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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160화 (160/200)

기갑무림 160화

남궁비천은 떨어져 내리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소리를 질러대며 발광했다.

“이익! 놓으란 말이다!”

그러나 단단하게 자신을 부여잡은 모용설화의 팔과 질긴 연검은 풀리지 않았고, 날카로운 칼이 모용설화의 팔을 갈랐다.

“……흐윽.”

삽시간이 떨어져 나간 팔로 인해 솟구치는 피.

붉은 피가 그녀의 온몸을 적셨다.

아래로 추락하는 몸에서 나오는 피가 붉은 선을 그리며 비산했다.

“왜 안 풀리는 거야!”

아래로 추락하는 몸.

남궁비천은 어떻게든 경공을 사용해 추락을 늦추려 했으나, 하필 그녀가 찌른 곳은 단전이었다.

“젠장!”

젖먹던 힘까지 다해 경공을 펼쳐 간신히 떨어지는 속도를 늦췄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가 닿을 땅바닥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으아아!”

눈앞이 컴컴해진 남궁비천이 비명을 질러댔으나, 단단하게 묶인 연검은 여전히 그를 묶어놓고 있었다.

그의 눈이 잔인함을 머금었다.

“네년의 몸을 자르면 빠져나갈 수 있겠지!”

모용설화 때문에 빠져나올 수 없다면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두 동강 내기 위해 남궁비천이 칼을 들었다.

“지옥은 네년이나 가!”

날카로운 칼날이 모용설화의 몸에 박혀서 반으로 가르려던 찰나.

갑자기 떨어지던 그들의 몸이 허공에 멈췄다.

“……어?”

추락이 멈춤에 안도를 느낀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남궁비천은 자신을 멈추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깨닫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는……!”

추락하는 그들을 멈추게 만든 사람은 바로, 자휘였다.

“어, 어떻게?”

공중에 서 있는 것도 모자라 손을 대지 않고도 멈추게 만든 소년.

자휘는 천갑을 입고 있지 않았음에도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능공허도……!”

경악한 사람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허공에서 이토록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극상의 능공허도(虛空踏步)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꿈의 경지로 불리는 능공허도 수법도 후인처럼 여러 사람을 저리 쉽게 띄우진 못했다.

“이럴 수가.”

사람들의 눈에 경외가 물들었다.

천갑으로 인해 강하다고 생각했던 후인이, 알고 보니 무공 또한 그들이 감히 꿈꾸지 못했던 경지가 아닌가.

‘이길 수 없다.’

천갑을 벗은 후인이라면, 남궁세가의 무공으로 얼마든지 눌러줄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진실은 달랐다.

진짜 무위를 드러낸 후인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강했던 것이다.

세가인들은 경탄과 공포가 담긴 탄식을 내뱉어냈다.

그러나 남궁비천을 질리게 만든 것은 높은 무위가 아니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악귀 같은 눈빛 때문이었다.

“……으으.”

온몸을 찢어발길 듯한 살기를 가득 품은 눈빛을 마주하자 남궁비천의 오금이 저렸다.

“사, 살려줘!”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과 함께 그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그러나 자휘의 눈이 향한 곳은 그가 아닌, 두 팔을 잃은 채 정신을 잃은 모용설화였다.

“그건…… 이년이 나를 찔렀기 때문이라고. 나는 혼인을 하려 했을 뿐이었어.”

변명하는 놈의 말은 끝맺어지지 못했다.

“으아악!”

갑자기 그의 팔이 모용설화처럼 산채로 뜯겨 나갔기 때문이다.

우드득.

동시에 그를 묶고 있던 연검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우그러들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허억.”

팔을 잃은 남궁비천의 몸이 서서히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제, 제발 살려줘.”

놈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애원했다.

하지만 마주한 것은 심연보다도 깊고 얼음보다도 차가운 눈빛이었다.

“……으헉!”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이 남궁비천의 몸이 비틀렸다.

순간, 놈이 몸이 갑자기 훅하고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으아아!”

멀어지는 비명.

잠시 후 높은 상공에서 바닥으로 빠르게 떨어지는 사람의 형태와 함께, 비명이 다시 들려왔다.

“아악─!”

굉음과 함께 현무학관의 단단한 바닥이 갈라지며 폭발하듯 부서졌다.

콰앙!

