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달마조사도 못 하는 일
지강백은 걸음을 서둘렀다.
하산을 하려면 장문인의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용천휘가 다쳤네 나 죽네 하며 계속 닦달하지만 않았어도 그리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재빨리 치료만 받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산을 내려간다 해도 종남산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으니 하산이라는 말은 사실 과했다.
그러나 세상일은 언제나 생각 같지 않았다.
백발마인이라는 강호의 신종 악당 무리와 맞닥뜨리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덕분에 시간이 터무니없이 지체되었다.
거기에 용천휘까지 한 몫 거들고 나섰다.
“좀 빨리 걸어라.”
지강백은 결국 참다못해 한 마디 했다.
진작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용천휘의 걸음은 거북이 못지않았다.
느릿느릿. 마치 유람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내 걸음이 어때서?”
용천휘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 동작조차 지강백의 눈에는 느려터지게 보였다.
“평소보다 배는 느려.”
“신발이 너무 비싼 걸 어쩌란 말이야.”
“그럼 벗어.”
“가난뱅이들은 맨발로 걷기도 하나 보지?”
“맨발로 걷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아. 너도 할 수 있어. 내가 도와줄 테니 너무 겁먹지 마라.”
“사양하겠어.”
용천휘가 습관처럼 부채를 펼쳐들었다. 그런데,
툭.
“…….”
부채가 힘없이 떨어졌다.
“젠장.”
용천휘가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떨어진 부채를 주울 생각은 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지강백은 그가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고 “어이, 사형. 이것 좀 주워. 나는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몸이라.” 따위의 헛소리를 지껄여 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용천휘는 그대로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지강백은 한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유를 깨달았다.
창백한 얼굴. 평소보다 색이 흐려진 입술.
평소처럼 매끄러운 척하고 있지만 입술선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놀란 탓에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평소처럼 흰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속을 게워내기까지 했다.
지금, 용천휘는 그를 골릴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다.
“미련한 놈.”
지강백이 허리를 굽혀 부채를 주워들었다. 그리고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 용천휘의 손목을 쥐었다.
“뭐하는 거야?”
지강백은 대답 대신 용천휘의 손을 억지로 폈다. 희고 긴 손가락도 입술처럼 얇게 떨리고 있었다. 지강백은 못 본 척 그 손에 부채를 쥐어주었다.
“골라.”
“뭘?”
“업힐지 들릴지.”
“……뭐라는 거야.”
지강백은 일부러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너무 느려터져서 안 되겠다고. 업어 달라고 하면 업어주겠다. 싫다고 하면 짐짝처럼 들고 가겠어.”
“내……,”
용천휘가 그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지강백은 여전히 용천휘가 달갑지 않았다. 오죽 삐뚤어졌으면 제 몸이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할까 싶었다.
그래도 그게 용천휘라는 것은 알았다. 그 삐뚤어진 자존심으로는 제가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어 그런다는 것도.
용천휘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러나 그 동작에도 힘이 없었다. 지강백처럼 눈썰미가 날카로운 무인이라면 못 알아 볼 리가 없었다.
“나 참. 그렇게까지 이 몸을 보살펴주고 싶다면야.”
용천휘는 곱지 않은 말을 한 뒤에야 업혔다.
업고 나서야 알았다. 용천휘의 몸이 지금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을.
진작 알아챘어야 했다. 지강백은 미리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했다. 기꺼운 관계는 아니라 해도, 그들은 사제지간이었다. 마땅히 사형인 그가 사제를 챙겨야 했다.
지강백은 용천휘를 받친 팔에 힘을 주었다.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붙든 것이다.
“보살피는 거야 어렵지 않지. 네놈이 걸어오는 의미도 없는 시비에 맞장구를 치는 것보다야.”
용천휘가 뭐라고 중얼대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아서 더 나은 듯싶었다.
용천휘가 만일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고 했다면 그도 퍽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입 다물고 있어라.”
