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171화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무당의 도사였다.
“왜 천갑무신의 후인께서 물속에 있으셨던 겁니까?”
현무학관의 초대장을 가지고 진가장에 방문했던 현로(現路).
그는 물에 젖은 쥐 꼴이 되어버린 나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게 말입니다.”
무려 이 년만의 해후를 이런 꼴로 하게 될 줄 몰랐던 나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깨달음을 얻으려다 보니…….”
“……깨달음 말입니까?”
“네.”
깨달음을 얻으려 물속에 들어갔다는 말에 현로의 눈이 당황스러움에서 감탄으로 바뀌었다.
“어허, 이 무림에서 강함으로 따지자면 후인을 따를 자가 없을 터인데…… 이렇게 물속에 빠지면서까지 정진하는 모습이라니요.”
그는 송구하다는 듯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련하시는데 제가 방해되지 않았나 모르겠군요.”
“방해된 것은 아닙니다. 물속에서 나오려던 참이었습니다.”
“후인께서 물속에서 자진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긴 하지요.”
“……그렇죠.”
실제로 죽기 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진천기공을 이용해 빠르게 젖은 옷을 털어내자 순식간에 뽀송뽀송한 옷으로 뒤바뀌었다.
나는 머쓱함도 지울 겸, 현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도사님께서는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무당파는 호북의 무당산에 있는 문파였다.
이곳은 중경의 산림(山林).
호북 옆에 있는 곳이 중경이라지만 중원이 워낙 넓다 보니 무당산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속가 문파에 문제가 생겨 처리하고 무당으로 돌아가는 길이지요.”
“중요한 곳이었나 보군요.”
“예. 나름 중요한 곳이었는데 저 하나로 일이 해결되어 다행이었지요.”
현로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후인께서는 어떤 깨달음을 얻으시려고 물속에 들어가신 겁니까?”
도사 특유의 경건함과 고지식함을 지닌 깨끗하고 곧은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로는 무당의 이름있는 도사였다.
깨달음을 최선으로 삼고 정진하는 사람이니,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일부만 이야기하면 되겠지.’
전부를 말할 수는 없기에 고민을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요즘 자꾸만 삿된 생각이 머릿속에 파고들어 깨달음을 방해합니다.”
“삿된 생각이라…….”
“어쩌면 도가에서 말하는 번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존재를 가진 번뇌랄까요.”
“흠. 자아를 가진 번뇌란 말입니까?”
“네.”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참 후 입술을 떼었다.
“도움이 될지 모르나 제가 배운 것에 이런 내용이 있지요.”
현로의 깊은 눈이 내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경전에서 말하길, 농부가 왼손으로 벼 포기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낫을 쥐어 베어내듯, 수도자는 번뇌를 이해하고 지혜의 낫을 들어 번뇌를 끊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번뇌하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지혜를 작용시켜 번뇌를 끊어버리는 과정.
현로는 그 과정에서 지혜라는 낫으로 번뇌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후인께서는 번뇌를 끊어내기 위해 물속에 들어가셨습니다. 번뇌가 끊어지시던가요?”
“아니요.”
“삿된 마음이 번뇌라면,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부터 분석해야 합니다. 마음을 알지 못한 채 행동을 한다 해도 번뇌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급한 마음에 삿된 존재를 불러온 내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했다.
빠르게 각성만 하려 했을 뿐.
‘조급했어.’
삿된 존재를 불러왔던 불완전한 마음부터 다스리는 것이 먼저였음에도, 각성한 신체만을 얻으려 했다.
설사 성공했다 할지라도 이것은 곧 무너질 모래성을 짓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단단하지 않은 모래성은 또다시 휩쓸려오는 삿된 존재에게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단단한 정신적 바탕 위에 지어지는 깨달음의 성이어야 했다.
어떤 존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면서도 강력한 성(城).
성을 짓기 위해서는 우선 삿된 존재를 몰아낼 수 있는 마음의 터부터 닦아놔야만 했다.
