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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88화 (88/200)

기갑무림 88화

자휘는 목만 잘린 채 아직도 입을 뻐끔대는 놈을 잠시 무감하게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죗값을 받은 거라 생각해.”

놈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저곳에 천요가 있단 말이지?”

무림에서 오십 위라면 초절정에 가까운 무위를 가졌을 것이다.

완전 기갑화된 자신과 천요가 싸운다면?

기갑의 힘이 강하긴 하나, 스스로의 힘을 사용해 기갑화되어 본 적은 없다.

또한 기갑으로 제대로 싸운 적도 없는 상황에서 천요와의 싸움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떨리는걸.”

이제 곧 완전 기갑화가 되어 놈과 싸울 것을 생각하자 심장이 두근댔다.

자휘는 품속에서 작은 목함을 꺼냈다.

“현천단이면 될 거야.”

완전 기갑화를 한 번 하는 데 필요한 것은 5년의 내공.

혹시 모르니 10년의 내공을 늘려주는 현천단을 미리 준비해 왔다.

달칵.

목함을 열자 청량한 향이 사방에 퍼졌다. 백영단은 몇 번 먹었어도 진짜 현천단을 먹는 것은 처음.

이 한 알로 두 번의 완전 개방화를 시도할 수 있다.

‘영약을 빠르게 흡수할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영단을 먹고 흡수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런데 만약 급하게 완전 기갑화가 되어야 한다면 영약이 있다 한들 금방 쓸 수는 없을 터였다.

자휘는 혹시나 하며 가야에게 물었다.

“영약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기능이 있나?”

가야는 빠르게 답했다.

[동화율을 85까지 개방한다면 가능합니다.]

다행히 가야는 영약의 빠른 흡수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내 동화율은 100.

개방된 동화율은 80이었다.

5만 더 추가로 개방하면 앞으로 완전 기갑화되는 데 더 수월해질 수 있다는데 안 할 수가 있나.

“동화율을 85까지 올리겠어.”

[동화율 85개방.]

[영약의 흡수 능력이 효율적으로 빠르게 변합니다.]

목소리가 끝남과 함께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몸속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리라.

나는 망설임 없이 현천단을 입안에 집어넣었다.

현천단이 입안에 들어가자, 온몸의 기운이 현천단에 집중된 듯 훅하고 몰렸다.

“읏.”

그동안 영약을 먹고 느꼈던 청량함 상쾌함이 한꺼번에 터지는 느낌.

화악.

고작 눈 한번 느리게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현천단은 온몸에 흡수되어 있었다.

역시 능력의 힘은 위대했다.

동화율 5에 이런 빠른 효과라니.

“후우.”

숨을 내쉬자 온몸에 은은한 빛들이 살짝 빛났다가 사라졌다.

온몸에 퍼지는 활력감과 힘이 내공이 삽시간에 10년이 늘어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흡수 능력의 상승으로 인하여 내공이 원래보다 3년 더 올라갔습니다.]

원래 10년이 최고인 현천단의 효과가 3년이 늘어났다는 가야의 말에 놀라움을 삼켰다.

3년이면 원래 현천단이 주는 10년의 내공 중 무려 삼 할이다.

최종적으로 늘어난 내공은 13년.

‘진작에 썼으면 좋았을걸.’

하지만 가야가 그동안 이 흡수 능력에 관해 이야기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뭔가의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가진 내공의 합은 50년이 되었다.

터질 듯한 내공에 단전 부근이 끓어오를 듯 들끓더니 곧이어 뻐근해졌다.

“이제 시작이로군.”

나는 현천단의 효과를 온몸으로 느끼며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다시금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준비가 다 끝난 지금, 천요와의 일전만이 남았다.

* * *

<요(妖)사당>

하광이 내려왔던 산의 정상에는 요사당이란 명패가 적힌 큰 사당이 있었다.

워낙 높은 절벽 위에 있기에 보통의 사람이라면 찾기 힘든 곳.

나 역시도 가야의 추적이 아니었다면 찾기 힘들 정도로 사당은 아래에서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꽤 음침한 분위기네.’

검푸른 숲 가운데 음침하게 자리한 사당에는 붉은 횃불이 혀를 날름거리며 주변을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나는 사당 안쪽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술법가 아니랄까 봐 사당의 분위기도 요사스러웠다.

