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30화
“무, 무량후 님!”
갑자기 나타난 이는 바로 현무학관장인 무량후였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것이지?”
무량후의 물음에 당혹스러운 총 교관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는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할 일이…… 좀 있었습니다. 학관장님은 이곳에 왜 오셨는지요?”
“잠이 안 와 밖에 나왔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곳에 와보았네. 그런데, 무슨 일을 했기에 생도를 메고 있는 것이냐?”
“그, 그것이…….”
총 교관은 아차 싶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제길! 이놈한테 내력을 빼앗기는 바람에 소리를 막지 못했구나!’
기막을 펼친 채 남궁비천의 현천단 흡수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만 중간에 기막이 깨져 버렸다.
그 소리를 듣고 감각이 예민한 무량후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그, 그것이…….”
총 교관이 더듬거리며 할 말을 찾는데, 무량후가 더욱 의아한 듯 물었다.
“이 아이는 남궁비천이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상태가 왜 이런 것이냐?”
“제, 제가 수련을 도와주던 중에 남궁비천이 기절을 하여…….”
“대체 무슨 수련을 했기에?”
“…….”
금방 답하지 못하는 총 교관을 보는 무량후의 눈에 의심이 깃들었다.
무량후는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총 교관.”
“네……?”
“솔직히 말하시오.”
“무, 무엇을 말입니까?”
그의 물음에 무량후가 남궁비천을 고갯짓으로 남궁비천을 가리켰다.
“기절한 아이에게 왜 경맥을 막는 혈도를 누른 것이지? 경맥이 막히고 시간이 지나면 식물인간이 되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텐데?”
그의 소매가 펄럭이자 강력한 내기의 흐름이 느껴졌다.
답에 따라서 힘으로 총 교관을 제압하려는 의도였다.
“네놈이 설마, 생도를 해하려 한 것이냐?”
“……!”
총 교관은 입술을 짓씹었다.
‘하필이면 학관장에게 들킬 줄이야!’
생각 같아서는 무량후를 넘어뜨리고 도망가고 싶었으나 지금으로선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실직고하는 편이 나았다.
무량후라면 어떻게든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니.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학관장님. 제가 그만…… 욕심이 과하여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총 교관은 남궁비천을 내려놓고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해 달란 말과 동시에 머리를 바닥에 세차게 박기 시작하는 총 교관.
“이게 무슨 짓이오!”
아연하게 바라보던 무량후가 그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총 교관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제가…… 실패한 현천단을 남궁비천에게 먹였습니다.”
“뭐, 뭣이라?!”
실패한 현천단을 먹이다니!
무량후의 얼굴이 분노로 벌겋게 변했다. 그리고 곧바로 남궁비천을 살폈다.
새파랗게 변한 입술과 실핏줄이 터진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궁비천.
몸까지 비틀린 상태를 보건대, 제대로 낫긴 글렀다.
“상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둔 데다가, 혈을 막는 점혈까지 해? 네놈이 미친 게로구나!”
“그것이…… 괜찮을 줄 알고 그랬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닥치거라!”
무량후는 총 교관에게 일갈한 후, 남궁비천의 막힌 혈을 풀었다.
그러자 조금씩 혈색이 돌아오는 남궁비천.
일단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마친 무량후의 노기 띤 눈이 총 교관에게 닿았다.
“실패한 현천단을 생도에게 먹여 주화입마의 기미가 보이자, 혈을 막아버려? 이것이 생도를 해하려는 증거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무량후의 내기가 폭발하며 소맷단이 펄럭였다.
“네 이놈!”
노기 서린 고성과 함께, 힘이 실린 무량후의 발이 엎드린 총 교관을 발로 차버렸다.
퍼억!
그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벽에 부딪힌 총 교관.
그의 입에서 쿨럭 하고 피가 터져 나왔다.
“크억…….”
무량후의 분노 가득한 발길질을 그대로 맞은 총 교관이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엉금엉금 기어와 다시 고개를 숙이는 그.
“죄,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를…….”
그 모습에 무량후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터뜨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거라!”
