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76화
무림맹주와 사마련주가 동시에 일어서자, 수십의 검고 붉은 복장의 호위들이 대련장을 에워쌌다.
급작스럽게 냉각되는 공기.
“현천검이 왜 저러는 것이냐?”
차가운 사마련주의 물음에 무림맹주는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찌 아나? 나도 좀 알았으면 좋겠네.”
무림맹주 진무양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사마련주가 혀를 찼다.
“설마 현천검에 헛수작을 부린 것은 아니겠지?”
사마련주가 손짓을 하자, 그 어떤 개입도 막겠다는 듯 붉은 옷을 입은 호위들이 현천검 주위를 감쌌다.
“어허!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긴. 혹시나 이상한 짓을 할까 싶어 미리 차단하는 것일세.”
“내가 한 짓이 아니래도?”
“그거야 두고 보면 알 일 아닌가?”
진무양은 당황스러웠다.
오십 년간 가만히 있던 현천검이 왜 정사화합전이 시작되자 저렇게 진동을 한단 말인가?
사마련주의 의심도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나, 그로서는 무척이나 억울한 상황이었다.
“우선 두고 봅시다. 괜찮아질 수도 있음이니.”
“당연히 괜찮아져야 하지 않겠소? 하지만 그때까지 내 호위들이 현천검을 보호할 것이오.”
붉은 옷을 입은 호위들이 한발 앞서서 나오자, 검은 옷을 입은 호위들 또한 사나운 기세를 뿌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거야 원!”
진무양은 이 상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현천검은 계속 진동을 하고 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두 진영의 호위들이 대치 상태를 벌이고 있는 동안, 호위들에 가려 상황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현천검이 떨리는 것 같던데.”
“뭔가 이상이 생긴 듯하네.”
구경하던 사람들과 생도들이 웅성거렸다.
아직 첫 대련조차 치르지 못한 정사화합전에 처음부터 문제가 생기다니.
어쩌면 정사화합전이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긴장감까지 무겁게 돌고 있는 이때.
“으윽.”
자휘는 대련장 뒤에서 여전히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마석이 가슴의 통증을 유발시키고 있는 사이, 가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려 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검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원래의 자리라면 천갑무신의 곁일 가능성이 컸다.
자휘는 미쳤냐며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여기서 검이 자신을 선택한다면, 천갑무신의 후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었다.
자신의 무위는 이제 겨우 일류.
기갑의 힘을 쓸 수 있다 하나, 완전 기갑 상태가 아닌 이상 절정에 불과했다.
게다가 현천검이 갑자기 이상 징후를 보여 무림맹주와 사마련주의 기분이 몹시 저조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천갑무신의 후인임을 드러낸다?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할 수 있다면 현천검의 진동을 멈춰야만 했다.
‘허락은 나중에 하겠어. 지금은 우선 진동을 멈춰줘.’
가야가 즉답했다.
[알겠습니다.]
가야의 답과 함께 잠시 후, 대련장 중심에서 부르르 떨리던 현천검의 진동이 멈췄다.
“현천검의 진동이 멈췄습니다!”
대련장에서 들리는 사협의 외침.
현천검의 진동이 멈추자 무림맹주와 사마련주가 현천검에 가까이 다가서는 게 보였다.
현천검이 진동을 멈추자 가슴에서 느껴지는 격통 또한 중지되었다.
가야가 내 의지를 현천검에게 잘 전달한 모양이었다.
“허억…….”
나는 이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 호위들에 가려 모습이 보이지 않는 현천검 쪽을 바라보았다.
‘현천검이 내게 반응할 줄이야.’
그저 천갑무신이 쓰던 검이기에 더 강해질까 싶어 원했던 검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주인에게 오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내 동화율이 낮았으면 제멋대로 내게 검이 날아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마 현천검도 가야처럼 의지를 지닌 건 아니겠지?’
점차 가라앉는 울렁거리는 심장 부근의 마석은 여전히 검을 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기갑과 저 검은 하나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검은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려는 것일 테다.
진짜 검의 진짜 주인이었던 천갑무신과의 거리가 너무 떨어진 바람에 돌아가지 못했고, 크기만 작아진 듯했다.
‘가야, 내가 언제든 원하면 현천검이 내게 올 수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가야의 답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고 보니 굳이 이기지 않아도 얼마든지 검을 회수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현천검이 나에게 올 시기를 고민했다.
