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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148화 (148/200)

기갑무림 148화

장삼의 하반신부터 검게 물들기 시작한 검은 기운은 점차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검은색의 기운이라니.

‘뭔가 잘못됐나?’

가신의 무공을 익히는데 마기(魔氣)처럼 검고 괴이한 기운들이 그의 몸을 타고 오르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어, 어?”

당황한 나머지 말을 버벅대는 장삼을 보는 나 또한 입을 벌렸다.

‘이게 뭐지?’

장삼도 나처럼 서책이 앞에 나타나 그대로 흡수될 줄 알았는데.

서책은커녕 갑자기 몸이 검게 물드니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넓은 연무실은 창문은 없었으나, 각종 횃불과 야명주로 인해 꽤 밝았던 상태였다.

훅-

그런데 모든 불이 꺼지며 야명주까지 검은 기운에 둘러싸여 빛을 잃는 게 아닌가.

괴이한 검은 기운에, 불까지 꺼지자 나조차 걱정이 될 정도였다.

“……가야.”

여전히 눈만 크게 뜬 채 그저 나만을 바라보는 장삼의 눈에는 두려움이 서렸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가야를 찾았다.

“설명이 필요한데.”

어둠 속에서 가야를 부르자, 고개를 갸웃하던 장삼의 눈앞에 여인의 형상이 나타났다.

“으악!”

경악스러운 표정 속에 부릅떠진 눈이 공포에 잠겼다.

“귀, 귀신!”

장삼은 설명을 위해 나타난 빛으로 이뤄진 가야를 보며 경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공, 이곳에 귀신이 있습니다! 어서 빨리 빠져나가야……!”

발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검은 기운에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황망하다 못해 무서움에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도 주공만은 도망쳐야 한다며 빨리 나가라는 듯 손을 휘젓는 그를 보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음…….’

하긴,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자기 인세에서 볼 수 없는 여인이 나타나니 그로서는 귀신이라 부를 만도 했다.

당혹스러운 외침에 약간은 뾰로통한 목소리로 가야가 답했다.

[저는 귀신이 아닙니다.]

“으…… 허헉!”

본체를 드러낸 가야가 말까지 하자 장삼이 뒤로 휘청 자빠질 뻔했다.

발이 검은 기운에 묶여 있지만 않았다면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을 터였다.

가야는 장삼의 모습에 작은 한숨을 쉬고는 입술을 뗐다.

[저는 천갑에 속해 있는 하나의 인격체입니다.]

[지금껏 주인을 도와, 천갑을 쓸 수 있게 도와드린 존재죠.]

“주인님을 도와……?”

방금까지 귀신이라 소리쳤던 그가, 주인을 도왔단 말에 조금은 공포심이 가신 표정을 지었다.

마치, 주인을 위한 존재라면 귀신이라도 상관없는 모습이랄까?

아까보다 침착해진 장삼을 향해 가야는 설명을 이었다.

[당신이 익혀야 할 가신의 무공은 ‘도살자’의 무공입니다.]

“……도살자?”

장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인께 대항하는 반역자들을 도살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도살자로 활약하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하죠.]

여인의 말을 들어보니 어두운 주변과 검게 물든 자신의 몸이 이해가 갔다.

“힘없는 내가 어떻게 도살자가 된다는 건지?”

아무리 어둡다고 하나, 고수들에겐 별다른 장벽은 아닐 터였다.

[진천의 힘에서 나오는 어둠은 인세의 것과 다릅니다.]

[고수라 한들, 진천의 힘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는 가야의 말에 설명을 살짝 보탰다.

“아저씨께서 익히게 될 무공은 진천세가의 가신이 익히는 무공 중 하나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 이름이 도살자일 뿐입니다.”

이미 가신이 되어서일까.

진천세가의 가신이 되었다는 말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받아들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공이 없으시다 보니 주변을 어둡게 하는 암살 능력이 추가된 듯합니다.”

장삼은 알았다는 큰 두 눈을 껌뻑였으나, 자신이 인간 도살자가 된다는 사실이 한번에 쉽게 이해될 리는 없었다.

어두워지는 표정을 한 장삼을 향해 가야가 설명을 덧붙였다.

[도살자가 죽이게 될 인간들은 모두 주인을 배반하거나, 죽이려 하는 적들입니다.]

“주공을 죽이려 하는 놈들?”