얼마나 강하게 아래로 메다꽂혔는지 산산이 부서진 바닥에서는 먼지 바람이 피어올랐다.

먼지가 사라진 후에 나타난 모습은 인간이라 표현할 수 없는 형체로 짓이겨진 남궁비천의 시체였다.

“……아, 안 돼!”

머리 위에 있는 벽력탄으로 인해 어쩔 줄 몰라하는 세가인들과 달리, 남궁한영이 소리를 지르며 남궁비천에게 달려갔다.

“비천아!”

오직 손자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건만, 바로 코앞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손자의 죽음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네가! 이럴 수는 없다!”

절절한 비명과 같은 분노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으아아! 죽여 버리겠다!”

손자의 죽음에 정신을 놓은 남궁한영이 벽력탄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자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됩니다!”

세가인들이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부풀어 오른 그의 소맷단은 공격하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후웅.

그의 손에서 폭뢰신권이 파지직거리는 푸른 빛과 함께 펼쳐졌다.

십이 성의 폭뢰신권(爆雷神拳).

남궁세가의 절기가 극강한 내공과 함께 남궁한영의 주먹에서 뻗어 나갔다.

콰콰쾅!

손에서 솟구치는 권장은 푸른 뇌전을 담아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소용돌이 안에서 번뜩이는 뇌전들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뿌려대며 자휘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

모든 힘을 이 한방에 담은 나머지 남궁한영의 옷과 머리가 사방으로 나풀거렸다.

“저토록 강력한 폭뢰신권이라니!”

세가인들로서도 처음 보는 강력한 남궁세가의 절기는 희망을 품게 했다.

모두의 시선이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자휘와 쏜살같이 쏘아지는 뇌전을 품은 거대한 소용돌이를 향했다.

“죽어라!”

남궁한영이 핏줄이 터져 시뻘겋게 변한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그러나 후인은 그저 모용설화를 보호하겠다는 듯 그녀의 앞으로 몸을 옮길 뿐이었다.

스윽.

자휘는 한쪽 손을 서서히 내밀며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친천비급 칠 장. 진천파(眞天波).”

그 순간, 자휘의 손안으로 바람이 몰려들 듯 작은 회오리가 생겨나더니 곧이어 기세를 부풀렸다.

휘리리릭.

거대한 돌풍이 몰아치며 날카로운 기공음이 회오리 안에서 스산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리고 남궁한영의 폭뢰신권과 진천파가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콰콰콰쾅!

거대한 굉음이 울리면서 하늘에는 푸른 빛이 번쩍였다.

뇌전(雷電)을 품은 회오리와 날카로운 기공으로 이루어진 진천파(眞天波)는 마치 거대한 뱀 두 마리가 아가리를 벌려가며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쿠르릉!

콰쾅!

처음에 우세를 점한 것은 남궁한영의 폭뢰신권이었다.

“오……!”

세가인들의 눈에는 기쁨이 비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곧이어 세를 불려가는 진천파가 폭뢰신권의 회오리를 한 입에 잡아먹듯 집어삼키는 것이 아닌가?

파앗.

그러더니 이무기처럼 몸집을 불린 진천파는 폭발하듯 빛을 발했다.

“이, 이런!”

세가인들의 당황스러운 단말마 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을 가진 남궁한영의 공격이 진천파 안에서 힘을 잃어갔다.

쿠르르…….

폭뢰신권을 먹어치운 진천파 역시 빛을 발한 후로 크기를 줄여 나가더니, 작은 실바람으로 변해갔다.

휘리릭.

그리고는 다시 처음처럼 후인의 손바닥으로 되돌아갔다.

찌릿.

자휘가 느끼는 것은, 그저 자신의 손안에 느껴지는 약간의 짜릿한 기운밖에 없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무림제일 세가인 남궁의 최고 어른이자, 강력한 무위와 막대한 공력을 가진 남궁한영이었다.

그런 그가 모든 힘을 다했음에도 후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믿기지 않는 눈앞의 광경에 세가인들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흐으.”

충격을 받은 남궁한영의 몸이 비틀거렸다.

“커억!”

입에서 아이 주먹만 한 토혈이 쏟아졌다.

온 힘을 담은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온몸의 기혈이 뒤틀린 것이다.

남궁한영은 퉤 하고 입안의 피를 뱉어내더니 원독에 찬 눈으로 자휘를 노려보았다.

