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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173화 (173/200)

기갑무림 173화

혈신의 사도가 완성되기 하루 전.

혈천교의 장로 두 명이 긴장된 얼굴로 신녀가 있는 음습한 동굴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마른 장로가 퉁퉁한 몸을 가진 장로에게 두려운 음색으로 물었다.

“과연…… 이게 먹힐까?”

“안 된다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마른 장로의 손에는 흑마석이 들려 있었다.

혈천교에 있는 세 개의 흑마석 중 하나인데, 몰래 빼 오느라 얼마나 진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죽지 않더라도 교주의 허락도 없이 흑마석을 가지고 나온 걸 들킨다면 무사하지는 못할걸세.”

“저년이 힘을 가지게 되면 반대편에 서 있던 우리가 살 수 있을 것 같나?”

“그렇긴 하지만…….”

큰 몸집의 장로가 마른 장로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어떻게 죽든 결과가 같다면,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봐야 할 것 아닌가? 죽기 전에 미리 생명줄이라도 만들어 놔야 한다는 말일세.”

그의 말에 마른 체형의 장로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장로 말이 맞네. 교주만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

교주에게 흑마석을 실험해 봐야 한다고 건의를 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사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부정을 타게 할 수는 없다며 거절해 왔던 것.

‘오늘이 마지막이니 확인해 봐도 괜찮겠지.’

사도로서 완성하게 된다면 너무 늦다. 만약…… 신녀가 제어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게 드러난다면 그들은 끝장이었으니까.

장로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강한 요기가 뻗어 나오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요기가 강해지고 있어.”

“……흑마석이 요기를 막아주지 못하는군.”

중후한 내공을 가진 고수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미쳤을지도 모를 강력한 요기였다.

‘불안하다.’

오장로는 긴장된 눈길로 손에 꼭 쥔 흑마석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일이었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장로들의 눈앞에 놀랍고도 괴이(怪異)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건……!”

눈에 보이는 것은 청동거울에서 뻗어 나온 검회색의 줄기들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듯 꿀렁이는 줄기들은 눈을 감고 있는 신녀의 발끝을 감싸고 있었다.

무엇보다 장로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신녀의 몸이 커다란 붉은 갑옷으로 감싸져 있다는 것이었다.

전갈 모양의 거대한 갑옷.

갑옷은 보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의 강력한 요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경탄을 자아냈다.

“말로만 전해 듣던 천갑무신의 천갑과 비슷하지 않나!”

“신녀가 가지게 될 힘이 천갑무신에 버금간다는 건가?”

“혈신의 사도라고 했네. 천갑무신보다 강하면 강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야.”

사도로 변한 신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강한 힘에 대한 두려움과 탐욕이 서렸다.

사도가 된 신녀를 마음껏 부릴 수만 있다면……!

혈천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러니 교주가 그대로 둔 것이로구나.’

결과야 어떻든 우선 강한 무기를 손에 쥐고자 하는 욕심이 그녀를 지금껏 놔둔 것이다.

‘하지만 우린 교주와 다르다.’

외부의 적도 문제지만, 내부의 적이 강력해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테니.

큰 몸집의 장로가 침을 꿀꺽 삼키며 신녀에게 흑마석을 내밀었다.

스스슥.

그러자 신기하게도 슬금슬금 주변으로 물러나는 검회색의 줄기.

“다행히 흑마석이 효과가 있나 보군.”

줄기에는 흑마석이 효과가 있었다.

청동거울에서 신녀에게 힘을 전해주는 만큼 줄기 자체는 마력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안심한 표정을 짓고는 눈을 감고 있는 신녀에게 다가갔다.

강력한 요기를 뿜어내고 있음에도 얼굴만큼은 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진 신녀.

보기만 해도 꿀꺽 침이 삼켜질 만큼의 극상의 미(美)였다.

그러나 그들은 껍데기에 혹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교주는 널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만, 우리는 그렇지 않아.”

오장로가 신녀의 얼굴을 향해 씹어뱉듯 말을 던졌다.

교주만이 신녀를 제어할 수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그들도 강력한 힘을 가진 신녀를 제압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달칵.

오장로는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고는 목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회색의 애벌레를 꺼냈다.

고독(蠱毒)이었다.

오장로는 지금 흑마석으로 신녀의 몸을 제어한 뒤, 맹독성 벌레인 고(蠱)를 심어 신녀를 조종하려 하는 것이다.

