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59화
내공으로 치환한다는 목소리의 말에 나는 당연히 긍정했다.
“동화율 10을 내공 10년으로 바꿔줘.”
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소리가 답했다.
[동화율 10을 내공으로 치환합니다.]
[동화율이 70까지 개방되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온몸으로 짜릿한 기운과 함께 뜨거운 기운이 구석구석 퍼져 나갔다.
뻐근해지는 단전.
순식간에 십 년이란 내공이 늘어나자 뱃속이 타오르는 듯했다.
후끈한 전신의 감각에 나는 몸을 식히고자 숨을 깊이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후우.”
그럼에도 식지 않는 열기.
급작스레 늘어난 10년의 내공은 온몸의 세맥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늘어난 10년의 내공을 안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좌선을 했다.
몇 번의 소주천을 거치자 점차 안정되어가는 내공.
뜨거웠던 열기는 어느새 청량함으로 바뀌어 경쾌하면서도 기분 좋은 힘을 내고 있었다.
“이게 30년 내공이구나.”
전신에 차오르는 포만감.
30년이면 반갑자의 내공답게 지치지 않는 활력을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천반의 일반적인 내공 수준이 30년이 조금 넘는다고 볼 때, 비로소 나는 천반에 맞는 내공을 지니게 된 것.
그리고 기갑을 제외하더라도 완연한 일류 무사의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
‘쓸 수 있는 동화율은 30.’
100중에 70까지 개방했으니 이제 남은 동화율은 30이었다.
“진천기공과 연동해 줘.”
연동해 달라는 말에, 이번에도 목소리는 바로 대답했다.
[진천기공과 연동합니다.]
연동한다는 말이 들리자 진천기공의 기운이 확 퍼지더니 온몸으로 회오리치듯 들끓어 올랐다.
[내공이 30년이므로 진천기공 3성으로 곧바로 진입합니다.]
후욱.
3성이 되자 마치 진천기공이 온몸을 한 겹 둘러싼 느낌이 들었다.
때맞춰 진천기공의 구결을 외우고, 마지막 진천지합(眞天之合)의 단계에 이르자 진천기공 3성에 다다랐다.
“진천기공 삼 성, 석화(石化).”
일성이 신목이요, 이성이 신강목이었다. 단단함으로 따지자면 나무에서 이제 돌이 된 것이다.
진천기공 자체가 몸을 보호하는 기공이니, 이제 진천기공 하나만으로도 돌과 같은 단단함을 지니게 되었다.
진천기공은 금강불괴(金剛不壞)라는 외공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결을 달리했다.
겉 근육과 피부를 단련해서 도검이 불침하는 금강불괴와 달리, 진천기공은 말 그대로 기공법(氣功法).
몸 위를 감싸는 기운과 몸 자체를 강하게 하는 무공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보호 부위를 세밀하게 감싸는 진천기공은 마치 하나의 기로 만든 갑옷과 같았다.
몸에 두른 진천기공의 강함을 느끼고 있는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12장의 비급의 내용 중 3장이 공개됩니다.]
삼 성의 진천기공을 이루자 공개되는 진천비급 3장.
[진천비급 3장.]
[진천권 하(下)권을 엽니다.]
두 권으로 나뉘었던 진천권.
삼성이 되어서야 나머지 편이 공개되고 있었다.
‘드디어 하권이다!’
갑자기 허공에 나타나 펼쳐지는 책.
지난번처럼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책에서 글자들이 스르륵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천권 하(下)권은 공격법에 대해 다룬다.]
[상권에서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원리를 이용해 적의 공격을 흘렸다면, 하권에서는 공격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적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돌려줄 수 있다고?
나는 더욱 눈을 크게 뜨고 허공에 나타나는 새로운 내용을 바라보았다.
[적의 공격이 기로 이루어진 공격이라면 진천기공은 공격이 닿는 부분을 기의 그물을 만들어 가둘 수 있다.]
[진천망(眞天網)이라는 무공은 적의 공격을 기의 그물 속에 가둔 후,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나오는 진천비급의 독문 무공 중 하나인 진천파(眞天波) 중 하나로써, 진천권에도 같이 적용되는 기술이다.]
글씨들은 잠시 후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여러 손 모양과 각기 다른 동작들을 한 그림들이었다.