도살자의 손에 죽임을 당할 인간들이 주공을 해칠 놈들이라는 말이 들리자, 진한 두 눈썹이 치켜 떠졌다.

“그러니까, 우리 귀한 주공을 배반하거나 죽이려 하는 것들을 내가 ‘인간 도살자’가 되어 먼저 죽인단 말이지?”

[네.]

주공을 죽일 놈들을 미리 죽인다는 말에 장삼의 눈이 번득거렸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가…….]

“그런 XX 것들은 내 손에 먼저 죽어야 한다니까! 할 게 없어서 감히 주공을 배신해?”

주공에게 해를 입힌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입에서 분노를 품은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런 것들은 죽어도 싸지. 아주 내 손에 걸려봐, 사지를 찢어놓을 테니까!”

가야의 말까지 자른 그가 이를 으득 갈며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우리 주공을 위해서라면 지옥 불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로 왔으니, 어디 뭐든 해보쇼.”

처음엔 가야를 귀신이라면서 놀라던 허약한 장삼은 없었다.

두 눈에 살기를 품은 채 소매 단을 접으며 주먹을 쥐는 그는, 주공을 위해서라면 도살자의 할애비가 된다한들 상관없어 보였다.

“자, 얼른.”

장삼은 턱 하니 두 팔을 꼬아 팔짱을 꼬아 끼며 턱을 치들었다.

이제 놀람은 사라지고 각오만이 남은 장삼의 뒤바뀐 행동과 말에 가야가 웃었다.

[당신의 몸은 다리가 낫는 순간부터 이미 진천의 힘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매우 어두운 상태이나, 당신의 눈은 적응되어 잘 보일 것입니다.]

가야의 말대로, 연무실은 무척 어두웠다. 은은한 빛을 뿜는 가야만이 주변을 약하게 비출 뿐, 일장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온몸이 물든 장삼이 신기한 듯 감탄을 내뱉었다.

“어두운데도 잘 보여!”

평소 눈이 좋지 않던 그가 다리가 나은 후 눈이 잘 보이길래 참 신통하다고 생각했었다. 이 모든 은혜는 다 주공이 주신 것으로 생각하며 감사했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게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인다니.

이것 하나만으로도 적들을 모두 벨 수 있으리란 자신감이 솟아오를 정도였다.

[당신은 우선 어둠 속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순간, 진천의 비급이 열릴 때처럼 허공에 빛나는 서책이 떴다.

“책?”

잘 모르는 장삼 또한 이것이 진천의 가신이 익혀야 할 비급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내공이 없는데.”

일반적으로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내공이 필요했다.

모처럼 각오를 되새겼던 장삼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서책에 있는 무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마력이 필요하지만, 내공으로도 치환할 수 있으니 어쨌든 있어야 하는 상황.

[현재, 장삼의 내공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진천유화의 비고에서 하급 영약을 쓰는 것을 허락하십니까?]

나는 바로 답했다.

“하급은 무슨 하급이야. 상급 써.”

장삼 자체가 얻기 힘들다는 상급 가신이다.

그런 가신에게 하급이라니.

돈으로 넘쳐나는 진천유화의 비고에서 장삼에게 상급 영약을 쓰는 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가야는 예의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는 섬섬옥수인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그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만년 삼과 같은 형상이 조그맣게 찢어진 허공에서 나타났다.

“허억.”

이제 더 이상 놀랄 건 없으리라 생각했던 장삼의 입에서 또 다른 경탄이 새어 나왔다.

[만년삼입니다.]

[진천유화의 창고에서 이백 년을 더 자랐으니, 무려 만년에서 이백 년을 더한 것이죠.]

장삼은 놀라다 못해 이제 앞의 영약을 보고는 눈을 비볐다.

“마, 만년에 이백 년을 더한 영약…….”

도무지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순간에서, 갑자기 만년삼이 빛으로 흩어졌다.

“……!”

놀람은 잠시, 빛으로 변한 만년삼은 장삼의 입으로 향했다.

“헉!”

만년삼을 흡수하자 어둡게 물든 몸 안에서 빛이 어둠의 껍질을 깨듯 갈라지며 번쩍였다.

후두둑 땅에 떨어지던 검은 기운은 신기하게도 더 짙고 질척한 모습이 되어 장삼을 다시 감싸기 시작했다.

스스슷.

고작 눈 몇 번 깜빡일 시간에 상급 영약을 먹은 데다가, 도살자의 기운까지 덮어쓴 장삼은 입만 겨우 벌리고 있었다.