“삼켜라. 이것만이 우리가 널 믿을 수 있는 수단이니 말이야.”

그는 입술을 비틀고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신녀의 턱을 잡았다.

벌레를 집어넣기 위해 강제로 입을 벌리게 하려 했으나 열리지 않는 신녀의 입.

“턱이 부서져야 입을 열 것이냐?”

오장로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내가 신녀의 입을 벌릴 테니 이장로는 고독을 집어넣게.”

“알았네.”

오장로의 손아귀가 신녀의 턱을 힘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이장로가 한 손에 고를 집고는 신녀의 입술 안쪽으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순간.

신녀가 번쩍 눈을 떴다.

“허억!”

놀란 이장로가 그만 뒤로 넘어졌다. 그 바람에 고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충격으로 꿈틀댔다.

“떨어뜨리면 어떡하나!”

“그, 그게 신녀가 눈을 떠서…….”

“눈을 뜬 게 뭐 어때서? 흑마석이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봐, 눈만 떴을 뿐 아무런 반응이 없잖아?”

그의 말대로 신녀는 눈만 이장로를 바라볼 뿐,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미안하구먼. 주울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나.”

그때, 허리를 숙인 이장로를 향해 신녀의 눈동자가 도르륵 아래로 굴렀다.

‘음?’

이상함을 느낀 오장로가 이장로를 향해 뭔가를 말하려던 찰나였다.

촤악─!

검붉은 뭔가가 이장로의 눈앞을 스침과 동시에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

“……아악!”

동굴 안을 가득 채운 비명소리에 오장로의 눈이 부릅떠졌다.

“누, 눈이!”

신녀의 전갈 같은 꼬리가 갑자기 이장로의 눈을 찔러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

이장로가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오장로는 이장로가 당한 모습을 보자마자 그를 구하긴커녕, 재빨리 신녀에게서 벗어났다.

“흑마석으로 널 제어할 수 있다는 말이 거짓이었구나!”

스르륵.

신녀는 답 대신에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란 꼬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땅에서 꿈틀대는 고를 날카로운 꼬리 끝으로 찔렀다.

푹.

터지는 고의 내장.

시큼한 독 냄새가 퍼지는 가운데, 동굴 안에 신녀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완성되기까지 겨우 세 시진이 남았을 뿐인데.”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있었다.

“그걸 못 참고 수작을 부리려 해?”

신녀의 눈에서 불타오르듯 한 붉은빛이 번득였다.

취리릭.

날카로운 칼을 박은 듯한 천갑의 꼬리 부분이 이장로의 몸을 가로질렀다.

“으아악!”

두 동강 나는 이장로의 몸!

고수인 이장로가 피하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였다.

“……!”

단 한 수.

한 번의 공격으로 이장로를 두 동강 낸 신녀의 꼬리가 이번에는 오장로에게 닿았다.

스륵.

고의 독과 이장로의 피로 범벅이 된 꼬리 끝은 섬뜩하리만큼 강한 살기를 품고 있었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멈춰라! 나를 죽이면 거짓이 드러난 이상 너 역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신녀의 입술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너희가 이곳으로 오는 걸 몰랐을까 봐?”

극대화된 청각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지 오래였다.

“이미 이곳은 어떤 소리도 흘러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그건 비명도 마찬가지야.”

붉은 꼬리가 그의 목을 스쳤다.

“네놈들을 죽여도 아무도 모르지.”

“……!”

이곳에서 죽는다 한들 누가 알겠나.

신녀에게 고를 먹이기 위해 비밀스럽게 온 것이라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함은 당연했다.

잠시간 공황상태에 빠졌던 그의 눈이 독기를 머금었다.

“어차피 네년이 힘을 가진 이상 우리는 죽는 게 아니었나? 지금 죽는다고 해도 며칠 차이일 뿐이야!”

크큭.

발악과도 같은 외침에 신녀의 입에서 괴이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 아주 잘아는 구나.”

부드러우면서도 일렁이듯 움직이는 꼬리가 오장로의 머리 위로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움직였다.

“하지만 네가 생각 못 한 게 있어.”

신녀의 도톰한 입술 끝이 올라갔다.

“지금 죽으면 곱게는 죽지 못한다는 거지.”

“……뭐?”

목소리는 나긋했으나 소름 끼치는 살의가 오장로에게 닿았다.

