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무림-149화 (149/200)

기갑무림 149화

서둘러 연무실 밖으로 나가니, 문밖에 굳은 얼굴을 한 당무와 흑영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급하게 묻는 질문에 답한 사람은 당무였다.

“무림맹에서 급전이 왔습니다.”

“급전이요?”

“네.”

급전으로 진천세가를 침략함을 알리는 북을 쳐?

저들의 굳은 표정을 보건대, 급전의 내용은 진천세가의 위험을 담고 있을 테다.

“무슨 내용이길래 경고 북까지 울린 것입니까?”

“남궁세가 놈들이 봉문을 깨고 다른 문파들과 연합해서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옆에 있던 흑영이 말을 거들었다.

“놈들이 근처의 무림맹 무인들을 모두 죽이고, 혈천교 놈들까지 끌어들였습니다.”

“……!”

잠잠하다 싶었더니, 결국 남궁세가 놈들이 일을 저질렀다.

“무림맹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무림맹을 장악하고 있던 남궁세가의 중요 인물들이 빠져 혼란스러운 데다가, 이런 일까지 벌이니 어쩌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

어이없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 같이 힘을 모아 혈천교 놈들을 막아도 부족할 판에 놈들과 손을 잡다니!

‘힘을 가진 남궁세가 놈들이 그냥 있을 리가 있나.’

놈들은 자신의 힘을 자만한 나머지 혈천교와 연합해 무림을 집어삼키려 일을 벌인 것이다.

“놈들이 우선으로 공격대상으로 삼을 곳은 진천세가가 되겠군요.”

나는 잠깐 고민한 후 흑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치료를 하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기존에 있던 열한 명은 모두 나아서 각자의 가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추가로 온 인원은 아홉 명입니다.”

“치료 경과는?”

“모두 낫기 직전입니다. 오늘쯤이면 모두 푸른빛이 날 것입니다.”

“잘됐군요. 그럼 그들에게서 푸른 빛이 나는 대로 모두 가문으로 돌려보내세요.”

“알겠습니다.”

“위험해질 테니 일꾼들도 모두 내보내시는 게 좋겠군요.”

“예. 일꾼들을 내보내려던 참입니다. 그런데 그중 두 명은 그대로 쓸까 생각 중입니다.”

“고용인을 들이는 것은 전적으로 흑영에게 맞기죠. 제게 허락을 구할 필요 없이 처리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흑영이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일단 제 집무실로 가시죠.”

나를 비롯해 흑영과 당무는 빠르게 집무실로 향했다.

새롭게 단장된 집무실은 화려하진 않았으나 고아했다.

집무실의 커다란 탁자의 중심에는 내가 앉고, 양옆으로 흑영과 당무가 앉았다.

“남궁세가와 결탁한 가문은 어디입니까?”

당무가 품속에서 급전으로 보이는 것을 꺼냈다. 그러나 급전을 꺼내는 그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남궁세가와 일차로 연합한 가문은 하북팽가와 황보세가입니다. 이 차로는…… 당문이 연합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세가들의 연합이군요.”

“예.”

나는 탁자를 톡톡 쳤다.

그동안 힘을 키워왔던 오대세가들이 혈천교를 등에 업고 이번에 제대로 뒤엎고자 하는 것일 테다.

‘모용세가는 이번 치료를 통해 다행히 빠져나갔고, 문제는 당문인데.’

시선이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당무에게 향했다.

“만약에 당문이 이번 연합에 참여하게 된다면 당신과 전에 나눴던 치료에 대한 약조는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당문이 이번 연합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차가운 눈빛이 당무에게 닿았다.

“당문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

당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내 옆에서 내가 가진 진짜 힘을 봤다.

믿을 수 없었던 인외(人外)의 힘.

아무리 남궁세가가 강하다 한들, 천갑무신의 후인인 나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결심한 듯 일어섰다.

“당문이 이번 연합에 참여하는 것은 제가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그러니.”

당무는 내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번의 약조대로 치료만은 해주십시오.”

절절한 태도에 나는 고개를 약하게 끄덕였다.

“약조는 지키지요. 대신, 당무님도 약조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예.”

