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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23화 (23/200)

기갑무림 23화

그날 밤.

나는 또다시 투명화 기능을 사용해 밖으로 나갔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투명화 기능의 사용 여부를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이 어렵지, 이제 자동이네.’

반 각이라는 제한시간이 있지만 가장 쓸모 있는 기능.

이 기능을 좀 더 자유롭게 쓰게 되자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영약들을 숨겨둔 곳은 빠른 걸음으로 반 각이 좀 넘는 거리.

가까운 거리지만 오늘 종일 수련을 한 터라 근육이 파들파들 떨려왔다.

“으윽.”

온몸이 비명을 질러왔다.

그래도 오늘 꼭 숨겨놨던 내 영단들을 찾아야만 했다.

혹시라도 다른 동물들이 작은 목함을 물고 가버릴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돌로 앞을 막아놓긴 했지만, 괜스레 조바심이 들어 발이 빨라졌다.

“어디 있더라?”

어두운 밤이라 숨겨 놓았던 토끼굴이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달빛이 환하게 비추는 밤이라 하나, 어둠이 훨씬 더 많은 산이었다.

“분명, 토끼굴 앞에 표식을 해 두었는데.”

급한 마음에 대충하긴 했으나, 토끼굴 앞의 돌 위에 진흙을 묻혀 두긴 했다.

그러나 밤이라 잘 보이지 않다 보니 애가 탔다.

그렇게 한 이 각 정도 찾았을까.

드디어 숨겼던 곳을 찾았다.

“겨우 찾았네.”

표식이 되어 있는 작은 토끼굴 앞의 돌을 치우자, 숨겨 놓았던 목함들이 보였다.

‘다행히 잘 있구나.’

나는 목함을 열어볼까 하다가 멈췄다.

어두운 데다 장소가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은 현무학관과 너무 가까웠다.

“옮겨야겠어.”

숨길 때야 급한 마음에 가까운 곳에 숨겼지만 이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나는 목함들을 소중히 품에 넣고는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반 각 정도 올라가서 절벽 근처를 둘러보자, 약간 떨어진 곳에 작은 굴이 어슴푸레 보였다.

‘저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

근처에 다다르자, 약간은 작은듯한 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한자 정도의 높이와 넓이.

엎드려 들어간다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화륵.

나는 화섭자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어두운 굴 안에 어떤 짐승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넓은 굴속으로 들어가자, 산짐승 냄새가 풍겼다.

‘여우굴이었나?’

이곳에 살던 여우는 죽었는지 여우로 추정되는 뼈들이 보였다.

잔해를 대충 수습해서 내다 버리고 안쪽에서 밖으로 나뭇가지를 쌓았다.

“이 정도면 밖에서도 보이지 않겠지.”

나는 숨을 고른 후, 목함을 열었다.

그러자, 전보다 단단해져 보이는 내단과 천년화조의 알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내단들의 상태는 하루가 지나서인지 변화가 있었다.

“혹시…… 앙숙인 청독각망과 천년화조의 내단을 같이 놔서 문제가 생긴 건가?”

목소리가 알려주는 영약이 있다는 말에 목함을 챙겨 갔지만, 여러 개 챙기지는 못했다.

그래서 같이 둔 것인데.

내단들이 그만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마치 돌처럼 변해 버린 청독각망의 내단.

‘이걸 어쩌지?’

운 좋게 구한 내단들이었다.

그런데, 돌처럼 변한 나머지 섭취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 내단들은 먹을 수 없겠는데.”

너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천년화조의 알로 눈을 돌리려는데.

[불완전한 마석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목소리가 돌연 이상한 말을 꺼냈다.

“……뭐라고?”

내가 구한 것은 이무기가 되기 직전이었던 청독각망의 내단과 천년화조의 내단이다.

그것들이 왜 마석으로 분류된단 말인가?

당황스러움에 멈칫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마석의 등급은 하급입니다.]

[불완전한 하급 마석흡수 시, 3의 동화율을 획득합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생각.

‘그럼 혹시?’

청독각망의 내단은 흰색.

돌처럼 딱딱해진 청독각망의 내단을 자세히 보니…….

“적미륵에 있던 흰 돌과 비슷하잖아!”

이무기의 내단이 마석이 되었다.

