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22화
왜 날 부르는 거지?
교관의 호출에 속으로 의문을 삼키며 앞으로 나갔다.
“네가 진자휘냐?”
“네.”
가까이서 보니 외공의 고수답게 연갈색의 탄탄한 근육의 우람한 몸집을 가진 공 교관.
그는 나를 자세히 살펴보더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생각보다는 약골인걸.”
공 교관은 손가락으로 갈라진 턱을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뭐, 나야 전달만 하면 될 뿐이지만.”
그는 품에서 작은 함을 꺼내었다.
“받아라.”
“……?”
뜬금없이 건넨 작은 목함.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가 말을 보탰다.
“이번에 인반 생도들을 구한 사람이 너라고 들었다. 이건 총 교관이 전하는 상이지.”
총 교관이라면, 얼마 전 사건을 조사할 때 날 싫어했던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상이라니?’
의구심은 곧이어 들린 공 교관의 말에 더욱 깊어졌다.
“이것은 현천단이다.”
“……!”
현천단이라는 말에 생도들의 입에서 놀라움이 터져 나왔다.
현천단이 무엇인가?
신의가 만든 단약으로 만듦새에 따라 오 년에서 최대 삼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신의가 만든 귀한 영약이 인반 생도에게 상으로 나온 것이다.
“와, 현천단이래!”
“저 귀한 걸 받다니 부럽다!”
“자휘는 좋겠네.”
인반 생도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현천단은 큰 행사가 있을 때 아이들에게 주는 상중 하나였다.
그들의 표정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반면, 부러움을 넘어 질시로 얼룩진 지반과 천반 생도들의 입에서 거침없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하, 인반에서 제일 먼저 현천단을 받는 놈이 나올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늑대 새끼를 잡는 건데!”
“그러게 말이야, 고작 늑대 하나 잡고 현천단이라니. 너무 과하잖아?”
부러움과 질투에 찬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모든 생도가 부러워함에도 내 눈은 깊게 가라앉았다.
‘무슨 꿍꿍이지?’
일단 이렇게 대놓고 주니 받기야 하겠다만 뭔가 의심스러웠다.
살짝 눈을 돌려보니, 제갈신 또한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으며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
‘제갈신은 뭔가 알고 있네.’
그렇다면 나중에 물어보면 그만이다.
나는 일단 가식적으로 기쁜듯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숙였다.
어쨌건 현천단은 귀한 것임은 틀림없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차려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이 당연하다는 듯 교관은 피식 웃고는 모두에게 말했다.
“본래는 모든 생도가 있는 자리에서 줘야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 보니 이렇게 신입생도들 앞에서만 간소하게 네 공을 치하하는 것이다.”
그는 마치 적선하는듯한 얼굴로 고개 숙인 자휘의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비공식적인 일에 현천단이 상으로 나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러니 중소문파 특혜로 들어온 너는 총 교관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받아야 한다.”
말속에는 보잘것없는 네게 현천단을 주는 이곳이 얼마나 자비로운가 하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스며드는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입술을 꾹 깨물고 상자를 받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숙인 얼굴에서 애써 불쾌함을 지우며 생각했다.
언젠간 저들의 오만을 부수겠다고.
다시 고개를 드는 내 얼굴은 그저 평온하게 보일 뿐이었다.
짝짝짝-
현천단을 받음과 동시에 이어지는 생도들의 박수 소리.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손뼉 치는 생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반 대다수는 진심이었고, 다른 반은 시큰둥하거나 팔짱만 끼고 있었다.
‘저놈들은 내가 아니꼽겠지.’
받기 힘든 현천단을 인반이, 그것도 특혜로 들어온 놈이 꿀꺽해 버렸다.
그들이 열 받은 건 당연지사.
의심은 접어두더라도 총 교관이 다른 반 생도들이 날 경계하게 만든 것은 성공했구나 싶었다.
‘조용히 생활하며 강해지려고 했던 계획은 물 건너갔구나.’
한숨을 쉬며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공 교관이 수업의 재개를 알려왔다.
“그럼 할 일도 마쳤으니, 마보를 다시 시작할까?”
