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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131화 (131/200)

기갑무림 131화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말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돌아올 확률이 반인 상태에서 꼭 가셔야 하는지요?]

“완전 개방상태로 갈 거야. 그래도 확률이 반밖에 안 되나?”

일반 인간으로 간다면 죽을 확률이 높겠지만, 완전 개방상태로 간다면 살아올 확률이 높지 않을까 싶었다.

[완전체로 가시게 된다면 확률이 칠 할로 높아집니다.]

[그러나 만약 그곳에서 천갑을 입은 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가야의 음성이 떨려왔다.

[주인님은 죽습니다.]

가야의 말을 들어보니, 신과의 싸움 이후 신들이 진천인들이 있던 지상에 방문하는 듯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작위인 지표가 신들이 있는 곳에 날 떨어뜨린다던가.

‘칠 할의 성공률이라.’

선조들이 온 세계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석이 필요했다.

차원이동기는 내게 마석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살아 돌아올 확률을 높인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진천인으로 위장하는 건 어때?”

어차피 완전히 개방되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곳의 인간처럼 위장해서 마석을 가져온다면 위험이 덜할 것이다.

설마 신들이 무장도 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학살할 리는 없었으니까.

[진천인으로 위장한다면 살아 돌아올 확률은 팔 할입니다.]

확률이 팔 할로 높아졌다.

이 정도면 충분한 확률이다.

‘죽는다면 운이 더럽게 나쁜 거겠지.’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는 조금은 긴장된 얼굴로 가야에게 물었다.

“가능한 시간은?”

[차원이동으로 떨어진 곳에서 반 시진을 머물 수 있습니다.]

[반 시진 후에 정확히 같은 곳에 오셔야만 귀환이 가능합니다.]

단 한 번의 기회로 주어진 시간은 고작 반 시진이었다.

과연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석을 구할 수 있을까?

게다가 반 시진 뒤에 같은 자리에 올 수 없다면 이곳에 귀환할 수 없다.

성공 확률이 팔 할이라지만, 돌발상황까지 가정했을 때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했다.

‘그래도 가야 해.’

이것은 내게 선조들의 세계를 방문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진천인들의 외모와 옷은 어떻지?”

[주인님의 외모는 다른 진천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둥그런 귀 모양이 다르긴 하나, 주인님과 같은 귀 모양을 가진 진천인도 가끔은 있으니까요.]

진천인들은 가야처럼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귀 모양이야 머리카락으로 가리면 그만이다.

가야는 잡동사니가 정리된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저곳에 진천인들이 입는 옷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상자를 열자, 여러 벌의 옷이 보였다.

옷들은 바지와 상의가 달라붙은 흰옷 형태로 어깨 부분만 다른 색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옷을 입으시면 자동으로 몸에 맞춰집니다.]

가야의 말에 따라 옷을 입고 머리를 풀자 귀가 가려졌다.

특이한 소재의 옷은 보기와 달리 굉장히 편했고 생각보다는 잘 어울렸다.

[주인님의 지금 모습은 진천인과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검은 머리와 눈은 진천인들에게 왕족을 뜻하니 색을 바꾸시는 편을 추천해 드립니다.]

이곳에서는 평범한 검은 색이 왕족의 것이라니 조금은 신기했다.

나는 내 머리카락과 눈을 가리키며 가야에게 말했다.

“평범한 색으로 바꿔줘.”

가야의 손이 머리에 닿자 빛과 함께 머리카락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건…… 금빛이로군.”

거울처럼 된 차원이동기 안에 보이는 내 모습은 금발과 금안을 한 미형의 소년이었다.

독특한 옷을 입고 머리카락과 눈의 색이 달라졌음에도 신기하게 큰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원래의 모습처럼.

가야는 내 모습을 보고 안도하듯 고개를 살짝 주억이더니 설명을 덧붙였다.

[진천의 시간은 이곳의 시간과 다릅니다. 무려 열 배가 느리지요.]

