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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26화 (26/200)

기갑무림 26화

[부분 기갑 기능을 사용합니다.]

넓은 소매 안쪽으로 촤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금속 기갑이 둘러졌다.

그러나 옷 속이다 보니 바로 앞에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넌 이제 뒈졌어!”

큰 체구의 팽지휴가 노성을 지르며 몸의 무게를 사용해 덮쳐왔다.

근육 가득한 오른쪽 팔이 호랑이가 동물을 찢어발기듯 내리꽂혔다.

일 성의 공력을 사용한 하북팽가의 호아장(虎牙掌).

퍽!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생각보다 더 강한 힘이 자휘를 강타했다.

그러나 자휘의 기갑을 두른 왼쪽 팔뚝에 의해 막히는 공격!

이 한 번의 공격으로 그보다 작은 체격의 자휘가 뒤로 밀려났다.

‘……!’

팽지휴는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단단해?’

손이 자휘의 팔뚝 부분에 닿는 순간 쇠를 두드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팽지휴가 당황한 사이, 자휘의 몸이 재빠르게 옆으로 빠져나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팽지휴의 몸 또한 신속하게 움직였다.

날카롭게 벼려진 손가락이 또다시 자휘를 휘갈기려 다시 한번 들려졌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처럼 손가락을 빳빳이 세운 호아지(虎牙指) 수법!

호랑이의 주둥이처럼 팽지휴의 손이 자휘를 물어뜯으려 달려들었다.

자휘가 그를 피하며 방어하기 위해 한쪽 팔을 드는 순간.

강한 힘을 주던 팽지휴의 손가락이 그대로 부분화된 기갑에 부딪혔다.

콰득.

호랑이의 이빨이 강한 철에 부러지듯 그의 손가락은 꺾였다.

“으아아악!”

팽지휴의 고통에 찬 비명이 수련장에 가득 퍼졌다.

“내, 내 손!”

너덜대는 오른 손가락.

손가락은 반 이상 꺾여 있었고, 그의 자랑인 호아지는 더는 쓸 수 없었다.

지켜보던 지반 생도 몇 명 역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설마 팽지휴가 당한 거야?”

“그럴 리가. 뭔가 실수했겠지.”

건방진 놈의 팔뚝이 부서질 줄 알았으나 당한 사람은 팽지휴였다.

어이없는 상황에 지반 생도들의 얼굴엔 낭패감이 서렸다.

그리고 팽지휴의 비명을 들은 다른 생도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저 곰 새끼가 왜 저러지?”

“인반 생도를 괴롭히려다가 역으로 당한 것 같은데?”

“뭐? 지반이 인반한테 당해? 말도 안 돼.”

“말도 안 되긴. 저길 봐!”

생도들의 눈이 뭉개져 버린 팽지휴의 손과 자휘를 번갈아 보았다.

“정말 그렇네. 어휴, 고작 인반 놈에게 당하다니 덩치가 아깝다.”

“같은 지반 생도란 게 창피하네.”

생도들의 비아냥에 팽지휴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더욱 붉어졌다.

불에 덴 듯 화끈거리는 고통보다 수치심이 더 그를 화나게 한 것이다.

‘제길!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팽지휴는 험악한 얼굴로 평온하게 서 있는 자휘를 험하게 노려보았다.

아무리 일 성의 공력을 사용했다고 하나, 그가 사용한 것은 하북팽가의 무공이었다.

저런 새끼의 팔뚝 따위는 한 번에 부러뜨릴 수 있는 가문의 무공.

그런데 어떻게 반대로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자휘를 향해 으르렁댔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네가 무시하던 진가장의 보호 기공을 쓴 것뿐이야.”

“말도 안 돼! 잡문파의 무공이 하북팽가의 공격을 막아 냈다고?”

“방금 봤잖아. 아주 잘 막아 지던데?”

자휘의 말에 생도들이 킥킥댔다.

그렇게 으스대더니 특혜로 들어온 인반 생도 가문의 무공에 당한 팽지휴가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이익!”

생도들의 비웃음이 들리자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나 팽지휴가 저런 거지 같은 놈 때문에 비웃음을 받아?’

처음엔 단순히 자휘가 특혜로 입학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자존심까지 땅에 처박힌 상황.

징계고 뭐고 간에 저 비실비실한 놈을 박살 내서 자존심을 회복해야 했다.