진중해지는 내 표정을 보던 현로가 미소 지었다.
“마음을 아셨다면, 천천히 생각을 해보십시오. 번뇌의 원인이 무엇인지.”
삿된 존재가 머릿속을 침범하게 만든 번뇌의 원인은 모용설화의 죽음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일까?
처음부터 이 세상과 이질적인 ‘나’라는 존재에서 왔던 불안감.
천갑을 가졌음에도 완전한 힘을 쓰지 못함에서 왔던 불안정함, 그리고 지속적인 혈천교의 위협.
모두가 나를 벼랑 끝에 몰고 있었고, 모용설화의 죽음은 벼랑 끝에 서 있던 나를 떠밀었다.
‘원인은, 내가 완전한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에 있다.’
온전한 진천인도 아닌, 그렇다고 이 세계인도 아닌 나.
늘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내게, 모용설화의 죽음으로 야기된 틈은 삿된 존재를 불러들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각성의 조건은 모용설화의 죽음이었다.
삿된 존재가 아니라.
그러나 삿된 존재를 불러들인 건 불안정한 마음이었다.
마음이 단단했다면 그런 존재 따윈 감히 침범치 못했을 테다.
“문제는, 불안한 제 마음이었군요.”
현로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인께 넘겨진 짐이 너무도 무거우니 불안함도 크신 게지요.”
현로는 내 짐을 덜 수는 없지만, 마음의 고통만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듯 말했다.
“원인을 알았다면…… 불안함이 후인님을 잡고 있는지, 아니면 후인님이 불안함을 잡고 있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
그의 말에 마치 머리를 뒤통수로 맞은 듯 얼얼했다.
완전하진 못해도 천갑의 힘을 얻은 나다. 그것만 해도 이 무림에서 나를 이길 자는 없을 것인데.
무엇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
죽음?
……아니다.
죽음은 늘 항상 내 옆에 있는 동반자와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정해야 했다.
나라는 존재가 이곳에서 이질적인 존재임을.
그렇기에 인외(人外)의 힘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불어 괴물 같은 힘이 주는 외로움과 책임감.
어쩌면 나는…….
천갑이 주는 강력한 힘을 불안감으로 대치하고 있지 않았을까.
‘불안이 나를 잡은 게 아니었어. 내가 불안을 놓지 않고 잡은 거야!’
처음엔 살기 위해서 하나의 동력으로 불안감이 작용했다.
불안감은 살기 위해 나를 움직이게 했고, 현무학관에 오게 만들었다.
이어진 미칠 듯한 수련.
불안감은 지금까지 이어온 동력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내 정신에 금이 가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이다.
“놓으십시오. 그리고 잘라내십시오.”
현로의 맑은 목소리가 복잡한 정신을 일깨웠다.
나는 그의 목소리에 따라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잘라낸다.’
원인을 인정하고, 그것을 끊어내야 했다.
지금껏 불안감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면, 이제는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성장할 차례였다.
“불안감은 번뇌를 증폭시킬 뿐입니다. 후인에게는 불안감을 없앨 만큼의 큰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심유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자신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
견고한 믿음은 삿된 존재를 허용치 않을 것이며, 틈이 사라진 정신은 한 단계 발전을 이룰 것이다.
파앗.
순간, 몸에서 흰빛이 터져 나왔다.
[[……일차 각성이 완료.]]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이 목소리는, 전에 들었던 괴이하며 삿된 존재가 아니었다.
‘예전에 들었던 것만 같은 소리인데.’
그리우면서도, 아스라한 기억 너머의 소리는…….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썼으나 머릿속은 곧 흰빛으로 가득 찼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깨어나 보니 주변을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가벼워진 몸과 마음.
근본적인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깨달음은 내게 각성 상태를 조절할 수 있는 안정감을 부여했다.
이것은 무인이 깨달음을 얻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것과 같았다.