[진천인들이 온 지 이백 년이 지났다지만, 그곳으로 친다면 이십 년이 지났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십 년은 아직 신들의 분노가 사라지지 않았을 시간입니다.]

“잠깐, 그러면 이곳에서 반각의 시간이란 것은 거기에서 다섯 시진이라는 거야?”

나는 시간이 열 배가 느리게 흐른다는 그녀의 말에 당혹감을 느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까까진 짧다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 길었다.

‘아니야, 오히려 단 한 번의 기회인만큼 시간이 충분한 게 더 나을 거야.’

마석을 찾으려면 시간이 넉넉한 편이 더 좋을 테다.

“이제 가 볼까.”

진천의 세상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원이동기 앞에 서 있는데, 가야가 머뭇대며 주저했다.

[저는 그곳으로 갈 수 없습니다.]

“뭐?”

나는 가야가 갈 수 없다는 말에 당혹스러웠다. 처음 가는 진천의 세계에 가야가 없다니!

당황스러워하는 날 보던 가야가 답을 내놓았다.

[제 존재가 신들의 감시망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신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감시를 강화했습니다.]

[저는 신의 힘으로 인공지능이 진화된 형태이기 때문에 감시망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못 가는 대신, 주인님께는 다른 것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내 손목을 향해 손을 내밀자, 빛들이 모이더니 작고 넓적한 것이 채워졌다.

[이것은 제가 없어도 기본적인 정보를 알 수 있는 장치입니다.]

[시간과 지도, 진천에 관한 필수 정보를 담은 것이죠.]

그녀의 말에 손목을 내려다보자, 손목에 채워진 작은 사각형 모양 안에는 ‘一’자 형태가 열 개가 있었다.

[지금 보이는 ‘一’자 열 개는 다섯 시진을 나타냅니다.]

[주인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一’자가 한 개일 때는 원래의 자리로 오셔야 합니다.]

나는 손목에 채워진 작은 사각형 안을 바라보았다.

가야의 말에 의하면 ‘一’ 하나당 이각의 시간을 나타내는 듯했다.

‘과연 가야가 없이 마석을 구할 수 있을까?’

큰 망설임 없이 차원이동을 하겠다는 것은 가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걱정으로는 주인님께서 가시는 것을 반대하고 싶습니다만…….]

가야가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없어도 주인님께서는 잘 해내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나는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있다면 좋았겠지만 없다고 해서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가야가 준 물건을 바라보자 약간의 안심이 되었다. 기본적인 정보가 담겨 있다면 그녀가 없다고 해도 조금은 나을 테니까.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나는 차원이동기 앞에 서서 눈을 감은 채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었다.

다시 뜬 눈에는 망설임 따윈 있지 않았다.

나는 가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당부할 말은?”

가야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스스로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인님께서는 진천의 핏줄.]

[진천의 왕은,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자이니까요.]

가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푸른빛이 일렁이며 차원이동기를 휘돌더니, 거울 안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그리고 주변으로 푸른 번개들과 안개가 몰려들며 나를 감쌌다.

마치 몸이 붕 뜨듯 발밑이 허전하다 싶더니 속삭이는 듯한 가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왕에게 영광이 있기를…….]

멀어져가는 그녀의 목소리를 끝으로, 내 눈앞은 칠흑으로 점멸되었다.

* * *

깨어난 곳은 폐허가 된 건물의 창고였다.

주변이 모두 반질반질한 철과 같이 만들어진 커다란 사각형의 공간이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상자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뒹굴고 있었다.

차원이동을 해서인지 이마가 지끈거렸으나, 얼마 뒤 두통은 사라졌다.

‘몸이 가볍다.’

이곳이 진천의 세계임을 몸이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

풍부한 마력이 넘치는 곳이다 보니, 두통 따윈 금방 사라졌고 몸은 가볍고 활력이 넘쳤다.

“후우.”

그럼에도 긴장감은 여전했기에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마음이 가라앉자 나는 이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무작위로 떨어졌으나 이곳은 신들이 없는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아직은 안심할 것은 못 되었다.