지강백은 속도를 높였다.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매섭게 느껴질 정도로 빠른 경신술이었다. 하지만 용천휘를 받쳐든 든든한 팔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사문으로 돌아왔더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부의 호통이었다.
* * *
“이 정신 나간 놈 같으니!”
철썩!
양영천은 분을 못 참았던지 지강백의 등짝을 내리쳤다.
늙은 사부가 맨 손으로 한 대 후려쳐봤자 그리 아플 것도 없었지만, 매를 맞는 제자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네놈이 그래, 수련을 거르고! 말도 없이 하산을 해? 네놈 눈에는 이 사부가 벌써 조사동에 들어가 누울 귀신으로 보이느냐! 이놈!”
지강백이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부님. 제자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네가 말도 없이 산을 내려갔다 올 수 있단 말이냐, 이놈아!”
양영천이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찾아도 지강백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나 놀랐던지 노쇠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혹시라도 지강백이 말없이 종남파를 떠났을까 봐.
그럴 놈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양영천은 제 삼십구대 장문인이 된 뒤로, 밑의 제자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광경을 매일같이 지켜보았다.
그들도 한 때는 사문에 뼈를 묻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무너져 강호의 먼지가 되어가는 사문을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지강백을 보면서 매일 노심초사하는 마음은, 기실 해묵은 상처였다.
“고정하십시오, 사부님. 모두 무탈하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강백은 그 마음을 몰랐다.
그는 제멋대로 하산하면 안 되는 이유를 제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알고 있었다.
양영천이 늘 그렇게 가르쳤던 것이다.
강호에는 수많은 기인이사가 있고, 듣도 보도 못한 엄청난 고수들이 우글대며, 그들을 항상 선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강백 같은 풋내기들은 언제 어떻게 목이 뎅겅 날아갈지 모르는 곳이 강호라고.
그러니 정식으로 하산하는 것은 종남의 모든 무학을 다 완성하고 난 뒤라야 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을 못 드린 것은 제자의 잘못입니다. 다음부터는 이럴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그 말에 양영천의 눈이 가자미가 되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네놈이 아무리 주의를 한다고 해봤자……!”
옆으로 쭉 찢어진 시선이 닿는 곳에는 둘째 제자가 있었다.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인 그가.
처음에는 그저 돈줄이 되리라고만 여겼는데.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한다니 더 얼씨구나 했었는데.
그깟 돈 좀 가졌다고 어여쁜 제자를 괄시하더니 그도 모자라 이것저것 부려먹기까지 한다.
이제 와 나오는 말이지만, 아까 지강백이 용천휘를 업고 산을 올라오는 것을 목격하고는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저저 미친놈이 이제는 내 제자를 말 취급까지 하는구나 싶어서.
돈줄이라 그저 어여쁘게 보이던 것은 잠깐이었다.
양영천은 더 이상 용천휘가 제멋대로 설치는 꼴을 가만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가 제자와 단둘이 붙어 있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른 말 필요 없고, 너는 당장 짐 보따리 싸라. 옷가지 몇 벌하고 벽곡단 챙겨 들어. 오늘부터 폐관동에 들어가 수련을 하는 게다. 딱 석 달만 그리 해라.”
폐관 수련이라면 완벽한 해답이 될 것이다.
지강백은 이놈에게 휘둘릴 일 없이 열심히 태을분광검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놈은 데리고 놀 사람 없이 심심해하다 제 풀에 지쳐 산을 내려갈 것이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그게 제자를 위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건 안 되겠습니다, 사부님.”
“뭣이?”
해답을 거절하는 것은 제자였다.
양영천은 간만에 심맥이 개구리처럼 펄떡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게 하나 있는 제자라는 사실이 더 분통 터졌다.
“아, 왜 안 된다는 게냐!”
“제자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무슨 놈의 답!
