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갑무림-37화 (37/200)

기갑무림 37화

이튿날.

드디어 현무대전이 시작되었다.

인반의 신입 생도들을 실은 한 척의 배가 강을 가로질러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섬이 현무도다. 저곳에서 일주일간 현무대전이 열린다.”

지도 교관의 말에 생도들의 눈이 모두 현무도로 향했다.

작은 섬일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큰 섬이 눈앞에 보였다.

지도 교관은 아이들을 향해 설명을 이었다.

“너희는 다른 반 생도보다 약 두 시진 먼저 도착할 것이다. 그 두 시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일주일간 생존을 할 수 있으니 잘 결정하길 바란다.”

지도 교관의 말에 생도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현무대전이 시작이 되자 긴장한 탓이었다.

지도 교관은 각자 메고 있는 가방을 턱으로 가리켰다.

“칠 일 치의 마른 건량과 물은 신입 생도들에게만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식량은 오히려 상급 생도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알아서 주의하도록.”

지도 교관의 말에 생도 하나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며 물었다.

“상급 생도들이 식량을 못 건드리게 하면 되는데, 왜 빼앗게 두는지 궁금합니다.”

생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몇 명의 생도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러나 그런 생도들의 행동을 보던 지도 교관이 서늘한 눈빛으로 답했다.

“너는 적에게 왜 내 목숨을 가지고 가냐고 물을 것이냐?”

“그, 그건…….”

그는 모두 똑똑히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현무대전의 취지는 살벌한 무림을 미리 겪어보라는 데 있다. 현무도에서는 같은 반을 제외하곤 모두 적이다. 적에게 머리띠를 빼앗기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해라.”

지금 신입생도들은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무대전은 생각보다 무림이라는 현실적인 세계에 굉장히 충실했다.

그는 일갈하듯 차가운 목소리로 인반 생도들에게 말했다.

“무림은 강자존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너희의 목적은 오직 하나.”

그가 피우는 기세에 생도들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현무도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무림의 축소판이라는 교관의 말에 생도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큰 난관을 거치지 않고 자라온 그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기도 했으니까.

잠시간 다들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 있는 사이.

지도 교관이 현무도의 도착을 알렸다.

“이곳이 현무도다.”

생도들이 앞을 보자, 배는 어느덧 무인도의 뭍에 닿아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광경의 섬.

현무도는 가운데 큰 화강암 석이 둥글게 솟아나 있고, 주변은 나무숲이 짙게 어우러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거북의 모양을 띤 현무도는 어딘가 음침해 보였다.

“한 가지 조언하자면, 힘을 합쳐라. 그것만이 너희가 여기서 살아남는 길이다.”

인원은 많지만 현무학관에서 제일 약한 인반.

인반이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했다.

‘과연 가능할까.’

자휘는 배에서 내리면서 인반 생도들을 돌아봤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긴장하여 굳어 있는 그들.

사람이 많으면 유리할 것 같지만, 그만큼 의견이 모이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인원이 많은 만큼 숨기도 힘들 것은 자명했다.

생도들이 배에서 내려 현무도를 둘러보는 동안.

지도 교관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같은 반 선배 생도라 할지라도 음식을 빼앗을 수 있으니 주의해라. 본능적인 욕구 앞에서는 선후배 사이도 없을지도 모르니.”

같은 반 선배 생도가 음식을 빼앗을 수 있다는 말에 생도 하나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지도 교관은 답 없이 의미심장한 미소만을 짓고는 배를 타고 사라졌다.

생도들은 잠시 멍하게 멀어져가는 배를 바라보았다.

“야, 정신 차려. 지금 떠난 배를 볼 때가 아니야.”

백미령의 앙칼진 목소리가 생도들의 정신을 깨웠다.

그녀는 조급해 보였다.

“우리에겐 정확히 한 시진밖에 시간이 없어. 반 시진 뒤에는 지반 신입생도가 올 테고, 또다시 반 시진 뒤엔 천반 신입생도가 올 테니까.”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신입생도 전체에게 미리 준 시간이 두 시진.

그들에게 특별히 시간을 좀 더 주었다 해도 절대 많은 시간은 아니었다.

생도들은 정신을 퍼뜩 차리고는 어디에 자릴 꾸릴 것인지 고민했다.

백미령이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동굴은 어때?”

뭍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제법 큰 동굴.

