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17화
달빛을 받아 사납게 번득이는 늑대의 이빨 사이로 침이 흘러내렸다.
툭.
날카로운 이빨이 팔뚝에 닿는 순간.
콰득!
팔뚝을 문 늑대의 샛노란 눈에 당황스러움이 번지며 부러진 이빨이 튀었다.
“……커엉!”
고통에 찬 짐승의 비명이 울렸다.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가는 놈.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날카로운 이빨 몇 개가 나가 있었다.
이빨이 아무리 날카롭다고 한들 기갑화된 팔뚝을 이겨낼 수 없었다.
“크르르…….”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늑대가 머리를 흔들더니, 분에 못 이겨 으르렁댔다.
늑대의 모습에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두 눈을 크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무기가 필요해!’
기갑화 기능을 계속 쓸 수는 없다.
지금은 정말 어쩔 수 없어 썼지만, 계속 썼다간 의심을 받을지 몰랐다.
그때, 눈에 곡괭이가 들어왔다.
선배들이 구덩이를 팠던 도구였다.
“크릉!”
놈이 또다시 덤벼들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곡괭이를 잡고는 늑대를 향해 휘둘렀다.
“저리 가지 못해!”
늑대는 내 앞을 서성이며 으르렁댔으나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러나 영악한 놈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바로 먹잇감을 바꿨다.
무기를 든 나를 피해 다른 아이들에게로 향한 것.
“으아아!”
아직 점혈이 덜 풀린 아이들에게서 억눌린 비명이 흘러나왔다.
‘젠장!’
나를 제외하더라도 무려 열아홉이나 되는 인반 아이들이었다.
늑대가 있는 곳으로 급하게 움직여 곡괭이를 넓게 휘둘렀다.
그러자 몸통을 뒤로 빼며 또 다른 아이에게 늑대가 달려들었다.
늑대의 표적이 된 생도는 제갈세가의 제갈신.
그가 다급히 소리쳤다.
“저리 가……!”
제갈세가다 보니, 어느 정도 기본은 있어 아혈은 풀린 모양이었다.
“크릉!”
늑대는 제갈신의 목덜미를 물기 위해 으르렁대며 다가섰다.
“안 돼!”
제갈신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도, 도와줘!”
점혈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제갈신이 간절한 눈으로 자휘를 바라봤다.
‘제갈신을 도와준다고 해도 또다시 다른 아이를 공격할 거야.’
원인인 늑대를 죽여야 한다.
설사 제갈신이 위험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곡괭이를 강하게 쥔 손등에 힘줄이 올라왔다.
늑대는 잠시 멈칫하는 자휘를 보고는 제갈신을 향해 시뻘건 입을 벌렸다.
벌어진 놈의 입 사이로 부러진 이빨이 날카롭게 빛났다.
늑대가 제갈신의 목덜미를 물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타앗!
다리 부분에 힘을 줘 높게 도약하며 곡괭이를 치켜들었다.
촤르르?
늑대를 앞에 두자 자동으로 다리와 팔에 둘러지는 기갑.
기갑의 힘으로 한달음에 늑대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 자휘가 소리쳤다.
“고개 숙여!”
제갈신은 늑대에게 물리기 바로 직전이었다.
이제 죽는가 싶었는데, 늑대 머리 위로 곡괭이를 든 자휘가 보였다.
그는 고개를 황급히 숙였다.
“크릉?”
위험을 감지한 늑대 역시 휘둘러지는 곡괭이를 피하고자 몸을 돌리려는데.
퍽!
기갑을 두른 왼쪽 정강이가 늑대의 몸통을 힘껏 걷어찼다.
“케에엑!”
늑대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비틀대며 한쪽으로 고꾸라지는 놈!
놈은 곡괭이만을 신경 쓰다가 자휘의 정강이에 당한 것이다.
강한 공격을 받은 늑대의 입에서는 거품이 흘러내렸다.
“크르륵…….”
늑대가 다시 일어서려 했으나 강한 공격을 받은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놈이 잠시간 비틀대는 찰나.
휘익!
곡괭이가 움직이지 못하는 늑대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내리꽂혔다.
