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86화
시끄럽게 소리를 내며 객잔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두 명.
한 명은 비쩍 말랐고, 다른 하나는 뚱뚱한 남자였다.
그들은 이미 객잔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현무학관의 생도들과 교관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X벌. 다른 새끼들이 우리 자리에 앉아 있잖아?”
“점소이 이 새끼가 감히 우리 자릴 다른 잡것들한테 줘?”
두 명이 가끔씩 이 객잔으로 와서 앉던 자리는 자휘와 제갈신, 혜연과 천무륭이 있는 창가 쪽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앉아 있자 욕부터 내지른 것이다.
‘……잡것?’
문을 박차고 들어온 놈들이 현무학관의 사람들을 보고 잡것이라 하자 모두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일순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 기겁한 점소이가 재빠르게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아이고, 천요 삼 형제분들 아닙니까?”
점소이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들 앞에서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오늘은 웬일로 두 분만 오셨습니까?”
“흥! 큰형 빼고 우리 두 명은 오면 안 되나?”
“아닙니다! 되지요, 당연히 됩니다!”
“그런데 왜 말을 듣지 않는 거지?”
뚱뚱한 놈이 눈을 부라리며 점소이에게 따졌다.
점소이는 놈의 위협에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입을 뻐끔댔다.
“언제가 되었든 창가 자리 비워놓으라 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안 오신 지 한참 되어 그만…….”
“하, 이런 겁 없는 새끼를 보았나? 우리말을 귓등으로 들어?”
놈이 발로 점소이를 걷어차자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점소이.
그는 고통스럽게 꺽꺽대더니 겨우 말문을 열었다.
“으윽, 죄송합니다. 자, 자리를 비워드릴 테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점소이는 무릎을 꿇고 두 남자에게 용서를 구했다.
“우릴 무시한 대가가 고작 자리 비켜주는 거로 될 줄 아나 보지?”
비쩍 마른 사내는 점소이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뚱뚱한 놈이 점소이의 멱살을 잡았다.
“새꺄, 너 오늘 뒈질 줄 알아.”
“사, 살려주십시오.”
점소이를 죽일 듯 위협하는 놈들을 보자 무량후가 천천히 일어섰다.
“지금 뭐 하는 짓인가?”
비쩍 마른 놈이 간편한 복장을 한 무량후를 훑으며 피식 웃었다.
“어디 시골 무관에서 애새끼들 데리고 나온 영감탱인가 본데 가만히 있어. 훈수질 하다가 봉변당하지 말고.”
신검 무량후는 은퇴한 지 꽤 되어 알아보는 이가 드물었다.
그래도 그렇지, 시골 무관의 영감탱이라니!
‘저놈 눈이 삐었네.’
자휘는 놈들을 보며 혀를 찼다.
아무리 생도들이 현무학관의 생도 복을 안 입고 가벼운 옷차림을 걸쳤다고는 하나, 무인임을 모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방종하게 구는 것을 보니 뭔가 뒷배가 있는 듯 보였다.
[저놈들 뭐냐?]
[천요의 형제들인데 강한 첫째 형을 믿고 저렇게 날뛰는 거야.]
[첫째가 얼마나 강하길래?]
[꽤 세. 백 대 고수 중 오십 위 정도?]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무림인 가운데 백 대 고수에 이름을 올린 것만도 대단한데, 오십 위라.
자휘는 제갈신의 답에 놈들을 유심히 보았다.
‘완전 기갑화를 시험하는 데 좋은 상대일 듯한데.’
죽여도 뒤탈이 없는 실력 좋고 무위도 검증된 놈들 아닌가?
게다가 나쁜 놈들이니 더욱 금상첨화였다.
입맛을 다시며 놈들을 바라보는 자휘의 눈이 가느다랗게 변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생도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뚱뚱한 놈이 무량후에게 위협하듯 으르렁댔다.
“영감탱이, 애새끼들도 다 뒈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그래?”
“뭐라?”
무량후의 어이없는 되물음에 놈은 비죽 웃으며 생도들을 죽 훑어보았다.
“뭘 봐? 너희도 얻어맞고 싶은가 보지?”
뚱뚱한 놈은 무량후를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하며 생도들을 쏘아보다가 눈길이 혜연에게 닿았다.
겨울날의 차가운 매화 같은 혜연의 미모를 보자 놈의 입이 헤벌쭉하게 변했다.
“호오, 이런 곳에 미녀가 있었구먼.”
그는 음흉한 웃음을 짓고는 점소이에게 손짓했다.
“우선 술이랑 안주를 내와. 자리는 내가 알아서 앉도록 하지.”