밤이슬이나 주변의 동물들을 피하기 좋아 보이는 곳이었다.

백미령이 동굴을 보며 말했다.

“난 저 동굴이 좋을 것 같아.”

그러자 제갈신이 말렸다.

“그곳은 너무 잘 보이는 자리다. 상급반 생도에게 금방 잡힐 거야.”

“그럼 너는 어디가 좋다고 생각하는데?”

생도의 물음에 제갈신이 먼 곳의 위쪽을 가리켰다.

“저곳.”

그러자 이번엔 백미령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지금 설마 나무 위를 말하는 거야? 저기야말로 잘 보이잖아!”

“정확히는 나무 위가 아니라, 큰 나뭇가지 사이다. 높은 만큼 적이 뭘 하는지도 볼 수 있지. 그리고 내 진법이라면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어.”

“그럼 저 동굴 앞에 진법을 쓰면 되잖아.”

“동굴이 넓은 데다 진법이 만능은 아니야. 금방 들킬 확률이 커.”

“나무는 너무 불편해.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하라는 거야?”

둘이 팽팽하게 맞붙자, 난감해진 다른 생도가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던 자휘에게 물었다.

“자휘야 너는 어떻게 생각해?”

생도들의 눈이 자휘를 향했다.

자휘는 잠시 고민했다.

“좀 더 둘러보고 결정하고 싶은데.”

자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자리를 잡으려 하다 보니 선택지가 좁아졌던 것이다.

“우리 좀 더 찾아보자.”

“그래. 찾다 보면 더 좋은 곳을 찾을 수 있겠지.”

제갈신과 다른 생도들이 수긍하자, 백미령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백미령의 승낙에 옆에 여생도들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둘로 나눠서 머물 곳을 찾고, 다수결로 선택하는 건 어때?”

자휘의 말에 다들 찬성하자, 둘로 나뉜 생도들은 빠르게 머물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둘로 나뉘었던 생도들이 한곳에 모였다.

백미령이 먼저 말했다.

“저 숲에서 반 각 정도 들어가면 작은 동굴이 있어. 우리는 그곳이 좋을 것 같아.”

이번에는 송화운이 말했다.

“현무도의 뒤편에 큰 나무가 있는데, 절벽의 튀어나온 부분과 맞닿아 있어. 그곳이라면 들키지 않을 것 같은데…….”

사실, 송화운이 발견한 자리가 가장 좋긴 했다.

자휘 역시 그곳이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그곳은 너무 좁아. 많아야 열 명이 들어갈 자리야.”

인원이 스무 명이나 되는 만큼, 숨기도 애매했다.

“그럼 어쩌지? 반으로 나뉘어서 숨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장점이 사라져. 되도록 같이 있는 게 우리한테 좋지 않겠어?”

자휘가 이번엔 제갈신에게 물었다.

“너는 어때?”

“나도 송화운이 말한 곳이 좋긴 해. 그곳이 좁은 게 문제라면, 나무 위와 밑동 쪽에 인원을 나누면 될 것 같거든. 그 정도 인원이라면 진법으로 가릴 수 있어.”

진법으로 얼마간은 다른 생도들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들통난다 해도, 절벽 위의 생도들은 들키지 않을 테니.

반은 살아남을 터였다.

“이제 어디로 할지 정하자.”

자연스럽게 인반의 주도권을 쥐게 된 자휘가 생도들에게 물었다.

백미령이 말한 동굴과 송화운이 발견한 곳.

두 곳을 다수결로 투표한 결과, 송화운이 발견한 곳을 열다섯 명의 생도들이 택했다.

백미령이 약간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절벽 위와 나무, 둘 중 어디서 머물 것인지는 제비뽑기를 하자.”

자휘의 말에 백미령이 나섰다.

“우리를 절벽 위로 주면 안 돼?”

“하지만 너희는 다섯 명인걸.”

“우리만 절벽 위를 쓰겠다는 건 아니야. 다른 생도 다섯도 같이 쓰면 되잖아.”

백미령의 말에 자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 그렇게 되면 나무에서 머무는 동료에 비해 너희만 편한 거잖아.”

“그렇지만 우리는…….”

“꼭 절벽 위에 있어야 한다면 보초를 서.”

“다섯명이서 돌아가면서 종일?”

“그래.”

“……좋아.”

