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천동지-15화 (15/346)

제15화 종남산에 비가 내리면 (2)

화적사뿐만이 아니었다.

스스스슷, 스스…….

거미와 개미, 그 밖의 작은 벌레들이 꾸역꾸역 동굴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껏 종남산을 오가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자연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채 소저!”

채희유의 숨결에서 묻어나던 그 달콤한 냄새가 동굴에 꽉 들어찬 듯했다.

언뜻 스칠 땐 단 내음이었지만 그것이 극으로 치닫자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지강백은 본능적으로 숨을 막고 걸음을 옮겼다.

빛 한 점 없는 동굴 안은 어둡다는 말이 무색했다. 안력을 돋워야 간신히 그림자와 실체를 구분할 수 있었다.

“대답하십시오! 어디 계십니까!”

스스륵.

뭔가가 스치는 소리가 울렸다.

지강백은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밑에서 바삭바삭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채 소저! 무사하십니까?”

저 동굴 끝에서 아지랑이처럼 뿌연 기운이 흩어지고 있었다. 지강백이 그쪽을 향해 걸음을 떼려는 순간,

“오지 마십시오!”

채희유가 왈칵 소리를 질렀다.

지강백이 우뚝 멈춰 섰다.

채희유가 무사한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동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채희유가 앞으로도 무사할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채 소저. 동굴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계속 머무르실 생각이라면 확인을 해야 합니다.”

“…….”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저벅.

지강백이 걸음을 떼었다. 그는 이대로 저 정체 모를 뿌연 기운을 뚫고 지나칠 작정이었다.

바로 그 때,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채희유가 뿌연 기운 너머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야 지강백은 그녀가 오지 말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채희유는 완연한 나신이 되어 있었다.

옷깃에 감싸였을 때 그토록 희고 가녀리던 목이, 작고 여린 어깨가, 곧은 팔다리와 흠 없는 가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하얀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지만 지강백은 그녀의 두 볼이 오히려 붉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수치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상대의 눈을 감길 수 없으니 차라리 제 눈을 대신 감아 버린 것처럼.

“아……,”

지강백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역시 눈을 감아 주고 싶었으나 동굴 안의 상황을 다 모르는 상태에서 시야를 차단할 수는 없었다.

“젖은 옷을…… 입고 있을 수가 없어서요. 게다가 흙이 묻는 바람에 너무 더러워졌고…… 그래서 입고 있기 싫었어요. 여긴 너무 어두워서…… 어디에 벗어 뒀는지 보이지도 않고요.”

채희유의 낮아진 음성이 힘없이 귀를 때렸다.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은 못 하고 독뱀이 보이기에 변고가 있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 저도 보았습니다. 제가 이 안으로 들어오며 뭔가를 잘못 건드린 모양입니다. 독충이 모여 지내거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채 소저는 괜찮으신 겁니까?”

“예. 저야 약사니까요. 이 정도 독은 다룰 줄 압니다. 다만 지금 모습이 이래서…….”

말끝을 흐리던 채희유가 돌연 표정을 달리했다.

꼭 감았던 눈이 뜨였다. 기이한 안광이 스쳐갔다. 만약 지강백이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면, 분명히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의 눈이 녹색으로 보일 수 있을까 싶어서.

“비가 오는 것은 압니다만, 이대로 산을 내려가 제 옷을 가져다주실 수 있는지요?”

채희유는 지강백을 보고 있었다. 지강백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였다.

그를 응시하는 채희유의 눈이 점점 짙어졌다. 숨 막히는 이질감이 녹색 눈을 휘감았다.

먹이를 눈앞에 눈 독사의 모습 같았다.

먹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단숨에 입을 벌려 독니를 박아 넣을 것 같았다.

지강백이 좀 더 어깨를 틀었다.

채희유를 향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등진 방향으로였다.

피부가 따끔해지는 긴장감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것을 설마 살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무인의 본능은 계속 채희유를 마주해 확인해야 한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강백은 아예 등을 돌려 버렸다.

자칫 실수로라도 그녀의 나신을 보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

선선한 대답에 채희유의 눈빛이 수그러들었다.

