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25화
하후홍 또한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총 교관이 특혜로 들어온 생도들을 싫어하는 게 눈에 보였는데 현천단을 주자 이상했던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추 교관님께 가.”
“심법 교관님?”
“응. 그분은 우리가 특혜자라고 해서 함부로 대할 분은 아니잖아.”
그라면 정말 문제가 생겼을 때, 불안정한 영약의 기운을 잘 다스려 줄 것이란 믿음이 들었다.
“알았어. 그, 그래도 조심하고.”
“그래. 조심해서 섭취할 테니 걱정 말고.”
하후홍은 문을 나가려다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았다.
뭔가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문 하후홍은 숙소 문을 닫고 나갔다.
‘이제 나 혼자구나.’
나는 앞에 놓은 현천단 상자 뚜껑을 열었다.
모습을 드러낸 천년화조의 알.
‘이걸 입안에 넣고 심법을 운용하면 된다고 했지?’
나는 천천히 천년화조의 알을 입에 넣고는 추 교관에게 배운 심법을 운용했다.
스스.
그러자 신기하게도 천년화조의 알이 입안에서 서서히 녹았다.
녹아드는 알의 맛은 데지 않는 뜨거운 불기운을 삼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천년화조의 알이 다 녹아 몸속으로 흡수되자 몸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흐읍……!’
처음에는 관찰하듯 몸속을 맴돌더니 점차 거세게 몰아치며 경맥들을 흔들었다.
백회에서 인양을 거쳐 하단전까지.
불같은 기운들은 경맥을 차차 넓히더니, 세맥을 따라서 온몸으로 흘렀다.
시냇물이 조약돌을 걷어내고, 시원하게 물길을 헤치듯 기운은 경맥과 세맥을 경쾌하게 휘돌며 내달렸다.
짜릿하면서도 화끈한 느낌.
“크읏…….”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기운들은 원시적인 길들을 다듬고 넓혀, 자휘가 내공을 운용할 수 있는 최적의 길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휘스스.
길을 만듦과 동시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되어 자휘의 몸을 한 번 더 휘돌더니, 그대로 흡수가 되는 붉은 빛!
콰당!
자휘의 몸은 천년화조의 알의 기운을 전부 흡수하자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이…… 이게 뭐야!?”
온몸에 충만한 기운.
내공이라고는 고작 오 년인 아랫배, 단전이 있는 부근이 뻐근했다.
나는 얼마만큼의 내공이 늘어났나 확인했다.
‘십 년……!’
정확히 십 년이 늘어난 내공.
이제는 십오 년이란 내공이 몸속에 생겼다.
“됐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하후홍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자, 자휘야. 괜찮아?”
그는 괜찮다 못해 힘이 넘치는 내 모습을 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현천단의 흡수가 빠른 것 같았지만, 실제로 시간은 반 시진이 흘러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무척이나 초조해하던 하후홍은 두 눈에서 눈물까지 찔끔 흘려댔다.
“나, 나는 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난 괜찮아. 지금까지 문 앞을 지켜줘서 고맙다.”
“고, 고맙긴. 네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하후홍이 울먹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한 시진 내내 숙소 앞을 지키던 하후홍을 보던 생도들이 수군댔다.
“무슨 일이야?”
“자휘가 현천단을 먹었대!”
“진짜?”
문 앞을 지키던 그를 보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천단을 섭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에서 나와 자휘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생도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드디어 현천단을 먹은 거야?”
“그럼 이제 너도 내공이 높아졌겠네?”
“부럽다!”
“축하한다, 자휘야!”
지난번 늑대 사건 이후로 인반 생도 대다수의 호감을 샀던 터라, 그들의 축하는 진심이었다.
“다 너희들 덕분이지 뭐. 고맙다.”
십 년의 내공이 추가로 생기자, 자휘의 기세 또한 달라졌다.
인반의 아이들과 대등한 수준의 내공을 지닌 자휘를 보는 생도들의 눈 또한 다르게 변했다.
중소문파의 특혜로 온 아이이자, 가장 약했던 아이, 진자휘.
그랬던 그가 이제는 인반에서 가장 내공이 많아진 것이다.
‘자휘는 정말…… 대단해.’
