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80화
도준은 명실상부한 현무학관의 최강자였고, 사마혁은 사황이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로 사파에서 유명한 놈이었다.
이 둘이 맞붙게 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웅성댔다.
저 둘이 정사화합전에서 가장 우승확률이 높은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둘 중 누가 이길까?”
“나는 도준이라는 정파인에게 내기 돈을 걸었는데, 왠지 잘못 건 느낌이야.”
“실제로 보니 사마혁이 훨씬 강해 보이잖아?”
그들의 말마따나, 도준은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반면 사마혁은 패기가 넘쳐 보였고.
도준과 사마혁이 대련장에 서로 마주 보고서자 함성이 울려 퍼졌다.
“도준 이겨라!”
“사마혁 이겨라!”
현무학관은 이번에 이기게 되면 동점이 되고, 사도전은 이번에 이기면 일 차 대결에서 승리하게 된다.
일등도 일등이지만, 단체의 승리를 건 싸움이기에 응원은 더욱 뜨겁게 흘러갔다. 게다가 돈을 건 사람들의 응원까지 더해지자 대련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현무학관의 도준 대 사도전의 사마혁, 대련 시작!”
사협의 외침과 함께 일 차의 마지막 대련이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잠시간의 탐색.
그 후, 둘은 아낌없이 그들의 절기를 뽑아냈다.
화려하면서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그들의 무위는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기 충분했다.
“와, 도준이라는 생도 꽤 하는걸?”
“사마혁은 어떻고? 저게 어떻게 생도인가? 지금 당장 사마련에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어.”
신비 문파인 천검문(天劍門)의 전인답게 도준의 검은 기기묘묘했다.
반면, 사마혁의 검은 매우 패도적이면서도 날카로웠는데 마치 살초를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역시 끝내준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겁네그려.”
사람들은 고수들의 검무를 보면서 즐거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현무학관의 혜연은 도준을 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준 선배가 왜 저러지?”
그의 검은 원래 물 흐르듯 유려한 검이 장점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도준의 검이 급했다. 마치, 마음이 급한 것처럼.
평소 같았으면 사마혁의 검을 흘려보냈을 텐데, 흘려보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부딪히고 있었다.
‘저러다가 힘이 떨어질 거야.’
힘으로 따지자면 사마혁이 더 강했다.
이대로 가다간 힘이 떨어져 도준이 질지도 몰랐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녀의 마음속에 피어오르자 혜연은 주먹을 꼭 쥐었다.
챙!
서로 검을 부딪치면서 사마혁이 무언가를 전음으로 날렸다.
순간, 흑색으로 낯빛이 변하는 도준.
그는 있는 힘껏 검으로 사마혁을 밀어내며 소리쳤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도준이 고함과 함께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사마혁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가뜩이나 급했던 그의 마음의 평정을 흩뜨려 놓은 것이다.
타앗!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전력을 다해 덤비는 도준.
그를 보는 사마혁의 입술에는 느긋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나 눈빛만큼은 맹수와도 같은 집요함으로 도준의 검을 바라보는 사마혁.
채챙!
그는 도준의 검을 쉽게 넘겨낸 후, 또다시 무언가를 말했다.
“난 그러지 않았어!”
그 말에 도준이 그만 흔들리고 말았다.
외침과 함께 잠시 멍해진 그의 눈동자.
도준의 손이 느려졌다.
그사이 생긴 찰나 간의 틈.
사마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텅!
그의 강한 타격에 도준의 검이 그만 날아가고 말았다.
도준이 검을 집을 새도 없이 사마혁의 날카로운 검 끝이 그의 목을 겨눴다.
“으윽!”
그러나 도준은 날카로운 검 끝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앞으로 세웠다.
사마혁의 검 끝에 찔려 피가 나오는 도준의 목.
“너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 들은 거지?”
“글쎄. 네가 한번 맞춰보지 그래.”
사마혁의 대답에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도준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누가 봐도 전음을 전하는 모습.
도준의 전음에 사마혁의 한쪽 입술 끝이 올라갔다.
“맞아.”
긍정하는 사마혁의 말에 순간, 도준의 몸이 휘청댔다.
그러더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그.
전의를 상실한 그를 보고 사협은 도준의 패를 선언했다.
“사마혁 승!”
