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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동지-11화 (11/346)

제11화 사내의 진심

지강백은 어둠이 음산히 깔린 산길을 걸었다.

표정은 그가 걷는 길보다 더 어두웠다. 사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그에게는 가장 마음 아픈 것이었다.

오늘은 아예 사문을 떠나라는 말까지 나왔다. 오죽 화가 나셨을까 싶었다.

평소처럼 등짝 몇 대 얻어맞고 말 일이 아닌 것이다.

“석 달.”

두툼한 통나무를 양 어깨에 짊어진 걸음은 기운이 없었다.

지강백은 하나둘 총총히 떠오르기 시작한 산별을 올려다보며 지그시 이를 물었다.

“해내고야 만다.”

사부님이 석 달이라 말씀하셨다.

남들은 보통 석 달 안에 태을분광검을 익힌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저도 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아둔해 느리다고 하면 그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지강백은 고개를 끄덕여 걱정을 털어냈다.

일단은 채희유의 집을 짓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일만 매듭을 짓고 온전히 수련에 임할 작정이었다.

지강백은 느려지던 발에 다시 힘을 주었다.

휙!

신법을 전개하자 그는 경쾌하다 못해 서늘한 밤바람이 되었다.

그렇게 집터를 다져둔 계곡에 막 도착하려던 그 때.

“오, 온다!”

누군가가 작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지강백이 신형을 우뚝 멈춰 세웠다.

어둠 속으로 사사삭 흩어지는 사람 그림자가 있었다.

한둘이 아니었다. 이 야심한 밤, 험준한 산길인 점을 감안하면 날래고 신속한 동작들이었다.

“망할.”

지강백이 돌연 험한 소리를 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눈에 익은 몸놀림이었던 것이다.

오늘 낮에 실컷 패대기쳐 주었던, 그 주제 파악 못 하는 산적 떼였다. 복수랍시고 이렇게 또 몰려온 모양이었다.

살의라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밤이었다.

텅, 텅!

지강백이 어깨에 메고 있던 통나무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수련용 목검을 손에 쥐었다.

양 어깨에 하나씩 메고 온 통나무는 하나는 절단면이 매끈했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너저분했다.

하나는 대천강검을 이용해 베어냈고,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태을분광검을 이용한 탓이었다.

손에 익지 않은 무공의 척도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화가 들끓었다.

지강백이 목검을 쥔 채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좋아. 이번 수련에는 나무나 목인형이 아닌 실제 사람을 베어보지.”

휘이이잉.

때마침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다.

수련용의 목검은 흔히 검사의 손에 들린 검이 그렇듯 달빛을 반사해 가슴 섬뜩한 검광을 뿌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맹세코 말하건대, 검광 따위는 필요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은도끼파는 저 뭉툭한 목검이 세상 어느 귀검(鬼劍)보다 더 무서워 죽을 것 같았으니까.

“자, 잠깐! 잠깐만! 우리는 지금 적으로서 온 게 아니라……!”

부하들에게 옆구리를 푹푹 찔린 은도끼 왕대환이 엉거주춤 몸을 빼고 목소리를 내봤다.

소용이 없었다.

탓!

지강백의 신형이 이미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단숨에 거리를 좁힌 지강백은,

빡!

인정사정없이 목검을 휘둘렀다.

“으악!”

가장 가까이 있던 산적이 태을분광검의 제일 초식에 이마를 얻어맞았다. 그나마 내력은 운용하지 않았기에 피를 보진 않았다. 대신 족히 한 달은 정양을 해야 될 것 같은 커다란 혹이 생겼다.

매도 먼저 맞은 놈이 낫다 했다.

제일 먼저 얻어터진 산적은 차라리 안도하며 기꺼이 정신을 잃었다.

“으악! 도, 도망쳐라!”

누군가가 발 빠르게 소리를 질렀다.

유감스럽게도, 이곳은 지강백이 십칠 년간이나 애용해온 빨래터였다. 바닥을 구르는 돌멩이 한 조각까지 익숙한 곳이라는 소리였다.