백미령의 승낙에 자휘가 다른 생도들에게 물었다.

“혹시라도 내 생각에 불만이 있으면 말해줘.”

“알아서 보초를 서준다니 우리야 좋지.”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대신 온종일 보초를 선다면 다른 생도들도 큰 불만은 없었다.

“나무 쪽도 머물 수 있게 만들면 돼. 그 정도야 진법으로 가릴 수 있으니까.”

제갈신도 괜찮다고 하자, 자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럼 다섯은 절벽 위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아. 남은 열다섯은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한다.”

인반 신입생도들이 머문 곳을 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한시 진이 안 되었다.

그동안 이곳에 왔었던 신입 생도치고는 굉장히 빠른 결정이었다.

제갈신이 곳곳에 진법을 설치하는 동안 생도들은 머물 곳을 꾸렸다.

얼기설기 얽은 나뭇가지로 낮은 천장을 만들고 짚과 나뭇잎을 구해와 바닥에 깔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제법 머물만한 자리가 꾸며졌다.

“식량은 어떻게 하지?”

생도들의 물음에 제갈신이 의견을 제시했다.

“나는 절벽 위에 한꺼번에 모아놓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자휘 너는 어때?”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빼앗길 염려도 있으니까 반을 나누자.”

“그럼 반은 절벽 위에 두고, 반은 바닥에 묻어놓는 게 좋을 것 같아.”

“좋아. 너희들의 생각은?”

자휘와 제갈신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백미령은 자신이 일단 절벽 위를 차지하게 되자, 만족했는지 그 이후의 결정에 대해서는 뭐라 하진 않았다.

일단 머물 곳이 일단락되자, 인반 생도들은 한숨을 돌렸다.

“이제 한 시진이 지났어.”

지금부터 지반과 천반의 신입생도가 올 시간이다.

인반 생도들의 시선이 뭍에 내리고 있는 배를 향했다.

* * *

지반의 신입생도 열 명이 탄 배는 천천히 현무도에 닿았다.

지반이라고 하나, 최상의 포식자는 아니기에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들은 밑에 인반 생도들이 있기에 조금이나마 안심하는 눈치였다.

지도 교관이 지반 신입들을 내려놓고 떠나자, 그들 역시 머물 곳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저쪽의 동굴은 어때?”

지반의 연호랑이 백미령이 처음에 가리켰던 동굴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천문엽이 반대했다.

“저긴 별론데. 음습한 곳보다는 탁 트인 곳이 좋아서.”

천문엽의 말에 몇 명이 키득대며 웃으며 말했다.

“난 문엽이가 정하는 곳으로 갈래.”

“나도.”

생도들의 반대에 연호랑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럼 둘로 나누지 뭐. 문엽이를 따라갈 사람은 가. 그게 아니면 나랑 같이 저 동굴로 가든가.”

연호랑의 말에 세 명이 그의 곁에 섰다.

지반 신입생도들은 벌써 두 파벌로 갈려 있었던 것.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지반의 신입생도들은 여섯 명과 네 명으로 나뉘었다.

넷은 동굴, 여섯은 수풀 안쪽의 작은 웅덩이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자리를 꾸리고 있는 사이.

천반 신입 생도들이 도착했다.

특이할 점이라면 고작 세 명이 있는 천반의 신입 생도들은 말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먼저 말을 꺼낸 이는 신입 중 가장 강한 생도인 화산파의 천무륭이었다.

“다들 같이 있을 건가?”

멀끔하게 생긴 천무륭의 물음에 후덕한 체구의 무당의 지호연이 답했다.

“꼭 그럴 필요 있어? 난 각자도생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마지막 남은 모용설화를 쳐다보았다.

“너는 어때? 네가 싫다면 같이 다니도록 하지.”

천무륭의 말에 모용설화가 담담하게 입술을 열었다.

“아니. 나도 각자 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해.”

그녀의 말에 천무륭과 지호연이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천반 동료긴 했지만, 천반에서는 제일 약한 모용설화가 신경 쓰였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각자도생하는 것이 좋다고 하자, 미련 없이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각자 살아남도록 하지.”

“좋아.”

어떻게 할 것인지 합의가 되자, 세 명의 신형은 곧바로 흩어졌다.

한 시진 후.

동시에 천, 지, 인의 선배 생도들이 탄 배들이 현무도에 들이닥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