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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69화 (69/200)

기갑무림 69화

재시험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정사화합전에 나갈 인원들을 정하는 것뿐.

그 안에 들어가지 못 들어갈지는 모르겠으나…….

‘난 최선을 다했어.’

천무륭을 이긴 것은 운이 구 할 이었다.

기갑의 모든 기능을 끌어쓰지 않는 이상 내가 정면으로 맞붙어서 이기기 힘든 사람이 천무륭이었다.

‘놈의 진짜 실력은 절정이니까.’

난 아직 일류다.

조금씩 나아진다고는 하나, 천재인 천무륭은 한발 더 앞서나가고 있었다.

시간이 느려진 상태에서조차 날 따라잡는 놈이라니.

‘괴물 같은 녀석.’

그러니 날고 기는 무인 천지인 화산에서조차 천재로 인정받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를 이겼다.

세기의 천재라 불린 천무륭을 머리를 썼다고는 하나 어쨌든 이긴 것이다.

‘천반 신입생도 중 일등.’

난 천반의 신입생도 중 일등이 되었다.

그러나 일등이 되었다고 모두 정사화합전에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확률만 높아질 뿐.

그럼에도 천무륭과의 싸움에서 얻은 건 있었다.

‘신의 눈을 작동한 상태에서 싸울 때 어떤 상태가 되는지 알았으니.’

그리고 그에 대한 답도 알아냈다.

만약 천무륭과 싸우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들이었다.

내가 다시 한번 천무륭과의 싸움을 머릿속에서 복기하고 있을 때, 제갈신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여어! 천반 일등!”

제갈신의 손에는 작은 술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가 술병을 살짝 흔들더니 날 보며 씩 웃었다.

“설마 술?”

“마실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는 제갈신.

“이 형님이 널 축하해 주기 위해 준비했다 이거지.”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잔 두 개를 꺼내더니 술을 쫄쫄 따랐다.

“자.”

제갈신이 건네는 작은 잔에서는 술치고는 청량한 향이 풍겼다.

찰랑거리는 맑은 액체.

“학관 내에서 음주는 금지 아니야?”

“금지된 게 가끔은 필요할 때도 있지.”

나는 거절할까 하다가 한 잔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 잔을 받았다.

‘안 좋으면 취기를 날려 버리면 돼.’

이미 내공이 반 갑자를 넘어선 지금, 취기 따위야 충분히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작은 잔의 액체를 넘기자, 몸 안으로 퍼지는 향긋하고도 청량한 감각.

향을 맡아보니 약간의 술 냄새가 있긴 했으나 단순한 술은 아닌 듯했다.

“크으.”

제갈신이 가져온 술은 씁쓸하면서도 뒷맛은 달았다.

내가 마시자 제갈신 또한 한 번에 작은 잔을 탈탈 들이켰다.

“역시 좋네.”

고작 두 잔을 먹었음에도 작은 병의 술은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이거 꽤 귀한 거라고. 한 병에 겨우 두 잔밖에 안 나와서 하후홍이 없을 때 온 거야.”

그는 좀 미안하다는 듯 문 밖을 바라보았다.

“무슨 술인데?”

마시고 나서야 이 술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작은 잔으로 한 잔을 마셨음에도 꽤 기분 좋은 취기가 돌고 몸 안에 활력이 돌았기 때문이다.

“이 술은 말이지…….”

제갈신이 빙글 웃으며 대답하려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미약하긴 하나, 공청석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내공이 1년 상승합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먹었던 술을 입 밖으로 뱉을 뻔했다.

‘설마, 그 공청석유(空淸石乳)?’

전설에 불과할 줄 알았던, 천고의 영약이 고작 술에 들어가 있다고?

나는 뱉을 뻔한 술을 목구멍 속으로 꾹꾹 깊이 눌러 넣었다.

‘어쩐지 입에 착 감기더라니.’

공청석유가 들어갔다고 하자 괜스레 아쉬운 마음.

입맛만 다시는데 제갈신은 자신이 가져온 술이 이렇게 귀한 것임을 모르는지 낄낄대며 말했다.

“아버지가 숨겨놓은 술이야. 뭐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비밀 금고에 넣어놨더라고.”

“설마, 훔쳐 온 거야?”

“훔쳤다기보단 살짝 덜어온 거지. 어차피 아끼느라 안 드시는데, 나라도 먹는 게 남는 거 아니겠어?”

나는 제갈신을 보며 입을 뻐끔거렸다.

