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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동지-17화 (17/346)

제17화 웃는 노안에 침 뱉으랴

칼을 섞다 마음을 섞는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강호는 원(怨)도 많지만 은(恩)도 많은 곳이라 들었다. 그와 사부의 만남도 그중 하나였다. 비록 칼은 오가지 않았지만 사기꾼과 주먹이 오간 게 먼저였다.

이 녹림도와의 인연도 어쩌면 그런 게 아닐까.

처음에는 서로 좋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지강백은 이 집을 통해 저들의 진심을 보았다.

선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진정 어린 사내들이었다.

무공 실력은 형편없지만 덕택에 산적 노릇을 그만두게 되었다니 오히려 더 다행이었다. 이제 저들은 산적이 아닌, 강호의 범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호형호제하자는 마음은 고마운 것이었다.

지강백은 아직 정식으로 강호를 밟아본 적이 없었고, 저들은 그가 처음으로 교류를 나누는 강호인이 될 터였다.

그런데.

지강백이 다시 한 번 왕대환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아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호형호제한다는 것은 의형제를 맺자는 소리였는데, 그러자니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나이였다.

‘큰형님이라니.’

그렇다면 자신이 이 산적들, 아니 한때 산적이었으나 지금은 강호의 범부가 된 수십 명의 사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소리일까.

‘설마.’

물론 아닐 것이다.

평소 제 외모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지강백이었지만, 적어도 저들보다 자신이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뒤늦게 술이 깬 왕대환은 지강백을 오해했다.

그야 입 꾹 다물고 저런 살벌한 눈초리로, 그것도 두 번씩이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르륵 훑으면 오해할 만도 했다.

왕대환이 비장하게 외쳤다.

“새 길을 찾으라던 건 큰형님 아니셨소? 큰형님이 이 아우가 찾은 새 길이오! 새 길로 등 떠밀던 분이 어찌 이리 야박하게 구시오! 책임질 게 아니라면 애초에 말도 말았어야지! 다들 새 인생 찾겠다며 형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책임……?”

지강백이 고개를 기울였다.

왕대환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린 것이었다. 그러나 왕대환은 그가 고개를 저어 “아니.” 라는 말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강백의 눈은 남들이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겼으니까.

“이런, 씨!”

왕대환이 부목을 댄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근처에 보이는 수하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쳤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수하가 비명을 질렀다.

“으악, 악!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시끄럽다!”

퍽!

지강백이 부러진 팔에 대준 도끼자루가 반 동강이 났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 고였다. 왕대환은 필사적으로 혀를 깨물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다.

“안 받아주신다 하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을 거요!”

그는 동강 난 도끼자루로 제 목을 겨누었다.

다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 입을 벌렸다.

특히나 은도끼파의 이인자 염라도 염창은 “나무토막으로 그게 뭐 하는 짓이오. 여기 내 칼이라도 받아가시오.” 하고 싶은 것을 참느라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결국 지강백이 물었다.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으응?”

다들 이게 무슨 소린가 했다.

설마하니 정말로 나이를 묻는 것인가.

물론 그게 맞았다.

지강백의 말뜻을 알아들은 것은 용천휘 혼자였다.

“다들 사형보다 어리대.”

“……정말이냐?”

지강백이 인상을 썼다. 자신이 저 얼굴보다 나이 들어 보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 한 번 말하지만 지강백이 인상을 쓰면 정말로 남들의 오해를 사기 쉬웠다.

왕대환은 멋도 모르고 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방금 전까지 받아주지 않겠다면 죽겠다던 패기는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 정말이지, 그럼!”

사실 뭐가 정말인지도 모르겠다.

왕대환이 아는 것이라고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때도 느낀 것이지만 새삼 저 눈은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참 오금이 저린다. 저런 눈으로 “정말이냐?” 물으면 세상 그 모든 거짓말도 정말이 돼버려야 할 것 같다.

머릿속 어딘가에서 까아아악, 새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대환이 이를 질근 물었다.