오늘따라 달빛이 훤했다.

하지만 굳이 밤이 밝지 않아도 저런 느려터진 움직임은 두 눈에 똑똑히 들어왔을 것이다.

“그래도 움직이긴 하니 목인형보다야 도움이 되겠군.”

목검이 작정을 하고 춤을 추었다.

허허실실 구름처럼 가벼운 가운데 번개처럼 찰나적인 강맹함의 묘수를 내포한 검이었다.

아직 한 가지 초식밖에 익히지 못했기에 검로(劍路)는 단순했다. 하지만 은도끼파를 상대로 단순함은 아무런 약점도 되지 않았다.

“극은 극과 이어진다 했던가.”

지강백의 목검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사뿐히 허공을 그을 때마다 어김없이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나 변화와 허초가 많은 태을분광검에 대천강검의 곧은 초식이 섞이다니.”

검로가 변화를 필요로 하는 부분은 저절로 대천강검의 초식이 이어졌다. 이미 대성을 이룬 대천강검은 그에게 호흡 다음으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지강백은 모르고 한 말이었지만, 확실히 목인형보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편이 훨씬 더 수련의 효과가 컸다.

고정된 목인형은 초식을 정확하고 바르게 익히는 데 더할 나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응용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지강백은,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과 별개로 무학의 천재였다.

한번 몸으로 익힌 것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서서 그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최적의 길을 몸이 스스로 찾아 나섰다.

태을분광검이 대천강검과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쨌거나 지강백은 지금, 이 사소한 일을 기회로 삼아 한 단계 다음 경지로 올라설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니, 진짜! 일단 얘기나 먼저 들어보고, 윽!”

지강백은 차근히 산적들을 때려눕혔다.

운이 좋아 일검에 기절하지 않은 산적들은 몇 배로 더 얻어터졌다.

꽃구름처럼 살랑대던 목검이 갑자기 벼락처럼 내리꽂히는데, 꼭 제 몸이 불쏘시개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제 셋.”

문득 검을 멈추고 지강백이 낮게 중얼거렸다.

듣는 입장에서는 참 모골이 송연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두드려 맞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껏 가장 멀리 도망쳐 와서 가장 잘 숨어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달빛도 한껏 흐려졌다.

종남산의 밤은 저 아래 평지의 밤과는 전혀 달랐다.

달도 별도 가까이 있지만, 그들이 한 번 가려지면 칠흑의 어둠만이 남는 것이다. 별과 달 외에도 민가의 등불이 남아 있는 저 아래쪽과는 사정이 달랐다.

그런 어둠을.

코앞에 들이대는 제 손가락도 안 보이는 이 어둠을.

그도 모자라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 있는 그들을 훤히 꿰고 있는 듯 숫자까지 맞췄다.

사실 몇 명이 더 남아 있는지는 자신들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귀찮으니 한꺼번에 처리할까.”

그때 달무리가 걷혔다.

번쩍, 하고 드러난 하얀 달빛이 지강백의 얼굴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아직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은도끼파 세 명은 맹세할 수 있었다.

지금, 저 얼굴이 이승에서 보았던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자, 잠깐!”

수풀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벌떡 일어섰다.

은도끼 왕대환이었다. 과연 채주다운 행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제일 멀리까지 도망친 것은 예외로 치자면.

“듣자듣자 하니 내 참 서러워서! 귀찮다니! 이 은도끼 왕대환이 귀찮다니!”

“…….”

지강백은 말없이 목검의 방향을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냐, 귀찮으니 너부터 처리해주마, 라는 대답일 것이다.

“아, 아닛……! 그, 그러니까 그게 꼭 그쪽 분께서 너무 과한 말씀을 하셨다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아! 인간적인 도의로다가 최소한!”

지강백의 한쪽 눈썹이 꿈틀 위로 솟구쳤다.

“최소한?”

“그, 그…… 최, 최소한 두들겨 맞는 이유는 좀 알려주고 그래야 되는 거 아, 아니냐고!”