“먹어치워라.”

이어진 신녀의 명령.

“먹어치우다니…… 무엇을, 으아아!”

오장로의 얼굴이 경악과 공포로 뒤덮였다.

촤락.

신녀의 명이 떨어지자, 바닥에서 살아 움직이듯 꿈틀대던 줄기들이 서서히 일어서더니 그를 향해 덮쳐왔다.

흑마석을 가졌음에도 줄기들은 서로를 흑마석의 힘으로부터 보호하며 그에게 쏟아져 오고 있었다.

“그냥 죽지는 않아!”

오장로는 입술을 짓씹고는 있는 힘껏 청동거울을 향해 흑마석을 던졌다.

“네년이 아끼는 저것이라도 깨뜨리고 죽을 것이다!”

흑마석은 매우 빠르게 그녀의 힘의 원천인 청동거울로 날아갔다.

퍽.

그러나 흑마석은 청동거울을 깨뜨리지 못한 채 아래로 힘없이 굴러떨어졌다.

파스스.

오히려 깨진 것은 흑마석이었다.

청동거울 아래 흑마석에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왔으나, 기운은 점점 옅어졌다.

처음에 흑마석을 피하던 줄기는 기운이 사라짐과 동시에 또다시 그에게 몰려들었다.

“……이런!”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사도가 완성되기 전 신녀에게 고(蠱)를 먹여 조종하려던 것도, 청동거울을 깨뜨려 힘의 원천을 차단하려던 계획은 모두 실패했다.

“도, 도망을……!”

오장로는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려 했으나, 어느새 뻗어진 줄기는 다리와 몸을 감쌌다.

“으아악!”

비명과 동시에 날카로운 줄기 여러 개가 몸을 일으켰다.

푸푹.

그의 몸을 꿰뚫은 줄기들.

촉수의 모양으로 변한 줄기들은 오장로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안을 휘젓기 시작했다.

“끄으으.”

줄기들은 순식간에 그의 몸속에 있는 피며, 내장들을 빨아들였다.

울렁이는 줄기의 표면.

줄기는 오장로만으로 만족 못 하는지 죽어버린 이장로의 몸을 향해서도 줄기를 뻗어댔다.

꿀렁.

살아 있는 촉수마냥, 줄기들이 두 장로의 모든 것들을 흡수하자 남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하─”

줄기가 흡수한 두 장로의 모든 것들은 새로운 영양분이 되어 신녀에게로 흘러들었다.

신녀는 만족스러운 듯 혀로 더욱 생기있게 붉어진 입술을 훑었다.

“혈천교의 장로들이라 그런지 혈기(血氣)가 농축되어 있구나.”

나쁘지 않다는 듯 입맛을 다시던 그녀는 다시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제 내일이면…….”

자신을 제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것은 넘치도록 받은 힘을 쓰는 것뿐.

천갑무신의 후인이 있다고는 하나, 과연 자신의 상대가 될까?

신녀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그녀가 눈을 감자, 동굴 안의 모든 것들이 장로들이 오기 전의 모습 그대로 돌아갔다.

누군가 이곳으로 침입했던 사실조차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흔적 따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신녀는 알지 못했다.

오장로가 죽어가면서 던졌던 흑마석에 의해 청동거울은 아주 미세한 금이 가 있었음을 말이다.

다른 무기라면 청동거울에 흠도 내지 못했을 테지만, 흑마석은 진천의 것.

진천의 물건이 청동거울에 닿자 금이 가버린 것을 신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신녀가 혈신의 사도로 완전히 변하는 것은 세 시진 후.

검붉게 완성되어야 할 그녀의 전갈 모양의 꼬리 마흔다섯 마디 중, 그녀가 볼 수 없는 허리 부근의 한 마디만이 피처럼 붉은빛을 띠었다.

* * *

[이제 곧 사도가 완성됩니다.]

서장의 높다란 절벽 위.

어둠을 등지고 서 있는 내 귓가에 가야의 음성이 들려왔다.

내려다보이는 것은 지금껏 나를 죽음의 위기로 몰았던 원흉이자, 적.

혈천교(血天敎)였다.

거대한 공동위 검은 구름 사이로 번쩍이는 번개와 천둥.

쿠르릉.

붉게 번득이며 혈천교 위를 휘감고 있는 요사하면서도 강력한 기운은, 혈신의 힘을 받은 사도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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