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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34화 (34/200)

기갑무림 34화

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부학장은 당혹감에 젖었다.

“이, 이게 왜 이러는 거지?”

분명, 난이도를 조절해 10개의 관문을 설정해 놨건만 지금 11번째 관문이 열리고 있었다.

‘10개의 관문으로 설정해 놨는데!’

뭔가 문제가 생겼는지 잘 움직이던 줄이 당겨지지 않았다.

‘잘못하면 자휘란 아이가 죽을 수도 있어!’

그만큼 11번째 관문은 위험했다.

부학장은 현천관의 작동을 멈추려 붉은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툭.

어찌나 세게 당겼는지 끊어지는 줄.

“아, 안 돼……!”

줄까지 끊어져 버리자, 그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미 이 사태는 그의 손에서 벗어난 상태.

“학장님을 불러와야 해!”

그는 무량후에게 가기 위해 급히 경공을 전개했다.

그 시각.

갑자기 열린 11번째 관문을 보던 자휘는 입을 떡 벌렸다.

“이게 왜 열리는 거지?”

부학장이 그랬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휘의 눈이 기다란 상자에 닿았다.

“이게 문제라는 거네.”

상자를 집자마자 관문이 열렸으니 말이다.

이걸 어쩌면 좋을까?

자휘는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다 보면 부학장이 현천관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그러나 한동안 기다려도 부학장은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듯했다.

자휘는 차라리 다음 관문으로 나갈까 고민했다.

‘이미 열 번째 관문을 통과를 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나?’

잠시 고민하며 길쭉한 상자를 보는데, 자세히 보니 적미륵이 들어 있던 상자와는 달랐다.

‘두께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적미륵이 들어갈 정도는 아닌데?’

그 순간.

기다란 상자가 신기하게도 스스로 열렸다.

“……뭐야? 이게 왜 열리는 거지?”

지난번 적미륵 사건으로 인해 기다란 상자를 보면 겁이 났던 터라 몸이 자동으로 뒤로 밀려났다.

톡.

그러나 당황스러운 내 반응과 달리 긴 상자에서는 작은 종이 두루마리가 떨어졌다.

“이게 뭐지?”

마치 열어보라는 듯 나온 종이.

나는 종이를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이건……!”

종이 안의 내용을 보던 나는 놀라움에 찬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내용이 전혀 예상 밖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관문들을 쉽게 통과하는 방법이 적혀 있는 종이라니! 대체 누가 이런 걸 여기에 숨겨 놓은 거람.”

이렇게 떠먹여 주려 하는데, 피할 필요가 있나.

이미 파훼법을 얻은 이상, 그 어렵고 위험하다는 11관문과 12관문은 내게 위험이 되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서며 먼지를 털었다.

“그럼 다음 관문으로 가 보실까.”

* * *

“하, 학장님!”

무량후는 현무학관의 볼일을 보고 있다가 급히 뛰어오는 부학장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러나?”

“그게…… 현천관이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뭐라? 그게 무슨 말인가?”

현천관이 이상하다는 말에 무량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10관문까지 설정했는데…… 자휘라는 생도가 들어간 이후 갑자기 11관문이 열려 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무량후는 당황스러웠다.

이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멀쩡하던 현천관이 왜 급작스럽게 이상해진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이 제안해서 자휘란 생도가 들어간 마당에 말이다.

“어서 가 봅시다!”

무량후는 부학장을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신형을 날렸다.

절정 급인 그가 경공을 전개하자, 한순간에 현천관 앞에 다다랐다.

먼저 온 그가 현천관을 멈추기 위해 관리실에 가자 끊어진 줄이 보였다.

“이게 무슨! 줄이 왜 끊어져 있지?”

기관을 조작하는 줄이 끊어져 있자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벌게졌다.

아무래도 열리면 안 되는 관문을 닫으려다가 파손된 듯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현천관을 관리하는 곳을 보니, 이미 열두 개의 관문이 모두 열린 상태.

마지막 관문은 천반 상급생도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관문이었다.

열리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무기들이 쏟아져 나오기에 그조차 통과하려면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관문이 열려 버리다니!

‘내가 괜한 욕심으로 그 아이를 위험에 빠지게 했구나!’

