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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65화 (65/200)

기갑무림 65화

혈천교가 적미륵으로 인해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림맹에서는 오랜 시간 비밀리에 적미륵을 연구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주문에 따라 무인은 넘지 못할 벽을 뚫고 강해지게 되며, 죽기 직전의 병자라도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적을 행하는 기물.

그것이 적미륵이었다.

문제는 보기만 해도 혼미해지는 짙은 요기를 지닌 적미륵은 정파에서 사용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상성으로 치자면 혈천교의 무공이 적미륵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으니.

또한, 혈천교의 신녀는 적미륵이 있는 곳을 예지하고 찾아냈다.

마치 적미륵이 처음부터 그들을 위해서 존재했던 것처럼 말이다.

적미륵이 혈천교의 기물 중 하나라는 인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 손자만 나을 수 있다면 적미륵이란 것이 지옥에서 왔다 한들 뭐가 문제인가.’

어긋난 그의 애정이 파국을 부르고 있었다.

“끄르르륵.”

분명 몸이 낫는 주문을 외웠음에도 남궁비천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비틀어진 그의 몸이 사방으로 꺾이며 괴이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남궁한영과 장로들은 당황했다.

“이 아이가 왜 이러는 것이냐?!”

놀란 나머지 남궁한영은 붉은 종이를 가져온 장로의 멱살을 잡았다.

다른 장로가 그를 말리며 다급히 말했다.

“몸이 낫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고정하시고 잠시만 더 기다려 보시지요.”

적미륵이 워낙 귀한 나머지 남궁비천에게 사용하기 전에 시험을 해보지 못했다.

오랜 연구결과도 반 이상은 혈천교를 통해 알려진 것이다 보니, 사실상 오늘의 일 자체는 도박이라 부를 만했다.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 것이건만……!

남궁한영은 장로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으며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

“그륵, 그륵.”

이제는 온몸을 경련하며 몸이 붉게 변하는 남궁비천.

뒤집어 까인 눈은 하얀 눈자위만이 보였고 입에서는 거품이 연신 솟아오르고 있었다.

“비천아…….”

남궁한영은 손자의 손을 잡으며 이름을 불렀으나 남궁비천은 들을 수 없어 보였다.

그는 원인을 찾기 위해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 저것 때문인가?”

고개를 들자 보이는 황금빛 기운들.

적미륵에서 황금 돌을 뽑았을 때 빛과 함께 생긴 기운들이었다.

황금빛 기운들은 여전히 위에서 넘실대고 있었다.

남궁한영은 직감적으로 저 빛들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 빛들이 우리 손자의 몸에 들어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는 게야!”

그의 눈이 황금빛 돌을 뽑힌 채 뒹굴고 있는 적미륵에 닿았다.

‘만약…… 적미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맴도는 것이라면.’

남궁한영의 손이 지체 없이 적미륵을 쥐고는 힘을 가했다.

파삭!

그의 손에서 박살이 나는 적미륵.

순간 적미륵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적미륵이 부서진 기점으로 일렁이는 황금빛 기운들.

후웅.

동시에 석실 천정에 머물던 황금빛은 남궁비천에게 한순간에 쏟아져 내렸다.

남궁한영의 생각이 맞았던 것!

팟.

순간, 몸 안으로 흡수되는 황금빛.

황금빛이 몸에 들어가자 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단말마가 새어 나왔다.

“으으!”

남궁비천의 몸에서 신비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스스.

남궁비천의 꺾인 몸이 서서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비쩍 말랐던 살들이 부풀어 오르며, 예전의 잘났던 외모가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비뚤어진 입은 제자리를 찾았으며, 근육까지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으로 변했다.

생체의 시간을 되돌리듯 말이다.

“……!”

남궁한영과 장로들은 이 신기한 기사를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천고의 기물이로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놀라움과 더불어 걱정이 자리했다.

잔악한 혈천교인들이 사용하고 숭상하는 적미륵이 어떤 부작용을 불러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궁한영 또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선은 남궁비천을 살리고 봐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가 생기면 고치면 된다!’