‘어쨌건 지금은 아니지.’
어차피 현천검이 내게 온다면, 최대한 얻을 건 얻은 후여야 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짓고는 현천검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진동을 멈춘 현천검 앞에 서 있는 당혹스러운 얼굴의 무림맹주가 있었다.
“비키시게나.”
진무양은 사마련주의 호위를 옆으로 물리려 했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 그들.
마치 무림맹주의 말 따윈 듣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가 보였다.
진무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사마련주를 바라보자, 그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비켜줘라.”
사마련주의 말이 나오고 나서야 붉은 옷의 호위들은 옆으로 비켜났다.
“쯧.”
진무양은 혀를 차고는 사마련주와 함께 현천검 앞에 섰다.
그리고는 기막을 쳐서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못 듣게 만들었다.
“현천검이 이제야 괜찮아졌군.”
“잠깐 이상이 생겼던 모양일세.”
갑자기 떨림을 멈춘 현천검을 사마련주와 무림맹주가 보며 가슴을 쓸었다.
“도통 무슨 이유로 그랬던 것인지 알 수가 없군.”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아는가? 지금껏 오십 년간이나 현천검을 맡은 건 자네잖나?”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란 말일세. 지난 시간동안 현천검이 진동을 한 적은 없었어.”
“그런데 오늘 왜 그랬단 말인가?”
“난들 아나? 천갑무신의 후인이라도 왔나 보지.”
“천갑무신의 후인은 개뿔.”
현재 일흔이 넘은 진무양과 사마현은 육십 년 전 정사화합전에서 만났던 사이였다.
당시만 해도 정사의 관계가 나쁘진 않다 보니 둘은 어느 정도 친했다.
그렇기에 아무도 듣지 않자 편안한 말투가 툭툭 던져졌다.
“그게 아니라면 생각을 좀 해보게. 자네들과 협력하기 위해 만든 자리에 내가 뭐 하러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진무양의 말에는 틀린 점이 없었다.
수작을 부린다고 해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부릴 것이지, 정사화합전 첫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부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도 정파의 수장이라는 명예를 짊어지고 있는 그였으니 말이다.
“일단 자네를 믿지.”
사마련주는 손짓으로 자신의 호위들을 완전히 물렸다.
훌쩍 사라지는 붉은 옷의 호위들.
진무양 또한 호위들을 물리고 기막을 걷자, 그들이 있던 자리 뒤로 어리둥절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사화합전을 계속 진행해도 되겠는가?”
사마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승낙에 진무양이 사협에게 전음을 날렸다.
[정사화합전을 진행하게.]
[현천검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협의 물음에 진무양은 답 대신 손을 들었다. 그러자 펄럭이는 소매.
후우웅.
동시에 그의 장력이 현천검과 현천검이 꽂혀 있는 바위를 감싸더니 서서히 뜨는 게 아닌가?
허공에 뜬 현천검과 바위는 사협이 있는 곳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사협의 자리.
그 어떤 의혹도 전혀 없게 만들겠다는 진무양의 의지였다.
현천검을 옮긴 진무양의 능력에 사람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허공섭물이다!”
사람들은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정도 무게의 물건을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옮길 정도라니!
역시 정도 최강을 자랑하는 진무양의 웅혼한 내력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진무양이 허공섭물로 현천검을 옮기는 것을 본 사마현이 입술을 비죽였다.
[내공 자랑 좀 그만하지. 거, 누군 허공섭물 못하나?]
[내공은 내가 네놈보다 높을 터인데?]
[흥!]
사마련주는 진무양을 향해 콧방귀를 날렸다.
그를 보며 피식 웃는 진무양.
진무양은 사협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현천검도 정리되었으니, 정사화합전을 진행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무림맹주의 명이 떨어지자, 사협은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잠시 현천검의 이상이 생겼으나, 이제 괜찮습니다. 이어서 정사화합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다행히 현천검이 큰 문제가 없다고 하자, 아까처럼 함성을 쏟아냈다. 그들로서도 참으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도들의 대련은 간만의 눈요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수천 금의 도박판이 지금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첫 번째 대련은 현무학관의 제갈신 대 사도전의 적하입니다!”
사협이 이름을 호명하자, 제갈신과 창을 든 적하가 긴장 가득한 모습으로 대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첫 대련의 승리는 아슬아슬하게 제갈신에게 돌아갔다.