그는 굳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그럼, 한시가 급하니 먼저 당문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 또한 그를 향해 포권을 했다.

“부디, 당문을 잘 설득하길 바라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을 짓던 그는 바로 등을 돌려 집무실을 나갔다.

잠시 후, 둘만 남게 된 집무실에서 흑영이 얕게 탄식을 터뜨렸다.

“혈천교 놈들이 결국 일을 저지르는군요.”

“놈들이 뿌려놓은 덫에 정파인들이 걸려들고 만 것이지요. 그러나 그들이 걸린 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더 강해지겠다는 욕망.

그리고 무림을 지배하겠다는 탐욕.

욕망과 탐욕은, 적미륵을 통해 무림에 전파되었고 결국 혈천교와 손잡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결과 또한 그들의 선택이 불러들이는 것이니.

결과가 죽음이라 한들, 그 누구를 탓할까.

* * *

“무림맹의 상황은?”

푸른 옷을 입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남궁한영이 남궁호에게 물었다.

“별다른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큭.”

별다른 것이 없다는 말에 뒤에 있던 남궁연천이 웃었다.

“그야 당연하지. 무림맹의 오른팔이었던 나와 중요 인물들이 모두 빠졌는데 잘 돌아갈 리가 있나.”

옆에 있던 세가의 인물 또한 웃으며 맞받아쳤다.

“맞습니다. 게다가 중요 인물이었던 우리가 인수인계조차 안 하고 나왔는데 뒷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우왕좌왕하면서 허둥대는 꼴을 직접 못 봐서 아깝군요.”

무림맹의 현 사태를 비웃는 남궁세가의 사람들을 보며 남궁한영 또한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껏 우리 덕에 무림이 안정된 것도 모르고 잘못 좀 했다고 봉문이라니. 쯧, 생각이 모자란 게지.”

혀를 차던 남궁한영이 남궁연천에게 물었다.

“연합하기로 한 가문들은?”

전대 가주의 물음에 남궁연천이 답했다.

“하북팽가는 이미 도착했고, 황보세가는 사흘 후 도착 예정입니다.”

“당문은?”

“내부 사정이 있어 조금 늦어진다고 하는데…… 언제가 될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흥! 독이나 만지는 놈들이 콧대만 높아서는. 모용세가는?”

“모용세가는 연합이 힘들 듯합니다. 적미륵의 부작용을 제거 받은 뒤로는 저희 쪽에 아예 접촉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요즘 장내에 떠돌고 있는 천갑무신의 후인이 만든 약 말인가?”

“예. 고통은 있지만 나름 효능이 좋다고 합니다.”

“흐음.”

무려 천갑무신의 후인이 만든 약이었다. 고통이 있더라도 적미륵의 부작용만 없다면 그로서도 구미가 당기는 약이었으나…….

남궁비천이 이미 선을 넘어버린 지금 약은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계속 봉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여인 몇 죽였다고 봉문을 하기에는 남궁세가의 힘은 너무 비대했다.

힘을 그대로 숨기고 있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그들의 힘은 강력했으며, 권력 또한 높았다.

‘쓸데없이 약을 만드는 바람에 다른 세가의 힘만 빼앗기게 되었군.’

남궁한영은 아쉽다는 듯 속으로 혀를 찼다.

“혈천교에서 사람은 언제 온다던가?”

“며칠 내로 온다고 하더군요.”

혈천교 놈들이 온다는 말에 남궁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쩔 수 없이 혈천교와 손을 잡기로 마음먹긴 했으나, 그 역시 정파.

마음이 내키진 않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놈들을 이용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무림을 제패하고 그들을 쳐내면 그만입니다.”

“그동안 적미륵의 부작용 때문에 놈들에게 끌려다녔을지 몰라도 지금은 치료 약마저 나온 마당에 뭐가 무섭겠습니까?”

쉽게 말하는 세가인들을 보며 남궁한영이 무겁게 말했다.

“천갑무신의 후인이 약을 쉽게 내놓지 않을 것 아닌가?”

남궁연천이 얇은 입술을 올리며 답했다.