생명보다 소중한 손자를 죽게 만드느니, 우선은 어떻게든 살려놓는 게 중요했다.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는지, 반 각의 시간이 지나자 남궁비천의 모습은 거의 예전과 비슷하게 바뀌어 있었다.

스륵.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흰자위만 보였던 눈은 어느새 검은 눈동자가 되돌아와 있었다.

예전의 총기 넘치고 자신만만했던 남궁비천의 모습이 돌아온 것이다.

남궁비천은 이 상황을 인지하느라 한동안 천정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였다.

그 역시 믿을 수 없는 기사에 한순간 멍해졌던 것.

“……아.”

자신이 이제 살아났다는 실감이 들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이름.

“할아버지.”

남궁한영은 손자가 자신을 부르자, 걷잡을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비천아, 이제 정신이 드느냐?”

“……네.”

결코 해서는 안 될 적미륵의 술법으로 손자를 살렸다.

그러나 자신을 부르는 남궁비천을 바라보는 남궁한영의 눈에는 단 한 톨의 후회도 없었다.

남궁비천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와 주변에 서 있는 장로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를 낫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궁비천은 모든 사람을 향해 무릎을 굽혀 절을 하려 했다.

“아닙니다, 일어나십시오!”

장로들은 무릎을 굽히는 그를 황급히 잡고는 일으켰다.

“저희들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이제 겨우 나았는데 몸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그들은 남궁비천을 일으키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멀쩡한 모습으로 자신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남궁비천을 보자 걱정이 조금은 가신 것이다.

혹시라도 마기에 물들까 걱정했는데, 겉모습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남궁비천의 모습은 오히려 전보다 강하고 늠름해 보였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이 모습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던 남궁한영은 남궁비천을 얼싸안았다.

그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흘렀고, 장로들 또한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비록, 해서는 안 될 방법을 쓰긴 했으나 남궁세가의 하나밖에 없는 적자를 살렸다.

그러나…….

자신을 살린 이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궁비천의 눈에는 알 수 없는 붉은 기운이 잠시 스쳤다가 사라졌다.

그가 슬쩍 내리깐 시선의 방향은 적미륵 흡수를 반대했었던 유 장로를 향해 있었다.

* * *

만리향(萬里香)이 사라졌다.

개방의 사결제자 지무흔은 현재 남궁세가 근처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던 중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있었던 만리향이 갑자기 사라지자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만리향은 어지간하면 사라지지 않는데.’

그는 두 눈을 들어 어둠에 잠긴 남궁세가의 전각들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이상하게도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남궁세가.

그 안에서 만리향이 증발했다.

아무리 닦아도 향이 사라지지 않는, 만리향이 말이다.

‘뭔가 수상해.’

의심을 담은 눈이 남궁세가의 화려하지만 적막한 전각들을 향했다.

얼마 전 정보전달을 위해 현무학관에 갔다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도 안면이 있었던 홍이 죽었고, 그 범인이 남궁세가라는 것.

홍을 죽였을 뿐 아니라 무림맹에서 사라진 적미륵이 그들의 소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뒷골이 당겨올 정도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지금은 정말 의심스럽단 말이지.’

무량후는 그에게 남궁세가의 조사를 부탁했다.

지무흔은 불길함을 느끼고 조사를 안 할까 했지만, 무량후가 너무 간절해 보이는 바람에 조사를 수락하고 말았다.

‘이번 일의 원흉이 적미륵이라 이거지?’

조사를 해야 하는 만큼 무량후는 적미륵에 대해 지무흔에게 알려주었다.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개방의 사결제자인 그는 적미륵의 존재는 알고 있긴 했었다.

다만, 적미륵이 가진 특별한 이능에 대해서까지는 모르고 있었을 뿐.

‘진짜로 남궁세가가 적미륵의 이능을 노리고 무림맹에서 훔쳐 갔을 줄이야.’

그것도 주화입마를 당한 남궁비천을 치료하게 위해서 그랬을 거라는 말을 무량후가 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정파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남궁세가였다.

그런 남궁세가가 설마 그런 일을 벌일까 생각했었으나.

뒤를 팔수록 무량후의 말은 맞았다.

