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106화
어떻게 믿냐는 말에 놈들의 눈이 살아날 희망으로 번득였다.
“저희를 믿으셔도 됩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금제를 거시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일정 기간마다 해독하는 독약도 좋고 뭐든 상관없습니다!”
두 놈은 어떻게든 살아나기 위해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놈들을 먹일 만한 독약도, 금제도 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저놈들을 쓰지 않을 바엔 죽이고 가는 게 나았다.
내 눈이 펄펄 끓는 솥으로 향하자 놈들이 소리쳤다.
“아무거나! 저희를 쓰시기 위해 정말 아무거나 하셔도 됩니다!”
일단 살고 봐야 했기에 놈들은 기를 쓰고 자휘에게 애원했다.
놈들을 보며 고민하던 자휘가 다가섰다.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놈들의 질문에 아무 답도 하지 않던 자휘는 형이라 불리는 놈을 바라보았다.
“만약, 이걸 사용해도 살아난다면 살려주도록 하지.”
“그게 어떤 것이기에……?”
흑영이 자휘 쪽으로 눈을 돌리자, 소년의 손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
아니, 절정고수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기를 저렇게 뽑아낸단 말인가?
흑영은 자신의 눈앞에서 소년이 기로 만든 구체를 뽑아내자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스스슷.
동그란 구체는 진천기공을 사용해 진천환으로 만든 기의 덩어리.
‘이걸 저놈들의 몸속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진천환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사람의 몸속이라면?
자신의 뜻대로 형태를 바꿀 수도 있으며, 그냥 빛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는 기의 덩어리는 충분히 금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실험해 보기엔 좋겠네.”
자휘의 몸에서 차디찬 기운이 흐르자 두 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른손에 이어 왼손에도 구체의 진천환이 생성되었다.
“저, 저걸로 어떻게 하실 건지?”
흑영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실험해 본다니까?”
자휘는 먼저 흑영의 심장 부근에 오른쪽에 있던 진천환을 갖다 댔다.
스륵.
그러자 놈의 심장에 스며드는 진천환의 기운.
“흡.”
흑영은 가슴 부근이 갑자기 뻐근해짐을 느꼈다.
“넌 머리가 좋겠네.”
이번에는 고영의 머리에 왼손에 있던 진천환이 스르륵 스며들었다.
각자의 심장과 머리에 스며든 진천환.
자휘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놈들을 향해 말했다.
“그럼 이제 실험을 시작해 볼까?”
실험을 시작한다는 말에 두 놈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
검은 마차 한 대가 빠르게 관도를 달리고 있었다.
마차의 마부석에는 젊은 사내 둘이 타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꽤 고생했는지 핼쑥해 보였다.
그리고 마차 안에는 눈 돌아갈 만큼 잘생긴 소년이 타고 있었다.
‘성공이네.’
마차 안의 소년은 자휘였다.
반신반의하며 진행한 진천환에 대한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진천환은 사람의 몸에 들어가자 흩어지지 않고 계속 형태를 유지했다.
그리고 시전자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바꿀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두 형제는 지옥을 몇백 번이나 드나들어야만 했다.
조금만 잘못 기운을 운용해도 흑영의 심장과 고영의 머리가 칼로 수천 번 찌를 듯 아파졌기 때문이었다.
‘진짜 고통스러워 보였지.’
그러나 말 그대로 실험이기에 고통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게 누가 강도짓을 하고 살래?”
혀를 차는 자휘의 눈이 마부석에 앉은 두 형제를 향했다.
놈들이 자신에게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그들의 과거 행적 때문이었다.
객잔에 온 손님들을 죽이고 물건을 강탈한 놈들에게 이 정도 고통은 약과였다.
“저놈들이 죽였던 사람의 몇 배의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 이상 고통은 계속될 거야.”
자휘는 언제든 죽어도 싼 그들을 진가장으로 데려가 실컷 써먹을 작정이었다.
저들도 살려만 준다면 뭐든 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선 살기 위해서 한 말일지는 모르나, 이미 진천환을 통해 놈들은 자휘의 손짓 한꺼번에 죽을 수 있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제 꾀에 빠진 셈이지.’
