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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33화 (33/200)

기갑무림 33화

혈천교가 자휘를 찾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삼 개월.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현천관을 들어서기 전날 밤이었다.

이날 밤도 투명화 기능을 써서 밖으로 나와 진천비를 수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고 목소리가 울렸다.

[미지의 적이 당신을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순간, 놀라서 높은 곳에서 떨어질 뻔했다.

“적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겨우 균형을 유지한 채 허겁지겁 바닥에 내려선 내가 급히 물었다.

[기갑이 완전화되었을 때, 적에게 기운을 감지당했습니다.]

기갑이 완전화되었을 때라면.

현무학관에 오는 도중 복면인을 만나 적미륵을 보았을 때다.

“어쩐지 뭔가 찜찜하더라니.”

그때 적미륵의 고개가 분명 투명화된 내게 맞춰졌다.

그리고 이뤄진 완전 개방화.

그 당시 복면인은 적미륵이 날 찾아낼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적미륵이 천갑무신의 힘을 감지하는 도구인 건가?’

마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혈천교.

그들은 천갑무신을 최대의 적으로 생각할 테니 그 후인을 찾는데 눈이 벌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 역시 적미륵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혈천교가 적미륵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나를 찾는 곳이 혈천교 말고 또 있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일이 위험한 데다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적미륵.

적미륵을 찾아, 힘을 얻고 천갑무신의 후인을 쫓는 혈천교.

무엇하나 쉬운 게 없었다.

“날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혹시나 해서 묻자 위험을 감지한 목소리가 이번엔 답을 내놓았다.

[적이 있는 곳은 서장입니다.]

[거리와 이동속도를 계산합니다.]

[약 100일 후, 무한의 중심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무한의 중심이라.

현무학관이 무한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목소리가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집어내지 못한 것처럼, 내가 현무학관에 있는 것은 모르는 것 같았다.

‘무한에 온다 한들, 날 바로 찾진 못할 거야.’

그렇다면 실제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최소 백일에서 최대 백오십일 정도일 것이다.

그전까지 강해질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만 했다.

시간이 없었다.

“빨리 현천관을 통과하고 백영단을 먹어야겠어.”

그래야만 진천비급 이장을 열 수 있을 테니.

기존에는 그저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다면, 이젠 생존의 문제로 바뀌었다.

온몸을 빠듯하게 죄어오는 긴장감.

나는 긴장감을 온몸에 두른 채 동이 터올 때까지 수련을 거듭했다.

* * *

거의 밤을 새운 뒤, 약간의 휴식을 취한 나는 바로 현천관을 찾아갔다.

현무학관 뒤쪽에 동굴과 전각을 이어 만든 함정기관인 현천관(現天關).

두터운 문에 새겨진 글자는 이곳이 악명높은 현천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약속한 시각에 도착하자, 곧이어 부학장이 당도했다.

무량후보다는 젊으나, 쉰 정도 돼 보이는 부학장이라는 남자가 자휘를 살피며 물었다.

“네가 자휘라는 아이냐?”

“네.”

“인반의 신입생도가 현천관을 신청하다니 처음이로구나.”

가끔 지반의 상급생도가 신청하는 게 현천관이다.

그런데 이제 고작 인반의 신입생도가 현천관을 신청하다니.

‘흐음. 무공은…… 높아 보이지 않는군.’

생각보다도 낮은 경지의 무위를 지닌 자휘를 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량후가 추천까지 한 데다가 인반의 신입이 현천관을 신청했기에 내심 기대했던 까닭이었다.

그는 자휘의 손에 작은 뿔피리를 쥐여 주었다.

“현천관에 들어가게 되면 기관의 공격을 피해 다음 관문으로 가야 한다.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긴다면 이 뿔피리를 불어라.”

선배 생도들도 거의 반죽음으로 나오는 곳이 현천관이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했기에, 혹시 모를 사망사고를 방지하고자 주는 뿔피리였다.

“대신, 이것을 사용한다면 앞으로 현천관은 신청할 수 없다.”

“알고 있습니다.”

담담하게 답하는 자휘를 보며 부학장의 눈에 궁금증이 담겼다.

‘특혜로 들어온 데다, 무공이 강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저리 담담하다니. 대범한 아이로군.’

그게 아니라면 현천관이 얼마나 어려운 곳인지 잘 모르거나.

부학장은 현천관 안에서 자휘가 얼마 못 견디고 나오리라 생각했다.

난이도를 조정하긴 했으나, 인반의 생도가 통과하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문 앞의 커다란 줄을 당겼다.