생도들의 축하를 받는 자휘를 보는 하후홍의 눈이 부러움으로 물들었다.
같이 들어온 특혜자이건만,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싶었다.
자휘가 여러 명의 인반 생도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을 무렵.
‘…….’
그 모습을 조용히 쳐다보던 인반 생도 하나가 사라졌다.
사라진 인반 생도가 향한 곳은 총 교관이 있는 전각.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장휘윤은 총 교관실로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이 멈춘 곳은 문 앞이었다.
“총 교관님. 인반의 장휘윤입니다. 뵙기를 요청합니다.”
장휘윤의 요청에 잠시 뒤 답이 들렸다.
“들어오거라.”
총 교관은 서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장휘윤이 숨을 죽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로 찾아왔나?”
총 교관이 한참 후 눈을 들어 장휘윤을 바라보았다.
장휘윤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답했다.
“진자휘라는 녀석이 현천단을 흡수해서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순간, 총 교관의 눈빛에 기이한 만족감이 스쳤다.
“그 아이는 지금 어떻지?”
총 교관은 다 안다는 듯이 느긋하게 몸을 뒤로하며 물었다.
그러자 우물쭈물하는 장휘윤.
“그것이…….”
“왜? 진자휘라는 놈이 잘못되기라도 한 게냐?”
자휘가 잘못되길 바라는 총 교관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삐죽 솟았다.
“그게 아니라, 현천단 흡수가 아주 잘 되어…….”
“뭐라? 주화입마가 아니라, 흡수가 잘 돼?”
총 교관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탓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가 준 그 현천단은…….”
그는 말을 차마 잇지 못하고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준 것은 분명, 실패한 현천단이다. 그런데 어떻게 제대로 섭취를 한단 말인가!’
속으로 기함을 토한 총 교관의 얼굴이 와그작 일그러졌다.
“내공은 얼마나 올랐다더냐?”
“……십 년입니다.”
“십 년? 하!”
어이가 없었다.
실패한 현천단은 아무리 잘 흡수해도 이, 삼 년이 다였다.
그런데 십 년?
“십 년이라면 놈이 기존에 가진 오 년에 더해 십오 년이나 된 게로구나.”
“마, 맞습니다. 그 덕에 인반에서 가장 내공이 깊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가장 약한 아이가 내공이 가장 많은 아이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속에서 터질듯한 열불이 솟아올랐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십 년이라면 제대로 현천단을 흡수했을 때 얻는 내공과 같았다.
그렇다면 진짜가 맞는 것인데…….
‘그럴 리가 없다!’
이미 있던 진짜 현천단 중 몇 알은 그가 빼돌린 터였다.
그래서 어렵게 구한 실패한 현천단을 거지새끼에게 적선하듯 준 뒤에 주화입마에 걸린 놈을 쫓아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모든 게 틀어졌다.
콰앙-!
그가 힘을 줘 서탁을 내려치자, 서탁에 금이 갔다.
“……!”
놀란 장휘윤이 뒷걸음쳤음에도 총 교관의 화는 가실 줄 몰랐다.
“제기랄. 쫓아내는 것도 부족한 판에 오히려 놈의 기세만 세워줬다니!”
무림맹에 어떤 보고를 해야 한단 말인가.
고작 인반에 특혜로 들어온 아이 하나 처리 못 한다며 능력을 들먹일 게 뻔했다.
“하아.”
무림맹은 둘째 치더라도 가뜩이나 잡초처럼 눈에 띄며 튀는 아이였다.
경험상 이런 놈들은 초반에 밟아줘야 했다.
죽이기 위해 제초제를 뿌렸는데, 그 제초제를 비료처럼 받아들일 줄이야.
“정말 미치겠군.”
다시 의자에 털썩 앉으며 이마를 짚은 총 교관.
그런 그를 보는 장휘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댔다.
그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현천단을 줘놓고, 먹으면 알려달라고 하더니…… 왜 저러시는 거지?’
그 현천단이 실패작임을 알 리 없는 장휘윤은 그저 이상할 뿐이었다.
총 교관은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장휘윤에게 꺼지라는 듯 손짓했다.
“돌아가라.”
“……네, 알겠습니다. 특별한 사항이 있다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손을 내젓자 장휘윤은 빠르게 뒷걸음쳐 총 교관실에서 빠져나왔다.