엄청난 쾌감이 장삼의 몸을 휩쓸었다. 쾌감에 걸맞은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강한 힘.

과연 이것이 자신의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허공에서 넘실대던 비급이 만년삼처럼 빛으로 변해 장삼에게 스며든 것이다.

파앗.

흡수된 빛은 별을 갈아 넣은 듯한 검은 빛이었다. 별을 품은 밤하늘처럼 검은빛들이 몸에 스며들자, 그의 몸이 은은하게 빛났다.

장삼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여전히 은은하게 반짝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기연이구나, 기연이야!”

이 기연은 모두 주공이 주신 것.

장삼의 눈에는 앞의 소년이 마치 신(神)처럼 보였다.

그는 경건한 태도로 주공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주공.”

그리고 전보다 훨씬 무거워진 듯한 태도로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절을 하고 싶지만, 이놈의 다리가 움직일 수 없으니 이해해 주십시오.”

장삼은 진득하게 자신의 가슴까지 타고 오르는 검은 기운들을 보며 말했다.

“제 생명은 주공의 것.”

충심 어린 시선이 그의 단 하나밖에 없는 주인을 향했다.

“남은 생 모두를─”

넘실대는 기운들이 얼굴마저 먹어 삼킬 듯 덮쳤다.

“주공을 위해 쓸 것입니다.”

검은 뱀과 같은 기다랗게 늘어진 기운들은 누에고치처럼 장삼을 감쌌고, 잠시 후 그의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도살자’의 기본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앞으로 십오 일 후.]

뿌듯해하는 가야의 음성이 들렸다.

[진짜 도살자로 변한 상급 가신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 *

장삼이 도살자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십오 일간, 주공이라 불리는 내가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남은 진천비급을 익혀야 해.’

영약과 돈은 넘쳐났다.

또한, 동화율은 이미 높아져 있는 상태이니 내공이 모자라 진천비급을 익히지 못할 일 따윈 없었다.

장삼이 도살자로 거듭나는 동안 나역시 다른 연무실에서 진천비급을 익혔다.

진천기공 칠 성, 철화(鐵化).

육 성의 금강화에서 한층 나아간 듯 칠 성이 된 내 몸은 진짜 철처럼  단단해졌다.

그리고 진천비급 육장의 진천뇌검을 완전히 익힌 상태에서 칠 장을 열게 되자, 드디어 진천파가 나왔다.

진천비급 칠 장.

진천파(眞天波).

[……이것은 진천비급의 독문 무공 중 하나인 진천파(眞天波)로서, 진천권에도 같이 적용되는 기술이다.]

진천망을 익히던 때 나왔던 말 그대로 진천파는 진천의 힘을 집약한 뒤, 폭풍처럼 쏘아내는 공격이었다.

‘흐음. 방식은 기존의 것과 비슷한데 위력이 훨씬 강해.’

진천파라는 것 자체가 기의 강력한 파장(波長).

기존의 진천망이 그저 기의 그물이라면 진천파는 기가 축약된 하나의 회오리랄까?

진천파안에 들어가게 된 모든 것들은 갈려 나갈 만큼 진천파의 위력은 대단했다.

단단한 재질로 만든 연무실 바닥이 진천파에 모두 갈려 나갈 정도로 말이다.

‘몸 자체가 강해지는 만큼 기공 역시 그에 따라 강력함을 품을 수 있구나.’

그릇이 단단해야 안의 내용물을 담을 수 있다는 듯 점차 단단해지는 몸이 되어야만 상급의 무공이 튀어나왔다.

진천기공과 진천비급들은 전부 연결되어 있었고, 그에 맞는 내공 또한 적절히 배분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천기공 팔 성은 어떨까?”

이미 내 피부는 철화(鐵化)가 된 상태였다. 여기서 더 강화된다면 강철화 일 테다.

그럼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강철보다 강한 게 있었던가.’

진천의 세계는 커다란 기술의 진보를 이룬 곳이니 충분히 강철화보다 강한 물체도 있을 테다.

그러나, 왠지 내가 모르는 비밀이 숨어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열어보면 알 테지.’

마음을 가다듬고 진천기공 팔 성을 열려는 순간, 커다란 경고성 북소리가 들렸다.

둥둥둥.

북소리를 듣는 순간 내 표정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이 소리는 누군가가 진천세가를 침략함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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