이미 공청석유가 들어간 술을 먹은 처지라 나 역시 공범.

“들키면 어쩌려고?”

“안 들켜. 들키지 않게 덜어온 만큼 비슷한 향이 나는 술로 채워뒀거든.”

“…….”

“괜찮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좀 먹었다는데 뭐 어쩌시겠어. 그냥 등짝 몇 번 맞고 끝나겠지.”

‘저기요, 무려 공청석유로 만든 술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말하나.

“……그래.”

어색한 표정으로 긍정했다.

목소리의 말을 들어보니 아주 약간의 공청석유가 들어간 듯했다.

그 정도는 몰래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뜬소문인 줄 알았는데 공청석유란 것이 진짜 있긴 하구나.’

그런 전설의 영약으로 만든 술을 가지고 있다니.

제갈세가가 역시 한 끗발 하는 집안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제갈신은 그런 날 보며 한번 웃더니 이번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 정사화합전에 나가는 명단을 입수했어.”

“어떻게?”

“현무학관에서 무림맹으로 먼저 출전자 명단을 알리거든. 작은아버지께 연락이 오면 빨리 알려달라고 했지.”

제갈신의 말을 듣자 괜히 가슴이 두근댔다.

“명단에 내가 있어?”

“거기에는…….”

제갈신이 대답에 뜸을 들였다.

만약 내가 없다면 무량후에 가서라도 부탁할 참이었다.

그만큼 현천검은 내게 중요했으니.

“당연히 네가 있지.”

“진짜지?”

되묻는 내 표정에는 안도감이 서렸다.

제갈신이 말하는 정보라면 거의 확실한 정보이기에.

“내가 왜 굳이 무림맹에 있는 인맥까지 동원했겠냐? 다 너를 위해서지.”

“고맙다.”

고맙다는 내 말에 제갈신이 어깨를 툭 쳤다.

“정 고마우면 나가서 다치지 말고. 네놈 성격상 현천검을 얻겠다고 무리할까 봐 걱정이다.”

“다치지 않도록 노력해 볼게.”

“그래. 그럼 줄건 다 전해줬으니 이제 난 가 봐야겠다.”

제갈신은 나가려다가 멈칫하더니 내게 작게 말했다.

“술 마신 거, 하후홍한테는 비밀이다?”

하기야 공청석유가 들어간 술을 먹었다고 어떻게 말할까.

‘요즘 하후홍이 예민해진 것 같아서 더 신경 쓰이긴 해.’

나는 알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제갈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 * *

다음 날.

현무학관의 중앙 벽에 정사화합전에 나가는 열두 명의 이름이 커다랗게 걸렸다.

<정사화합전 출전자 목록>

인반 : 인하준(五). 제갈신(一) 추천.

지반 : 소후(五), 정욱(四). 지엽(三) 추천.

천반 : 도준(五), 운하룡(四), 연운(四), 장하준(四), 혜연(三). 진자휘(一) 추천.

학과장 추천 : 천무륭(一).

인반과 지반의 출전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천반 생도가 정사화합전에 나가게 되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천반 교관이 진자휘라는 일 년 차 생도를 추천했다고?”

생도들은 믿기지 않았다.

교관 중 제일 강한데다가, 늘 강한 자만이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천반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자휘를 추천하다니.

“천무륭이란 생도를 이긴 걸 보면 약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하지만 무려 사파 놈들과 붙는 자리라고. 그런 자리에 천반 일 년 차를 갖다 붙여?”

“자휘라는 생도뿐인가, 이번에 일등도 못 한 천무륭도 학관장님 추천으로 올라가게 됐잖아.”

“걔야 워낙 화산에서도 유명한 놈이니 가능하다고 봐.”

“진짜 이해가 안 되네. 나는 천반 이 년 차 생도들이 될 줄 알았거든.”

“맞아, 종남의 서지후가 이 년 차 중 일등인데 끼지 못했다니 말이 안 되잖아.”

어차피 나가는 생도의 반은 하급 반 인원으로 채우긴 해야 했다.

그쪽 사도전의 사파 생도들도 반은 하급생도들로 채울 테니.

출전 인원의 절반은 원래 하급생도들로 채우는 게 규칙이었다.

그러나 무위가 높은 이로 나머지 인원을 채우는 것은 당연할 텐데.

의외의 인물인 진자휘와 천무륭이 뽑혔다.

“미래를 위해서가 아닐까?”

“미래?”

“자휘란 생도가 그동안 한 일들을 봐. 고작 일 년 차인데 어마어마하잖아?”