방금 이 사부가 제자를 위하는 완벽한 해답을 찾았다지 않느냐!
지강백은 부글대는 사부의 얼굴에 대고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제자는 한시라도 빨리 채 소저가 거할 집을 지어야 합니다. 듣자하니 섬서 인근에 백발마인이라는 악인들이 출도해 무고한 양인들을 괴롭힌다 합니다. 오늘도 채 소저께서 큰 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종남파 근처로 거처를 옮기면 운신이 한결 안전해질 것입니다.”
“뭬, 뭬야? 백발마인?”
지강백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했다.
의심스러운 구석이 한둘이 아닌 얘기였다.
무엇보다 백발마인이라는 단체가 수상했다. 지강백을 단 매에 기절시킬 수 있으려면 어지간한 고수로는 택도 없었다.
그런 절정의 고수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부녀자 납치 같은 시시껄렁한 일이나 하고 다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나는 들어 본 적도 없느니!”
“제자가 두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사부님. 그들의 시체도 이 두 손으로 치웠습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수리검이 날아온 것은 사실이었고, 지강백이 잠시 정신을 잃은 것도 사실이었으며, 용천휘의 손이 다친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입니다, 사부님.”
용천휘가 면보로 꽁꽁 감싼 손을 내밀며 눈을 끔벅거렸다.
그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양영천이라고 해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만한 가엾은 표정이었다.
“끄응.”
양영천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다친 가짜 제자가 아무리 애처로워 보인들, 진짜 제자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도록 놔둘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양영천은 지금이 사부로서 근엄하게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제자가 엉뚱한 샛길로 빠지려는 것을 두고 볼 사부는 없었으니까.
양영천이 부러 더 노기를 드러냈다.
“그래, 그 말이 사실이라 치자. 그렇다면 강백이 너는 더욱 수련에 정진해야 하는 게 아니더냐. 어째서 정신을 딴 데 팔겠다는 게야.”
“채 소저의 거처만 해결되면 온전히 수련에만 집중하겠습니다. 제자가 종남의 이름으로 약속한 일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도 또한 종남의 제자로서 본분을 다하는 일입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사부님.”
지강백이 고집을 부렸다.
“아, 글쎄! 이놈이! 안 된다니까!”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지강백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릎을 꿇었다.
“이, 이놈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럴수록 양영천의 고집도 세어졌다.
저 수상쩍은 부잣집 망나니 도령이 제자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그 전에 말리는 것이 사부의 도리였다.
결코 그 못돼 처먹었을 게 뻔한 계집이 저에게 더러운 도사놈이라는 막말을 해대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예끼, 이놈! 네놈이 정녕 이 사부 말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냐? 대체 어디서 그런 못된 버릇이 들어왔단 말이더냐!”
어디긴 어디겠는가.
양영천은 일부러 가짜 제자를 노려보았다. 나쁜 놈 제 발 한번 저려보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다만 제 입으로 한 약조를 지키고 싶은 것뿐입니다. 신의 또한 무인이 반드시 익혀야 할 덕목이라고 사부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정작 발이 저린 것은 무릎을 꿇고 앉은 착한 놈이었다.
답답해진 양영천은 속으로 이를 북북 갈았다.
“시끄럽다! 네놈이 정녕 이 사부를 가벼이 보고 제 멋대로 할 요량이라면, 좋다. 어디 네 멋대로 해보아라.”
지강백의 안색이 환해졌다.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사부님?”
천만의 말씀이었다.
“단, 태을분광검을 석 달 안에 대성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 분명 폐관동 수련이 필요하다 했거늘. 제 발로 걷어 찬 것은 네놈이니 그만한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사부님…….”
종남파 역사에 두 번 다시없을 천재가 지강백이었고, 그가 대천강검을 대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삼 년하고도 반이었다.
태을분광검은 대천강검에 비해 두 배쯤 더 현묘한 무공이었다.
그런 것을 석 달 만에 익히라니.