이번에는 입술이 실룩였다.

“맞는 이유?”

“그, 그러하……! ……합니다.”

지강백의 싸늘하던 눈매가 지금은 약간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천성이 약한 사람에게는 약한 성격이었다. 말을 더듬다 급히 공손해지기까지 하는 왕대환은 충분히 불쌍해 보였다.

더 이상 손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지강백은 걸음을 살짝 옮겼다. 그가 간 곳에는 어린 아이 머리통만 한 바위가 있었다. 지강백이 발끝으로 바위를 걷어찼다.

휙!

바위가 뭍으로 나온 생선처럼 경쾌하게 튀어올랐다.

그것을 보는 산적들도 덩달아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지강백이 주먹을 휘두르자,

쾅!

바위가 네 조각이 났다.

이제 산적들은 빠져서 저 멀리 떼구르르 굴러간 눈알을 찾아야 할 판이었다.

지강백은 그중 한 조각을 던졌다 받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열을 세겠다.”

“여여여…… 열은 왜…… 왜…….”

이가 하도 떨려와 말 한 마디를 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열을 다 세면 시작하겠다.”

지강백이 돌 조각을 가볍게 허공으로 던졌다. 그리고 다시 떨어지는 조각을 목검으로 후려쳤다.

빠각!

돌은 한 줄기의 빛 무리가 되어 저 멀리로 날아갔다.

까아아악!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울었다.

어째 모골이 송연했다. 새 울음소리는 너무 멀리서 들려온 나머지 저 건너편 봉우리에서 건너오는 듯했다.

“저 정도까지밖에 안 가는군.”

그러니까, 방금 쳐낸 그 돌에 맞은 새가 비명횡사한 거리가 저 정도라 말씀하시는 거냐 차마 묻지 못하는 산적들에게 지강백이 말했다.

“열을 셀 동안 저 새보다 멀리까지 가야 한다는 소리야. 알겠나?”

차마 묻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물어야 했다.

목숨이 걸린 일인 것 같았기에.

“그, 그러니까 지금…… 우, 우리한테 그, 그걸……,”

지강백이 세 개 남은 돌 조각 중 하나를 집어 들며 대꾸했다.

“아니라면 왜 굳이 네 조각으로 나눴겠어?”

한 조각은 시험 삼아 던져보기 위해서.

남은 세 조각은…….

휙, 탓.

지강백이 가볍게 집어던진 돌 조각이 다시 그의 손에 떨어졌다.

한 조각. 다시 말해 누군가의 목숨 하나가 지강백의 손에 쥐인 것이다.

“하나.”

지강백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둘.”

그리고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으아악!”

“끄윽! 역시 살인귀……!”

“아이고, 어머니!”

세 명의 도적이 수풀을 헤집으며 뛰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세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싶었다.

아니, 조금만 더 정신이 나가면 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두 다리에 힘을 줘 날아오르는 가운데서도 지강백이 숫자를 세는 소리는 귓가로 또렷이 날아왔다.

잘 들리라고 공력까지 담아 세는 것이 틀림없었다.

“……셋, 넷, 다섯…….”

은도끼 왕대환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왜 자꾸 빨리 세는 거야!”

“……여섯일곱여덟아홉…….”

“악, 악! 잘못했습니다! 한 개만 물러주십쇼!”

“열.”

“으아아악!”

그 날은 아마도 태어나서 가장 빨리, 가장 멀리 달려본 날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억울한 날이기도 했다.

은도끼파가 지강백에게 산적질을 그만두라는 충고를 들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왔던 이유.

말 그대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새 출발의 방향이 지강백이 생각했던 것과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두목……. 살아 계신 게 맞지요……?”

얼마나 달렸을까.

눈이 뒤로 넘어가고 입가로 눈먼 침이 꿀떡꿀떡 흘러내리는 지경이 되어서야 달리는 것을 멈추고 쓰러진 은도끼 왕대환에게 귀신눈 구악이 물었다.