어쨌건 학관장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될 뿐이었으니.

그그긍.

두꺼운 줄을 아래로 당기자, 육중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자 드러나는 현천관 안.

사각으로 된 커다란 공간 안에는 여러 나무 기관들이 빽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을 통과하면 다음 관문의 문이 자동으로 열릴 것이다. 총 12개의 관문 중, 네가 통과할 관문은 10개이다.”

“알겠습니다.”

자휘는 부학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현천관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망설임 없이 바로 들어서는 자휘를 보며 부학장이 잠깐 놀라더니 곧이어 반대편의 줄을 당겼다.

그러자 닫히는 문.

아까보다 어두운 현천관 안의 공기는 먼지 때문인지 텁텁했다.

‘여기가 첫 관문이구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나무와 쇠로 된 무기들이 보였다.

그리고 바닥에는 검게 변색되어 달라붙어 있는 누군가의 피.

“후. 그럼 이제 해볼까?”

나는 가볍게 몸을 푼 후, 용천혈에 진천기공을 불어 넣었다.

진천비를 펼치자 발이 살짝 떴다.

쉬익!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화살촉을 뺀 화살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화살대들을 피해 곧바로 앞으로 쏘아져 갔다.

[위험을 감지합니다.]

[부분 기갑 기능이 발현됩니다.]

차가운 금속성 소리와 함께, 팔뚝 부분에 투명한 방패형 기갑이 입혀졌다.

파파팟.

기갑에 맞아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화살대들.

나는 진천비를 사용해 나무기둥과 기관들을 피하며 그대로 돌진했다.

파앗.

기갑을 이용해 정면돌파를 하자, 빠르게 다음 관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무리 기관이 빠르다 한들, 기갑을 이용한 진천비를 이길 수는 없으니까.’

진천비를 사용한 빠르기와 기갑을 이용하는데 첫 관문 따위 못 뚫을 리 만무했다.

* * *

댕-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학장의 귀에 첫 관문이 깨졌다는 신호가 울렸다.

“……!”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현천관 앞의 두툼한 철문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빨리 통과했다고?”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울리는 종소리.

댕, 댕.

이번엔 두 번째 관문이 깨지는 소리였다.

‘뭐, 뭐지? 인반의 신입생도 아니었나?’

그는 당혹스러웠다.

천반의 생도라면 모를까, 인반의 생도가 이렇게 빨리 통과하다니!

그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또다시 종이 울렸다.

댕, 댕, 댕.

불과 일다경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벌써 세 번째 관문을 돌파했어……?”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는 사이, 현천관 안에서 자휘는 네 번째 기관을 돌파하는 중이었다.

* * *

파사삭.

이번에는 각각의 권법을 지닌 사람 크기의 목각인형들이 자휘를 향해 쏟아져 왔다.

그러나, 진천기공을 두른 자휘의 목검에 목각인형들이 잘려 나갔다.

동시에 기갑을 두른 팔은 공격을 방어하고 목각인형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자휘.

인형의 관이라 불렸던 네 번째 관문 역시 단시간 내에 자휘에게 정복되었다.

* * *

댕, 댕, 댕, 댕.

네 번째로 울리는 종소리.

이제는 놀라지도 않는 부학장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역시, 학관장님께서 추천했던 이유가 있었군.”

무척 빠른 속도이긴 하나, 이 정도 속도로 관문들을 돌파한 생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궁비천만해도 지반일 때 천반으로 가면서 빠르게 현천관을 통과했으니까.

그러나, 자휘는 인반.

시간은 비슷할지 모르나 이룬 성과로 봤을 때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였다.

‘어쩌면…… 최단 시간 안에 돌파할지도.’

부학장의 눈에 조금씩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자휘는 이제 열 번째 관문 앞에 서 있었다.

부학장이 알려준 마지막 관문이었다.

“헉헉…….”

최대한 빨리 돌파하느라 한 번도 쉬지 못했기에 숨이 차올랐다.

“이제 이것만 끝내면 되는 건가?”

앞에 펼쳐진 것은, 높은 천장과 그에 알맞은 거대한 거인 인형들이었다.

마치 사대 천왕을 본뜬 듯한 인형들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자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그긍.

자휘가 10차 관문에 들어서자 여지없이 움직이는 인형들.

그러나 이 인형들은 기존의 인형들과 달리 팔이 움직였다.

움직이는 팔에 의해 휘둘러지는 거대한 칼.

무려 4개의 거인 인형인 만큼 동시에 휘둘러지는 여덟 개의 칼은 매우 사납고 날카로웠다.

