?”
왕대환이 눈을 부릅떴다.
“큰형님 아프시다더니 그게 어디 잘못됐냐?”
“쉿. 목소리 좀 낮추시오. 누가 들으면 안 된다 하지 않았소.”
그렇게 세 명의 제자 후보들은 살금살금 소리를 죽여 걸음을 옮겼다.
결국 아무도 안 올 것 같은 장소를 찾았는데, 그곳은 제자들의 처소인 내평당에서 한참을 떨어진 자그마한 창고였다.
끼이익.
낡은 창고의 문을 열자 묵은 먼지와 퀴퀴한 공기가 쏟아졌다.
그것을 빼고는 창고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텅 비어 있었다. 용천휘가 입문하기 전까지 종남파의 살림살이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어여 들어가시오.”
염창은 구악과 왕대환을 창고 안에 밀어 넣은 다음 문을 꽝 닫았다.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세 쌍의 눈만이 빛났다.
이제야 심각한 분위기를 깨달은 왕대환이 긴장을 삼켰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아무래도 종남파에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는 것 같소.”
구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염창의 말에 힘을 보탰다.
보아하니 둘은 이미 얘기를 나눈 모양이었다.
“어떤 일 말이냐?”
“어제 그것을 보고도 짐작을 못 하셨소?”
“그거라니?”
구악이 나섰다.
“요 며칠간 작은형님이 큰형님께 계속 뭘 먹이시지 않았습니까요.”
“아, 그랬지.”
“그런데 큰형님은 참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요. 그게 독이라고도 하시고, 그래서 무슨 열매를 따먹어야 한다 하시고요.”
“그랬지.”
워낙 순식간에 꿀떡 받아 삼켜서 무슨 독인지는 못 봤다만, 냄새가 참 맑고 청량한 게 아무리 생각해도 독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한 번 말리는 시늉도 안 해봤다.
그런데…….
“아, 글쎄 어제는 아주 괴악한 놈을 들고 오지 않았소. 큰형님도 뭔가 낌새를 맡으셨는지 기어코 그놈은 안 먹겠다 했고.”
“그런 것을, 사부란 작자가 와서 강제로 처먹…… 아니, 강제로 먹게 만들지 않았습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보다시피 저렇게 앓아누우셨고요.”
듣다 보니 뭔가 참 이상하다 싶었다. 왕대환이 한껏 진지해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염창과 구악이 한 번 시선을 교환한 다음 입을 열었다.
“혹 여기 종남파에 파벌 싸움 같은 게 있지 않나 하는 거요.”
“뭣이?”
왕대환이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게 참 당혹스러운 얘기였다.
사문이라고는 장문인 하나, 그 밑으로 제자 둘이 전부였다. 파벌 싸움을 하면 대체 누가 한단 말인가. 설령 한다고 해도 얻을 게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두목과 같은 생각이었소. 하지만 큰형님이 기어이 쓰러지지 않으셨소. 이제껏 별것 아닌 독을 계속 먹이다 효과가 없는 것 같으니 갑자기 지독한 놈을 먹인 건 아니오?”
“으음…… 그래도 작은형님인데 설마 그러시겠냐?”
구악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그뿐이라면 그러고마 하게요. 두 분 사이가 워낙 좋은 듯하면서도 좋지 않아 그럴 수도 있지요. 헌데 그 약을 억지로 먹인 사람이 사부라는 작자인 게 문제 아닙니까요. 보십쇼, 채주. 이제껏 그 사부가 어땠습니까요? 우리 큰형님에게 매번 자질이 없다느니 하면서 말도 안 되는 구박을 일삼지 않았습니까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자 염창의 눈이 새파랗게 달아올랐다.
“내 안 그래도 그게 매번 이상했소. 아니, 종남파가 어떤 곳이오? 말 그대로 예전에 밑구멍 다 헐어 빠진 곳 아니오. 그런데 우리 큰형님을 보오. 이제 겨우 스물하나라면서 저만한 경지에 이르지 않았소! 그런 양반을 두고 자질이 없다니!”
“아, 그야 그렇지! 내 이제껏 그리 산을 싸돌아다니면서도 우리 큰형님만 한 인물은 본 적이 없다!”
“내 말이 그 말이오. 내 칼을 걸고 얘기하는데, 우리 산채를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던 화산에도 그런 인물은 없었소이다. 그런데 그 노인네는 왜 그러오? 만날 하는 말이 돌아가신 조사님께 면목이 있네 없네…… 그게 대체 말이요, 소요?”
“그, 그런…….”
왕대환도 그 점이 너무너무 이상하긴 했다.
그도 모자라 양영천은 지강백에게 함부로 말도 걸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칭찬도 하지 말고 추켜세우지도 말고 함부로 감탄사를 내뱉지도 말라고 했다.
“요컨대 그 사부라는 작자는 큰형님을 차별하는 것 같다, 이 말입니다요. 우리 다 같이 듣지 않았습니까요. 작은형님이 입문금을 오만 냥이나 내고 정식 제자가 되었다고요. 그에 반해 우리 큰형님은 천애고아라 안 했습니까. 딱 둘 있는 제자가 그렇게나 갈리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로 기울겠습니까요?”