노기 서린 물음에 총 교관의 입에서 사실들이 흘러나왔다.
말을 듣던 무량후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변했다.
“네놈이 정녕 현무학관을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철썩!
모든 사실을 듣고 화가 난 무량후가 총 교관의 뺨을 내려쳤다.
아무리 학관장이라지만 그 역시 무인.
무인은 몸으로 대화할 때가 필요했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컥!”
강한 타격에 총 교관의 뺨이 터졌다.
그나마 내기를 담지 않아 이 정도지, 힘을 다했으면 죽었을지 모르는 타격이었다.
“흐으…… 죄, 죄송합니다.”
그러나 총 교관은 뺨을 맞아 부어터진 입으로 용서를 구했다.
“저는 그저 현무학관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잘되길 바라는 놈이 남궁비천의 혈을 막은 것이냐!”
남궁비천에게 한 그의 행동은 명백한 죄였다.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생도를 해하려 하다니.
현무학관에서 용서받지 못할 가장 큰 잘못이자, 무량후가 경멸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현천단을 빼돌려? 네놈의 간덩이가 부었나 보구나!”
현천단은 워낙 귀해 현무학관에도 매해 다섯 알만 내려왔다.
그 다섯 알을 아끼고 아껴, 생도들의 사기를 돋우고, 현무학관의 이름을 드높이는 데 쓰려 했건만.
‘이놈이 훔쳐 갔을 줄이야!’
무량후는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분노가 가득한 눈으로 총 교관을 쏘아보았다.
“네놈은 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무량후의 말에 총 교관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현천단을 훔친 죄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총 교관은 억울한 듯 얼굴을 들었다.
“실패한 현천단을 자휘란 놈에게 준 것은 현무학관을 위해서였습니다!”
“뭐라?”
“그놈이 자꾸 현무학관의 물을 흐리기에 쫓아내려고 실패한 현천단을 준 것입니다.”
“하! 그 아이가 주화입마에 빠지길 바랐단 말이냐?”
어이없어하는 무량후의 물음에 총 교관은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놈은 제대로 된 현천단을 먹은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남궁비천에게 준 것입니다. 그를 해하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무량후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총 교관을 서늘히 내려보았다.
“처음부터 너 같은 놈을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네?”
“특권의식에 사로잡혀서 어떻게든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네놈은 애초부터 총 교관이라는 자리에 앉히면 안 되었단 말이다!”
무량후가 탄식하며 혀를 찼다.
“무림맹에서 아무리 너 같은 놈을 추천해도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래, 내 잘못도 크다.”
점점 더 차가워지는 무량후의 기운이 주변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너는 무림맹 소속이나 다름없으니-”
고개 숙여 말하는 무량후의 눈에는 차가운 분노와 살기가 넘실댔다.
“네 죄는 무림맹에서 심판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무림맹이라니!
무림맹을 꽉 잡고 있는 가문은 남궁세가였다.
특히 남궁비천을 아끼는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실세로 있는 곳.
‘아, 안 돼!’
총 교관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차라리 무량후에게 벌을 받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실직고했건만.
무량후는 무림맹으로 그를 떠밀고 있었다.
무림맹에서 자신이 남궁비천에게 한 일을 안다면…….
‘나는 죽었구나!’
총 교관은 분노한 무량후를 말리지도 못한 채 털썩 엎어졌다.
그리고 엎어지는 순간, 주화입마로 몸이 비틀려 널브러져 있는 남궁비천의 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
그의 눈빛을 보자 총 교관의 등골에 쫙 돋는 소름.
“으흐흐…….”
지금까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남궁비천이 원한과 살기를 품고 그를 향해 삐뚜름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 * *
자휘는 산속 공터에서 두 팔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진천비를 사용해 몸을 띄웠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바로 훅 떨어지는 몸.
“으아앗!”
떨어졌다고 하나 높이는 겨우 한 뼘 정도 될까.
높지 않은 데다 진천기공으로 몸을 둘렀기에 크게 아프진 않았다.
다만, 생각처럼 안 되는 진천비에 자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안 되는 거지?”