휘익!

더욱이 4개의 거인 인형이 한꺼번에 구사하는 칼날에 자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까앙!

기갑화된 팔뚝에 맞은 거인의 칼.

강한 힘에 밀린 나머지 자휘가 벽 쪽으로 나동그라졌다.

“크윽!”

지금껏 잘 돌파했건만, 마지막이라 그런지 쉽지 않았다.

팍.

자휘가 떨어진 곳으로 곧바로 내리꽂히는 칼.

자휘는 재빨리 몸을 회전해서 칼을 피했다.

‘어떻게 하면 저 거인들을 해치울 수 있는 거지?’

그동안 지나왔던 관문들의 무기들은 얇거나 두껍지 않아 피하거나 깨부수며 지나갔다.

그러나, 이 거인들은 도무지 깨부술만한 틈이 보이지 않았다.

휘릭.

고민의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공격들.

아차 하면 큰 상처를 입을 만한 공격이었다.

퍽!

거인 인형들의 칼과 자휘의 목검이 맞닿자, 하나밖에 없던 목검이 박살이 났다.

“이런!”

자휘는 칼을 바닥에 던지고는 급히 몸을 숙였다.

‘이제 어쩌지?’

품 사이로 위험할 때 쓰라며 부학장이 준 뿔피리가 보였다.

그러나 기껏 10단계까지 왔는데 포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휘가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는 찰나.

“……!”

거인들의 발목 뒤로 붉은 점이 보였다.

엄지손톱만 한 작은 점이었지만 자휘의 눈엔 크게 보이는 둥근 점.

‘혹시, 저게 약점인가?’

자휘는 생각과 동시에 박살 났던 목검의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후웅.

그리고 진천기공을 씌운 채, 4개의 거인 중 하나의 발목에 목검 조각을 쏘아 보냈다.

그러자 순간 기우뚱하는 거인!

우드득.

붉은 점은 균형을 유지하는 장치였는지, 하나가 바닥에 커다란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러자, 연쇄 반응으로 연달아 쓰러지는 두 개의 거인 인형.

쿠웅.

세 개의 거인 인형이 쓰러지자, 바닥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쿨럭!”

먼지와 함께 나오는 기침.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자 마지막 남은 거인 인형이 보였다.

넘어진 세 개의 거인 인형으로 인해 움직이지 못하는 마지막 인형.

사나운 표정으로 조각된 인형은 여전히 칼만을 무서운 기세로 휘두르고 있었다.

“네가 마지막이라는 거지?”

이제 이것만 해치우고 나면 현천관을 나설 수 있게 된다.

자휘는 쓰러져 있는 거인 인형이 가지고 있던 큰 칼을 집어 들었다.

“윽. 더럽게 무겁네.”

하지만 무거운 만큼, 그 효과는 클 것이다.

큰 칼을 들고, 쓰러져 있는 거인 인형을 계단 삼아 올라섰다.

그러자, 어느새 마지막 남은 인형과 거의 같은 시야가 되었다.

“진천비.”

나직하게 말하자 떠오르는 몸.

무거운 칼을 들고 있어 휘청이긴 했으나, 진천비는 무리 없이 자휘를 들어 올렸다.

높은 천장 끝에 다다르자 멈춰지는 몸.

눈 아래에서 여전히 칼을 휘두르는 거인 인형을 보는 자휘의 눈에 희열이 깃들었다.

스륵.

들어 올리는 커다란 칼.

그 칼이 진천비와 함께 마지막 남은 거인 인형을 향해 아래로 쏘아져 갔다.

푸확!

거대한 칼은 거인 인형의 정수리 부분을 갈랐다.

그러자, 반으로 나뉘어 두 조각 나며 쓰러지는 거인 인형!

쿠웅.

마지막 남은 거인 인형은 먼지를 일으키며 둘로 나뉘어 바닥으로 굴렀다.

“이제 끝난 건가?”

자휘가 아래로 내려서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둘로 나뉜 마지막 거인의 몸 안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이건?’

길쭉한 팔뚝 크기의 상자.

어딘가에서 보았던 상자였다.

“설마…….”

길쭉한 상자를 보는 자휘의 눈이 점차 커졌다.

아무리 보아도 전에 복면인이 꺼냈던 긴 상자 모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안에 정말로 적미륵이 들어있다면.’

그랬다간 기갑이 완전 개방이 되는 것도 모자라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킬 가능성이 컸다.

자휘의 손이 상자를 드는 순간.

그그긍.

다음 관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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