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28화
총 교관의 최종 선고에 팽지휴의 마지막 기대가 무너지면서 몸이 휘청였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이마를 짚는 팽지휴의 얼굴이 종이짝처럼 구겨졌다.
“아, 안 돼…….”
이곳의 무기정학이란, 퇴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들어온 곳인데 퇴학이란 말인가?
팽지휴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왜 제가 무기정학을 받습니까!”
“몰라서 묻나? 현무학관의 가장 큰 교칙을 어긴 네 잘못에 대한 대가다.”
“그건 저희 현무학관을 위해서였습니다. 저런 잡문파의 잡초 따윈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겁니다!”
분수를 알지 못하는 놈에게 현실을 알려주려 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잠깐의 분을 못 참고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 대가가 무기정학이라니!
팽지휴가 느끼기엔 너무 과한 대가였다.
‘이럴 수는 없어……!’
자신은 진심으로 현무학관을 위해서 한 행동이었건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남궁 형, 형님도 그 자리에 있었지 않습니까? 제발 말 좀 해주십시오!”
냉정한 총 교관을 보며 팽지휴가 이번엔 남궁비천을 물고 늘어졌다.
그러자 보다 못한 남궁비천이 나섰다.
“이번 일은 고의가 아닌, 시비 중 일어난 실수였습니다. 그러니 사정을 감안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남궁비천이 고개를 숙이자, 지반 생도들도 고개를 숙였다.
“보십시오. 다들 실수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제발 무기정학이란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다급한 팽지휴가 넙죽 엎드렸다.
총 교관은 혀를 차며 그의 청을 잘랐다.
“그만하거라.”
“하, 하지만……!”
“네가 그 무슨 말을 한다 해도 네 징계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미, 이 사건은 학관장인 무량후의 귀에 들어갔다.
가장 큰 원칙을 어겼기에 총 교관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반 생도 팽지휴는 앞으로 그 어떤 수업도 들어가지 못하며 현무학관의 혜택 역시 받지 못할 것이다.”
냉정한 총 교관의 말에 팽지휴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마, 말도 안 돼…….”
마치 모든 게 끝난듯한 그의 얼굴.
그 모습을 바라보던 총 교관의 신경질적인 시선이 이번엔 자휘를 향했다.
“너는…….”
그는 무척이나 언짢은 듯 말했다.
“늘 사건의 중심에서 문제를 일으키는구나.”
문파들의 형평성을 위해 보기 용으로 데려온 놈이었다.
그런 놈이 자꾸만 그의 눈에 띄고 있었다.
그것도 안 좋은 방향으로.
“이번 일의 잘못이 팽지휴에게 있다고는 하나 너 역시 선배 생도와의 시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다.”
총 교관은 이번에는 그 어떤 반발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단호히 말했다.
“인반의 진자휘에게는 근신 열흘을 명한다!”
* * *
며칠 뒤.
결국 팽지휴는 스스로 현무학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말이 무기정학이지, 아무것도 못 하는 그가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팽지휴가 떠나는 모습을 전각에서 내려다보는 총 교관의 심기는 아주 불편했다.
팽가는 무림맹에 있어서 행동 대장 격으로 행동하는 문파였다.
그런 문파의 자제를 안 좋게 내보내다니.
그로서도 무척이나 손해나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시비는 눈감아 줄 수 있었지만, 이번 일은 도가 지나쳤어.’
같은 생도를 살해하려는 죄.
그 죄는 결코 학관에서 용납되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쯧.”
총 교관은 혀를 찼다.
그 화는 남궁비천에게 향했다.
남궁비천이 중간에서 잘했으면 팽지휴가 떠날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자네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면서 안 막고 대체 뭘 한 건가?”
총 교관의 노성에 뒤편에 서 있던 남궁비천이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노력했습니다.”
자신은 충분히 할 일을 했다.
그런데 총 교관의 화를 받자, 울분이 솟았다.
“무식한 팽지휴 놈이 생도들이 많은 자리에서 그 사달을 벌인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럼 생도들의 입을 막았어야지!”
“아시다시피 당시 상황을 목격한 생도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하북팽가의 팽지휴가 학관에서 나가게 된 일은 남궁비천에게도 큰 손해였다.
지금껏 그를 통해 지반을 통제해 왔는데 마땅한 새 인물도 없었다.
자신의 충실한 부하인 팽지휴을 잃은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
‘다 그놈 때문이야!’