사마혁이 승리했다는 소리에 사도전 쪽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사도전이 일 차 대결에서 이겼다!”
“정파 놈들을 이렇게 이길 줄이야! 최고다!”
그들의 쏟아지는 함성과 달리 현무학관 쪽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진 것은 둘째 치고, 마지막 대결에서 도준의 행동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 이후로 경공을 시전했는데, 현무학관 쪽이 아닌 바깥쪽을 향해 신형을 날려 사라졌던 것.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대련장의 상석에 앉아 있던 진무양이 불쾌한 얼굴로 무량후에게 물었다.
그러나 무량후 또한 난색을 표하긴 마찬가지였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무림맹에 실습을 나갔다 돌아온 후 저 아이가 뭔가 어둡게 변했사온데, 그 이유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무림맹에서의 실습이라…….”
그가 무언가를 기억해 내려는 듯 얼굴을 툭툭 치며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주인 그가 무림맹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를 리 없었다.
물론 작은 일까지 다 알 수는 없으나 한 달 전쯤 현무학관에서 파견된 오 년 차 생도 셋 중 둘이 심하게 다치는 일이 있긴 했었다.
“혹시 그것 때문인가.”
나지막하게 말하는 진무양의 말.
무언가를 짐작한 듯했으나, 그는 더 이상 말하진 않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내쉬는 진무양.
“아마도 저 생도는 앞으로의 대결을 이어나가긴 힘들 듯하구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량후의 질문에도 진무양은 애석하다는 듯 도준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무량후는 더 묻고 싶었으나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전의 일 차 대결이 모두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중간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반 시진의 휴식 후, 다시 이어지는 이 차 대결.
그러나 현무학관에서 가장 강한 생도가 이유도 없이 사라져 버린 지금, 남은 생도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사마혁이 대체 뭐라고 했기에 도준 선배가 이탈한 거지?”
“하. 그 선배가 그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 아닌데 이상해.”
“맞아. 뭔가가 있어 보이긴 하는데 알 수 없으니 답답하네.”
“어차피 이 차 대결에서는 진 사람은 참여 못 하니 상관없잖아.”
“그렇긴 해도…… 도준 선배로 인해 우리 쪽 사기가 많이 가라앉았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으로 인해 현무학관은 명예에 타격을 입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졌다 한들, 생도가 말도 없이 훌쩍 사라지다니.
무슨 사정이 있는 줄은 모르나 사파에서조차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현무학관의 생도들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은 나머지 점심밥을 깨작거리고 있는데 자휘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대련은 혼자만의 싸움이야. 도준 선배가 없다 한들 그게 뭐?”
자휘는 어두운 표정의 생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 나름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싸움이든 응원이든 말이야.”
자휘의 말에 제갈신도 동조했다.
“지금 이런 분위기는 전혀 도움이 안 돼. 이 차로 나가는 우리가 정말 승리하길 바란다면 더 이상 도준 선배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맞는 말이었다.
이미 이곳을 떠나 버린 도준 선배 때문에 이 차로 대결을 하는 생도들의 마음까지 어둡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너희 말이 맞아.”
“이미 떠난 사람 생각해서 뭐 해. 남은 우리라도 잘해야지.”
“도준 선배를 신경 쓰지 말고 대결을 잘했으면 좋겠어.”
자휘의 말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잡혔다. 생도들은 아까보다는 밝은 분위기로 이 차 대결을 나가는 생도들을 응원했다.
“우리도 너희를 응원하는 데 최선을 다할게.”
“그래, 알았어.”
자휘가 한결 밝은 표정으로 대꾸하자, 다른 생도들의 얼굴도 환해졌다.
“이 차의 첫 대결은 자휘 너지?”
이번의 대결은 처음부터 자휘였다.
상대는 사도전의 하란이라는 여자.
지반의 정욱을 이긴 그녀는 무기로 채찍을 썼는데, 마치 살아 움직이는 뱀같은 그녀의 채찍은 상대편을 옭아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자휘의 대련 상대가 하란이란 말을 듣고는 그녀와 싸워본 정욱이 말했다.
“되도록이면 가까이 가지 마.”
“왜지?”
“가까이 가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거든.”
자휘가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짓자, 정욱이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걔가 좀 귀엽게 생겼어. 가까이 가면 큰 눈으로 어찌나 불쌍한 표정을 짓는지 손을 쓰기가 어려워.”