“감히, 너 따위가……!”

처음엔 폭행 정도로 끝내려 한 그의 마음에 살심이 솟구쳤다.

“죽여 버리겠어!”

팽지휴는 반대편 손에 공력을 가득 실은 채 자휘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휘익!

높게 뛰어오른 팽지휴의 왼손에서 삼 성의 호아장이 펼쳐졌다.

곧바로 쏘아져 오는 그의 권장!

“……!”

아래로 쏘아지는 그의 권장을 정통으로 맞는다면 죽을지도 모르는 공격이었다.

‘막아야 해!’

공격을 막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팔뚝에 있던 기갑이 가슴으로 옮겨져 갔다.

촤르르―

순간, 방패를 두른 듯 단단해진 자휘의 가슴과 팽지휴의 공격이 부딪혀 파열음을 일으켰다.

퍼엉!

강한 힘에 의해 뒤로 튕겨 나간 자휘의 몸.

“크윽!”

강한 힘에 일장 가까이 밀린 자휘의 입에서 선혈이 흘렀다.

“저 미친놈이……!”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생도들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의 공격은 누가 봐도 살의를 가진 공격이었다.

처음이야 단순 시비로 볼 수 있다지만, 이건 명백한 팽지휴의 잘못.

현무학관에서 쫓겨날 정도의 큰일을 그가 저지른 것이다.

“아아악!”

그러나 살수를 쓴 팽지휴의 손 또한 멀쩡할 수 없었다.

몸은 그대로였으나, 그가 호아장을 날린 손바닥이 터져 버린 것이다.

붉은 피와 살점이 뚝뚝 흘러내리는 그의 손.

“내, 내 손!”

뭉개진 왼손과 터져 버린 오른쪽 손바닥을 보며 팽지휴는 고함을 질러댔다.

“너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핏줄이 터진 눈으로 자휘를 노려보며 또다시 덤비려 했다.

덩치 큰 그가 살기를 흩뿌리며 일어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찍어 눌렀다.

“팽지휴. 그만해라.”

“나, 남궁 형!”

말린 사람은 현무학관의 생도대표, 남궁비천.

팽지휴와 친해 남궁 형이라 불리는 그가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지금 한 행동만으로도 너는 큰 징계를 받게 될 거야. 그러니 그만해.”

“어떻게 그만하라는 거야? 저 새끼가 내 두 손을-”

“그건 네가 자초한 것이다.”

남궁비천은 질책하듯 팽지휴의 말을 잘랐다.

“고작 인반 신입생도 하나를 못 당한 네 잘못이지.”

“하지만, 형!”

“네 마음이 어떤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의 눈이 안타깝다는 듯이 팽지휴의 엉망인 손을 쳐다보았다.

“빨리 의방으로 가서 손을 치료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 가문의 무공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

남궁비천의 말이 옳았다.

시시비비는 나중에 가릴 수 있어도, 손의 상처는 지금 치료해야만 했다.

그게 아니면 영원히 손을 못 쓸 수도 있었다.

“이곳은 내가 정리할 테니, 어서 의방에 가도록 해라.”

남궁비천의 말에 팽지휴가 분이 안 풀리는지 입술을 짓씹고는 자휘를 노려보았다.

“젠장.”

그러나 당장 손을 치료하지 않으면 팽가의 권장이나 장법을 쓸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은 치료를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수는 뒤에 하더라도, 손부터 고쳐야 했다.

그는 자휘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쏘아본 후, 말없이 의방으로 향했다.

팽지휴가 의방으로 가자, 남궁비천이 고개를 돌려 자휘를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인반의 진자휘라고 했나?”

“네.”

남궁비천이 이해 안 간다는 눈길로 자휘의 아래위를 훑었다.

“어떻게 팽지휴의 공격을 막은 것이지?”

그의 물음에는 하북팽가의 무공은 감히 너 따위의 가문이 막을 무공이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남궁비천의 거만한 눈빛을 받은 자휘의 입술이 뒤틀렸다.

“우리 지역에서 유명한 진가장의 보호기공이죠. 그동안 내공이 부족해서 못 썼을 뿐입니다.”

실제로 진가기공(眞家氣攻)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자휘의 경우, 진가장에서 고작 삼 년의 내공을 가졌기에 쓰지 못했을 뿐.