남궁비천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뿐이랴. 자휘란 놈을 감싸는 모용설화를 생각하면…….
알 수 없는 패배감과 질투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총 교관이 그 새끼에게 현천단만 주지 않았더라면.’
잡문파 따위가 팽지휴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다 총 교관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탓하는지!
남궁비천은 화가 솟아오른 나머지 총 교관을 향해 으르렁댔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총 교관님입니다.”
“뭣이라!”
어이없어하는 총 교관을 보며 남궁비천이 작정하고 말했다.
“총 교관님께서 주신 현천단으로 인해 그놈이 기고만장해진 것이 아닙니까?”
“그건……!”
“무려 십 년의 내공이 늘었습니다. 그 내공 덕에 거지 같은 가문의 기공으로도 팽지휴를 이긴 것이란 말입니다!”
내공만 늘지 않았더라면, 자휘는 그냥 팽지휴에게 맞았을 것이고 결과가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잘해봐야 정학 며칠이었을 것을, 현천단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
“자휘란 놈이 총 교관님 덕분이라고 얼마나 비아냥거렸는지 아십니까? 이 지경이 된 건, 다 현천단 때문입니다!”
“하! 그런 말도 안 되는…….”
그의 말에 총 교관은 아니라고 답도 못 하고 답답한 숨을 뱉어내었다.
자신이 제대로 된 현천단을 자휘에게 줬다고 오해한 남궁비천이 원망하고 있었다.
‘이거 뭐라 말할 수도 없고.’
현무학관 내의 귀중한 영약인 현천단을 빼돌린 건 큰 범죄였다.
그중 빼돌린 몇 알을 채우려 실패한 가짜 현천단을 두었고, 그중 하나를 준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총 교관의 속도 모르고 남궁비천이 그를 긁어댔다.
“그런 잡문파의 놈이 아니라, 저나 팽지휴가 받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솔직히 총 교관님께 섭섭합니다.”
남궁비천은 그동안 총 교관의 사냥개 노릇을 하며 학관의 생도들을 다스렸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공은 생각지도 않고 엉뚱한 놈에게 현천단을 주자 속이 뒤틀렸다.
그 모습을 보는 총 교관 역시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잠깐……?’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만약, 자신이 구입한 실패한 현천단이 사실은 진짜였다면?
그래서 자휘라는 놈이 영약의 효과를 봤을지도 몰랐다.
남궁비천을 보는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이놈을 이용해 그 진위를 가리면 되지 않겠는가.’
총 교관은 남궁비천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은밀하게 말을 꺼냈다.
“……그러면, 너도 한 알 주랴?”
“네?”
남궁비천은 총 교관의 급작스러운 제안에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현천단은 정해진 개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하는 거고.”
무언가를 생각하며 서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던 그가 다시 물었다.
“원한다면 주겠다.”
“…….”
막상 준다고 하자, 남궁비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냐면 그동안 봐왔던 총 교관은 결코 이유 없이 무언가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그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가라…….”
총 교관은 가지고 있는 현천단들이 정말 실패한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남은 가짜 현천단은 세 알.
그중 한 알을 남궁비천을 통해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설사 아니더라도 자신이 옆에서 흡수를 도와준다면 큰일은 나지 않을 터였다.
‘이놈까지 제대로 된 공력을 흡수한다면, 내가 가진 현천단의 효과는 진짜란 말이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남은 두 알을 비싼 값에 팔거나, 그가 먹으면 될 일.
오히려 자휘라는 놈을 통해 자신이 가진 현천단이 진품만큼의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으니 그로서는 이득이었다.
계산을 마친 그가 빙긋 웃었다.
“대가는 네 충성심만 있으면 된다.”
총 교관의 말에 남궁비천이 바로 무릎을 꿇었다.
“제 충성심은 늘 한결같습니다.”
총 교관 앞에서 절을 하는 남궁비천.
그의 비굴한 모습을 보던 총 교관의 입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네 마음이야 잘 알고 있으니 일어나거라.”
벌떡 일어나는 남궁비천의 얼굴에는 기대가 가득했다.
현무학관에 오 년간 있으면서 그도 현천단을 단 한 번 받아보았다.
학관의 생도 대표인 그도 한 번밖에 먹어보지 않은 귀한 영약.
그 당시 지반이었던 그가 현천단을 먹고 천반으로 갈 수 있을 정도로 효과는 대단했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침.