“묻지 마라…….”

대답은 술 먹은 다음 날 아침 쓸개즙보다 썼다.

“그래도 두목, 아니 채주……. 이대로 쫓겨나면 우린 이제 정말 어쩝니까아…….”

“묻지 말라니까.”

열 걸음쯤 앞선 곳에서 다른 산채 식구가 입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염라도 염창. 완력으로는 은도끼파에서 능히 서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그러게 웬걸 그리 고집을 피워쌌소. 아, 낮에도 못 봤소? 제 힘 믿고 우리 애들 그리 악독하게 때려 박던 놈 아니오! 그런 놈이 부러진 뼈다구 좀 맞춰 줬다고 마음이 약해져서는…… 옘병.”

은도끼 왕대환이 부러지지 않은 팔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조용히 못 하냐! 사내가 한번 마음을 줬으면 이미 임자가 바뀐 게다.”

“아, 그러니 하는 말 아니오. 우리만 주면 뭐하오? 그 짝서도 받아 줘야지.”

“그러니까 받아주게 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 어디 마음 주는데 염치없이 홀랑 마음만 주냐! 피와 열정이 없으면 그것은 사내의 마음이 아니다!”

“옘병. 진심은 무슨. 그래서 그놈의 진심을 보여준다고 이제껏 내내 팔자에도 없는 도끼질 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놈은 뭐요? 아예 우리는 상종도 하기 싫다 굴지 않소!”

“자꾸 놈놈 할 거냐!”

“그럼 놈이라 하지 뭐라 하오! 놈이 아니라 님이라 하오?”

“이 자식이 근데!”

주고받는 이야기가 영 수상쩍었다.

중재에 나선 것은 좀 전부터 불안스레 눈알을 굴리며 있던 구악이었다.

“대체 왜들 그러십니까요. 이참에 우리끼리 싸워 뭘 어쩌겠다고요. 염 형님도 이미 다 끝난 얘기를 가지고 왜 또 걸고 넘어지십니까요. 아까 분명 그러자, 얘기 끝내지 않았습니까요.”

그랬다.

이미 근거지를 버리고 떠나온 산적에게 돌아갈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앞으로 나아가든지, 옆으로 둘러가든지 해야 했다.

애송이 고수와의 일전을 각오하고 이대로 종남산에 산채를 트는 길이 있었다.

아니면 아예 다른 산으로 옮겨가는 길도 있었다.

첫 번째는 불가능하고 두 번째는 불확실했다.

화산이 힘겨워 떠났더니 종남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모든 산에는 저마다 주인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짐을 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왕대환은 세 번째 길을 제시했다.

애송이 고수와 목숨을 건 영역다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종남산에서 얌전히 떠나는 것도 아닌 길을.

그것은 바로 애송이를 새로운 채주로 추대하는 것이었다.

은도끼파의 이름은 버려도 좋았다. 더는 산적질을 하지 않아도 좋았다.

새로운 길을 찾으라는 것은 애송이였다. 왕대환이 찾은 새 길은 애송이였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마침 있었다. 애송이가 산에서 집을 짓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 정도로 놀라운 무위를 지닌 고수가 인적 없는 산에 집을 짓는다?

당연히 뭔가 사연이 있다는 소리였다.

아무도 없는 외딴 산속에 은거지를 트는 마음을 그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사연 없는 산적은 없었다. 애송이는 놀라운 무위만이 다를 뿐, 그들과 마찬가지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은도끼 파가 애송이 파가 되든, 숲 속의 조그만 오두막 파가 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애송이의 말은 이미 왕대환의 가슴을 울려 버렸다.

이제껏 강호를 떠돌며 마주친 누구도 그토록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지 않았다.

애송이는 그들을 단칼에 베어 아무 데나 파묻을 수도 있었다. 고작 한 명을 못 당하는 삼류들이라며 비웃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다친 팔을 정성껏 치료해 주고, 차마 다 담을 수도 없었던 멋진 말로 심장이 떨리게 했다.