정욱의 말에 소후가 비웃었다.
“풋. 너 혹시 미인계에 당한 거냐?”
“미인계는 무슨! 걔가 예쁘긴 하지만 미인계까지는 아니고. 하여튼, 조심하라고 말해준 거야.”
그의 말에 제갈신이 피식 웃었다.
“솔직히 얼굴로만 따지면 자휘가 하란이란 여자애보다 나은데?”
제갈신의 말에 다들 시선이 자휘에게로 꽂혔다.
“어? 그러네……?”
“자기 얼굴이 저렇게 생겼는데 웬만해서 미인계에 걸릴 일이 있나. 다들 걱정하지 말고 응원이나 하시지.”
* * *
이어진 첫 이 차 대결에서 자휘는 또다시 단 한 방에 하란이라는 생도를 이겨 버렸다.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자휘의 얼굴을 보고 순간 멍해 버린 하란의 채찍을 한 번에 갈라 버린 것이다.
그녀는 잠깐의 방심으로 자신의 애병인 채찍이 두 동강 나자, 울면서 패배를 선언했다.
“현무학관의 진자휘 승!”
깔끔한 승부에 사협이 자휘의 승리를 외치자, 가라앉았던 현무학관의 분위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어쩜, 쟤는 여자한테도 아무런 감정이 없냐?”
“그게 자휘의 매력이지.”
“크큭, 어쨌든 계속 한 번에 이기니까 아주 속 시원하네!”
“이렇게만 계속 승리해라!”
그러나 이 차 대결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 쉽게 싸워서 이긴 자휘가 특이한 경우였을 뿐, 그다음 대결부터는 꽤 진중한 대결이 이어졌다.
사뇌 지한과 제갈신의 대결.
각자 사파와 정파의 두뇌를 맡고 있는 그들의 대결에서 그만 제갈신이 패하고 말았다.
사뇌 지한의 무공이 제갈신보다 훨씬 강했던 탓이었다.
제갈신은 최선을 다했으나 지고 말았고, 다음 대결자인 장하준 역시 패도훈에게 안타깝게 패했다.
“현재 성적은 현무학관 일 승 대 사도전 이 승입니다!”
중간 결과를 알리는 사협의 외침에 사도전의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비록 일 차에선 졌으나 단체 성적이 아닌 개인 성적으로 보자면 자휘가 특출 난 상황.
현무학관의 생도들은 자휘를 소리 높여 연호했다.
“진자휘 너만 믿는다!”
“네가 최고다!”
아무리 현무학관의 생도들이 졌다 한들, 자휘만 연호되면 신기하게도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살아나는 분위기 속에서 출전한 생도는 운하룡.
그는 마영과 맞붙었는데, 간발의 차로 운하룡이 이겼다.
이번의 승리로 현무학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운하룡 멋지다!”
“자휘와 함께 삼 차 대결도 다 이겨버리자!”
이제 남은 승부는 한 번.
일 차에서 이 차는 이긴 사람만이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무학관에서 올라온 생도는 다섯이고, 사도전은 일곱.
현무학관 승리자 수에 맞춘 사도전의 다섯 명 하나는 사마혁이었다.
이 차 대결의 마지막을 장식할 혜연과 사마혁의 싸움.
대련장에 선 혜연이 긴장한 기색으로 사마혁 앞에 섰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사마혁에게 물었다.
“아까 도준 선배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혜연의 질문에 사마혁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날 이기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도록 하지.”
“네가 한 말을 지켜야 할 거야.”
“이길 수만 있다면.”
사마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가벼운 신형이 그를 향해 쏘아져 갔다.
동시에 펼쳐지는 혜연의 검!
처음부터 그녀의 검을 수십의 궤를 그리며 매화를 피워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휘리릭.
혜연의 멋진 검무에 사람들은 한순간 넋을 잃었다.
그녀의 검에 따라 줄기가 생기고, 줄기에서 매화의 봉우리가 생겼다.
팟.
연달아 피어나는 매화!
수백의 매화가 대련장을 메웠다.
그녀를 닮아 하얗고도 얼음꽃 같은 매화는 허공에서 청량한 향을 피워냈다.
그리고 수많은 매화는 모두 날카로운 기를 품고 사마혁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