“뭣이!”
캉!
왕대환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내리쳤다.
“누가 우리 큰형님을!”
구악이 서둘러 그를 말렸다.
“아이고, 고정하십쇼. 이런 얘기 누가 들어 좋을 게 뭐 있겠습니까요. 어디에 듣는 귀가 있는 줄 알고요.”
왕대환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된다는 얘기냐.”
구악과 염창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우리도 도통 그걸 모르겠소. 다만 확실한 것은, 그 영감탱이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잘 살피자는 게요.”
“맞습니다요. 구슬 하나에 낚여서 큰형님께 못할 짓을 한 걸 생각하면 제 손모가지를 분지르고 싶습니다요.”
그 말에 왕대환이 씁쓸히 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이 손목을 부러트린 것은 큰형님이었지만, 다시 뼈를 맞춰 부목을 대준 것도 큰형님이셨다.
오냐, 네가 분지르면 나는 부목을 대주리라. 큰형님의 내리사랑을 어찌 나만 받겠느냐. 왕대환은 그런 눈으로 구악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뗐다.
“욕심도 많은 늙은이 같으니! 어디 우리 큰형님 같은 제자를 두고서 차별이냐! 내가 진짜 그 인간을 단매에 때려잡을 능력만 있었으면……!”
“그게 말입니다요,”
구악이 한껏 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또 뭐냐?”
“사실 이 얘기를 먼저 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요. 그 사부라는 작자가 과연 큰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리 어마어마한 고수가 맞겠습니까요?”
“……!”
왕대환이 아무 말 못 하고 눈만 크게 떴다.
사실 그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봐도, 사실 몇 번 보지도 않았지만, 종남파 제삼십구 대 장문인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고.
종남파 전체가 그랬다.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듯한 위화감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요. 제자라고는 단둘 있으면서 사부라는 자가 진득하니 붙들고 앉아 무공을 전수해 주는 꼴을 한 번 못 봤습니다요. 멀쩡한 무관이라면 마땅히 그게 제일 우선 아닙니까요.”
“그거야 우리 큰형님께서 워낙 출중하시다 보니까……,”
“그러면 더 붙들고 가르쳐야지요. 막말로 이 밑구멍 빠진 문파 되살릴 인간이 누가 있겠습니까요? 우리 큰형님뿐이시지 않습니까. 작은형님이야 재력이 출중하시지만 무공은 한 줄도 못 하시는데.”
“그, 그렇지?”
“하도 어마어마한 고수라 하지 않았습니까요. 그 무슨 전설에 등장하는 화경의 고수인가 해서 제가 매일 눈 부릅뜨고 지켜봤습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십쇼. 그만한 고수가 있는데 종남파가 이 모양이 이 꼴이 났겠습니까?”
왕대환이 무릎을 탁 쳤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내 안 그래도 그게 이상했다!”
아귀가 안 맞던 느낌이 뭔지 이제야 알았다.
“거기다 제가 아주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있어놔서…….”
진짜 얘기는 이제부터였다.
구악은 한층 더 조심스러워진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왕대환과 염창도 덩달아 긴장감에 휩싸였다.
“무슨 얘긴데?”
“예전에, 그러니까 종남파가 망하기 전에 말입니다요. 사람들이 종남파가 갑자기 망한 이유를 떠들어댔지요. 구대문파 중 한 곳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문을 닫는 게 퍽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요?”
“아, 그렇지. 부자가 망해도 삼 대가 간다는데, 명색이 구대문파라면 망해도 사 대 제자까지는 갔어야지.”
“바로 그겁니다요. 그래 강호의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 종남이 그리 망한 건 다아 제삼십구 대 장문인 탓이라 했지요.”
“뭐? 삼십구 대라면 지금 저 늙은이 말이냐?”
“그렇습지요.”
구악이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능력도 없는 인물을, 제삼십팔 대 장문인이 죽기 직전에 홱 노망이 드는 바람에 골랐다 안 합니까. 그 일로 종남파가 뒤집어져서는…….”
“뭐라고! 그게 정말이냐?”
“웬걸요. 말도 마십쇼. 그래서 다들 종남을 버리고 떠난 거라 했습니다요. 그렇다 보니 저 늙은이가 전대 장문에게 정신이 오락가락해지는 약을 먹였다고도 하고요.”
“아니, 그렇다면 종남이 하루아침에 망한 게 다 그 늙은이 탓이라는 건데? 그런 간악한 인간이 이제껏 우리 큰형님의 사부 노릇을 해 왔다는 거냐아!”
이제서 하는 말이지만 그 늙은이는 제자 후보 수십 명이 아침저녁으로 문안인사를 올려도 코빼기 한 번 내비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때는 정식 제자 아닌 사람 괄시하냐고 그리도 서운했지만 지금은 어쩐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분명 제 정체가 드러날까 봐 몸을 사렸을 것이다.
이쪽은 십 년 산적 경력으로 다져진 날카로운 눈썰미를 지니고 있으니까.
“진짜 어지간하면 이런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만, 애초에 그런 인물이니 재물 따라 제자 편 가르는 짓이라고 못 하겠습니까요?”