천갑의 힘을 이제는 여유롭게 쓰는 것으로 모자라 신체적인 각성까지 얻었으니 말이다.
각성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을 선사했는데, 동화율이 올라가는 것과는 다른 충만함이었다.
‘신의 육체라서인가.’
익숙한 듯하나 알 수 없었던 목소리와 각성은 어쩌면 내 육체가 신의 육체라서 얻는 하나의 특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사님은?”
깨달음으로 인한 충만감에 그만 깜빡하고 있었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자 뒤에서 정좌해 있던 현로가 주름진 눈에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제 깨어나셨군요.”
“지금까지 호위해 준 것입니까?”
깨달음으로 인해 정신이 아득하게 멀어져 버렸다.
누군가 해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린아이라도 충분히 가능한 시간 동안 현로는 날 지켜준 것이다.
‘이런…….’
난 벌떡 일어나 그에게 포권과 함께 깊은 감사를 표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깨달음을 얻게 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지켜주기까지 하다니.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몰라하는데 현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말 몇 마디인 것을요. 이 모든 것은 후인 스스로의 깨달음이자 덕입니다.”
긴 시간 동안 원시천존께 기원한 듯 묵주를 쥐고 있던 그가 감개무량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 후인님을 진가장에서 보았을 때는 정말 어린 소년 같았는데…… 정말 세월이 빠르군요.”
“그때는 지금과 많이 달랐죠.”
“예. 당시에 후인께서는 너무 병약해 보였지요. 그런데 이렇게 무림을 구원할 구원자가 되실 줄은 몰랐습니다.”
현로의 눈이 과거를 떠올렸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악하던 소년.
그 소년이 지금은 무림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천갑의 힘을 얻어 현무학관의 입학자격을 얻었을 때와 깨달음을 얻은 지금, 이 순간.
현로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무량수불.”
이 모든 것이 절대자의 안배인 듯, 눈을 감았다 뜬 그의 눈에는 기쁨이 서려 있었다.
환한 얼굴을 한 그가 고개를 숙였다.
“후인께서 깨달음을 얻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도사님의 덕입니다.”
“늙은 노부가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다면 저야말로 감사할 일이지요. 무림을 지키는 일에 일조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름 가득한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은 진심이 가득했다.
“후인께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제게도 큰 기쁨입니다.”
현로는 거듭 감사하는 내게 여전히 모든 것은 후인 스스로의 덕(德)이라 말했다.
“만약 제게도 덕이 있다면 그것은 절 이곳으로 인도해 주신 원시천존님의 뜻이겠지요.”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훌쩍 자리를 떴다.
마치 바람처럼.
나는 사라져 간 그의 뒷모습을 향해 진심으로 감사를 담아 고개를 숙였다.
“도사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현로와 헤어진 지 오 일이 흘렀다.
이제 남은 거리는 하루.
지난 오 일간 서장을 향해 날아오면서 중간중간 진천격을 연마했다.
손끝에서 쏘아지는 진천격은 처음에는 목표를 잘 맞추지 못했으나, 지금은 제법 정확도가 높았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혈천교를 하루 앞두고 마음의 정리를 할 겸 나는 산속에 자리를 잡았다.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고는 하나, 그들이 가까워지자 긴장감이 들었던 탓이다.
산속 바위 위에 걸터앉아 내공을 돌리며 앞으로의 계획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
인기척들은 어느 순간부터 대놓고 자신들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음?’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변으로 기운을 펼치자, 약 오십여 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최소 일류들이야.’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물들은 하나같이 강인하고도 패도적인 기세들을 품고 있었다.
이 기운은 혈천교의 것도 아니며, 정파의 기운은 더욱 아니었다.
이곳은 혈천교가 위치한 서장과 가까운 곳.
이 기운의 원인은 하나였다.
마교(魔敎).
지금껏 숨죽이고 있었던 마교인들이 무슨 이유에선가 나타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