덕분에 난 꽤 쓸 만한 막일꾼 둘을 얻게 되었다.
죽어도 아무 문제없는 일꾼을 말이다.
“역시 마차가 편하네.”
자휘는 마차의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반면, 마부석에 앉은 흑영과 고영은 죽을 맛이었다.
‘살긴 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어린놈은 이상한 기운을 자신의 심장과 동생의 머리에 집어넣었다.
그것들을 움직일 때마다 어찌나 고통스럽던지!
미칠 지경이었다.
그나마 자신은 심장이라 이 정도 생각을 하지 동생은 머리로 고문에 가까운 실험을 받아서인지 멍해 보였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일만 하게 된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동생.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
동생과 자신을 생각하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흑영은 뒤에 앉은 어린놈을 향이 이를 뿌득 갈았다.
‘내게는 비장의 한 수가 있다.’
바로 무색무취의 독.
몹시 어렵게 구한 독으로 이 독은 아무리 고수라 한들 눈치 챌 수 없다고 했다.
‘이 독을 몰래 풀 수만 있다면 우린 자유다.’
몸속에 둥근 기운을 빼낼 수는 없어도 그걸 조종하는 저 어린놈을 죽이면 기운이 움직일 수 없다.
해답은 저놈을 죽이는 것.
멍한 표정의 고영과는 달리, 흑영의 눈빛이 살기를 품고 빛났다.
마차는 밤이 되어서야 멈췄다.
멈춘 곳은 노숙이 가능한 한적한 들판.
현화객잔에서 시간을 소요하는 바람에 다른 객잔에서 머무를 시간이 줄어버려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의 재료는 이미 모두 챙겨왔기에 식사가 문제 되진 않았다.
고영이 노숙 자리를 준비하고, 흑영은 저녁 준비를 했다.
흑영이 요리한 죽에서 고소한 냄새가 사방에 흘렀다.
‘요리하나는 최고란 말이야.’
이미 몇 번 흑영의 요리를 먹었던 자휘는 꽤 만족하고 있었다.
처음엔 혹시 독을 섞을지 몰라 의심했지만, 한동안 놈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전히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눈치도 있고 머리 회전도 있는 놈이라 바로 독을 섞거나 다른 짓을 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설사 독을 섞는다고 할지라도 가야가 다 알려주는데 무슨 걱정을 할까.
흑영이 요리해 준 죽을 맛있게 먹으며 고영이 준비한 자리에 누웠다.
‘놈들이 있으니 편하군.’
마차도 그렇고 식사나 다른 것들을 챙겨줄 놈들이 있으니 호사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편안함을 느끼며 누워 있는데 가야의 경고가 들렸다.
[목침에서 독이 감지됩니다.]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음식이 아니라, 목침에 독을 바르다니!
분명 흑영이라는 놈의 짓이 분명했다.
[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잠깐의 접촉으로도 중독되는 강한 독입니다.]
[해독하는 데 일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일각 정도면 괜찮았다.
워낙 영약을 많이 먹은 몸이다 보니 웬만한 독들은 해독이 된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목침에 독이 발라져 있는지 몰랐다면 틈이 생겼겠지.’
강한 독이니만큼 해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날 공격한다면?
어쩌면 방심의 대가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독에 당한 티를 내지 않으며 조용히 일어나 가부좌 자세를 틀었다.
내공을 운용하는 척하며 독을 해독하려는 것.
이 모습을 보던 흑영이 긴장감으로 손톱을 씹었다.
저 목침에 누워서 자기만 하면 끝인데, 왜 갑자기 일어나 내공 수련이란 말인가!
‘설마 저놈이 눈치 챈 건가?’
그는 의심했으나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흑영이 자휘의 목침에 발라둔 것은 무색무취의 독이자 당장 발현되는 독이 아니었다.
독에 몸이 닿아도 최소 한시 진은 모르고 있다가 이미 오장육부가 썩어 들어가기 시작해야 알 수 있는 독이었기 때문이다.
‘독에 마약성 진통제가 섞여 있어 몸속이 문드러져도 알 수가 없지.’