바짝 긴장해 있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녀는 탈진한 사람처럼 지친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감사……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채 소저께서 산을 오르신 이유가 오로지 제 해약을 구하기 위해서인 것을요.”

지강백이 걸음을 떼었다.

“아,”

그러다 멈춰 섰다. 뭔가 생각이 난 사람처럼.

한 겹 사그라들던 녹색 안광이 다시 되살아났다.

“무슨 일입니까?”

채희유의 목소리도 눈빛처럼 매서워졌다.

지강백은 등을 돌린 채 제 무복의 상의를 벗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흠뻑 젖은 옷에 그가 진기를 불어넣었다.

직접 손으로 불을 일으키는 삼매진화 같은 것은 그가 지닌 팔 성의 태을신공으로는 어림없었다. 하지만 습기를 몰아내는 것이라면 할 수 있었다.

파스스스…….

옷을 적시고 있던 빗물이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일각 정도 진기를 소모하고 나니 지강백의 무복은 한 번도 젖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송보송해졌다.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

지강백은 손만을 뒤로 돌려 무복을 내밀었다.

그것을 보는 채희유의 눈이 흔들렸다.

“아…… 그럼 그 아래 놓아…… 주세……요.”

“예.”

지강백은 손이 닿는 한 먼 곳에 제 옷을 놓아주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가 정말로 동굴을 벗어났다.

지강백이 사라진 동굴 안에서 채희유가 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그녀의 눈길이 조심스레 지강백의 옷을 향했다.

진기로 말려놓은 옷에서는 따듯한 냄새가 났다.

따듯하고, 넉넉한 냄새가. 햇살처럼 곧고 강직한 냄새가.

마른 풀과 산바람과 맑은 구름과 고즈넉한 노을의 냄새가 났다.

지강백의 냄새였다.

“냄새가…… 옮을 것 같아.”

채희유가 작게 중얼거렸다. 듣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 말투였다.

스륵.

그녀의 말 상대라도 되는 듯, 채희유의 발치에서 노란 뱀 하나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채희유는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뱀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입을 수 없어.”

그녀의 흰 손이 작게 흔들렸다.

꼭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듯했다.

스르륵.

뱀이 다가왔다. 잠시 머뭇대던 독사는 곧 입을 벌려 채희유의 손을 물었다.

“으음…….”

채희유가 자그마한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겁에 질리거나 한 소리는 아니었다.

한번 물리면 하루 안에 반드시 죽는다는 맹독이, 뱀의 이빨을 타고 채희유의 손끝을 파고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화적사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꾸물렁꾸물렁 경련을 일으키던 뱀이 눈을 훌렁 뒤집더니 제 풀에 쓰러졌다.

채희유의 하얀 손이 제 손가락에서 뱀을 떼어냈다.

잇자국이 찍힌 손가락 끝에는 작은 핏방울과, 독니에서 흘러나온 새하얀 맹독이 함께 맺혀 있었다.

채희유는 그 손끝을 입술로 가져갔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을 받아먹는 사람처럼 그녀의 입술이 독을 들이켰다.

또 한 번 녹색 눈이 반짝였다.

이번에는 숨 막히는 이질감 대신 다른 것이 먼저 느껴졌다.

이를테면, 슬픔 같은 것이.

여인이 제 알몸을 드러내면서까지 필사적으로 감춰야만 하는, 그런.

채희유가 씁쓸한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발치에는 눈을 까뒤집고 죽은 화적사가 한데 엉켜 작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새카만 천 조각이 보였다. 채희유가 동굴에 들어서기 전까지 입고 있던 옷이었다.

옷이 녹아내려 한 줌의 흑수가 된 것이다.

“입을 수 없어.”

채희유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반복되는 부정은 긍정을 감추기 위한 필사적이고 연약한 거짓으로 들려왔다.

“나는, 여인이 아니라 독인(毒人)이니까.”

빗물에만 닿아도 독기가 새어나오는, 그래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독에 물들이는 독인이니까.

마지막으로 남은 화적사마저 죽은 지금.

채희유의 혼잣말은 아무도 듣는 이 없이 그저 서글픈 메아리가 되었다.