“화산의 기대주인 천무륭은 차기 장문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더라.”

“정말?”

“그래, 그러니까 이 년 차 생도 대신 택한 거겠지.”

“음,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

“우리보다 훨씬 더 무위가 높으신 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선택했겠어.”

“우리는 그저 사도전과 싸우는 현무학관 생도들을 응원하면 된다고.”

“그렇긴 해.”

벽에 붙은 공문을 보며 왁자지껄하게 한동안 떠들던 생도들이 사라지자, 조용해진 자리에 자휘가 와서 섰다.

괜히 생도들이 많을 때 갔다가 이런저런 말들을 듣느니, 아무도 없을 때 온 것이다.

자휘는 명단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고는 중얼거렸다.

“정말 의외긴 하네.”

제갈신으로부터 출전자 명단에 있을 것이란 것은 알았다.

그러나 천 교관이 자신을 추천할 줄 꿈에도 몰랐다.

‘무량후 학관장님이라면 나를 추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정작 자신을 추천한 이는 천 교관.

처음에 그렇게 대놓고 무시하더니 지금은 완전히 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천반으로 승급하자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한 것부터 정사화합전의 출전인에 자신을 추천까지.

‘그만큼 내가 가능성을 보인 건가?’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가장 나를 낮게 본 인물이, 지금은 제일 가능성 크게 본다는 말이었으니까.

강함을 세상의 기준으로 삼는 그에게 이제는 진짜로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지.’

스물네 명의 정사화합전의 인물 중 일등을 해야지만 현천검을 손에 쥘 수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이제 보름 남았네.”

정사화합전은 보름 뒤 사도전과 현무학관의 중간지역에서 열리게 된다.

정사간의 인물로 사협이라 불리는 무인의 장원에서 각각 오십 명 정도의 인원이 만나 정사화합전을 여는 것이다.

보기엔 조촐해 보이나, 속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사도전과 현무학관의 학장, 그리고 사마련주와 무림맹주가 만나는 자리니까.’

정사화합전은 무려 현천검이 걸려있는 자리이다 보니 최소한의 인원일지라도 구성원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장소는 악양.

무한에서 약 열흘이 걸리는 곳이다.

남은 날짜는 보름이니 이삼일 내로 출발할 가능성이 컸다.

눈앞으로 다가온 정사화합전을 생각하자 말아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 * *

녹림 칠십이채 중 사천에 위치한 삼십이채는 오늘따라 사람이 없었다.

총 팔십이 명의 녹림도 중 사십 명이 점심에 나가 밤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의 채주인 정량광은 나갔던 부하들이 돌아오지 않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새끼들이 왜 안 오는 거지?”

꽤 그가 무섭게 굴었기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재깍재깍 보고하는 부하조차 오지 않았다.

“한번 나가봐야겠군.”

녹림 칠십이채주 중 한 명인 정량광은 절정을 바라보는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

정량광은 거대한 체구의 몸을 일으키고는 허리춤에 그의 애병인 거부를 꽂았다.

“놈들을 찾으러 가시는 겁니까?”

채주가 나갈 채비를 하자 부채주가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저도 같이 갈깝쇼?”

“나 혼자 갔다 오도록 하지.”

혼자 간다는 정량광의 말에 부채주는 냉큼 고개를 숙였다.

“워낙 무위가 뛰어나시니 혼자 가시는 게 편하시겠죠. 그럼 저는 이곳을 잘 지키고 있겠습니다.”

녹림 칠십이채에 이름을 올린 만큼 그의 무공은 녹림도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했기에 부채주는 아무 걱정 없이 그를 배웅했다.

그리고 정량광 역시 마흔 명이나 되는 부하들이 큰일이 생겼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찾으면 기합 좀 줘야겠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찾으러 나서긴 했으나, 관에서도 못 건드리는 자신들을 누군가 해할 리는 없었다.

그저 놈들은 어디에서 술이나 먹고 뻗고 잘 것으로 생각했다.

정량광이 발을 구르자, 그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상승의 경공을 발휘한 정량광의 몸이 위로 워낙 빠르게 솟구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

거구임에도 경쾌한 경공을 구사하는 그의 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산 정상에 닿았다.

“여기서 한번 볼까.”

그는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을 휘돌아보기 시작했다.

안력을 돋구고 주변의 산을 돌아본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눈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붉은색?”

그가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약 삼백 장 거리 안쪽에서 붉은 무언가가 그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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