천요가 남자임에도 요(妖)자가 붙은 이유는 놈이 요사스러운 술법가였기 때문이다.

정혈을 먹는 놈답게 사당의 벽엔 노란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저것들은 부적인가?’

종이에는 괴상한 붉은 문자들이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괴기스러워 보였다.

사당의 장원의 사방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서너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미동도 없이 서 있는 놈들은 음침한 사당과 어울려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치 살아 있지 않은 자들처럼 말이다.

휘릭.

자휘의 움직임이 바람 소리를 한 번씩 낼 때마다 한 놈의 목이 뒤로 꺾였다.

마치 마른 나뭇가지를 꺾는 듯 놈들의 목은 파직 소리와 함께 돌아갔다.

빠르게 남은 놈들의 목을 쳐내자 비명 한번 지르지 않고 풀썩 쓰러지는 검은 옷의 남자들.

푸스스.

놀랍게도 죽은 듯한 남자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검은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듯한 검은 연기가 괴상한 부적에 닿았다.

부적에 검은 연기가 닿자 귀를 찢을 듯 울리는 괴이한 소리.

끼이이이-!

횃불은 동시에 꺼졌다.

“케에엑!”

기이한 소리를 신호로 어둠을 뚫고 뛰쳐나온 것은 수백 마리의 검은 박쥐였다.

사당의 하늘을 뒤덮은 박쥐 떼는 침입자인 자휘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박쥐 따위야.”

나는 현천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속도로 박쥐들을 쳐냈다.

검이 번개처럼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떨어지는 수십 마리의 박쥐들!

환술인지 진짜인지 모를 박쥐들이 조각난 채 사당 앞의 마당을 채웠다.

모든 박쥐가 현천검 앞에서 죽임을 당할 때가 되어서야 누군가가 사당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천요 삼 형제의 둘째 하기였다.

하기는 치료를 마쳤는지 도망칠 때보다는 괜찮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누구냐?!”

뒤에는 천요가 있기에 그는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어둠 속에서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나타난 사람은 전혀 두려움이 없는 모습의 자휘였다.

하기는 갑작스레 나타난 자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광이 자휘의 흔적을 쫓겠다고 나간 지 한 식경밖에 되지 않았다.

저놈을 쫓아서 이곳까지 데려오긴 힘든 시간임에도 자휘가 나타난 것이다.

“설마 하광이가 벌써 네놈을 데려온 것이냐?”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어두움 속에 자리 잡은 사람은 오직 자휘 하나.

소년은 큰 검을 땅에 끌리듯 든 채 자신을 무감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자휘의 답에 눈썹이 위로 솟은 하기가 노기 띤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지?”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하기를 감쌌다.

그는 자휘를 살기 섞인 눈으로 노려보았다.

“어떻게 오긴. 추적해서 왔지.”

“추적? 그렇다면 다른 정파 놈들도 이곳에 온단 말이냐?”

자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지 않아. 이곳에 온건 나 혼자야.”

“기껏 우리를 추적해서 온 게 너 하나라고? 네놈이 미쳤구나!”

“네 동생도 그런 말을 하다가 죽었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산 쪽 입구에 가 봐. 그곳에 네놈의 동생 목이 굴러다니고 있거든.”

“갈! 하광이 여기 없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다니. 내가 반드시 널 찢어 죽여 개먹이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기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무공은 절정을 바라보는 초일류.

결코 낮지 않은 무위지만, 이미 현무학관에서 하기 정도의 무위를 가진 생도와 수많은 대련을 한 자휘에게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이익!”

공격이 번번이 실패하자 하기는 더욱 온 힘을 다해 자휘를 권을 날렸으나 허사였다.

하기는 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천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천요 형님! 도와주십시오!”

하기의 도움 요청이 사당을 울려 퍼지자 사당 안쪽에서 검은 기운이 넘실대더니, 마당에 횃불이 다시 확 살아났다.

화르르.

지옥마냥 횃불을 거대한 불길을 쏘아대고, 펑 소리와 함께 사당의 문짝들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긋하게 나타난 사람은 천요였다.

“네가 천요인가?”

자휘가 이제야 등장한 천요를 보며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그의 눈이 번뜩였다.

“나를 알아?”