총 교관의 기분이 무척 저조한 듯 보였는데 무섭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장휘윤은 전각을 벗어나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자휘란 녀석이 부럽네.”
자신은 이렇게 세작 노릇이나 하며 개새끼 취급받는데…….
놈은 벌써 아이들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모자라 현천단까지 먹었다.
“십오 년의 내공이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반으로 올라갈 수 있겠구나.”
체력훈련과 심법 훈련이 마무리되면, 무공 교육이 실시될 테지만.
자휘는 왠지 그것도 잘해낼 것만 같았다.
‘으휴, 아버지는 왜 총 교관에게 약점을 잡히셔서는.’
장휘윤은 총 교관의 개 노릇을 하게 만든 부모님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 * *
이튿날이 되었다.
높아진 내력으로 추 교관에게까지 축하를 받으며 심법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데, 누군가가 자휘를 불렀다.
“야.”
어디선가 들어본 음성.
자휘가 고개를 천천히 돌리자, 삐딱한 모습으로 서 있는 팽지휴가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네놈이 하늘 같은 선배를 보고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가니까 이러는 거 아니야, 응?”
여전히 건들거리는 자세로 다가오는 팽지휴를 보는 자휘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저놈은 왜 또 이러는 거지?’
다른 방향에 있어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인사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걸 보니 작정하고 덤비는 것 같았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됐죠?”
대놓고 시비 거는 팽지휴를 그냥 지나칠 성격이 못된 자휘가 대충 인사를 했다.
그러자 우두둑거리는 소리와 함께 팽지휴가 고개를 양옆으로 꺾어 댔다.
“하, 그게 인사냐? 얼마 전만 해도 비 맞은 개새끼 같더니. 현천단까지 먹고 기가 팔팔 사셨네?”
머리 하나는 더 큰 팽지휴가 위협적으로 다가와 자휘를 내려다보았다.
“아, 거기까지 소문이 났군요?”
빈정대는 자휘의 말에 팽지휴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그때 밟아줘야 했었는데, 불쌍해 보여서 참았더니 이런 싸가지 없는 행동을 해?”
팽지휴는 멀끔한 데다 내공까지 높아진 자휘를 보자 배가 아팠다.
특혜로 현무학관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현천단까지 받은 운 좋은 놈.
그런 놈이 이제는 조금만 높이면 지반에 올 수 있는 내공까지 가졌다.
‘더 크기 전에 밟아야 한다.’
이놈을 그대로 두면 현무학관의 기강을 흐릴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뻣뻣하게 구는데 앞으로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여유롭게 이놈을 이기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휘 역시, 이번엔 단순히 말로써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현천단으로 인해 높아진 내공만큼 윗반 생도들의 경계를 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뭐……?”
아예 대놓고 시비를 거는 마당에 예의 차릴 게 뭐가 있나.
자휘 또한 반말을 하자 팽지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선배한테!”
그가 우람한 손을 위협적으로 치켜들었다. 그러나 팽지휴의 위협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자휘.
“선배 같아야 대우를 해주지.”
팔짱을 끼는 자휘를 보는 팽지휴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그가 분노에 차 소리치자, 주변의 생도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미 모여있던 생도들이 자휘를 흉보기 시작했다.
“인반 신입새끼가 지반 선배한테 반말을 하다니.”
“진짜? 싸가지 없는 놈이네.”
“이번에 현천단을 먹어서 내공이 좀 높아진 거로 아주 하늘 높은 줄 몰라.”
들으라는 듯 수군대는 소리.
팽지휴은 어깨를 펴고 손가락 관절을 소리 내며 풀었다.
“들었지? 여기에서 네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넌 오늘 여기에서 뒤지게 맞게 될 거야.”
그러나 팽지휴가 아무리 겁을 줘도 자휘의 표정은 평온했다.
“편 따윈 없어도 상관없어.”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자휘는 대련 자세를 잡고는 손가락을 까딱였다.
“입으로만 싸우나 봐?”
“이 새끼가!”
자휘의 도발에 팽지휴가 폭발했다.
험악하게 달려드는 그와 자휘 사이로, 차가운 금속 소리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