목소리가 말하는 걸 들어보면, 마수라는 생명체에서 마석을 얻는 듯했다.

‘마수라는 건, 마귀 같은 사나운 동물을 말하겠지. 그럼 이무기도 그런 종류에 속하는 건가?’

내 추측이 맞다면, 이무기가 된 청독각망의 내단을 기갑이 마석으로 인식한 것 같았다.

다만, 완전한 이무기가 아닌 만큼 불완전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처음 청독각망의 내단을 보았을 때는 마석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천년화조의 내단이 이무기의 내단을 마석으로 만든 것인지도 몰라!”

나는 새로운 발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 그만 굴 천장에 머리를 찧었다.

“윽!”

꽤 세게 부딪혔음에도 아프지 않았다.

도리어 마구 웃고 싶은 마음.

“동화율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냈다!”

마석이란 것으로만 동화율을 높일 수 있는데 내가 아는 상식으로 마석이란 것은 중원에 없었다.

‘그런데, 이무기의 내단이 마석이 될 줄이야!’

이무기가 구하기 무척 어렵다고는 하나 구할 수 없진 않았다.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구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돈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 희망이 생긴 것이 중요했다.

[불완전한 하급 마석을 흡수하시겠습니까?]

기뻐하고 있는 와중에 목소리가 마석의 흡수를 종용했다.

빨리 먹고 싶다는 본능으로 가슴 부분이 찌르르 울려올 정도.

[흡수 시 동화율이 50이 됩니다.]

[동화율이 50을 넘으면 보강 기능이 추가됩니다.]

오 할의 동화율에 기능까지 쓸 수 있는 것을 넘어 보강 기능 추가라니?

순간 혹할 정도의 욕심이 솟았다.

그러나 이 마석은 기적적으로 찾아낸 실마리였다.

함부로 쓸 수는 없었다.

‘흡수하게 되면 이 마석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사라진다.’

어머니의 목걸이로 보건대, 사용하지 않는 한 마석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럼 언제든 쓸 수 있다는 말.

굳이 지금 조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일단 쓰지 말고 가지고 있자.”

나는 청독각망과 천년화조의 내단을 그대로 목함에 넣고, 가지고 온 것을 꺼냈다.

가지고 온 목함 안에 있는 것은 현천단.

뚜껑을 열자 현천단의 맑고 청아한 향이 작은 동굴 안을 가득 채웠다.

“실패작일 수도 있다는 거지?”

겉보기엔 진짜 같았다.

그러나 제갈신의 말대로 만에 하나 실패작이라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모험하느니, 안전함을 택하는 게 옳았다.

게다가 실제로 총 교관이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었고.

“이게 정말 실패한 현천단이라면 후회하게 될 거야.”

이걸 이용해 두고두고 우려먹을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현천단은 여기에 두고 가야 했다.

실패작이라 해도 제갈신의 말처럼 이것은 꽤 좋은 약은 틀림없으니.

나는 상으로 받은 현천단과 천년화조의 상자를 바꾸었다.

현천단을 섭취하는 모습을 보이긴 해야 하니 상자를 바꿔 눈속임해야 했다.

‘어차피 영약을 흡수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오지 못하니 괜찮을 거야.’

내용물을 바뀐 목함을 품에 넣고 여우굴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여우굴 앞을 나뭇가지며 큰 돌로 메꿔놓았다.

이곳 절벽은 워낙 커서 위치를 아까처럼 헷갈릴 일도 없었기에 특별한 표식은 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숙소로 돌아가 볼까.’

처음에 토끼굴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해서 벌써 두 시진 정도가 지나있었다.

이제 얼마 있으면 새벽이 될 것이다.

그전에 들어가서 조금이라도 잠을 자야만 했다.

많은 것을 얻은 지금,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척 가볍고 경쾌했다.

* * *

다음날이 되자, 또 다른 수업이 이어졌다.

오늘은 기초 심법 훈련.

기초 심법 훈련은 인반만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천반의 남궁비천만 봐도 남궁세가의 고유 심법이 있는데 이곳의 심법을 또다시 연마할 필요가 없지 않나.

그래서일까.

분위기는 어제와 사뭇 달랐다.

아이들의 눈에서도 ‘이걸 배워야 하나’라는 망설임이 있었고 교관 또한 그걸 아는지 시큰둥했다.