달마조사라 한들 잠꼬대로도 한 번 안 해볼 헛소리였다.
“…….”
제가가 입술을 꾹 물었다.
양영천은 이제야 노기를 좀 가라앉혔다. 이렇게까지 몰아세울 생각은 없었던 터라 마음이 조금 무겁기도 했다.
하지만 양영천은 몰랐다.
오늘 낮, 지강백이 강호의 일면을 마주했다는 사실을.
비단 백발마인들만이 아니었다. 힘 좀 세고, 무기 좀 다룰 줄 안다는 이유로 산의 나무까지 제 것이라 우겨대는 산적 떼도 있었다.
강호는 사시사철 칼바람이 부는 곳이었다.
그리고 채희유는 봄바람에도 흩날릴 만큼 연약한 눈꽃이었다.
도저히 그런 위험한 곳에 홀로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그런 꼴을 두고 보지 않기 위해 지강백은 무공을 익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무공은 마땅히 저보다 약한 자를 돕는 데 쓰여야 했다. 그런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무인이 되기 위한 노력은 그만큼 공허해질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님.”
“뭬…… 뭬라고!”
거짓말을 조금 보태 양영천의 부릅뜬 두 눈이 한 쌍의 암기가 되어 튀어나갈 뻔했다.
“사부님의 가르침은 이제껏 한 번도 헛된 적이 없었습니다. 석 달이라는 시간이 가르침의 일부라면, 제자는 마땅히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놈이 미친놈한테 미친 게 물들었나!
그건 달마조사도 못 하는 일이라니까!
다급해진 양영천이 꽥 고함을 질렀다.
“못 하면! 못 하면 어쩔 건데!”
“시작도 전에 못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놈이 끝까지!
“못 하면 종남을 떠나거라! 사부 말도 듣지 않는 놈이 그만한 성취도 이루지 못한다면 제자 될 자격이 없다는 소리나 진배없으니!”
흥분하니 별말이 다 튀어나왔다.
양영천이 아뿔싸, 하는 마음에 제 입을 콱 틀어막았으나 이미 늦었다.
사부가 가끔은, 아니 사실은 매우 종종 거짓말과 흰소리와 뻘소리와 심지어는 개소리까지 해댄다는 것을 꿈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제자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씹고 있었다.
“……사부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
졸지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하늘 아래 단둘뿐인 사부와 제자에게.
이게 다 저놈의 돈줄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양영천은 이제야 그깟 돈 몇 푼에 미친놈을 냉큼 제자로 들인 과거를 후회했다.
지난날을 아무리 후회해도 오늘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게 유감이었다.
“제자의 못난 고집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강백은 자리에서 일어나 돌연 큰 절을 올렸다.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등을 돌려 걸어갔다.
이미 해가 저물 시간이었지만 석 달이라는 유예가 주어진 그에게는 낭비할 짬이 없었다. 밤이거나 낮이거나 채희유가 지낼 집을 짓는 일을 서둘러야 했다.
“쯧쯧…….”
종남파의 대문을 넘어서는 지강백의 등과, 그 등을 망연자실해서 바라보는 양영천의 옆얼굴을 향해 용천휘가 혀를 찼다.
“하여간. 성격하고는.”
양영천에게는 가짜 제자의 버릇없음을 혼낼 기운도, 그럴 마음의 여유도 한 방울 남아 있지 않았다.
“별수 없겠네요, 사부님. 이 몸이 나서서 거들 수밖에요.”
용천휘가 설렁설렁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양영천은 대체 거들긴 뭘 거들겠다는 거냐, 정말로 거들 참이면 그 때깔 좋은 비단옷과 가죽신은 벗어던지고 나서 얘기해라, 등등의 뜻을 담아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용천휘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면 양영천은 결코 한숨을 쉬지 않았을 것이다.
용천휘는 말 그대로 성심껏 지강백을 도울 작정이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