특혜로 들어왔으나, 누구보다 용감했고 불의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아이였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 현천관행을 추천했건만.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 되겠다. 현천관을 망가뜨려서라도 그 아이를 꺼내야겠구나.”

무량후가 관리실에서 나오려는데 숨을 헉헉대는 부학장과 마주쳤다.

“허, 헉…… 경공이 왜 이리 빠르신 겁니까?”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보니 그리되었네. 아무래도 현천관을 망가뜨려야겠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책임질 테니 어서 현천관을 부수게. 아이를 구해야 할 것 아닌가?”

“그, 그것이…….”

무량후의 명령에 부학장이 멈칫거렸다.

생도를 구해야 하는 것은 맞으나, 그렇게 되면 이백 년 전통의 현천관을 망가뜨려야 했다.

워낙 복잡한 기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천관이기에 한 곳이라도 망가뜨린다면 그 역할을 할 수 없을 게 뻔했다.

부학장이 머뭇대자 무량후가 노성을 질렀다.

“지금 한시가 급한데 뭐 하고 있는 것인가?”

“네…… 알겠습니다.”

부학장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현천관 쪽으로 향했다.

어쨌건, 소중한 것은 생도의 목숨이었으므로.

그와 무량후가 현천관을 부수기 위해 온몸의 내공을 모으고 있을 때.

종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댕, 댕, 댕, 댕.

종소리의 수는 열두 번.

12관문을 넘었다는 뜻이었다.

“……!”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부학장과 무량후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 아닙니다. 제대로 들으신 듯한데…… 어떻게 이 소리가 날 수 있을까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부학장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의 시선에 누군가가 잡혔다.

“어, 저 아이는……!”

현천관 출구에서 걸어 나오는 아이.

자휘였다.

걸어 나오는 자휘를 가리키며 부학장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 나왔습니다!”

“뭣이? 자휘가 나왔다고?”

진짜로 출구에서 나오는 아이가 자휘임을 확인한 무량후는 빠르게 신형을 옮겼다.

어찌나 빠른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경공.

그는 반가운 듯 자휘의 어깨를 붙들고 소리쳤다.

“무사하다니 천만다행이로구나!”

자휘는 갑자기 나타난 무량후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학관장님께서는 어떻게 오신 겁니까?”

일개 생도가 현천관에 가는데 학관장이 마중 나올 일이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급하게 온 것이라면 자신을 걱정했던 것일까?

종이를 보고 너무 쉽게 나온 터라, 자휘는 남은 관문들이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랬기에 부학장이나 무량후의 반응 격한 반응이 오히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휘는 차분하게 무량후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12관문까지 통과한 것이 궁금해서 나오신 것이군요.”

“그것도 궁금하긴 하지만, 네가 걱정되어 이곳으로 온 것이다.”

자휘가 조금은 의아하게 바라보자, 확인해 주듯 부학장이 말을 보탰다.

“학관장님이 널 너무 걱정하신 나머지 현천관을 부술 생각까지 하고 계셨다. 네가 조금만 늦게 나왔다면…… 아마도 현천관은 박살이 났겠지.”

그는 참으로 다행이라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학장의 태도를 보면 진짜인 것 같기는 한데.’

무량후가 현천관을 권했기에 느끼는 죄책감일지 몰랐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괜찮다는 자휘의 말에 무량후가 꼼꼼히 살펴보니 정말 다치거나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 모습에 안도하면서도 무량후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모든 관문을 진짜로 네가 통과한 것이 맞느냐?”

“맞습니다.”

“어허, 어찌 그런…….”

11관문까진 그렇다 쳐도, 12관문은 천반의 상급생도를 시험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인반의 신입생도가 아무렇지 않게 통과할 리 없었다.

그들로서는 의문을 가지는 게 당연한 일.

게다가…….

“학장님, 현천관을 최단 시간으로 통과했습니다!”

시간을 확인한 부학장이 자휘가 현천관을 깬 기록을 알려왔다.

“인반의 신입생도가 현천관을 제일 빨리 통과해?”

믿을 수 없게도 자휘란 아이는 역대 최고로 가장 빠르게 현천관을 통과했다.