더는 못 참겠다.
왕대환이 벌떡 일어섰다.
“이놈의 망할 늙은이! 고작 돈 몇 푼에 우리 큰형님께 독을 처먹여? 내가 그 늙은이를 당장……!”
그리고 왕대환은 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양영천을.
문 열리는 소리도 없이, 그야말로 한 점의 기척도 없이, 셋밖에 없다 여겼던 창고 안에 들어와 있던 양영천의 모습을.
“이, 이게 대체……!”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염창과 구악도 마찬가지였다.
왕대환은 빠르게 결론을 내려야 했다.
비굴하게 빌 것이냐. 아니면 비밀을 들키고 죽음으로 입막음 당할 팔자, 여기서 한번 발악이라도 해볼 것이냐.
결론은 의외로 빠르게 나왔다.
“뭐 하느냐! 다들 준비해라!”
왕대환은 빗자루를 움켜쥐었다.
지금 자리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계실 큰형님을 생각하면 마땅히 복수가 우선이었다.
그 결심에는 종남파의 제삼십구 대 장문인은 별것도 아닌 쭉정이라는 말을 들었던 게 큰 역할을 했다.
“으아압!”
왕대환이 아쉬운 대로 빗자루를 치켜들고 양영천에게 덤벼들었다.
구악과 염창도 서둘러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이런 고얀 놈을 봤나!”
양영천의 주름진 눈이 번쩍인다 생각했다. 다음 순간,
휙!
“으…… 으잉?”
쥐고 있던 빗자루를 빼앗겼다. 눈 한 번 깜박이지도 않은 시간 동안 병기를 강탈해 간 양영천은 그것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다.
뚝!
빗자루가 손가락 힘만으로 부러졌다.
뚝, 뚝, 뚝!
한 번만 부러지는 게 아니라 계속 토막이 났다. 도합 네 토막이었다. 그러고 보니 자루 부분은 마디가 있는 대나무이긴 했다.
그래도 손가락 두 개의 힘만으로 저렇게 한다는 것은 그가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나 한 문파의 장문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으…….”
팽팽하게 숨을 죄이는 긴장감 속에서 왕대환은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언젠가의 비슷한 광경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큰형님께서는 바위를 주먹으로 네 등분 하신 뒤 친절히 말씀하셨다.
도망, 어디까지 쳐봤니?
라고.
그런데 이 염병할 창고 안은 도망칠 곳도 없었다.
“도망칠 생각은 꿈에도 말 거라. 이 고얀 것들아.”
양영천이 빗자루 토막을 뿌렸다.
“으헉! 피, 피해라!”
왕대환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가까웠고, 너무 빨랐다. 무엇보다 상대가 안 됐다.
그저 머리를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을 뿐이었다.
퍽, 퍽퍽!
살을 뚫을 것처럼 날아온 대나무 토막들이 맞은편 벽에 박혔다.
그것도 참으로 교묘한 위치였다. 옆으로 한 치만 더 틀어졌다면 대나무 토막은 벽이 아니라 머리통에 박혔을 것이다.
“……으, 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분이 가시지 않는 듯 숨을 씨근덕대는 양영천이 코앞에 있었다.
“고얀 것들. 갈 곳이 없다기에 거둬주었더니.”
“…….”
할 말이 있을 리 없었다.
쭉정이 장문인이라 해도 상대가 안 될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복수도 포기였다.
왕대환이 죽음을 각오한 비장한 눈으로 외쳤다.
“죽이려거든 죽여라! 내가 어찌 내 한 목숨을 아끼겠느냐! 다만 내가 여기서 죽으면 우리 큰형님을 앞으로 누가 돌보아드릴지, 그것만이 한이 될 뿐이다!”
퍽!
그러자 하나 남아 있던 대나무 조각 날아와 왕대환을 때렸다.
“……!”
아혈을 점혈 당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된 왕대환은 양팔을 허우적대며 눈알만 굴렸다.
“시끄럽다. 누가 죽인다고 했느냐. 내 너희들에게 물을 것이 있어 찾았거늘……,”
새삼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양영천은 말을 멈추고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노기가 가시지 않은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는 바람에 기어코 수염 중간 부분이 뚝 잘렸다.
그 꼴을 보는 제자 후보들의 안색이 허옇게 질렸다.
양영천도 마찬가지였다.
“……이, 이것을……!”
충격이 주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 수염을 기르기 위해 공을 들인 세월이 얼마였던가. 장문인을 장문인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잘 기른 수염 한 줄기였다.
심지어 소림방장도 머리는 밀었지만 수염은 길렀다. 장문인의 수염은 그런 것이었다.
수염의 원한을 더해 노기가 한층 더 시퍼래졌다.
“아직 입을 막지 않은 두 놈이 말해 보거라! 그간 둘째 놈이 내 제자한테 무얼 먹여왔다고?”
양영천에게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저 배은망덕한 놈들의 목숨을 붙여두는 일도 잠시 참아야 했다.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 그때는 네놈들 머리통에 구멍을 뚫어주겠다.”
양영천의 협박이 음산하게 고막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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