“내, 내 나이가 올해로 겨우……!”

“겨우?”

왕대환이 필사적으로 눈을 굴리는데, 용천휘가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여 ‘스물하나.’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긴장한 나머지 스물까지만 알아들었다. 왕대환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얼굴로 외쳤다.

“겨, 겨우 열아홉이오!”

그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군가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서 마시던 술을 주르륵 흘렸다.

“여…… 열아홉…….”

귀신눈 구악이 중얼거렸다. 염라도 염창은 그 옆에서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저런. 안됐네.”

용천휘가 부채를 설렁설렁 내저으며 왕대환을 향해 말했다.

“그 얼굴로 고작 열아홉이라니. 어릴 때부터 노안이라고 놀림 많이 받았겠어.”

“…….”

물론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왕대환은 뭐라고 대꾸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눈을 끔벅거렸다.

그러나 그는 용천휘를 믿었다.

용천휘는 분명히 은도끼파의 편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저를 인질로 삼았던 원한까지 그냥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고 통 크게 나왔다.

한창 달게 자고 있는데 부채로 대뜸 후려갈겨 깨웠을 때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용천휘는 매우 효과적으로 왕대환의 화를 가라앉혔다.

밖에 지강백이 있으며, 곧 이곳으로 올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정신이 번쩍 든 왕대환은 수하들을 닦달해 깨웠다.

용천휘는 친절하게도 부채를 빌려줬고, 왕대환은 용천휘가 한 것처럼 수하들을 아낌없이 부채로 후려갈겼다.

부채란 것은 잠든 자를 깨우는 데 퍽 유용한 물건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왕대환은 술에 취해 얼떨떨하고 있는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곧 큰형님이 오신다는데 이리 자빠져 있을 거냐! 그때처럼 또 두들겨 맞을래! 어서 정신 챙겨서 제대로 인사부터 드릴 생각을 해야지!

누군가 억울하다는 투로 물었다. 염라도 염창이었다.

-차라리 그냥 도망치는 게 낫지 않겠소? 인사를 한다고 뭐 달라지오?

왕대환이 당당하게 대꾸했다.

-그때는 이 집이 너무 작아서 마음에 안 드셨던 게다!

염창도 지지 않았다.

-아니라면? 그럼 그땐 어쩔 거요? 또 개 잡듯 맞아야 하오?

왕대환을 대신해 나선 것은 용천휘였다.

용천휘는 일단 왕대환에게 손목을 까닥였다. 부채를 다 썼으면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왕대환은 뭐에 홀린 듯 얌전히 다가가 공손히 부채를 돌려드렸다.

용천휘가 물었다.

-이 집 너희들이 지었어?

초면에 대놓고 반말이었다.

그러나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용천휘의 태연자약한 태도가 너무 자연스러운 데다가, 그가 지강백의 사제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탓이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용천휘가 씨익 웃었다.

같은 사내가 봐도 뭐 이리 잘났냐며 혀를 내두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너희들 의외로 쓸모가 많겠네. 내가 사형한테 잘 얘기해 줄게.

귀가 번쩍 뜨였다.

-그게 참말이오?

용천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사형한테 의제들이 생기면 내게도 좋은 일이지.

그 순간 용천휘가 속으로 ‘부려 먹을 인간이야 많을수록 좋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산적들이 알 리 없었다.

왕대환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작은형님!

용천휘가 눈을 지그시 늘어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그때 눈치 빠른 귀신눈 구악은 술잔을 찾고 있었다.

모름지기 의형제 의식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게 술이었으니까.

술잔이 없는 고로 대신 깨끗하게 헹군 신발을 내밀었다. 산채에서 이 정도면 준수한 술잔이었다. 대체 산채에 왜 애기가 신던 비단신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았다.

용천휘는 처음에는 뜬금없어하는 듯했지만 곧 그 잘생긴 얼굴로 사람 좋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술도 다 마셔보고 말이야.