한 발 앞으로 디뎠을 뿐인데 그의 몸이 자휘 앞으로 미끄러지듯 한 번에 다가왔다.

등 뒤로 넘실대는 검은 기운은 마치 수백 마리의 뱀처럼 자휘를 향해 입을 벌려댔다.

“아니까 이곳으로 온 거겠지.”

“알면 도망갔어야지.”

자휘를 보며 웃는 천요의 입과 달리 그의 눈빛은 매섭고 차가웠다.

“오히려 날 찾아온 걸 보니 이길 자신이 있나 봐?”

우습다는 듯 말하는 천요의 입에서 하얀 냉기가 새어 나왔다.

사아아-

동시에 주변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제 형이 부린 현상에 하기의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러나 자휘의 몸은 멀쩡하자 천요가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이걸 견뎌?”

천요는 자신의 음공을 8성 이상 주변으로 뽑아냈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자휘를 보며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아예 실력이 없는 건 아니었군. 하지만.”

천요의 손톱이 길게 솟아났다.

솟아난 손톱은 마치 열 개의 날카로운 칼날을 이어붙인 듯했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냈다.

“넌 오늘 죽을 거야.”

당연한 듯 말하는 천요의 말에 자휘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오늘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네놈의 동생처럼.”

“……진짜였나? 네놈이 셋째를 죽인 게?”

천요는 사당에서 나오기 전 하기와 자휘의 말을 들었다.

하광이 죽었다는 말에 그저 하기의 심기를 어지럽히려 하는 말이라 생각했건만.

사실처럼 느껴졌다.

“그럼 진짜로 죽이지, 가짜로 죽이나?”

자휘의 말에 천요가 서 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얼음이 쩌정 소리를 내며 얼기 시작했다.

천요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진짜라면, 네놈을 절대 쉽게 죽이지 않겠다!”

천요가 짓씹듯 내던진 말에 자휘가 현천검을 치켜 들었다.

“그건 날 이기고 나서 말해.”

말이 끝나자마자 자휘의 검은 갑자기 횡으로 돌았다.

사악.

천요가 자휘의 공격을 비웃으며 맞받아치려는 찰나, 현천검은 천요가 아닌 옆에 있던 하기의 몸을 갈랐다.

난데없는 빠른 공격.

제대로 보지도 못할 만큼의 쾌검인 데다가 천요는 방심했기에 막지 못했다.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하기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두 눈만을 크게 뜬 하기의 이마 쪽에서 세로로 된 붉은 실금이 보이더니 주룩 피가 흘러내렸다.

“혀, 형님.”

이 말을 끝으로 하기의 몸이 좌우로 피를 뿜으며 갈라졌다.

푸확!

눈앞에서 동생이 반으로 갈라져서 죽었다.

그것도 무림 오십 위인 천요 앞에서!

천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눈길로 천천히 손을 들어 얼굴에 튄 아우의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손에 묻은 피를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천요의 흰 눈자위가 시뻘겋게 변했다.

“어, 어떻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 한순간의 방심으로 동생이 죽자 천요의 목에 굵은 핏대가 섰다.

“으아아아! 죽여 버리겠다!”

놈은 자휘를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는 듯 긴 손톱을 자휘에게 휘둘렀다.

휘리리릭.

현천검을 이용해 천요의 손톱을 피했으나, 마치 살아 있는 듯 길게 늘어났다 되돌아가는 손톱은 자휘를 위협했다.

자휘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고 날뛰는 천요를 향해 물었다.

“내가 왜 여길 혼자 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천요는 자휘의 물음에 답 따윈 하지 않겠다는 듯 공격에 집중했다.

그러는 사이, 동생을 눈앞에서 잃은 충격에 잠시 흔들렸던 천요의 공격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촤악!

놈의 기다랗고 날카로운 손톱이 자휘의 무복을 갈랐다.

아슬아슬하게 피했는지 갈라진 무복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아쉽네. 네놈이 궁금해하길 바랐는데 말이지.”

공격에 비껴 맞긴 했으나, 승기는 완전히 천요에게 있었다.

이성을 잃어 처음엔 막무가내로 손을 휘둘렀으나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린 그의 공격은 거세졌던 것.

이러다가는 곧 천요의 손에 자휘가 잡힐 지경이었다.

자휘는 천요의 공격을 피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기갑 완전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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