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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36화 (36/200)

기갑무림 36화

진천비급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진천기공 이 성을 이뤄야만 했다.

‘진천기공과 기갑을 연동해야 하니까.’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음에도 쉽게 진천기공 이 성을 달성할 수 있었다.

20년의 내공과 이전에 진천기공 일 성을 이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천기공 이 성, 신강목(身强木).”

일 성이 마른 나뭇가지 정도의 강함이었다면, 신강목은 단단한 나무였다.

이 성의 진천기공을 몸에 두르자, 단단한 나무 갑옷 정도의 보호기공이 둘렸다.

그리고 이 성을 이루자마자 들리는 목소리.

[진천기공 이 성을 연성했습니다.]

[기갑과 연동하시겠습니까?]

기다렸던 목소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갑과 진천기공을 연동합니다.]

말이 끝남과 함께 지난번처럼 진천기공이 가슴에 숨겨져 있는 마석으로 훅하고 끌어 당겨졌다.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좀 더 안정화되었다고나 할까.

얕은 숨을 뱉어내자, 목소리가 다음을 알려왔다.

[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12장의 비급의 내용 중 2장이 공개됩니다.]

드디어 열리는 진천 비급 2장.

두근대는 내 눈앞에 불투명한 책이 나타나며 펼쳐졌다.

[진천비급 2장.]

[진천권(眞天拳).]

‘권법이다!’ 제대로 된 무공이 없어 난감하던 차에 얻은 권법을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경공법에 이은 권법.

이 두 개만 해도 기본은 할 터였다.

그러나 이어진 내용에 이마가 살짝 구겨졌다.

[진천권 상(上)권을 엽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된 권법이 없어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상권이라니.

‘두 권으로 나뉘어 있나 보네.’

진천권에 상이란 글자가 붙은 걸 보니 비급이 상, 하로 나누어진 듯했다.

이십 년의 내공은 있어야 꺼낼 수 있는 권법인데, 얼마나 좋길래 전부 다 보려면 삼십 년의 내공이 있어야 할까.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삼키고 진천권 상권을 보았다.

그러자 전처럼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책에서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천권(眞天拳)은 주먹으로 적을 방어하고 공격하는 권법이다.]

[상(上)권은 방어법을 알려주며, 하(下)권은 공격법을 제시한다.]

주먹으로 방어를 할 수 있다니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왕이면 공격법부터 나왔으면 했건만.

‘어차피 학관 안이니 남을 공격하기보단 방어가 나을 수도 있겠지.’

애써 괜찮다고 생각하며 스르륵 책장을 넘겨 다음 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진천권을 이용한 방어법은 적의 공격을 진천기공을 이용해 막거나, 흘려내는 것이다.]

[막을 경우는 진천기공을 이용해 주먹을 강화시킨다. 흘려내기 위해서는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원리를 이용한다. 진천기공을 사용해 이화접목을 펼치면 적의 공격을 똑같이 되돌려 줄 수 있다.]

진천기공이란 몸에 두르는 보호기공.

기공을 매끄럽게 만들어 적의 공격을 피하게 해주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이화접목을 이용해 공격까지 되돌려 주는 것이라면.

‘방어와 공격이 둘 다 되는 권법이잖아!’

좀 더 방어에 치우치긴 했어도 이 정도면 훌륭한 권법이었다.

이렇게 진천기공을 사용하니 이십 년의 내공이 필요한가 싶었다.

‘저 방법이면 몸의 다른 부위도 쓸 수 있는 것 아니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진천권의 다음 내용은 몸으로도 가능한 권법을 알려주었다.

[진천권의 방어는 주먹뿐만이 아니라 팔뚝 전체로도 가능하다.]

[수련이 가능하다면 몸 전체로도 이화접목의 수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똑같이 되받아칠 수 있다.]

‘그러면 적의 공격을 받아내는 즉시 공격을 받은 부분을 이용해 되돌려 줄 수 있다는 건가?’ 권법인 줄 알았는데, 권법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사용 가능한 진천기공의 방어법이었다.

“그럼 몸이 하나의 주먹이라 생각한다면…….”

몸이 팔을 내뻗고, 팔에서 주먹이 나아간다. 그 모두가 하나고, 그 하나는 나 자신.

‘수렴(收斂)하고 충일(充溢)하여 합일(合一)한다.’

계속 펼쳐지는 진천비급의 내용을 암기하며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수련들.