원래 근신이라 숙소에 있어야만 했으나 비급을 얻자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투명기능을 이용해 밖으로 나왔는데…….
진천비의 수련은 생각 보다 잘되지 않았다.
‘흐음. 용천혈에 기를 모으고 뿜어내니 균형이 잘 맞지 않네.’
약간의 진천기공을 발아래에서 폭발시키자 몸은 살짝 뜨긴 했는데 도무지 중심을 잡기 어려웠다.
“이 상태로 빠르게 나가기도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긴 머리가 땀범벅인 얼굴에 붙었다.
귀찮은 듯 머리칼을 떼어내자 또다시 바람이 불어 머리칼이 달라붙었다.
“아, 바람 때문에 귀찮아 죽겠…….”
순간, 자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바람?”
강제로 발만 띄우려고 했었다.
그런데 바람을 이용할 수 있다면?
좀 더 쉽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지 몰랐다.
“한번 해보자.”
조용히 서서 바람을 느끼자, 새벽녘의 찬바람이 동쪽에서부터 흘러왔다.
사아아-
간질거리는 바람부터, 나뭇잎을 날려버리는 세찬 바람까지.
바람은 때로는 약하게, 때로는 강하게 불며 계속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람의 흘러가는 기운을 느끼며 진천기공을 운용하자 이상하게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심상에서 떠오른 진천비급의 문구 한 구절.
[자연지기(自然之氣)는 진천비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처음엔 뭔가 싶었는데, 이렇게 느끼니 뭔가 알 것도 같았다.
자연과 동화되길 바라며 진천기공을 운용하자, 신기하게도 발밑으로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용천혈에 내력을 내보냄과 동시에 천천히 뜨는 몸.
‘됐다!’
몸이 뜬 것은 겨우 엄지손가락만큼이지만 아까보단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럼, 앞으로 한번 나아가 볼까?”
바람에 거스르지 않고.
바람을 이용해서.
흘러가는 방향으로 진천기공을 뿜어내자, 마치 얼음 위를 스윽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는 진천비!
“우왓!”
높이 뜨진 않았으나, 부드럽게 쭉 미끄러지는 느낌이 무척 경쾌했다.
“이번엔 좀 더 위로 가 보자.”
조금 더 집중해서 진천기공을 아까보다 강하게 용천혈 방향으로 뿜어내자, 몸이 조금 더 솟아올랐다.
이번엔 약 일 장의 높이.
“으읏!”
더 높아지자 뒤로 자빠질 뻔한 걸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바람을 이용해 앞으로 쭉 나아갔다.
스륵-
워낙 조심스럽게 움직이다 보니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으나, 뛰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움직임이었다.
‘힘도 적게 들고 말이지.’
막무가내로 진천기공을 이용해 진천비를 이용할 때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움직임.
“이제 됐어!”
아직 능숙하진 않으나, 어느 정도 기초를 마련한 셈이었다.
“좀 더 해볼까.”
이번엔 이 장 높이로 바람을 타고 뛰어올랐다.
그러자 발아래가 후끈하며 전체에서 진천기공이 뿜어졌다.
화악.
원래 목적은 이장 높이였으나, 무려 삼 장 높이까지 솟아오른 몸!
“으악!”
순식간에 커다란 나무들이 눈 아래로 보이자 당황한 나머지 몸이 휘청였다.
후욱.
동시에 아래로 몸이 푹 꺼졌다.
“안 돼!”
자휘는 다시 용천혈에 진천기공을 보냈다.
순간적으로 튕겨 나가는 신형.
그 빠름에 자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앞으로 숙였다.
몸을 숙이자 속도는 더 빨라졌다.
“……!”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과 풍경들.
쇠로 만든 화살이 쏘아진 것처럼 몸은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으읏!”
빠른 만큼 몸에 전해져 오는 강한 공기의 저항.
시큰한 느낌에 눈을 뜰 수가 없자, 재빨리 몸 전체에 진천기공을 둘렀다.
휘익.
더 빨라진 진천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 새로운 신세계가 발아래 깔려 있었다.
‘말로만 듣던 경공을 하게 되다니!’