점소이가 우는 얼굴로 주방으로 절뚝거리며 사라졌다.
셋째 놈이 뒤뚱거리며 혜연이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징그러운 눈초리로 혜연의 몸을 훑고는 같은 탁자에 앉은 생도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는 놈.
“네년만 남고 나머지 새끼들은 꺼져.”
혜연의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리며 눈초리가 사납게 치켜졌다.
급속도로 차가워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둘은 실실거렸다.
“어쭈, 무공을 익히셨다 이거지?”
화가 머리끝까지 솟은 혜연의 손이 검의 손잡이에 닿았다.
그리고 그녀 보다 먼저 천무륭의 검이 뽑히려는 찰나.
“네놈들을 가만두어서는 안 되겠구나!”
무량후의 내기가 실린 음성이 객잔 안에 울렸다.
강한 기세가 실린 음성이었다.
혜연을 보며 낄낄대던 두 놈이 잠시 멈칫했다.
“어라, 시골 무관 영감탱이인 줄 알았더니 좀 한다 이거지?”
“그래봤자 노인네일 뿐이지.”
“크큭, 노인네 따위가 우리한테 덤비려 하다니 노망이 났나?”
천요 삼 형제 중 첫째가 가장 강하긴 하나, 둘째와 셋째도 무위가 높은 축에 속했다.
자신들의 무공 또한 자신이 있었기에 방종할 수 있었다.
놈들이 무량후를 무시하고 다시 혜연에게 수작을 부리려는데, 앞쪽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야말로 노망이 들었나 보지?”
“뭐?”
어려 보이는 생도가 천요 형제에게 반말로 대꾸를 하자 놈들은 일순간 어이없다 못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자휘는 말을 계속했다.
“저분은 현무학관의 학장님이시다. 그런데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다니. 보는 눈도 없을뿐더러, 머리도 나쁘구나.”
“……현무학관?”
천요 형제는 자휘의 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무량후를 보았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중후한 기세가 무량후로부터 느껴지는 게 아닌가?
게다가 창밖을 유심히 보니 마차에 현무학관이라는 작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
둘은 속으로 욕을 날렸다.
저자들이 멀리서 정사화합전을 구경 온 촌놈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무학관의 생도들일 줄이야!
“진짜 현무학관에서 온 놈들이라고? 말도 안 돼!”
당황하는 셋째의 말에 둘째인 비쩍 마른 놈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이번 정사화합전에 출전했던 정파의 생도들이 너희란 말이냐?”
“그래.”
뚱뚱한 셋째 놈의 눈동자가 놀라움에 흔들렸다.
반면 둘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놈이 비웃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일갈했다.
“현무학관이 그렇게 대단해? 그렇다면 너희 중 내 형님을 이길 수 있는 이가 있나?”
무림서열 오십 위의 천요(賤妖).
그는 마두로 이름 높았는데, 단순히 무위로 따진다면 오십 위였으나 놈의 잔악함은 서열보다 더 이름 높았다.
정사에서 무림 공적으로 삼자는 말이 나올 정도의 마두가 천요였다.
앞의 놈들은 그런 천요의 동생들이기에 천요 삼 형제라 불리며 이런 행패를 저지를 수 있었다.
‘저놈들이야 천교관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천요는 힘들어.’
천요는 전성기의 무량후 정도가 되야 감당 가능한 마두였다.
은퇴한 지금은 이기기 힘든 상대.
이기기 위해서는 천 교관이 같이 공격해야 하는데, 그동안 생도들의 안전은 어찌하나?
생도들이 강하다 한들 아직 어린 생도들이었다.
정파 쪽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운데, 자휘가 시큰둥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너희는 나를 이길 수 있고?”
“……뭐?”
놈들의 황당하다는 반응과 현무학관의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도 불구하고 자휘가 다시 말했다.
“왜? 너희가 먼저 물었잖아. 네 형을 이길 수 있냐고. 그럼 그 전에 너희가 나를 이길 수 있냐고 물어본 건데, 그건 안 돼?”
“안 되고 자시고를 떠나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따위가 하는 말에 기가 차서 그런다!”
“기가 차?”
그들의 대꾸에 자휘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럼 싸워보면 알겠네.”
“하! 이 새끼가 미쳤나?”
어처구니가 없는 놈들의 얼굴을 보며 자휘가 씩 웃었다.
“날 이길 자신이 없나 보지?”
“뒈지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나.”
“누가 뒈질지는 끝을 봐야 아는 거고.”
“끝을 봐? 그래, 오냐. 널 죽여주마!”
화가 난 놈들이 살기를 흘려댔다.