근처에 적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주변을 좀 더 둘러보는데 손목에서 삐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사각형이 연한 초록빛을 뿜어냈다.

초록빛은 신기하게도 약 한 자 크기로 내가 깨어난 건물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의 지하인 듯 보이는 곳에 붉은빛이 반짝였다.

“빨간 불빛이 나구나.”

건물을 훑어보니, 지하를 포함한 사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의원 형태의 건물.]

[건물 안에 생명체는 없음.]

손목에서 나오는 빛의 글자가 이 건물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의원이라면, 도움 될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이곳이 빈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자 약간의 기대가 생겼다.

마석이 아니더라도 의원에 있는 것이라면 내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방을 주의하면서 창고 밖으로 나갔다.

일 층으로 올라서자, 부서진 의자와 각종 물건이 즐비했고 바닥은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계단이다.’

나는 일 층의 중간에 있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이 층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층은 환자들이 있는 곳인지 작은 공간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가운데에는 의원들이 있을 법한 곳이 있었다.

복도 끝에 보이는 것은 작은 창고.

내가 깨어난 곳과는 달리, 저곳에는 뭔가 있을 듯했다.

끼릭.

작은 창고 문을 열자 알 수 없는 작은 약병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옆으로 멜 수 있는 중간 크기의 흰 가방이 있었다.

‘종류별로 몇 병만 가져가 보자.’

나는 작은 약병 다섯 개를 가방 안에 넣은 뒤 혹시 있을지 모를 마석을 찾아 건물 전부를 뒤졌으나 보이지 않았다.

‘역시 마석은 없네.’

삼층의 창밖을 조심스럽게 내다보자, 폐허로 변한 건물들이 보였다.

무너진 건물부터, 커다랗게 움푹 파인 땅까지.

상상속의 진천의 세계와 진짜 진천의 세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진천은, 삭막하면서도 피폐했다.

“어쩌지?”

겨우 단 한 번의 기회를 얻어 진천의 땅까지 왔건만, 보이는 것이라곤 폐허밖에 없었다.

마석은커녕 이대로 망가진 건물만 뒤지다가 돌아갈 판이었다.

어느새 손목의 장치는 ‘一’이 두개가 사라진 상태였다.

반 시진이란 시간이 벌써 흘러 버린 것이다.

“위험도 없지만 얻는 것도 없네.”

그때, 갑자기 손목의 장치가 위험을 알리듯 붉은빛을 번쩍였다.

[위험.]

[불순한 진천인들이 건물 내 진입.]

불순한 진천인들?

재빨리 몸에 투명화 기능을 두르고는 창밖을 내다보자, 온몸을 검은색의 것들로 가린 사람들이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여길 왜 오는 거지?’

이곳은 빈 의원이다.

불순한 진천인이라 이름 붙여진 놈들이 들어올 일이 없는 곳.

뒤쪽에 숨어 경계심을 한껏 돋우고 있는데, 그들의 발소리가 내가 있는 삼 층으로 가까워졌다.

삼 층으로 오면서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에는 그들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언어기능 가동.]

목소리가 들리자 손목의 장치가 자동으로 언어기능을 작동했다.

그러자 들리는 그들의 말.

“……이번엔 좀 쏠쏠했다니까.”

“크큭. 그러게.”

놈들은 뭔가 신이 난 듯 보였다.

“설마 우리가 놈들이 지키는 왕가의 창고를 털리라곤 생각 못 했겠지.”

“진천인들을 벌레처럼 보니까 그런 거야. 벌레들이 자신들이 지키는 것들을 훔쳐 가리라고 어떻게 알았겠어?”

말들을 종합해 보건대, 불순한 진천인이라 알려주는 말 그대로 저들은 도둑이었다.

‘이곳에도 도둑은 있었구나.’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며 기척을 죽이고 있는데, 그중 한 놈이 낄낄대며 말했다.

“최상급 마석 하나에, 상급 마석 세 개라. 이 정도면 신들도 성질 좀 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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