“커컹!”
늑대의 머리를 가격하는 곡괭이.
퍼억!
강한 충격이 늑대의 두개골을 깨뜨리자 뇌수가 사방에 흩어졌다.
“허억!”
죽는 줄 알고 눈을 감았다 뜬 제갈신의 얼굴에 놈의 피가 튀었다.
눈 앞에 펼쳐진 늑대의 짓이겨진 머리를 보던 제갈신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순간이었다.
제갈신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며 곡괭이를 든 자휘를 바라보았다.
달빛을 받아 늑대를 죽인 자휘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반면, 아이들을 공격했던 늑대는 깨어진 머리에 혀를 빼물고 죽어 있었다.
인반에서 가장 무시당하던 아이가.
인반의 아이들을 위험에서 구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잇지 못하는 제갈신이 아연한 눈빛으로 자휘를 바라보았다.
그때, 자휘의 몸에서 힘이 쭉 빠지며 목소리가 울렸다.
[부분 기갑 기능이 종료되었습니다.]
때마침 들리는 종료안내.
‘겨우 이겼다.’
진한 탈력감과 함께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도 기갑의 기능이 아니었다면 죽었을지 몰랐다.
만약, 점혈이 그대로 돼서 구덩이에 파묻혀 있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늑대 한 마리 죽이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아이들이 없었다면 좀 더 쉬웠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힘이 분산되어 더 힘들게 늑대를 잡은 것은 사실이었으니.
그러나 무공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늑대 따윈 기갑의 힘을 빌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전엔 진짜 운이 좋았었구나.”
이번에 늑대를 처리하면서 복면인을 생각하자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무공 수준을 높여야 해.’
이번 일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기갑의 기능은 목숨이 위급할 때 숨겨진 한 수로만 써야 할 뿐이란 것을.
현재 가진 무공의 수준을 높여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현무학관의 수업이 무공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은 자명했다.
그러나 오늘만 봐도 그들은 인반 아이들은 그리 신경 써주지 않았다.
강한 자만 대우하는 곳이 현무학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흑…….”
울음소리에 생각에서 깨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구덩이에 박혀 공포에 떨고 있는 생도들.
점혈된 몸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바람에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늑대는 죽었어. 이젠 괜찮아.”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늑대가 죽었음을 알렸다.
대번에 얼굴색이 밝아지는 생도들.
“흐으…….”
늑대가 죽었다는 말에, 두려움에 떨던 생도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고, 고마워.”
아혈이 조금이라도 풀린 생도들은 직접적으로 내게 감사의 말을 전해오기 시작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거야.”
“내공이 강한 지반이나 천반은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는 그게 아니니까.”
“다 네 덕분이야.”
구덩이에 몸이 틀어박혀 고통스러워하던 하후홍도 감격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 자휘야. 정말 고마워.”
“고맙긴. 내가 아니었어도 했을 일이야.”
나는 그들이 표하는 고마움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들의 점혈은 풀어 줄 수는 없어. 대신 남은 시간 동안 짐승들이 오지 않도록 봐줄게.”
“알았어. 최대한 빨리 점혈을 풀도록 노력할게.”
자휘의 말에 생도들은 점혈을 풀 수 있도록 내공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점혈 수법은 내공 수위에 따라 풀리는 시간이 정해졌다.
생도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이 내공을 돌렸다.
‘교관에게 알려야 하지만 짐승들이 또 덤빌 수도 있으니 기다리자.’
한 사람이라도 점혈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점혈이 가장 빨리 풀릴 사람은 제갈신이었다.
늑대의 뇌수를 뒤집어쓴 채 아직도 멍하게 있는 그.
‘죽을 뻔해서 그런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보네.’
하긴, 제갈세가의 사람이 언제 이런 일을 당해봤겠나.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
괜찮냐는 물음에 제갈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현재 그의 마음속은 무척 심란하고 복잡했다.
오대세가 출신 중, 오직 그만이 인반이었고, 여기서 가장 강한 사람 또한 그였다.
“나는…….”
천반이나 지반에 가지 못했어도, 머리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반이어도 괜찮았다.
