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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79화 (79/200)

기갑무림 79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그들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어어?”

“이, 이거 왜 이러나?!”

손에서 스러져가는 현천검을 보며 사마현은 빠르게 빛을 잡아채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진무양 또한 빛나는 먼지가 되어 사라져 가는 현천검을 보며 별짓을 다 했지만 흩어지는 검을 잡을 수는 없었다.

스르륵.

손안에서 사라져가는 빛!

“대체 왜……?”

당황해서 외치는 사마현을 향해 진무양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게 왜 만지냔 말일세!”

“내가 이럴 줄 알았나? 좀 만졌다고 먼지가 돼서 사라지는 검이 세상천지에 어딨나?”

억울한 듯 소리치는 사마현.

그러나 그가 소리치는 와중에도 현천검은 빛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안 돼!”

“내 현천검이!”

그들은 각종 무공을 전개하며 빛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 했건만 모두 소용없었다.

파스스.

이제는 손잡이 부분마저 빛이 되어 날아가자 둘의 눈앞이 허옇게 변했다.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현천검이 빛 한 톨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나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설마 너무 오래 돼서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있나.”

“대체 이런 일이 왜 일어난 것이야!”

“난들 아나?!”

무림 최고수와 사파 최고수가 보는 앞에서 검이 사라졌다.

그것도 천갑무신의 검이!

미치고 팔짝 뛸 현실 앞에서 그들은 울고만 싶었다.

“……이제 ?어쩌지?”

울 듯한 표정으로 묻는 사마현을 향해 진무양이 체념한 듯 말했다.

“오늘 오전에 검이 진동하다가 멈추지 않았나? 기다려 보게나.”

“기다리면 현천검이 다시 나타날까?”

“내가 그걸 어찌 아누? 아직 이틀이 남았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 더 있나?”

“만약…… 현천검이 안 돌아오면?”

잠깐 사이에 눈 밑이 퀭한 사마현이 묻자, 진무양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안 돌아오면 찾아야겠지. 다른 상품을 준비하는 건 덤이고.”

사실 상품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라진 검은 무려 천갑무신의 검이었던 현천검.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어쩌다 현천검이…….”

사마현은 너무 속상한 나머지 눈에 물기가 아주 살짝 맺혔다.

그걸 보고 진무양이 타박했다.

“늙은 놈이 눈물을 질질 짜기는!”

“이건 그냥…… 식은땀이야!”

사마현은 자신이 현천검을 들고 있다가 검이 먼지가 돼서 사라진 터라,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러게 왜 검을 만져서는. 에잉!”

진무양의 구박에 사마현은 억울했지만 아무 말 못 한 채 그저 먼 산만을 바라보았다.

[검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자휘는 아무도 없는 숙소 안에서 현천검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영단을 먹은 뒤 깨달음이 있다는 핑계로 숙소를 홀로 쓰겠다고 했고, 제갈신은 기뻐하며 직접 숙소 앞에 진법까지 설치해 주었다.

그 덕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현천검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슷.

잠시 기다리자, 앞에 빛의 무리가 회오리 돌 듯 돌더니 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푸른빛의 무리는 밀도를 채워가더니 한순간에 검의 모습으로 변했다.

팟!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현천검.

검은 은은한 빛을 뿌리며 숙소 안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게…… 현천검?”

정사화합전에 현천검이 있긴 했으나 자세히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호기심을 품은 자휘의 눈이 현천검을 보고 반짝였다.

넓적한 은빛 검신에 사선으로 음각된 문양까지.

현천검의 모양은 얼마 전 산 검과 신기할 정도로 비슷했다.

“어쩐지 끌리더라니.”

기갑과 어느 정도 일체화가 되었기에 같은 모양의 검이 한눈에 들어온 듯 했다.

그러니 검을 두고 사마윤과 기 싸움을 벌인 것이겠지.

현천검을 자세히 보고 있는데 가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천검의 본래 이름은 대천검입니다.]

[검의 주인이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셔도 상관없습니다.]

대천검이건 현천검이건 이름은 상관없었다.

지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검이 천갑무신의 검이었다는 것이 중요할 뿐.

하지만 계속 현천검으로 불렀기에 입에 현천검이 익었다.

“현천검으로 부르겠어.”