천교관의 조언에 따라 제갈신은 적하의 반대편 쪽을 노렸고, 몇 번의 시도 끝에 공격이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사전준비 시간이 필요 없는 제갈신만의 독특한 진법도 적하를 이기는데 큰 지분을 차지했다.
곧바로 이어진 대련은 현무학관의 인하준과 사도전 고미의 싸움.
싸움의 승자는 사도전의 고미라는 생도였다.
일 승 일 패.
서로 승리와 패배를 한 번씩 주고받고는 정사화합전의 첫 오전 대련은 끝났다.
“축하한다!”
자휘의 축하에 제갈신이 조금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다친 건 아니지?”
“조금 다치긴 했는데, 신의님께서 봐주셔서 지금은 괜찮아.”
“적하란 놈이 창을 들고 덤벼서 걱정했는데 나았다니 다행이다.”
실제로 적하란 놈의 기세는 흉흉했다.
어떻게든 이기려고 힘을 주고 덤비던 놈은 되레 제갈신의 진법에 당했다.
“그냥 운이 좋았지.”
“운도 실력이라며?”
“그건 너고. 내 경우는 적하란 놈이 방심해서 그런 거야.”
“놈이 방심했다 치더라도 네 진법도 많이 늘었던데? 사전 준비작업 없이 바로 발휘되는 진법은 처음 봤어.”
“열심히 노력하긴 했지.”
진법을 칭찬하자, 그제야 제갈신의 입꼬리가 기쁜 듯 올라갔다.
자휘가 수련실에서 수련을 했다면, 제갈신은 항상 머릿속에서 자신의 진법을 개량하고, 또 개량했다.
그 결과, 암기처럼 쏘아낸 진법의 축을 사용해 사전 준비 시간이 거의 필요 없는 그만의 진법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겼으니 백영단을 받겠네?”
“이미 받았어.”
“벌써?”
“응. 백영단을 먹어야 내일 있을 두 번째 싸움에 도움이 될 테니 빨리 준 듯해. 오늘 대련이 모두 끝나면 천 교관이 직접 와서 백영단 흡수를 도와준다고 하더라.”
“이야, 천 교관님 다정하네.”
자휘의 말에 제갈신이 킥하고 웃었다.
하기야, 늘 강함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니 어떻게든 생도들이 강해지는 데 앞장서는 것일 테다.
‘그 사람이 날 추천한 건 아직도 의외지만 말이야.’
천 교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제갈신이 내 대련에 대해 말했다.
“넌 일곱 번째로 대련하는 구나.”
“아직 멀었지.”
일 차 열두 번의 대련에서 오늘 이뤄질 대련은 아홉.
오전에 현천검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긴 했으나, 남은 일곱 번의 대련은 끝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다.
남은 대련 중, 다섯 번째가 내 대련이었다.
진다는 생각 자체를 안 해 봤기에 편안하게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네가 내 대련 상대더라?”
제갈신과 함께 고개를 돌려보니 기고만장하게 서 있는 사마윤이 보였다.
“어, 그래.”
성의 없는 대답에 사마윤의 표정이 볼썽사납게 삐뚤어졌다.
“하! 별것도 아닌 게. 너 이름도 없는 곳에서 중소문파 특별전형으로 왔다며?”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격 떨어져서 그런다. 내가 너 따위 거지같은 놈이랑 같이 대련을 하다니!”
놈은 진짜 분해 보였다.
보통 대련의 상대는 비슷한 무력을 지닌 이들을 붙여주기 때문이었다.
“나야말로 너같이 곯아 터진 멸치가 상대가 돼서 기분 나쁘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뭐어?”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내가 거지같은 장원에서 온 건 맞지만, 그곳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를.”
사마혁과 사마윤은 같은 씨를 타고났는데도 저리 말하는 게 틀린지.
배다른 형제라 할지라도 둘은 너무 달랐다.
“하! 그 말은 네가 그 정도로 강하단 뜻이야?”
“그야, 네놈이 제대로 된 눈이 달렸다면 볼 수 있는 게 아니겠어?”
“뭐?”
“한 대 치겠다? 저녁에나 한판 붙을 텐데 미리 하게?”
자휘의 비아냥에 놈이 으득 이를 갈더니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