교관의 말에 생도들의 표정이 썩은 생선처럼 변하며 소리쳤다.
“아까 끝난 게 아니었습니까?”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또…….”
생도들의 아우성에 공 교관이 혀를 찼다.
“흥, 끝나긴 무슨. 마보는 하루 한 시진 반이 기본이다!”
“하, 한 시진 반이라니!”
“말도 안 돼!”
끝난 줄 알았건만, 아직 반도 못 했다는 소리였다.
공 교관의 말에 생도들의 표정은 하늘이 무너진 듯했다.
“반 시진마다 이렇게 쉴 수 있게 해주지 않느냐? 내가 수련할 때는 쉬는 시간도 없이 두 시진을 연달아서 했다!”
공 교관이 매섭게 말을 이었다.
“쯧, 약한 놈들 같으니라고. 요즘 것들은 정신이 썩었단 말이지.”
생도들을 진짜 말, 아니, 말 근육으로 만들려는 그가 단호하게 소리쳤다.
“마보 한 시진 실시!”
* * *
한동안 곡소리가 나던 체력훈련은 저녁이 되어서야 끝났다.
시간을 채우지 못한 같은 반 생도가 다 채울 때까지 마보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열 명이 기절했다가 깨어났고, 시간을 채운 생도는 남은 시간 동안 내공을 수련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공 교관도 같이 마보를 했는데…….
무려 두 시진이 넘도록 마보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를 보며 아이들은 생각했다.
‘근육 마귀 같으니!’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무공을 펼칠 때 저렇게 하체에 힘을 안정적으로 줄 수 있다면…….’
굳건한 신체적 바탕 위에 안정된 무공이 펼쳐질 것은 자명했다.
설령, 내공이 떨어지더라도 말이다.
공 교관의 수업은 힘들지만 그만큼 기본기를 쌓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럼에도 몸이 힘든 건 사실.
천반이나 지반은 일찌감치 끝내고 들어갔고, 마지막 남은 이는 인반의 하후홍이었다.
하후홍은 마보를 한 채로 그냥 눈만 까뒤집고 기절해 버렸다.
그 모습에 공 교관은 혀를 차며 시간을 인정해 주겠다는 넓은 마음을 보였고, 우리는 마보를 끝낼 수 있었다.
실려 가는 하후홍을 보며 거의 기어가다시피 숙소로 향했다.
“으으.”
얼마 전까지 도자기 같던 몸을 가졌던 내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건강해졌다고는 해도 힘든 훈련을 연달아서 하니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한 시진 반을 채웠다는 데 나름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데.
옆에 있는 제갈신의 모기만 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리가…… 안 움직여.”
그가 덜덜거리는 다리로 기어가다시피 하며 말했다.
“내 다리가 아닌 것 같아.”
지옥훈련이라는 말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진짜 잘 지었다.
팽지휴 놈이 날 불쌍하게 보았던 것도 이해가 가고.
‘그놈은 내가 이걸 못 버틸 약골로 생각했겠지.’
약해 보였던 모용설화도 버티고, 머리만 쓰는 제갈신도 해내는데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나?
다만 언제까지 이 훈련을 하는지 의문이 들긴 했다.
“이걸 언제까지 하는 거야?”
“일 년 내내 한다고 들었다.”
“일 년 동안 계속?”
내가 기막힌 표정을 짓자, 제갈신이 안심하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래도 삼 개월 후부터는 내공을 쓰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군.”
내공을 쓰게 된다면 훨씬 수련이 편해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천반과 지반의 생도들과의 격차가 벌어질 터였다.
인반의 수준은 그만큼 그들에 비해 떨어졌다.
‘이래서 날 인반에 배정해 줬던 교관이 콧방귀를 뀐 거구나.’
이곳에 온 첫날, 그에게 일 년 안에 지반으로 가겠다고 말했었다.
얼마나 가소로워 보였을까.
그러나 천갑무신의 후인이 바로 나다.
천반 생도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한들, 그들의 조상이 못한 걸 천갑무신은 해냈다.
지금이야 무시를 받을 수 있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지반 따위. 가 보이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각반의 수준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했다.