무량후와 부학장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자휘를 동시에 보았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최단 시간에 현천관을 돌파하다니!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의 표정을 보던 자휘가 아무렇지 않게 종이 하나를 들어 보였다.

“제가 나머지 관문들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건 이것 때문입니다.”

“뭐? 그런 오래된 종이가 뭐라고…….”

종이를 자휘에게 받아 펼쳐보던 무량후의 눈이 커졌다.

“이것은 신기자가 남긴 글이 아닌가!”

“네? 건축의 신이라 일컫는 신기자 님이 남긴 종이요?”

신기자라는 말에 부학장이 놀라 무량후가 든 종이를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지, 진짜 신기자 어른이 남긴 글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무량후와 부학장의 눈에는 놀라움이 서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기자라는 사람은 옛날 현천관을 지은 사람이었다.

당시 전설로 불렸던 사람이 신기자였다.

무량후가 여전히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너는 이걸 보고 남은 관문을 통과했다는 말이냐?”

“네. 보시다시피 종이에는 관문들을 쉽게 파훼하는 방법이 적혀 있어 금방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종이는 그럼 어디서 난 것이냐?”

무량후의 물음에 자휘는 10관문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거인을 반으로 가르자, 안쪽에서 긴 상자를 발견했고 그 안에 종이가 있었단 것을 들은 무량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자가 평소에 재미있는 장난을 많이 치셨다고 듣긴 했다. 그런데 현천관에까지 장난을 치셨을 줄이야.”

“아마 이 종이도 뭔가 비밀이 있을 겁니다.”

부학장이 말하자 무량후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학장, 이걸 조사해 보게.”

“알겠습니다.”

부학장은 흥미 가득한 얼굴로 종이를 들고 사라졌다.

워낙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의 눈에는 들뜸이 가득했다.

“그리고 너는 이리 오렴.”

이제 상황이 괜찮아진 것을 확인한 무량후가 자휘에게 손짓했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원망 없이 자휘가 덤덤하게 말함에도 무량후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현천관의 통과를 축하한다. 약속대로 백영단을 네게 주도록 하마.”

“……!”

현천관을 나오자마자 백영단을 건네자 자휘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클클, 늦게 줄 거로 생각했느냐?”

“이렇게 빨리 주실 거라 생각 못 하긴 했습니다.”

그는 싱긋 웃더니, 자휘 손에 얹어진 백영단을 턱으로 가리켰다.

“백영단을 지금 먹는 건 어떤가? 내가 이번에 네게 빚을 졌으니 영단을 흡수하는 거라도 도와주겠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도움을 좀 받겠습니다.”

그의 제안에 바로 가부좌를 틀며 앉는 자휘를 보며 무량후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백영단을 입안에 넣도록 하여라.”

자휘는 무량후의 말대로 상자에서 백영단을 꺼내 냉큼 입안에 넣었다.

그러자, 청량함이 사르르 녹으며 입안 가득 영약의 향이 가득 찼다.

무량후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휘의등에 오른손을 갖다 댔다.

그의 손에서 따뜻한 온기와 기운이 자휘의 몸을 감쌌다.

“천천히 입안에서 녹이면서 심법을 운용하도록.”

그의 말에 따라 자휘는 조용히 삼재심법을 돌렸다.

그러자 영약이 녹으며 무량후가 인도하는 길에 따라 온몸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지난번의 천년화조의 내단에는 비할 바가 못 되나 백영단 역시 중급 이상의 영약.

백천단의 기운들이 온몸의 세맥을 돌더니 어느 순간 단전에 가득 찼다.

잠시 후, 폭발하는 듯한 힘이 한순간 쾌감으로 변해 온몸을 휘돌았다.

“후.”

깊은숨을 내쉬자, 아랫배 부분이 단단해지며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현천관을 10관까지 통과하며 얻었던 피로가 한 번에 가시는 느낌.

“이제 백영단의 흡수가 끝났다.”

무량후는 영약의 흡수가 끝나자 등 뒤에서 손을 떼었다.

역시 혼자서 영약을 흡수할 때보다 고수가 도와주니 빠르고 쉬웠다.

‘이번 영약의 흡수로 인해, 지닌 내공은 20년이 넘었어.’

드디어 진천비급의 이 장을 열 수 있는 내공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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