남궁비천은 두 눈에 열망을 가득 담아 물었다.
“그럼 제게…… 진짜로 현천단을 주시는 겁니까?”
총 교관은 대답 대신 서탁의 비밀 서랍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냈다.
달칵.
그가 뚜껑을 열자, 실패한 현천단의 향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그 청량한 향에 매료된 남궁비천이 자신도 모르게 목함으로 손을 뻗었다.
* * *
열흘간의 근신.
현무학관에서 내리는 근신이란, 자신의 숙소에서 나오지 못함을 뜻했다.
수업을 받을 때 같이 들을 수 없었고, 밥조차 하후홍이 식당에서 얻어오는 주먹밥으로 때워야 했다.
그럼에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팽지휴가 쫓겨난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만큼 원칙이 중요하다는 거겠지.’
사실, 그가 현무학관을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팽지휴는 힘 있는 세가의 자제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상명하복과 기본적인 원칙에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나한테는 잘된 일이야.”
자신에게 시비를 건 지반의 팽지휴가 쫓기듯 현무학관을 나갔다.
그의 사례를 보았기에, 다른 반 생도들 역시 함부로 시비를 걸지 못할 것이다.
당분간 불필요한 시비에서 해방된 것만 봐도 나에겐 충분히 이익이었다.
“당분간은 몸을 사려야겠지.”
총 교관에 눈에 거슬렸으니, 한동안 조심해야만 했다.
어차피 열흘간은 숙소에만 갇혀 있어야 하니, 그동안 수련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진가장의 기공법이나 수련하자.”
팽지휴와의 싸움에서 진가장의 기공법이 손가락을 부러뜨렸다고 말했다.
차후의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진짜로 기공법을 연마해 놓아야만 했다.
‘대놓고 기초수련을 하기가 좀 그랬는데 혼자 수련할 수 있어 좋네.’
홀로 있게 된 시간을 활용하려는 방법은 수련이 최고였다.
총 교관은 수업을 못 듣게 함으로써, 나를 뒤처지게 할 생각이었겠지만.
오히려 내게 더 좋은 일만 해준 셈이었다.
“내공이 십 년 쌓일 때마다 일 성씩 운용할 수 있다고 했지.”
기공법의 이름은 진천기공(眞天氣功)이다.
가주들의 몸이 약하다 보니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기공이었다.
몸 전체를 보호해야 하다 보니 내공이 많이 필요한 게 단점이었다.
그래서 구결만 알 뿐 그동안 수련하지 못했던 것이고.
“이제 내공은 충분하니, 일 성에는 금방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나는 가부좌를 한 상태로, 구결을 외웠다. 그러자 하단전에 있는 기운들이 구결을 따라 기맥 곳곳에 흘러갔다.
‘수렴하고 기를 모은다. 기는 충일(充溢)하니, 임맥(任脈),독맥(督脈), 충맥(衝脈), 대맥(帶脈), 양교맥(陽脈), 음교맥(陰脈), 양유맥(陽維脈), 음유맥(陰維脈)을 순서대로 통기(通氣)하라.’
기운들은 순서대로 전진하더니, 하나로 모여 진천지합(眞天之合)의 경지에 들었다.
실 같은 기운들은 하나의 그물처럼 촘촘히 외부로까지 확대되었다.
파앗.
기로 만들어진 그물이 몸 전체를 감쌌다.
그와 함께 피부가 뻐근해지는 느낌.
‘내공을 활용(活用)하고 활력(活力)함으로써, 밖으로부터의 위해를 방어한다.’
기운들을 구결에 맞춰 활동(活動)하게 함으로써 몸을 보호하는 호신법, 진천기공(眞天氣功).
오로지, 진씨의 성을 가진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가문의 독문 기공이었다.
“진천기공 일 성.”
십오 년의 내공은 금방 진천기공의 일 성에 다다르게 만들었다.
“신목(身木).”
일 성의 진천기공을 몸에 두르자, 전체적인 몸의 강도가 강해진 느낌이었다.
신목이란 말 그대로 약한 살덩이들이 나뭇가지가 된 정도랄까?
“이 정도면 기갑은 아니더라도…….”
진천기공의 일 성에 올라선 내가 만족하며 입을 여는데, 기갑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천기공 일 성을 연성했습니다.]
[기갑과 연동하시겠습니까?]
기갑과 연동한다는 말에 당황하는 사이, 목소리는 더 놀랄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