내 몸 하나하나가 곧 나 자신이며, 자신은 자연의 한 부분.

자연은 우주의 한 부분이니, 내 몸은 소우주가 된다.

넓어지는 의식 속에서 꾸준히 자신을 잡아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며-점점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 * *

현무대전이 내일로 성큼 다가왔다.

현무대전 전날 열리는 전야제는 이름난 현무학관답게 절도 있게 치러졌다.

다들 긴장하면서도 기대로 가득한 얼굴들.

이번 시험에 따라 성과가 나누어지고 내년 일 년의 생활이 판가름 난다.

현무대전의 결과에 따라 받는 대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전야제인 오늘 하루는 수업도 없는 상태라 제각각 내일 있을 현무대전 참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일이네.”

“아, 실감이 안 나.”

“내일이 걱정된다.”

인반 생도들은 막막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입학한 지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시험이라니.

그것도 일주일간 무인도에서 상급반 생도들과 싸워야 한다.

현무학관에서 최약체인 인반의 신입생도들에겐 어려운 상황.

물론, 신입생도들은 어느 정도 봐주긴 했다.

일주일간 무인도에서 알아서 물과 식량을 구해야 하는데, 신입생도들은 그러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다만, 이 식량조차 빼앗긴다면 일주일을 쫄쫄 굶어야 할 테다.

“가면…… 지반 생도들의 밥이 되겠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럼 머리띠를 뺏긴 생도들은 그냥 숙소로 돌아오는 건가?”

“숙소로 돌아오긴. 머리띠 뺏긴 생도들만 따로 모아놓는 곳에서 계속 있어야 해.”

“다친 아이들도?”

“에휴, 넌 교관님 설명할 때 뭘 들었냐? 다친 아이들은 당연히 의방으로 데려오지.”

“그렇구나. 어쩌면 차라리 다친 게 나을 수도 있겠네.”

인반 생도 하나가 그럼 그냥 다쳐버릴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백미령이 쏘아붙였다.

“대신 성적이 처참할걸? 성적이 대놓고 떡하니 붙는데 다른 생도들에게 망신당하고 싶나 봐?”

“그건 아닌데…… 아, 모르겠다. 일단 가 보면 알겠지.”

이번에 현무대전의 방식이 바뀌었다며 현천단은 자기 것이라 소리쳤던 생도들의 풀이 죽어 있었다.

막상 현무대전이 내일로 다가오자 현실을 깨달은 탓이었다.

그때 생도 하나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자휘가 있잖아.”

생도의 말에 다른 생도들도 맞장구쳤다.

“맞아, 우리에겐 자휘가 있어.”

“그래도 자휘가 있으니 좀 든든하다.”

신입생도 신고식 전에는 속으로 무시하던 자휘였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만에 오히려 자휘를 의지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에도 생도들은 이를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현천관을 통과한 지 며칠도 안 되었는데 저렇게 수련하는 것 봐.”

생도들의 눈이 저녁이 되었는데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자휘에게 머물렀다.

“역시 연습벌레야. 저러니 강해지지.”

“우리도 연습해야 하나?”

“에이, 지금 와서 무슨 연습?”

“내일이 현무대전이니 쉬는 게 좋겠지?”

“좀 쉬어야 거기서 버티지.”

인반 생도들은 지금 수련해야 별 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불안은 하고, 수련하기는 싫고.

그들은 계속 자휘만을 바라봤다.

“상급생도들도 통과 못 하는 12관을 뚫은 자휘니까 우리 반의 식량을 빼앗기진 않겠지?”

“그렇지 않을까? 자휘의 소문이 퍼져서 다른 생도들이 섣불리 덤비지 못할 거야.”

“자휘가 인반에 있어 다행이다. 다른 반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네.”

“맞아, 계속 우리랑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휘를 보며 수군대는 생도들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제갈신이 말했다.

“참…… 너희는 한결같구나.”

제갈신의 말에 생도들이 발끈했다.

“우리가 뭐?”

“그러는 너도 수련은 하지 않고 명상만 하고 있잖아!”

그들은 좌선을 하고 있는 제갈신을 아니꼽다는 듯 바라보았다.

사실 제갈신은 요즘 새롭게 익힌 진법을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그런 것이었지만, 인반 생도들이 알 리 없었다.

“너희의 눈엔 그렇게 보이겠지만, 나 역시 수련하는 중이다.”