* * *

지강백과 채희유가 떠난 뒤 혼자 남은 용천휘가 주인 없는 침상 위에 벌렁 드러누웠다.

산기슭의 평범한 민가는 천장이 쏟아질 것처럼 낮았다.

용천휘는 그 천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용천휘는 천장을 고스란히 떠받들고 있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흐른다.”

그의 손에는 기실 집 한 채보다 몇 배는 더 무거운 것들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한 게 없지.”

용천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빌어먹을.”

자조가 제 가슴을 베는 칼날이 되기 직전,

“다녀왔습니다, 소야.”

아무도 없던 곳에 인기척이 생겨났다.

필목현이었다.

그가 침상 앞에 무릎을 굽혀 이마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하려 했다.

“보는 눈이 있는 것도 아닌데 허식은 집어 치워. 새삼스럽게.”

“예, 소야.”

필목현이 바닥에서 일어났다.

용천휘가 근처의 의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앉아.”

“대천(大天)의 불꽃, 생과 사의 경계에서 길이 영명할지니. 삼좌위, 명을 받습니다.”

용천휘가 입술을 삐뚜름하게 꼬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유난인데?”

필목현이 짐짓 웃으며 대꾸했다.

“간만에 교의 일을 보니 묵은 습관이 나오는 것이지요. 별거 있겠습니까.”

“됐고, 보고나 해. 찾았나?”

말투는 여상했지만 사실 용천휘는 손을 꾹 움켜쥐고 있었다. 움켜쥔 손바닥 안으로 식은땀이 고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필목현이 고개를 흔들었다.

“송구합니다, 소야. 놓쳤습니다.”

“제기랄.”

용천휘가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간 필목현은 채희유의 집을 습격한 이매들의 흔적을 뒤쫓았다.

교에서 섬서까지는 기나긴 길이었다. 교에서 직접 파견한 이들이라면 이곳까지 오는 데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용천휘는 그 흔적을 통해서 어떻게든 이매들의 실마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가 채희유를 섬서까지 부른 데는 기실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지강백의 체질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채희유를 통해 일부러 제 위치를 노출시켜 이매들의 주목을 끌고자 함이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노렸던 일이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필목현이 고개를 숙였다.

그를 응시하는 용천휘의 눈이 복잡해졌다. 언젠가 채희유에게 말한대로 지금 용천휘는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누구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제 수족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을 일부러 의심하는 것은 생각보다 괴로운 일이었다.

“네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네가 찾을 수 없었다면 내 적이 너보다 뛰어나다는 소리겠지.”

“……송구합니다.”

덤덤하게 내뱉는 한 마디 같았지만 그 속에는 차마 말로 하지 못하는 비통함이 어려 있었다.

그래서 더욱 괴로웠다.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어서. 아니, 믿고 싶을수록 믿지 말아야 해서.

“밖으로 유인하는 것도 소용없다면…… 이대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손을 놓고 그저 천하무도회나 기다리고 있어야겠군.”

용천휘의 표정이 비리게 비틀렸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하지만 얌전히 기다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야.”

필목현이 고개를 들었다.

“달리 생각이 있으십니까?”

“어쩌면.”

용천휘가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보면 악당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아이처럼 순진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미소였다.

“내 사형이 재미있는 과제를 수행 중이지. 혹시 들었나? 사형은 석 달 안에 태을분광검을 대성해야 해.”

필목현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턱 끝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석 달이라니. 양영천이 드디어 노망이 난 모양입니다.”

“진심으로 한 말은 아냐. 문제는 그 바보가 진심으로 알아들었다는 거지.”

필목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소야, 설마…….”

“왜 아니겠어.”

필목현이 혀를 내둘렀고, 용천휘는 그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아주 성심껏 도울 생각이다. 문제는 그가 고집도 세다는 것이지만. 소환단을 먹이려 했더니 안 먹더군.”

“저런, 그래서요?”

“독이라고 속였지.”

“네? 거 참. 독이라 하면 오히려 먹습니까?”

“내가 주는 거니까 독이라고 하는 쪽이 더 신빙성 있는 모양이야.”

필목현이 참 딱하다는 표정으로 용천휘를 보았다.