산적들은 용천휘의 귀티 나는 자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탈하고 호방한 성격에 홀딱 반해버렸다.

물론 큰형님 지강백도 존경할 만한 인품을 지니셨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워낙 상대할 수 없는 고수인 탓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용천휘는 큰형님과 달랐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유일한 거리감은 너무 잘난 외모뿐이었다. 그런데 한 계집을 놓고 다툴 것도 아니니 외모가 혼자만 잘난 것은 문제 될 게 없었다.

어쨌거나 용천휘는 은도끼파의 편이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형도 너무 그렇게 나이 따지고 들지 마.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게 얘네들 잘못도 아닌데 말이야. 사람 허물을 일부러 들추며 괴롭힐 것까지야 없잖아.”

지강백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의외의 말에 놀라서였다.

“괴롭힐 생각은 없었다.”

“사형을 생각해서 이 집도 이렇게 크게 만들었다던데. 그런 노고는 알아줘야지.”

이쯤에서 용천휘가 ‘종남파 일대제자를 산적 두목으로 만들어 놓는 일이 재미없을 리가 있나.’ 라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설마 사형은 그런 건 하나도 없이 이 집만 마음대로 쓸 작정이었던 거야?”

“물론 아니야.”

지강백은 분명 제 팔을 부러트려서라도 산적들에게 사과하겠노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가 왕대환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왕대환은 이를 악물었지만, 저도 모르게 몸이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일전의 일은 내 실수였다. 상황만으로 섣부른 오해를 했어. 미안하다.”

“으, 으잉……?”

지강백의 사과는 솔직했고, 어디 잘못 들을 데도 없었다.

그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라는 것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 사나운 눈매였다.

저건 마치, 지금 내 사과를 당장 받아주지 않으면 다음 사과는 저승에서나 듣게 될 거다, 라고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거, 거…… 아, 알았소.”

왕대환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벅.

지강백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왕대환의 안색이 조금 새파래졌다.

미안하다면서 왜 한쪽 팔은 저렇게 내밀고 있는 것일까.

“그쪽이 원하는 대로 사과하겠다. 대가를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뭘 바라나?”

“바라는 거?”

이번에는 귓구멍이 번쩍 열렸다.

왕대환이 바라는 것이라면 한 가지밖에 없었다.

“큰형님으로 모시게 해주시오!”

지강백이 앞으로 내밀던 팔을 주춤하는 사이, 산적들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일어섰다. 어느샌가 지강백은 산적들에게 빙 둘러싸여 있었다.

용천휘가 산적들의 어깨너머에서 끼어들었다.

“그러겠다고 해. 이렇게나 많은 의제가 한꺼번에 생기는 건데, 좋은 일 아냐? 아니면 설마 이들이 사형과 의형제를 맺기엔 부족하다는 거야?”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강백은 은도끼파가 말을 대신해 행동으로 사과하는 방식에 대해 무척 깊은 인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렇지 않다.”

“그럼 뭐가 문제야, 응? 쟤들이 나이 많이 들어 보인다는 거?”

용천휘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그건 뭐, 저런 얼굴로 태어난 걸 어쩌라고.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전부 가지고 태어날 수는 없잖아.”

화를 내고 싶은데 저렇게 태연하게 진실을 내뱉으니 그러지도 못하겠다.

대신 지강백은 용천휘의 잘난 얼굴과는 한참 다르게 생긴 산적들을 돌아보았다.

저를 보는 눈들이 참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생김새는 험상궂을지언정 순수한 진심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들이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지강백은 몰랐다.

녹림도의 질은 순전히 우두머리의 역량에 의해서 결정된다.

강호는 넓고 수많은 무리가 있다 하나 녹림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별 볼 일 없는 인생들의 집합이었다. 조직으로서의 체계도, 이렇다 전수되는 무공도 없었다.

갈 곳이 없어 모여든 따라지 인생들이 산을 오가는 행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게 전부였다.