“왔느냐? 난 기초 심법을 맡은 추모라고 한다.”

그는 교탁 앞 의자에 널브러지듯 앉아 느릿하게 생도들에게 말했다.

“내가 가르칠 심법은 삼재심법이다. 이미 가전 무공을 익히고 온 너희들도 익힐 수 있는 심법이지.”

가전 무공을 익혔음에도 익힐 수 있다는 말에 인반 생도 중 하나가 물었다.

“여기 있는 대다수가 그렇듯 저희는 가전 심법을 익혀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심법을 배운다면…… 심법끼리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삼재심법인데 뭘. 충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익히지 않아도 돼.”

“네?”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있자, 추 교관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네 말대로 가전 심법을 익히고 있는데 굳이 다른 심법을 배울 필요가 있느냐?”

“그게 무슨……?”

“내 수업시간 동안은 각자 가문의 심법을 연마해도 된다는 말이다.”

수업시간에 가전 심법으로 수련해도 된다는 말에 생도들의 눈이 커졌다.

“진짜 그렇게 해도 됩니까?”

“된다.”

“그럼 평가는 어떻게 합니까?”

“그건…… 에잉, 너 이리로 와보거라.”

생도들의 의문 섞인 표정에 추 교관은 일어나더니 생도 하나를 불렀다.

지목당한 생도가 어정쩡한 자세로 나섰다.

그러자, 생도의 손목을 짚은 추 교관.

그의 입에서 정보가 줄줄 새어 나왔다.

“어디 보자, 너는 송화 일문의 자제로구나. 송화 심법도 괜찮긴 하지. 음…… 송화 심법 삼 성이라. 나쁘진 않군.”

“……!”

송화 일문의 자제인 송화운은 추 교관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희 가문의 심법을 어떻게 알아보시는 겁니까?”

“그게 뭐 별거라고. 왜, 신흥 무가라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더냐?”

송화운은 입만 벙긋거렸다.

추 교관은 그런 모습에 쯧 하고 혀를 찼다.

“내가 현무학관의 심법 교관인 이유가 달리 있겠느냐? 심법의 귀신이라서 그런 거지.”

그는 다소 신기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생도들을 향해 말했다.

“내 수업을 완료하려면 기존 경지에서 한 단계씩만 올리면 된다.”

그의 말은 단순했다.

삼재심법을 안 익혀도 되니, 각자 가문의 심법을 더 갈고 닦으란 말이었다.

추 교관의 자유분방한 심법 훈련을 듣자 생도들은 속으로 좋아했다.

‘그렇지 않아도 별 시답잖은 심법을 익혀서 시간 낭비만 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네.’

‘다행이야, 가전 심법을 연마할 수 있어서.’

차마 티 내지 못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의 표정에 추 교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제일 하급인 인반조차 배우지 않는 심법이 삼재심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심법이란 섬세해서 잘못 익혔다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아무리 삼재심법이 정파의 기본을 담았다고 하나, 안 맞는 아이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해할 수밖에.

“자, 그럼 한 놈씩 나오도록 해라.”

추 교관의 말에 생도들은 하나씩 그의 앞에 가서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기가 막힐 정도로 신입 생도들의 심법을 알아맞혔다.

“너는 이 성이로구나. 삼 성이 되면 내게 다시 검사받으면 된다.”

“네.”

추 교관은 아이들 이름 옆에 현재의 심법 경지와 이뤄야 할 경지를 적었다.

“어디 보자, 그럼 이제 두 명이 남았군.”

추 교관의 눈이 아직 검사를 받지 않은 두 사람을 향했다.

진자휘와 하후홍.

‘이번에 특혜로 온 놈들이로군.’

그는 중소문파 특혜로 온 생도들에게 악감정이 없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사람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테냐?”

그냥 보기에도 특별한 내공이나 심법을 익히지 않아 보이는 소년, 자휘가 답했다.

“가전 심법이 있긴 하지만, 큰 성과는 못 이룬 상태입니다.”

“그거야 여기서 이뤄도 되는 일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줄 수도 있지.”

추 교관은 사실 생도들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기초 심법 교육이 생기고 그가 교육을 맡은 이래로 여태껏 단 한 명의 생도도 삼재심법을 익히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삼재심법을 익히고 싶습니다.”

처음으로 삼재심법을 익히고자 하는 생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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