“그야, 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다고?”

“예. 혈천교 놈들을 쳐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없애야 할 놈은 천갑무신의 후인입니다.”

“듣자 하니, 힘이 만만치 않다던데 어떻게 없앤다는 것이냐?”

남궁연천의 눈에 비열함이 감돌았다.

“제가 생각한 건 이겁니다.”

그는 남궁한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는 앞으로의 계획과 천갑무신의 후인을 없앨 방법을 말했다.

속삭이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남궁한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흠.”

이야기가 끝나자 남궁한영은 깊은 침음을 흘렸다.

뒤로 물러선 남궁연천은 자신 있게 말했다.

“남궁세가가 피를 흘리지 않을 방법은 지금 이것이 최선입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남궁한영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천갑무신의 후인을 죽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마지막 남은 양심이 그의 가슴을 쿡쿡 찔러왔다.

“우리는 더 이상 정파란 이름으로 불리지 못할걸세.”

그의 말에 남궁연천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 말했다.

“요즘 우리 남궁세가가 뭐라고 불리는 줄 아십니까? 흡혈세가라 부르더군요.”

“뭐, 뭣이? 흡혈세가?”

남궁한영의 분노에 찬 눈이 부릅떠졌다. 그럼에도 남궁연천은 말을 이었다.

“비천이가 여인들을 흡혈하고 죽이게 된 후 붙은 말입니다. 저희 가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멍에를 썼단 말이죠.”

남궁연천은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허울만 좋은 정파이면 뭘 합니까? 저희는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함에도 불구하고 오물을 뒤집어썼고 봉문까지 당했습니다.”

“맞습니다. 더 이상 저희가 떨어질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궁연천이 남궁한영에게 어떤 계획을 말했는지는 모르나, 지금 이대로 안 되었기에 모두 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남궁한영이 아무 말이 없자 남궁연천이 말했다.

“정의란 힘 있는 자의 것입니다.”

결국, 역사란 정권을 차지한 왕에 의해서 쓰이는 것.

“일단 무림을 제패하게 된다면 그 후는 그들의 입맛대로 무림의 역사를 뒤바꾸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설혹 부정한 방법이라 한들, 사파나 마교가 무림을 정복한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우리 대 남궁세가는 그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남궁연천이 남궁한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제 말대로 해주십시오.”

동시에 남은 세가인들 또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남궁연천 님의 말씀대로 해주십시오.”

고개 숙이는 세가인들의 모습에 남궁한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 말대로 해보겠다. 대신.”

그가 무겁게 물었다.

“너희는 이 계획으로 인해, 인두겁을 쓴 악마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냐?”

남궁한영의 물음에 장내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러나, 곧이어 세가인 하나가 답했다.

“저희는 이미 혈천교와 손을 잡은 순간, 인두겁을 쓴 악마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를 추가한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세가인의 말에 남궁한영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말이 맞구나. 이미 우리 남궁세가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선택했으니.”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이 결과가 무엇이 되더라도 받아들여야겠지.”

* * *

무림맹이 어떻게 할 겨를도 없이, 남궁세가는 하북팽가와 황보세가를 불러들여 전선(戰線)을 구축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혈천교인들 또한 그들에게 합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모든 소식과 소문들이 진천세가에 닿은 것은 일이 진행되고 나서였다.

다행인 것은 당문이 여지껏 그들과 연합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무가 잘하고 있나 보군.’

일단 내게는 약이 있었고, 흡혈을 한 후에도 치료를 해준다고 했으니 그들로서도 고민이 될 터였다.

“당문을 잘 설득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다면 이번 숙청에서 당문 또한 쓸려 나갈 터였다.

내가 지금 적들이 몰려드는 것을 두고만 보는 이유는 한꺼번에 적을 쓸어내고자 함이었다.

아직 저들은 정파.

남궁세가가 빠져나간 후 힘을 잃은 무림맹이 저들을 벌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나서서 저들을 치기에는 누구라도 납득할 명분이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나…….

놈들이 내가 나설 빌미를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한 번에 쓸어주지.”

그게 어떤 계획과 음모이든, 단번에 부숴줄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