그 증거로, 만리향을 쫓아온 곳에는 남궁세가가 있었다.

‘무림맹에서 사라진 적미륵이 남궁세가로 간 것은 확실해.’

무량후가 묻혀놓은 만리향이 급작스럽게 사라진 지금.

뭔가 일이 벌어졌다고 봐야 했다.

만일, 남궁세가인들이 훔친 적미륵으로 주화입마에 빠진 남궁비천을 고쳤다면.

‘인과관계가 들어맞아.’

조만간 결과는 나올 것이다.

무량후의 말대로라면 남궁비천이 나은 이상, 남궁세가 안에서만 머물 리는 없을 테니.

‘무량후 님께 전해야겠어.’

수풀에 가려진 어둠 속, 스며들어있던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자휘는 굳건히 닫힌 개인 연무실 안에서 오전에 보았던 시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천 교관이 외공의 약점을 고민하며 내놓은 질문.

그 질문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자휘에게도 적용되는 질문이었다.

“만약 기갑을 외공이라 친다면?”

기갑 위로 진천기공을 씌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부분 기갑이 되는 부분 외의 약한 신체를 진천기공을 통해 보완할 수도 있으니.

천교관의 고민은 자휘의 고민과 끝이 맞닿아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부분 기갑 기능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원래 기갑 기능은 위험한 상황이 되어서야 제 마음대로 나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화율이 높아진 상태.

난 이미 일반 진천인의 최대치인 100을 찍었으니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 후 완전 개방화되었을 때 이후 목소리가 공손해지지 않았던가.

이제는 내 의지대로 기갑을 꺼내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곧바로 목소리에게 말했다.

“부분 기갑 기능 개방.”

목소리가 바로 답했다.

[시전자의 동화율이 100이 되었으므로 의지대로 기능발현을 하실 수 있습니다.]

[부분 기갑 기능이 개방됩니다.]

역시……!

내 추측은 맞았다.

동화율 100이 된 기점으로 이제 기갑의 기능은 내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촤르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매 안쪽으로 기갑이 생겼다.

차가우면서도, 짜릿한 힘이 느껴지는 기갑의 느낌.

늘 느끼는 거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

“어디 한번 볼까.”

아예 윗도리를 벗었다.

그리고 팔에 감긴 기갑을 처음으로 자세히 보았다.

그동안 항상 급할 때 기갑을 발동하느라 한 번도 자세히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야 기회가 생겼다.

“기갑이 이렇게 생겼구나.”

자세히 기갑을 뜯어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은색의 적당히 얇은 둘레는 손목에서 팔뚝까지 감싸고 있었고, 그 위를 작은 방패마냥 알 수 없는 금속이 있었다.

갈라진 금속들 사이로 보이는 은은하게 반짝이는 빛들.

빛은 은색의 기갑과 어울려 이 세상 것이 아닌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멋지네.”

나는 팔뚝을 살짝 쳐보았다.

퉁.

경쾌한 금속성의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좀 더 세게 기갑 부분을 손으로 내려쳐 보았다.

그러자 반탄력에 의해 내 손은 한 뼘 밀려나면서 손바닥이 얼얼했다.

“이게 단순히 방어만 하는 게 아니라 친 만큼의 충격도 주는구나.”

그래서 팽지휴의 강한 손가락이 부러졌을 것이다.

여기다가 진천기공까지 더한다면 어떻게 될까?

“진천기공 삼 성, 석화.”

진천기공을 발동시키자 가슴 부위에서 은은하게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신을 팔로 집중하자 은은한 빛은 몸을 타고 돌더니 팔로 향했다.

기갑 위로 둘러지는 진천기공.

“됐다!”

기의 막이다 보니 기갑만 보일 뿐 진천기공으로 만든 기의 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팔에서 은은하게 나던 빛이 좀 더 촘촘하게 보였다.

휙.

부분 기갑화된 팔을 휘둘러 보았다.

그러자 좀 더 매끄럽게 움직이는 듯한 느낌은 내 착각일까?

강한 기갑에 기공을 두른다고 해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내 가정이 맞았음에 만족하려는데.

“……잠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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