내 시선이 이제는 기어가다 멈춰 버린 제갈신을 향했다.
“혹시, 각반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흠, 알기야 알지만…… 워낙 개인차가 커서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네.”
“대충 평균으로.”
“평균이라……. 음, 천반이 삼십 년, 지반이 이십 년, 인반이 십 년 정도?”
제갈신의 말에 의하면 인반과 천반의 차이는 최소 세배였다.
‘그것도 최고로 높은 아이는 제하고 말이지.’
지난번 신고식 때 사십 년의 내공이 있어야 점혈을 바로 풀 수 있다 했다.
그런데 천반의 생도들은 금방 점혈을 풀었다.
천반 최고의 생도는 약 삼십오 년 이상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내가 오 년이니, 일곱 배 정도네.’
그뿐만이랴.
그들의 가전 무공을 생각한다면 그 차이는 또다시 몇 배로 벌어졌다.
아무리 나중을 생각한다 해도 처음부터 주어지는 격차는 꽤 컸다.
“그래도 넌 현천단을 받았잖아.”
“받기야 했지.”
“현천단의 품질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섭취만 잘한다면 다른 반을 따라잡는 게 가능할 거야.”
“그래? 그런데…… 그 귀한 현천단을 나한테 왜 준거지?”
그는 대답을 피하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전음으로 말하는 제갈신.
[나도 그게 의심스럽다.]
역시.
그 또한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생도 앞에서 가짜를 주진 못했을 것이다.
총 교관의 의도를 생각하는데 제갈신이 다시 전음을 날렸다.
[현천단을 보여줄 수 있어?]
아직 전음을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기에 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함을 건네주자 제갈신이 현천단을 꼼꼼히 확인했다.
“내가 알던 현천단과 같긴 하네.”
제갈세가에 있는 만큼 신의가 만든 현천단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겉이 같다고 해도 속까지 같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총 교관 입장에서는 네가 눈엣가시일 텐데 귀한 영약을 줄 리 없지. 아마도…….]
그는 신중하게 고민하더니, 잠시 후 전음을 보냈다.
[네가 받은 현천단은 실패작일 가능성이 크다.]
실패작이라고?
놀란 눈으로 의아하게 쳐다보니 제갈신이 설명을 이었다.
[신의가 만드는 현천단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야. 그만큼 현천단을 제조하는 건 까다롭거든. 가끔 연단에 실패한 현천단이 나와. 물론 그것도 가치가 높긴 하다만.]
워낙 고급 영초들을 배합한 터라, 실패한 현천단은 무인들의 상처 치료에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섭취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조건이 붙었다.
[실패한 현천단을 섭취하려면 고수가 붙어서 영약이 흡수되도록 도와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제갈신이 굳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주화입마에 걸린다.]
연단에 실패한 현천단도 효과가 있긴 했지만, 반드시 고수가 영약의 흡수를 도와줘야만 했다.
조절되지 않은 영약의 기운에 십중 팔구는 주화입마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 이거 완전 날 엿먹이려는 수작이었잖아?’
어쩐지 속 좁아 보이는 총 교관이 내게 현천단을 준다고 했을 때 이상했다.
제갈신의 말대로라면 내가 받은 현천단은 실패작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그걸 신의가 아닌 이상 확인할 수도 없거니와, 내가 제갈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일이었다.
‘그냥 먹었다면 주화입마에 걸렸겠지.’
그리고 이곳에서 나가야 했을 것이다.
속으로 이를 갈았으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놈은 몰랐겠지만, 나에겐 이미 영약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럽게 내공이 오르면 의심할까 걱정했는데 잘되었다.’
총 교관이 준 현천단을 먹고 다들 내공이 높아졌다고 생각할 테니.
놈은 내가 주화입마에 걸리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총 교관의 계략은 오히려 내가 내공이 늘어날 빌미를 주었을 뿐.
‘두고 보자고.’
이왕이면 놈의 계략을 이용할 셈이었다.
그렇다면 처음 할 일은 진짜 영약을 흡수하는 것.
진짜 영약을 흡수하고 나면 총 교관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