“그자가 가엾은 건지, 소야께서 가여우신 건지……. 거 참.”

“그러니 소림으로 간다.”

뜬금없이 날아오는 용천휘의 말에 필목현은 귀를 파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예?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뜬금없이 소림이라니요?”

“석 달 안에 태을분광검을 완성하면. 그렇다면 비교할 만하잖아.”

필목현이 펄쩍 뛰었다. 그는 용천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그러니 말리려는 것이었다.

“뭘! 뭐를요! 뭐를 비교한단 말씀입니까!”

용천휘의 눈이 어느샌가 붉게 변해 있었다.

“두 마리의 적혈마를. 지월이 당대 최고라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지월의 몸을 겪어보지 않았어. 그가 중원의 제일이라는 것과, 내 적혈마로서 제일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야. 나는 항상 내 몸의 반소효응을 고려해야 한다.”

“…….”

필목현은 대꾸 대신 침을 삼켰다.

저 붉은 눈은 용천휘가 교의 적법한 승계자라는 뜻이었다.

붉은 눈을 한 용천휘는 그가 가진 절대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필목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허리를 숙였다.

“아무리 천하제일의 무공을 빌려 쓴다 한들, 내 몸이 반소효응을 이겨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지. 그런 의미에서 최상의 적혈마에 더 가까운 것은 내 사형이다. 지월을 겪어보면 어떤 게 더 나은지 알 수 있겠지. 그걸 하겠다는 거다.”

필목현이 끄응, 신음 소리를 냈다.

“그래서 천하무도회 이전에 미리 지월을 시험해 보시겠다는 겁니까? 저야 물론 소야의 혜안을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그럼 됐지 뭘 그래.”

“그럼 됐다 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소림은 종남과는 다릅니다. 어차피 소야의 종적은 노출되지 않았습니까? 이매들이 거기서까지 날뛰면 본 교의 종적이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그건 네가 할 일이지.”

용천휘가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끄응. 소야,”

“앓는 소리 그만해. 본 교가 그 정도도 처리하지 못할 만큼 무능한 곳이었나?”

“물론 아닙니다.”

“그럼 해.”

“……뜻대로.”

명을 받으며 고개를 숙이던 필목현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닐 것 같군요.”

용천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아아……. 내 사형이 돌아오는 모양이로군.”

필목현은 채희유의 옷을 가지러 돌아오는 지강백의 발자국 소리를 감지한 것이다.

“그사이 또 다른 성취가 있었습니다.”

“맞아. 하루가 다른 인물이지.”

필목현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단지 소환단 한 알의 힘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건 그저 약간 거들 뿐이야. 그 자체가 놀라운 인물이다. 무재(武才)라는 말이 아깝지 않아.”

필목현이 용천휘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저자가 정말로 석 달 안에 태을분광검을 대성한다면, 저 역시 가능한 모든 힘을 그에게 싣겠습니다.”

용천휘의 입술이 실룩였다. 그러나 기분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하면 하는 거지 왜 조건을 달아?”

“그래야 소야께서 좀 더 즐거우실 것 아닙니까.”

“그 말도 맞군.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필목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물론 석 달 안에 태을분광검 같은 상승의 무학을 대성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단순히 초식을 따라 익히는 것과 대성한다는 것은 퍽 다른 뜻이니까요. 하지만 그래서,”

“그래서?”

필목현이 용천휘의 붉은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소야의 수라안이 톡톡히 제 능력을 발휘하겠지요.”

“……그런가?”

용천휘는 남의 얘기를 하듯 태연히 웃었다. 동시에 그의 눈이 평소의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저 역시 기대가 됩니다. 저자의 천재성뿐만이 아니라, 소야의 수라안이 과연 어디까지 발현될 수 있는지도요.”

텅!

그때 방문이 열렸다.

지강백이 들어선 것이다. 용천휘가 태연하게 손을 흔들었다.

“어이, 사형. 그 뭐라던 열매는 잘 찾았어?”

“아직 못 찾았어. 일이 있어 다시 내려왔다. 채 소저의 옷을 가져가야 해.”

필목현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밖에는 그토록 세차게 퍼붓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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