열두 개의 그림이 순서대로 지나가자, 진천비급은 빛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진천망이라.”
나는 허공에서 사라진 문구들과 그림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했다.
진천망(眞天網)은 진천기공으로 상대의 공격을 그물 감싸듯이 감싸서 그대로 상대에게 던져 버리는 것이다.
숙달될수록 진천망은 더 촘촘해지고 반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공격법.
게다가 수련도가 높아질수록 종래에는 그물 자체가 무기가 될 수 있는 독특한 무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기의 그물부터 손안에 구현해 내야만 했다.
‘그러니까 두 손으로 기공으로 이뤄진 촘촘한 그물을 만들라는 거네.’
그물처럼 생긴 진천 기공 안에 잡힌 적의 무공은 내 뜻에 따라 그대로 상대에게 튕겨 나가게 된다.
기로 만든 공격이든, 아니면 칼질이든 간에 진천기공의 그물 속에서 모조리 그대로 되돌려지는 것.
‘우와, 완전 사기적이네.’
하지만 기의 그물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공에 뜬 모든 그림과 방법을 배웠음에도 나는 몇 번이고 헛손질했다.
“이런 사기적인 무공을 어떻게 쉽게 얻겠어.”
어려운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기의 그물을 쉽게 만든다면 어느 누구나 고수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새벽이 될 때까지 진천망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 * *
새벽을 알리는 현무학관의 종소리가 학관 내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하후홍은 비어 있는 자휘의 자리를 보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지금까지 수련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하후홍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 조심스럽게 숙소로 들어왔다.
평소와 달리 지쳐 보이는 자휘였다.
“……이제 들어온 거야?”
“아, 나 때문에 깬 거야?”
일어난 하후홍을 보며 자휘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지, 지금 일어났어.”
“벌써 아침이 됐구나.”
“지금까지…… 수련한 거야?”
“응.”
자휘의 답에 하후홍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수련도 좋지만, 몸도 좀 생각해야지.”
“그렇긴 한데 마음이 급해져서 말이야.”
마음이 급하다는 자휘의 말에 하후홍이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냥. 빨리 강해지고 싶어서.”
약간 지친 듯 말하는 자휘의 얼굴엔 얻은 것이 있는지 뿌듯해 보였다.
“그, 그렇구나.”
전에도 말했지만 하후홍의 눈에는 자휘가 강해 보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강해지려 하는 것일까.
하후홍은 물어보기 위해 입을 몇 번 벙끗대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자신도 숨기는 게 많은 판에 자휘라고 숨기고 싶은 게 없을까.
하후홍은 대신 다른 것을 물어봤다.
“나야 다른 생도와 같은 방을 쓰느니 너와 같이 있는 게 좋지만…… 너는 왜 천반의 개인 숙소를 쓰지 않는 거야?”
자휘는 지난번 생도들 앞에서 무량후에게 기존 숙소를 그대로 쓰겠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수련실은 사용 중이었다.
하후홍으로서는 굳이 잠을 자는 숙소를 인반으로 할 필요가 있나 궁금했다.
“그건, 내 마음가짐 때문이야.”
“마음가짐……?”
“응. 개인 수련실이야 맘껏 수련하니까 좋다고 해도 천반의 고급스러운 숙소에서 생활하다 보면 나태해질 것 같아서.”
자휘는 진심이 반쯤 섞인 답을 내놓았다.
인반 숙소에서 머무는 가장 큰 이유는 진천비를 수련하기 위해 밖을 나갈 때 이곳의 경비가 거의 없어서였다.
그러나 이것을 사실대로 하후홍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혹시 내가 밤늦게 나가서 늦게 들어와서 불편해? 네가 불편하다면 방을 바꿀게.”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자휘가 불편하면 방을 바꾼다고 하자 하후홍이 바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그저…… 네가 좋은 천반 숙소를 놔두고 이곳에서 불편하게 있는 게 신경 쓰여서 물을 것뿐이야.”
당황하는 하후홍의 얼굴을 보며 자휘가 싱긋 웃었다.
“나는 여기가 전혀 불편하지 않아. 전에 있던 진가장에 비하면 여긴 정말 천국인걸.”
“그, 그래?”
하후홍 또한 천금장에서 좋지 못한 대우를 받았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의식주는 최고로 대우받았다.