제갈신의 답에 생도들이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제갈세가라고 해서 기대했더니, 어떻게 중소문파에서 온 자휘만도 못하니?”

그러더니 급기야 아무 말이나 툭 던지는 백미령.

그녀를 바라보던 제갈신이 조용히 답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노력하는 거지.”

제갈신은 이 말을 끝으로 인반 생도들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백미령 또한 자신의 던진 말이 좀 심했다는 걸 아는지 그대로 팩하니 등을 돌렸다.

그러자 다른 인반 생도들도 머뭇대더니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제갈신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여전히 목검을 휘두르는 자휘를 한번 보고는 눈을 감고 진법에 관한 명상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전각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학관장 무량후였다.

그의 전각은 학관장의 집무실답게 현무학관의 중심에 높이 솟아 있었는데, 사방이 창으로 되어 있었다.

이곳에 서서 안력을 돋우면, 현무학관 내의 대다수는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현무학관을 둘러보며 부학장에게 물었다.

“내일 준비는 다 되었나?”

“네. 현무도에 생도들이 머물 준비를 다 해놨습니다.”

“특이 사항은?”

“현재로선 없습니다. 다만…….”

부학장의 눈이 열심히 수련하는 자휘와 상급생도들에게 닿았다.

“요즘 상급반 생도들이 수련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무량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자휘라는 아이가 은거 기인의 제자로 소문이 난 탓인가?”

“네.”

“어쨌건 그 소문 덕에 권태에 빠진 제자들이 열심히 수련한다면 나쁘진 않겠지.”

소문 덕분에 현천관의 문제가 크게 커지지 않았다.

어찌 보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소문 하나로 덮인 것이다.

소문은 자휘를 은거 기인의 제자로 생각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무시와 냉대는 사라지고, 오히려 자휘를 신비하게 여기는 생도들까지 나타났다.

무량후는 머릿속으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부학장에게 물었다.

“그 소문을 낸 사람은 찾았나?”

“네, 찾아보니 제갈신이더군요.”

“제갈신이라면 제갈가의 자식 아닌가?”

“맞습니다.”

어쩐지 소문이 갑자기 확 퍼지게 된 이유가 있었다.

제갈신의 말이라면 상급생도들도 의심 없이 믿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 소문 하나로 자휘의 위상이 높아짐은 물론, 현천관을 통과했음에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머리 좋은 놈이라더니, 말 하나로 이렇게 상황을 뒤바꾸는 걸 보면 확실히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그런데 그런 소문은 왜 낸 거지?”

“아마도 지난번 신입생도 신고식 때 늑대에게 물릴 뻔한 걸 살려준 이유 같습니다.”

“은혜를 갚는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지만, 머리 좋은 제갈신이 단순히 그 이유로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허면?”

“뭔가 자휘라는 아이에게서 희망을 본 게지요.”

“희망이라…….”

말끝을 길게 늘이는 무량후의 휘어진 눈이 수련 중인 자휘에게 닿았다.

저 아이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생도에게도 뭔가 새로움을 심어주는 모양이었다.

‘기대보다 더한 성과를 보여주니 그런 것이겠지.’

그는 희고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휘가 수련 중인 수련장 쪽을 바라보았다.

“수완 좋은 제갈신을 벌써 자신의 편으로 만들다니. 꽤 맹랑한 녀석일세.”

맹랑하다 말하는 그의 입과 달리 눈은 호감을 가득 품고 자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부학장은 조금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자휘를 보았다.

“그러다가 사실이 드러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신이 퍼뜨린 소문이 거짓으로 판명 난다면 제 명예에 흠집이 갈 것이다.

머리 좋고 영악한 데다가, 의심까지 많은 제갈가의 아이가 왜 그런 소문을 퍼뜨렸는지 부학장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부학장을 보며 무량후가 싱긋 웃었다.

“흠, 사실일 수도 있잖은가?”

“네?”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부학장.

그를 향해 무량후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

“저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는 오랜만일세. 그러니 뒤에 은거 기인이 있다고 해도 믿어지는 판이지.”

“아, 그렇습니까?”

부학장은 그저 자휘가 뛰어나서 무량후가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량후의 노회한 눈에는 의심이 서려 있었다.

‘가짜 현천단 사건도 그렇고, 현천관을 쉽게 통과한 것도 정말 뭔가 있어 보인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그는 자휘가 온 곳인 진가장에 대해 면밀하게 알아보는 중이었다.

그의 육감이, 그곳에 정말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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