“그런데 총 교관님께서 하사하신 영약 덕분에 내공이 확 늘었지 뭡니까. 그래서 이렇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자휘는 지금 자신이 이긴 원인을 총 교관 덕이라 말하고 있었다.

‘어째서 총 교관님은 저런 것에게 그 귀한 것을 주셨단 말인가!’

자휘가 먹은 것은 천년화조의 알이지만, 사실을 모르는 남궁비천의 속마음은 불만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나 팽지휴같은 세가의 자제들에게도 줘도 모자랄 것을 저런 잡놈에게 주다니.

‘그래서 팽지휴를 이겼다는 거지?’

며칠 전만 해도 늑대 한 마리 이기지 못해 비실거렸던 놈이 이제는 팽지휴의 손을 망가뜨릴 정도라니.

현천단에 대한 욕심으로 그의 속마음에 총 교관에 대한 불만이 솟아올랐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남궁비천은 자휘의 앞에서 아무런 내색을 비추지 않고 말을 돌렸다.

“이름 없는 장원의 기공법 따위가 하북팽가의 장법을 이길 만큼 대단하다는 것인가?”

“물론 당신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잡기공으로 보이겠지만.”

자휘는 삐딱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비천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 잡기공이 대단한 게 아니라, 당하는 놈이 모자란 것 아니겠습니까?”

팽지휴의 수준이 낮아 고작 장원의 보호기공에 밀리는 것이라는 답.

자휘의 말을 들은 몇몇 생도들이 키득댔다.

남궁비천의 얼굴이 눈빛이 한층 사나워졌다.

“네 가문의 기공이 정말 그런지 한번 조사해 보도록 하겠다.”

“실컷 해보십시오.”

자휘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자, 그의 표정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 남궁비천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무성의하게 말했다.

“일단 우리 지반 생도가 네게 한 잘못은 사과하도록 하지.”

“사과는 팽지휴에게 받아야 하는데, 왜 당신이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내가 생도들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생도들의 잘못은 내 잘못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지.”

“절 죽이려 한 것은요? 그것 또한 당신의 사과 한마디로 지나갈 수 있는 겁니까?”

얼핏 보면 현무학관의 대표가 사과한다는 것이 큰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팽지휴와 그가 손해 보는 것은 없었다.

‘말 몇 마디로 넘어가려고?’

자휘는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남궁비천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못마땅한 듯 인상을 쓰는 남궁비천.

“……그 부분은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될 사안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그렇군요. 그렇다면 제가 직접 징계위원회에 찾아가겠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팽지휴는 손에 큰 부상을 입었다.”

“저도 내상을 입었습니다. 제 입가에 묻어 있는 피가 안 보이십니까?”

어떻게든 무마시키고 넘어가려고 하는 남궁비천의 행동에 자휘가 항의하듯 말을 이었다.

“지나가던 저를 불러세워 시비를 걸고, 혼자서 덤비다가 다쳐 놓고서는 살수까지 쓴 사람이 팽지휴입니다.”

자휘는 주변에 둥그렇게 서 있는 생도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저를 보고 있는 생도들이 모두 증인인데, 이렇게 사과 한마디로 지나가겠다는 겁니까?”

“증인이라…….”

남궁비천이 주변 생도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에 네 증인이 어디 있지?”

그의 한마디에, 자휘를 둘러싼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여기 있는 생도들은 자휘을 제외하고 모두 지반이나, 천반의 생도들.

그들이 왜 불이익을 감수하고 잡문파 놈 따위의 증인이 되어준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과 하북팽가에 등을 돌려서까지?

‘하! 뭐 이런 것들이 정파야?’

자휘는 냉담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생도들을 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하기야, 인반 생도들이나 자신을 지지해주지 윗반 생도들에겐 여전히 눈엣가시일 터였다.

게다가 이번에 그런 자신이 현천단까지 먹었으니.

얼마나 불만스럽고, 짜증이 나겠나.

그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리가 없었다.

“너를 위해 나서줄 생도는 없어. 네 주장은 일방적일 뿐이지. 그러니 서로 좋게…….”

그때, 남궁비천의 말을 자르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남궁비천의 미간에 금이 갔다.

‘이 목소리는…….’

익히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남궁비천의 눈이 요즘 자꾸만 가는 한 생도.

“제가 다 봤어요. 그러니 징계위원회에 같이 가서 증언하겠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향하는 그의 눈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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