그런데 자휘는 얼마나 괴상한 곳에 있었길래 이 닭장 같은 곳이 천국이라 하는 걸까.
게다가 이곳에 있는 게 마음가짐 때문이라니.
자신도 좋은 곳에 있다가 이곳에 오니 더 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그, 그렇구나. 네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알겠다니 다행이네.”
자휘는 침상 곁의 물을 마시는 하후홍을 보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이곳에 좀 더 있고 싶은 이유는 너희가 좋아서야.”
자휘의 말에 하후홍이 먹던 물이 사례가 걸린 듯 캑캑댔다.
“큽……! 뭐, 뭐라고?”
하후홍이 후흡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되물었다.
놀라 하는 하후홍을 보며 자휘가 킥킥대며 웃었다.
“우리는 친구잖아.”
“그래, 우리는…… 친구지.”
자휘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자리로 가서 땀에 젖은 무복을 갈아입으며 말을 이었다.
“진가장에서는 친구가 없었거든.”
“네가?”
현무학관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을 말하자면 진자휘였다.
인반 생도들의 우상이자 동경의 대상.
또한 다른 반 생도들에게도 질투와 경쟁의 대상이 되는 자휘가 친구가 없었다고?
하후홍의 동그랗게 변한 눈을 보며 자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몸이 워낙 약했거든. 그래서 집 밖으로 돌아다니는 건 꿈도 못 꿨지.”
그러니 친구가 생길 턱이 있나.
하루하루 진가장에서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었던 자휘에게 친구란 존재 자체가 사치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너와 제갈신을 친구로 사귀었어.”
자휘의 말에 하후홍은 수긍한다는 듯 그저 고개만 주억였다.
사실 그 역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자휘와 제갈신이었다.
“난 여기가 좋아. 천반은 좀 삭막해서 말이야.”
실제로 자휘는 이곳이 편했다.
천반의 숙소는 화려하긴 하나, 불편할 것만 같았다.
자휘의 사적인 과거사에 하후홍 또한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있어서 이곳이 좋아.”
더듬지 않고 말하는 하후홍.
“네가 아니었다면…… 난 이곳에서 버티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또다시 천금장으로 돌아가 지겹도록 같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강해진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가짜 껍데기에 갇혀, 평생을 그렇게 우울하게 살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처음 현무학관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선배 생도들의 괴롭힘에 차라리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그들 위에 당당히 서는 자휘를 보며―하후홍 또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꿈꾸기만 했던 것들을 하후홍은 조금씩 실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휘가 수련하며 없는 시간 동안 하후홍 역시 그만의 수련을 하고 있었다.
“넌…… 내 영웅이야.”
하후홍이 눈을 빛내며 자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휘가 손을 휘저었다.
“영웅은 무슨, 낯간지럽게.”
됐다는 듯 손을 흔드는 자휘를 보며 하후홍은 슬쩍 미소 지었다.
“진짠데.”
“어우, 남자끼리 무슨 영웅 타령이냐?”
“……그런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하후홍.
그러나 자휘는 옷을 갈아입느라 그런 하후홍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너는 옷 안 갈아입어?”
무복을 갈아입은 자휘가 묻자, 하후홍은 이미 다 입었다는 듯한 바퀴 돌았다.
“나는 아까 다 입었어.”
“그렇네? 그럼 이제 나가자.”
“응!”
하후홍과 자휘가 방문을 나서려는데, 익숙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모란 향기였다.
“자휘야!”
밝은 얼굴로 문 앞에 선 이는 다름 아닌 모용설화.
그녀는 오늘 면사조차 하지 않은 채 자휘를 새벽부터 찾아왔다.
말간 얼굴이 빛나는 모용설화의 모습은 싱그러웠다.
“아침부터 숙소에 무슨 일이야?”
자휘의 물음에 모용설화가 혀를 귀엽게 빼꼼 내밀었다.
“오늘 천반이 다 같이 모이는 날인걸.”
“그래?”
“응. 네가 모를 것 같아서 같이 갈 겸 찾아왔지.”
모용설화는 얼른 가자는 듯 자휘의 한쪽 팔에 자신의 팔을 꼈다.
“얼른 가자.”
“그래, 잠깐만.”
자휘는 고개를 돌려 하후홍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