[검이 이름을 인지합니다.]

[이름이 현천검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야의 목소리와 함께 현천검이 푸른빛을 내뿜었다.

나는 은은한 빛을 내는 현천검의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잡아보았다.

그러자 가슴 부근에서 찌릿한 감정이 느껴졌다.

‘기갑이 검을 인지하는구나.’

검을 인지하자 왠지 모를 설렘이 들었다. 검과 기갑이 서로를 공명하며 떨려 오고 있었다.

‘오십 년 만이니 반갑겠지.’

마치 목소리처럼 자아가 있는 듯한 검이었다.

“혹시 검에도 자아가 있는 거야?”

[완전한 자아는 아니지만, 현천검에도 인지능력이 있습니다.]

[현천검 또한 진화형 무기로서 동화율이 높아질수록 완성된 자아를 갖게 됩니다.]

목소리처럼 현천검 또한 주인의 능력에 따라 변하는 듯했다.

그러니 나를 처음 봤을 때 그렇게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검신을 떤 것일 테다.

“어디 한번 들어볼까.”

천천히 현천검을 들어보니 크기에 비해 무겁지는 않았다.

천갑무신이 아님에도 현천검은 ?별다른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검을 들자 알 수 없는 힘이 솟아 나왔다.

“천갑무신의 검인데 내가 써도 별다른 문제는 없는 건가?”

물음에 가야는 덤덤하게 답했다.

[높은 동화율만 유지된다면 주인이 누구이건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천인이라면 누구나 기갑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내 경우는 신의 육체를 타고났기에 진화된 기갑의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점이 다르긴 했지만.

어쨌든 이 세상에서 나만 쓸 수 있는 기갑과 검이었다.

게다가 내 피를 이은 후손 역시 기갑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현천검이 무기라는 것 외에 어떤 기능이 있지?”

목소리가 즉답했다.

[현천검은 기갑을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동화율은 충분하므로, 원하시는 때 기갑을 완전 개방시킬 수 있습니다.]

답은 놀라웠다.

이 검만 있으면 최소한 이 무림에는 적수가 없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완전 최고네.’

완전 개방이 될 때 느껴지는 끝내주는 기분.

그 기분을 원할 때마다 느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희열감을 느꼈다.

그러나 기갑의 사용에 조건이 없을 리가 없었다.

[동화율 100일 때부터 완전 개방이 가능하며, 한번 개방할 때마다 동화율 5 또는 내공 5년을 차감합니다.]

내공 오 년이면 백영단 하나의 값이다.

완전 개방 한 번에 백영단 하나라니.

“완전 비싸잖아!”

평소에 사용하긴 무리였다.

진짜 목숨이 위험할 때만 사용한다고 가정한다면 모를까, 한번 사용에 내공 오 년이라니.

살 떨리는 대가였다.

‘그나마 무량후 님이 전에 주신 백영단 덕분에 한 번은 쓸 수 있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완전 개방을 시험해 보고 싶었지만 오 년이라는 내공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도 현천검으로 인해 기갑이 완전 개방이 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완전히 개방된 기갑의 힘은 아직 나조차도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제 검을 되돌려 놔야 하나?”

알건 다 알았겠다, 검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으니 원래 있던 곳에 현천검을 돌려놔야 했다.

돌려놓지 않는다면 정사화합전이 정지될 수도 있는 데다 현천검을 찾는다고 사방팔방 뒤질 게 뻔했다.

그럴 바엔 우선 그들에게 맡겨 놓는 편이 더 나았다.

‘내 것이 안 된다고 해도 오늘처럼 부르면 될 일이야.’

어차피 현천검의 진짜 주인은 나다.

아직 밝히기가 힘들 뿐, 그들은 내게 현천검을 주는 것이 맞았다.

이번 정사화합전에서 내가 진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불러내 내가 쓰던 검처럼 바꿔놓는다면 누가 알겠는가?

내가 기갑화가 돼서 그들 앞에 현천검을 들고 나서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쉽긴 하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은 되돌려 놓는 것이 맞았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찾을 테니.”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현천검이 부르르 진동했다.

나는 현천검을 보고 한번 씩 웃고는 말했다.

“다시 제자리로 가.”