그런데 저놈은 얼굴이 제대로 목침에 닿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무인이야 늘 내공을 수련하는 것이니 갑자기 자기 전에 생각나서 앉아 수련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마치 독을 사용한 것을 들킨 것만 같은 불안함.
그는 눈을 감은 채 내공을 수련하는 자휘를 보면서 주머니 속의 칼을 만지작거렸다.
일각 후.
[해독되었습니다.]
가야의 목소리가 이제야 독에서 해독되었음을 알려왔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인 건가.’
어떻게든 흑영을 데리고 가려 했지만, 저놈은 내가 베고 자는 목침에 독을 발라 놓았다.
나는 가야가 있어 알 수 있었지만 없는 사람이었다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고영이란 놈은 말을 잘 듣는데 말이지.’
아무래도 머리에 실험한 것과 심장으로 실험한 것의 차이인 듯했다.
‘어떻게 할까.’
고영은 데려가도 이런 짓을 벌인 흑영을 끝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니.
그러나 놈의 잔머리와 영악함이 탐나기도 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흑영.”
“네.”
자휘의 차가운 시선이 흑영을 쏘아보았다.
내 눈빛에 놈이 찔리는 게 있는지 몸을 움찔거렸다.
“네놈이 독을 쓴 걸 모를 줄 알았나?”
독 이야기가 나오자 놈의 표정이 굳었다.
“하하.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독이 어디 있다고요?”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놈의 손이 주머니 속의 칼을 잡았다.
“독이 없다고?”
“예.”
뻔뻔스러운 놈의 대답에 나는 목침을 던져버렸다.
“윽!”
반격할 새도 없이 갑작스럽게 날아든 목침이 놈의 이마에 닿아 ‘뻑’ 하는 소리를 냈다.
목침에 의해 찢낀 이마 안으로 독이 침투했다.
“이런!”
흑영은 이마 사이로 흐르는 검붉은 피를 보고는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독에 중독되고 만 것이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피가 적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안 돼……!”
자신이 중독된 사실을 알자, 흑영의 얼굴빛이 희게 질렸다.
“해, 해독제!”
그는 해독제를 찾았으나, 자신이 가져온 독의 해독제는 없었다.
처음 살 때부터 훨씬 비싼 해독제 따위는 살 엄두를 못 냈던 탓이었다.
흑영은 자휘를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했다.
“사, 살려주십시오!”
그러나 나 역시 놈을 살리는 법 따윈 알지 못했다.
놈의 능력이 아깝긴 하나, 저런 놈이라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편이 나았다.
“내가 왜 널 살려줘야 하지?”
“그건……!”
점차 얼굴이 푸르댕댕하게 변하는 흑영은 답을 못하다가 간신히 말했다.
“이번에 살려주신다면, 진짜 주인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머리를 썼건만 목침에 바른 독을 들키고 말았다. 자휘를 해하려다, 결국 자신이 당한 것이다.
흑영은 이번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며 엎드렸다.
그래서일까.
자휘를 주인으로 모시겠단 그의 진심 중 일부가 왕의 권능을 일깨웠다.
[앞의 존재를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최하등 등급의 가신으로 받아들이겠습니까?]
[가신이 된다면 배신을 하는 순간 죽습니다. 또한 진천의 피를 향한 조건 없는 충성심은 배가됩니다.]
‘가신이라니!’ 지난번 제갈신을 가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흑영이 가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최하등 등급의 가신 말이다.
“재미있네.”
난 여전히 나를 향해 엎드리고 있는 흑영의 머리통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가야의 말을 들어보니 배신을 하는 순간 죽는단다.
게다가 나를 향한 충성심이 배가 되고.
지난번의 제갈신이야 친구이니 거절했지만, 흑영의 경우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가신이 되는 것이 뭔지 한번 실험해 보는 것도 괜찮고.’
그러나 문제는 이미 독에 중독된 흑영이 가신이 된다 한들 죽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기껏 가신으로 만들었는데 죽는다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또다시 가야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신이 된다면 주인의 능력을 일정 부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힘을 얻는 것이 가신이 가진 진정한 힘입니다.]
가신이 되면 힘을 나누어 쓸 수 있다는 소리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사람들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말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