그 행인이 재수 없게도 한 가락 무공이라도 익혔다 하면 그날은 반병신이 되거나 시체가 되는 것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녹림도로서 십 년을 살아왔다고 하면, 그 연륜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강호에서의 생존은 꼭 무공의 고저로만 판가름 나지 않는 법이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는 명제에 비춰 본다면 왕대환은 충분히 전통과 실력의 녹림도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지강백은 그런 왕대환을 한 방에 쓰러트린 장본인이었다. 몸을 꺾은 것도 모자라 마음마저 꺾어 버렸다.

차원이 다른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이를 채주로 모시는 일은 녹림도 십 년 인생에서 크나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 뭐 그리 뜸을 들이는 거요! 니미, 형님 한 번 모시려다 관 짜게 생겼네.”

염라도 염창이 성질머리를 이기지 못하고 한 소리를 했다.

왕대환이 제꺽 호통을 쳤다.

“어디서 버릇없게 큰형님께 소리를 지르고 해쌌냐! 네놈이 그러고도 내 밑에서 같이 산 밥 먹었다 하는 게냐!”

왕대환이 지강백에게로 눈을 돌렸다.

부리부리하게 치켜뜬 눈이 제법 매서웠다.

“어쩔게요?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하나요. 다른 것은 필요 없소!”

원하는 대로 사과하겠다는 말은 지강백이 스스로 한 말이었다. 그러니 다른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알겠다.”

지강백이 고개를 끄덕이자 왕대환이 눈이 한껏 벌어졌다. 곧 눈물이라도 차오를 기세였다.

“신의와 책임을 아는 아우들을 알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 말에 진짜로 눈물이 나왔다.

이제껏 책임이나 신의 같은 말은 쓸 줄도 몰랐고, 알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처럼 가슴 부듯하게 들릴 줄이야. 정확히 뜻은 몰라도 지강백이 저들을 허투루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큰형님!”

왕대환은 참지 못하고 지강백을 향해 와락 달려들었다.

이제서 하는 말이지만 산적 팔자에 그간 고난과 역경이 없었다 어찌 말하겠는가.

그런 것을 알아줄 든든한 큰형님이 이제 그에게도 생겼다.

지강백은 슬쩍 발을 돌려 저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드는 왕대환을 피했다.

“후…….”

왕대환이 머쓱해진 얼굴로 어깨를 한 번 추어올렸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럼 이제 우리는 뭘 해야 하오? 새 형님을 모셨으니 아무래도 거하게 한 판 해야 하지 않겠소?”

왕대환이 쑥스러운 것을 감추고자 부지런히 입을 놀렸다.

“아, 그 전에 역시 술판이 먼저겠소. 예 좀 앉아 계시면 아랫것들이 새 술독 뜯어올게요. 역시 산에서는 독으로 마셔야 제 맛이지. 안 그러오? 이제 우리 은도끼…… 아차차.”

왕대환이 손으로 제 이마를 탁, 쳤다.

“이거, 실수할 뻔했구먼. 산채는 마땅히 큰형님 이름을 따라야 할 것을. 그럼 우리 산채 이름은 이제 뭣으로 하면 되겠소? 큰형님은 명호가 어찌 되시는지?”

지강백이 뭔가 이상하다고 감을 잡은 것은 그때였다.

“산채 이름이 왜 필요하지?”

왕대환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두 눈을 끔벅끔벅 거렸다.

“그야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소? 우리가 주인 없는 종남산에 제일 먼저 산채 깃발 꽂는 셈인데. 새 이름으로 바지런히 활동도 하고 그래야 다른 놈들이 예 기어들어 올 일 없지 않겠소.”

“활동? 무슨 활동?”

끔벅. 끔벅끔벅.

이제 왕대환 말고 다른 산적들의 눈도 같이 끔벅거렸다.

“아, 그야…… 산적이 마땅히 산적 노릇 해야지 않겠소.”

지강백이 할 말은 딱 하나였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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