놈들의 찌를 듯한 살기에 무량후가 걱정스러운 음색으로 전음을 날렸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나와 천 교관이 돕겠다. 무리하지 말도록 해라.]
이미 말릴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일이 해결되려면 어차피 무력이 동반되어야만 했다.
그 시동을 건 사람은 자휘였다.
자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죽여 버리겠다!”
살기 섞인 고함과 함께 천요의 둘째가 달려들었다.
자휘를 향해 두 손을 날카롭게 내지르는 놈.
쌍장에서 나오는 강력한 기운이 자휘 방향으로 쏘아졌고, 자휘가 몸을 비틀어 피하자 쌍장은 문에 부딪혔다.
순간 두 동강 나는 문짝.
“제길!”
천요의 셋째는 몸을 날렸다.
비대한 몸과는 달리 가볍게 쏘아지는 그의 몸이 돌진했다.
팟.
그러나 자휘는 오히려 놈에게 빠르게 다가서더니 순간 몸을 낮춰 발끝으로 정강이를 강타했다.
“으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정강이가 베어올 듯 아파지자 놈은 눈을 찡그렸다.
아주 짧은 틈.
그 틈을 노려 자휘의 팔꿈치가 놈의 목을 가격했다.
“커억!”
가격과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가는 놈의 몸.
파직!
천요 둘째의 몸이 객잔의 탁자 위에 부딪히며 탁자가 부서졌다.
이 모습을 보던 마른 체구의 둘째가 눈을 세모꼴로 떴다.
“네놈이 감히 내 동생을!”
천요의 둘째가 벼락같이 권을 휘둘렀다. 그가 권을 날릴 때마다 번쩍거리며 불빛이 흩날렸다.
쾌권(快拳)이 붉은 기운을 두르며 자휘의 가슴을 목표로 폭발하듯 뻗어 나갔다.
그러나 몸을 뒤로 숙인 채 놈의 쾌권을 피한 자휘의 몸은 괘선을 그리며 신속하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곤 의자를 집어 들더니 놈의 뒤통수를 강하게 가격했다.
퍼억!
강한 충격에 나무 의자의 조각이 비산했다.
“으윽!”
천요의 둘째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몸이 허물어졌다.
손을 뻗어 뒤통수를 만져보니 뜨끈한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X벌 놈이!”
천요 둘째가 눈에 불을 켜며 달려들었다.
자휘는 놈과 달리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이번에는 놈의 앞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커헉!”
놈의 코가 뭉개지고 부서진 이가 허공에 날렸다.
피범벅이 된 놈이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크으윽.”
놈이 뒤로 물러서는 순간, 튀어 오른 신형 하나가 천요 둘째를 재빠르게 짊어졌다.
정신을 차린 천요 셋째였다.
남은 힘을 다해 제 형을 어깨에 메고 그가 최대한 빠르게 경공을 전개하며 소리쳤다.
“첫째 형을 데리고 올 테니 네놈들은 목이나 닦고 기다려라!”
그리고 있는 힘껏 달아나는 놈.
‘저놈들을 잡아야 하는데.’
자휘는 쫓고 싶었으나 그랬다간 천교관이나 무량후가 같이 따라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완전 기갑화는 실험할 수 없게 된다.
자휘는 가야를 불렀다.
‘가야, 놈들을 추적할 수 있게 만들어 줘.’
[알겠습니다.]
목소리는 바로 대답했다.
대답과 동시에 연한 빛들이 눈앞에 맴돌다가 훅하고 사라졌다.
[이 빛들은 추적할 대상에게 붙는 분자형 추적 장치입니다.]
자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자형 추적 장치가 뭔지는 몰라도 가야는 알아서 놈들을 추적해 줄 터였다.
그래도 어쨌든 쫓아가려고 시늉하는데, 천 교관이 먼저 나섰다.
“놈은 내가 쫓으마.”
그는 천요의 형제가 사라진 곳을 향해 신법을 전개했다.
곧이어 사라지는 신형.
자휘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잡히지 말고 잘 견뎌봐.’
셋째 놈의 경공은 무척 빨랐고, 객잔에는 생도들이 있기에 천교관은 곧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천교관이 사라진 곳을 주시하던 무량후의 눈에는 걱정이 어렸다.
“자휘 네가 잘 싸워주긴 했으나, 놈들이 천요를 데리고 올까 걱정되는구나.”
무량후의 근심에 자휘가 덤덤하게 답했다.
“놈들은 오지 못할 것입니다.”
자휘의 말에 무량후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번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자휘의 말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찾아갈 거니까.’
천요 형제가 사라진 방향을 보는 자휘의 얼굴에는 알 듯 말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