내 말이 끝나자 현천검이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푸른빛을 한번 빛내더니 스르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처음 나타났을 때와 반대로 검은 점점 빛의 회오리로 변하더니 허공에 흩어졌다.

이제는 은은한 빛만 남은 공간은 현천검이 이곳에 잠시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스스스.

자휘의 명으로 현천검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푸른빛의 회오리가 검의 모양을 만들자 두 눈을 부릅뜬 채 현천검이 사라진 곳만 노려보고 있던 사마현이 소리쳤다.

“오오, 이것 보게나!”

사마현의 외침에 진무양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무슨 일…… 아!”

약 반 시진 동안 사라졌던 현천검이 돌아왔다.

사라졌을 때와 반대의 현상을 보이며 현천검은 빛을 뿜어냈다.

진무양과 사마현은 이 기이한 현상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일단 현천검이 돌아온 걸 보자 가슴에 안도감이 자리 잡았다.

“다행일세! 다행이야!”

사마현의 기뻐하는 모습과 달리 진무양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천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또 사라지면 어쩌나?”

오십 년 만에 밖으로 나와서인지, 오전부터 진동하던 현천검은 사라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반 시진 만에 돌아오긴 했지만.

사실 진무양은 은밀히 호위에게 현천검을 찾는 것을 지시한 상태였다.

검이 다시 온 것을 보고 지시를 취소하긴 했으나 한 번 사라진 검이 두 번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없어지더라도 일단 약속대로 일등에게 주고 나서 없어져야 할 텐데.”

“허허, 언제는 자네들 것이라며? 없어져도 상관없는가?”

“따지고 보면 현무학관이 되었든 사도전이 되었든, 생도에게 가서 없어지는 것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거야 그렇지.”

“우리의 책임은 우승자에게 전달할 때까지라는 것일세.”

반 시진 전, 사마현은 눈앞에서 현천검을 잃고 나서 진짜 복장 터져 죽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러다 보니 현천검에 대해 집착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게 되었다.

어차피 현천검은 정사화합전에서 우승한 생도가 가져갈 텐데, 이렇게 안달복달하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저 잘 보관하다가 우승자에게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지고 있어 봐야 이 검의 기능조차 쓸 수 없지 않은가. 괜히 속만 쓰릴 거, 신경 쓰지 않는 게 낫지 않나 싶었네.”

천갑무신의 검이긴 하나, 모양과 크기마저 달라졌다. 현천검이라 말하며 극소수의 사람만 아는 현천검의 진짜 의미.

그러나 사라졌던 현천검을 보며 그들은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잘 생각했네. 그럼 이제 자네 숙소로 좀 가지?”

진무양의 말에 사마현은 했던 말과는 달리 미련이 남았는지 계속 현천검을 보며 엉덩이를 떼지 못했다.

하기야, 무려 오십 년간 집착했는데 그 집착이 금방 사라질까.

“신경 끈다며?”

“신경이야 끄는데…….”

그는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고개를 홱 돌렸다.

“에잇, 생각해서 뭐 하냐. 나 진짜 간다!”

사마현은 더 있어 봐야 미련만 생길 것을 알기에 얼른 등을 돌렸다.

진무양은 빠르게 사라지는 사마현을 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온 현천검을 향해 말을 던졌다.

“혹시 천갑무신에게 다녀온 것이냐?”

그러나 현천검이 답할 리는 만무했다.

진무양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 *

정사화합전의 두 번째 날이 밝아왔다.

오전에 치러질 대결은 1차에서 못다 한 세 번의 대련이었다.

첫 번째 대련은 장하준 대 취영이었는데, 역시 청성파의 제자답게 장하준은 정공으로 취영을 이겼다.

자휘가 압도적으로 사마윤에게 이긴 후 현무학관의 기세는 높아졌다.

“역시 현무학관이다!”

“승리는 정파의 것!”

“자휘처럼 한 번에 이겨 버려라!”

생도들은 소리치며 응원했고, 응원 덕분인지 두 번째 대련에 나선 운하룡도 사도전의 생도에게 승리했다.

“우와아! 이제 다섯 번 이겼다!”

“한 번만 더 승리하면 놈들과 같아진다!”

세 번째 대련은 도준 대 사마혁.

오전의 마지막 대결을 바라보는 자휘의 눈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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