그 순간 애송이는 이미 왕대환의 은인이자 큰형님이었다. 파릇파릇한 얼굴이 심지어 잘생기기도 해서 좀 걸쩍지근하긴 했지만, 나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크기였다. 애송이는 은도끼파를 전부 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인물이었다.

왕대환은 말했다.

“아직…… 우리의 진심이 큰형님께 닿지 않은 것이다. 좀 더 애를 쓰면 될 터.”

염라도 염창이 카악, 가래침으로 목을 긁었다.

“옘병, 그놈의 진심. 대체 얼마나 더 도끼질을 하란 말이오. 채주 도끼는 벌써 이빨 나가지 않았소?”

왕대환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 이 빠진 날은 갈아서 다시 날카롭게 만들면 된다.”

“나 참.”

염창이 다시 카악, 했다.

그러나 좀 전처럼 속 시원히 긁는 소리는 아니었다.

염창도 안다. 애송이는 그들과는 수준이 다른 고수라는 것을.

애송이 그릇이 남다르다는 것도 지켜보았다. 왕대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애송이를 대형님으로 모시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왕 지으시던 산채, 우리 손으로 아예 지어 바치는 게 어떻겠냐고 단체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애송이가 이미 잘라놓은 나무가 있었으니 퉁퉁 쌓아 올려서 지붕을 얹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제 손으로 산에 집 지어본 경력은 넘쳐나는 연륜의 산적들이었다. 미리 터를 다져놓은 곳에 집 하나 마저 짓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를 바 없었다.

다들 콧노래를 부르며 달려들었다.

애송이가 지으려던 집은 혼자 사는 용이라 크기가 작았다. 싱거울 정도였다.

시간이 남기에 창틀에 모양도 냈다. 빈틈은 촘촘히 진흙을 채웠고 이끼를 덧칠해 비가 새는 것을 방지했다.

다른 놈들은 나무를 몇 개 더 베어와 침상을 짰다. 몇 십 명이나 되는 산적들이 신이 나서 덤벼드니 집 하나가 뚝딱 완성이 됐다.

내일 당장 사람이 살아도 될 정도였다.

잎이 크고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여러 개 꺾어왔다. 그것을 엮어 마무리로 살살 먼지를 터는 중이었다.

그런데.

애송이는 다짜고짜 산채 식구들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야 물론 처음에는 쑥스럽고 어색한 나머지 일단 숨기부터 한 것은 잘못이었다. 그렇다고 말해볼 기회도 주지 않고 사람을 짐승처럼 몰아내다니.

상처 받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염라도 염창은 다시 돌아올 상처가 무서웠다.

“어쩌면 집이 작아 그럴지도 모른다. 큰형님께서는 배포가 크신 분이 아니냐? 터를 잡아둔 것을 보고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벽을 올린 게지. 내일은 좀 더 증축을 해보는 거다.”

염창이 입을 씰룩였다.

“그래봤자 내일도 쎄 빠지게 도끼질하란 소리 아니오. 허리 다 나가겠구먼.”

“시끄럽다. 그런 분이 어디 반나절 만에 마음 움직이시겠냐.”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애송이라 부르는 건 얼굴이 너무 앳되어 그런 것뿐이었다.

듣기로는 무공이 너무 고강하면 노화가 멈추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춘하기도 한다 했으니 함부로 나이를 판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내일은 꼭 함자를 여쭈며 연세도 알아두어야겠다.

은도끼 왕대환은, 뻣뻣한 나무통을 베어내느라 듬성듬성 이가 빠진 도끼를 애타는 눈길로 어루만졌다.

“우린 이미 갈 데가 없다.”

귀신눈 구악은 고개를 끄덕였고, 염라도 염창은 상처를 감추느라 더욱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아, 그야 우리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채주 마음 갈 데가 없는 거 아니오?”

왕대환은 반박하지 않았다.

사내로 태어나 처음으로 저보다 크다 인정하는 사내를 만났다.

그 마음이 어찌 외길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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