진천비를 사용하게 되면 자연스레 발바닥 부분이 기갑이 되었다.
기갑에서 나오는 힘과 인간의 힘을 어떻게 비교할까.
속도와 힘.
그 어느 것도 그 어떤 경공법에 밀리지 않았다.
‘이번엔 방향을 바꿔볼까?’
지금까지 계속 직선으로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면, 이제는 방향을 바꿔봐야 할 때.
바꿀 방향으로 몸을 휘며 발의 방향을 함께 바꾸었다.
그러자 처음엔 어색하던 몸짓이 몇 번 하고 나자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휘리릭.
방향까지 바꿀 수 있게 되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치도록 개운한 기분!
신나게 방향을 바꾸며 요리조리 진천비를 수련하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이제는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좀 더 수련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었다.
아침마다 숙소에서 생도들은 점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날이 오늘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오늘 수련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나쁘진 않겠지.’
비급에서 진천비를 수련할 때, 방향을 바꾸기까지 족히 일주일은 걸린다고 했다.
고작 두 시진 만에 어느 정도 방향을 바꿀 수 있게 운용했지만, 더 빠르게 완숙해지고 싶었다.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투명화 기능을 이용해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자, 여전히 잘 자고 있는 하후홍이 보였다.
코를 고는 하후홍은 잠에 깊이 빠진 듯했다.
하지만 보기보다 예민한 사람이 하후홍이었다.
‘거의 매일 같이 나가는데도 정말 모르고 자는 것일까?’
예전부터 든 의심이었으나, 굳이 묻지 않았다.
나가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줄 가능성이 높았기에.
나는 하후홍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른 척해줘서 고맙다.”
하후홍이 듣든, 안 듣든 상관없이 한 말이었다.
진짜라면 고마워서 한 말이었고, 못 듣는다면 그것도 괜찮았으니까.
“…….”
보이지 않는 이불 속 하후홍의 손가락이 움찔 움직였다.
그러나 하후홍의 코 고는 소리는 여전히 규칙적이었다.
‘그럼 이제 좀 자볼까.’
진천기공을 익힌 후, 하루 한 시진만 자도 피로가 쌓이지 않았다.
한 시진이라도 자기 위해 침상에 누우려는데.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이 새벽에 누구지?’
자휘는 혹시라도 자신이 새벽마다 나가는 것을 들킨 건가 싶었다.
그러나 들켰다면 이렇게 조용히 찾진 않을 것이다.
좀 더 과격한 방법을 이용했겠지.
‘별일 아닐 거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을 열자, 의외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문 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무량후.
“……!”
입학식 때 보았던 현무학관의 최고 책임자이자, 오래전 은퇴한 신검(神劍) 무량후였다.
‘학관장님이 왜 이곳에?’
놀란 자휘가 입을 떡 벌리는데, 그가 자휘를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네가 혹시…… 자휘라는 아이냐?”
“맞습니다.”
“깨어 있어 다행이로구나. 네게 물어볼 것이 있으니 나를 따라오지 않겠느냐?”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물으려 이렇게 새벽부터 자신을 찾는지는 모르겠으나,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거지?’
그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무량후는 그저 조용히 걷기만 할 뿐.
어떤 말이나 질문은 하지 않았다.
반 각 정도 걷자 현무학관 내 죽엽림이 나왔다.
높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이 곳은 무량후가 즐겨 찾는 곳이었다.
“진법이 설치되어 있으니 내 발걸음을 똑같이 하면서 따라오너라.”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발걸음을 똑같이 따라 걸었다.
그렇게 백 발자국쯤 걸었을 때.
눈앞에 작은 정자가 보였다.
<백엽정(白葉亭)>
무량후는 백엽정이란 작은 정자로 올라서더니, 내게도 올라오라 손짓했다.
내가 올라온 후에도 그는 정자 앞에 펼쳐진 대나무 숲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답답함에 입을 열려고 하는데, 무량후가 자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너를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할 말도 있거니와, 물어볼 것이 있어서다.”
무량후가 굳은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는 네가 받은 현천단이 실패작이란 것을 알고 있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