“너는, 괴물이다.”

그는 엉망이 되어버린 손자를 품에 안고는 외쳤다.

“너 같은 괴물은 이 세상에 없어야 했다! 네가 없었다면, 내 손자는 하늘을 훨훨 날았을 것인데…… 너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다!”

하늘을 날아 비천(飛天)이 돼야 했을 아이가, 하늘이 아닌 비천(非天)의 땅에 떨어져 죽었다.

“이 원통함을 어떻게 푼단 말이냐!”

손자를 안고 피투성이가 된 채 목놓아 울던 남궁한영이 무슨 생각에선지 돌연 눈물을 그쳤다.

“……원귀가 되어서라도 너를 저주하리라!”

남궁한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현무학관의 벽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이받았다.

쿵!

벽이 울림과 함께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스륵 바닥으로 무너지는 그의 모습은, 최고의 세가라 자부하던 남궁세가의 거인이 아니라 손자의 죽음을 통곡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이, 이런.”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세가인들은 놀라다 못해 황망한 얼굴로 자진해서 머리가 터져 죽어버린 남궁한영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털썩.

세가인들은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믿었던 혈천교부터, 남궁한영과 남궁비천까지. 후인에게 대항했던 모두가 죽었다.

불과 한 시진전까지만 해도 승리를 확신하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어두운 탄식과 비탄, 그리고 후회가 그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 있을까.

세가인들의 어두운 눈빛이 이미 죽어버린 남궁한영을 향해 원망스럽게 닿았다.

* * *

남궁세가의 주요 인물들이 죽자 당무와 천무륭이 재빠르게 갇힌 인물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나는…….

숨을 잃어가는 모용설화를 안고는 조심스럽게 땅으로 내려섰다.

남궁비천의 칼질 때문에 몸이 너덜거리다 못해 몸속의 장기마저 훼손당한 그녀의 모습은 처참했다.

아름다웠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피에 절은 하나의 시체처럼 그녀는 미동이 없었다.

“……왜.”

떨리는 손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너는, 왜.”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던 것일까.

처참한 모습을 보자, 남궁한영과 남궁비천을 죽였음에도 미칠 것만 같은 분노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분노와 함께 솟아오르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그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전신을 휩싸고 돌았다.

“살아야 해.”

살아나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고쳐놓으면 된다.

무량후를 살렸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생검이 일으키는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아…….”

생명의 결이 그녀에게 닿아서였을까, 아니면 죽기 전 마지막 회광반조(回光返照)일까.

모용설화가 힘들게 눈을 떴다.

“자, 자휘야.”

부름에 재빨리 답했다.

“정신이 들어?”

“……으응.”

“이제 모두 다 끝났어. 너를 괴롭혔던 남궁비천은 죽었어. 그러니 이제 너만 살아나면 돼.”

모용설화는 반쯤 눈을 감은 채 설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늦었어.”

“살 수 있어. 반드시 살릴 거야.”

그녀는 살리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피범벅이 된 입술을 떼었다.

“……그동안 미안했어. 난 잘하려고 했는데…… 네게 늘 짐만 되었네.”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로 인해 힘을 얻은 건 난데, 무슨 소리야?”

울컥.

모용설화의 입에서 핏물이 번져 나왔다.

“……네, 네게 그동안 고마웠어.”

헐떡대던 그녀는 어떻게든 말을 이이으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 짐이 되지 않으려고…….”

“말하지 마, 자꾸 피가 나오잖아.”

모용설화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몰랐다.

아니, 설령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한들 무슨 상관이었을까.

나는 그녀로 인해 얻은 게 많았으면 모를까, 잃은 것은 없었는데.

모용설화는 내 도움을 늘 빚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있잖아. 나 너를…….”

무언가를 자꾸만 말하려던 모용설화의 입술이 벙긋거리더니 서서히 멈추고 있었다.

“……!”

이제 생명이 다해, 그 빛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아, 안 돼.”

당혹스러움에 급히 생명의 결을 미친 듯이 불어넣었으나, 그녀의 몸은 기운조차 받아들이지 못했다.

차가워진 그녀의 몸.

흩어져 가는 생명의 기운들을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가야라면 살릴 수 있을지 몰라!’

머릿속이 텅 빈 가운데 생각나는 것은 오직 천갑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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