언젠가 무림맹의 군사 자리에 오르면 천반 아이들조차 자신의 지시에 따를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중소문파 특혜를 받고 들어온 아이에게 목숨을 구원받다니.’
겉으로 대놓고 티 내진 않았어도, 무시했던 생도가 바로 자휘였다.
하후홍 역시 특혜를 받고 왔지만, 그는 천금장의 자식.
천금장의 금력은 무시 못 하기에 선배들은 그를 괴롭혀도 인반 생도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자휘는 달랐다.
이름도 못 들어본 장원 출신에 가진바 무공도 변변치 않은 아이.
못 견디고 조만간 이곳을 떠날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무시는커녕, 없는 사람 취급했었는데…….
‘내가 틀렸다.’
신기제갈이라 불리는 제갈세가에서 촉망받던 그의 생각은 잘못되었다.
구덩이에 파묻혀 있는 인반 생도들 앞에 홀로 당당히 서 있는 소년.
제갈신은 자휘를 인정해야만 했다.
“……너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뭘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
자휘가 고개를 갸웃하자 제갈신이 굳은 얼굴로 답했다.
“특혜로 들어왔다길래 무공이 약하고,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될 거로 생각했다.”
“무공이 약한 건 맞아.”
“가장 먼저 점혈에서 벗어났으니 이곳에서 가장 무공이 높은 사람은 너다.”
“그건 선배가 점혈을 잘못해서 그래. 내 무공이 높아서가 아니라.”
제갈신은 고개를 저었다.
“선배가 실수했다 할지라도, 너는.”
제갈신의 눈이 부분 기갑화되었던 내 팔에 닿았다.
“우리를 위해 다쳤다.”
“그건…….”
“오늘의 네 행동은 도움 정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한 것과 같아.”
제갈신의 말에 팔을 들어보니, 처음 늑대를 막았던 팔뚝 부분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사실 늑대의 피인데.’
단단한 기갑에 이빨이 부러지며 튄 혈흔이 마치 피를 흘린 것처럼 보였다.
생도들은 내가 늑대와 싸우다가 생긴 상처로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네.’
팔이 기갑화되어 늑대의 공격을 막은 거라 어떻게 말하나?
오히려 아이들이 오해해 줘서 고마운 판이었다.
자휘가 잠시 말없이 있자, 제갈신이 고개를 숙였다.
“넌 우리의 은인이야. 정말 고맙다.”
“고맙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겸손 아닌 겸손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제갈신의 눈이 가늘어지며 빛났다.
‘우리의 목숨을 구했는데도 잘난척하기는커녕, 자신을 낮추는구나.’
이곳엔 유명세가의 아이들이 많다 보니 무공이 높은 아이는 제법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을 우습게 여기고 공(功)까지 가로채는 게 다반사였다.
당장 자신부터가 자휘를 무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아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이들을 큰 위험에서 구해주었음에도 겸손하기까지 했다.
‘보기 드문 아이다.’
비록 가문은 비천하나, 가진바 능력과 인품은 훌륭한 아이였다.
“나 제갈신은 오늘의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자휘는 감복하며 고개를 숙인 제갈신의 뒤통수를 내려보았다.
“아까부터 고개를 움직이더니 역시 네가 제일 먼저 점혈이 풀렸구나.”
역시 제갈세가다.
머리를 쓰는 가문이라, 내공이나 무공은 부족하다 해도 인반에서는 최고인 아이였다.
‘이런 아이한테 빚을 지워두는 것도 괜찮지.’
그가 구덩이에서 나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구덩이에서 나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던 제갈신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목숨의 은인인 네게 은혜를 꼭 갚으마.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얘기해다오.”
은혜를 갚는다는 제갈신을 보며 싱긋 웃으며 한 가지를 부탁했다.
“그럼 네가 교관한테 가서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전해줄래?”
아무래도 복수는 네가 더 적격일 것 같아서 말이야.
뒷말이 없음에도 제갈신은 알아들은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 역시 이번 신입생도 신고식은 할 말이 많았던 것.
“맡겨만 줘.”
늑대에게 당한 생각만 하면 속에서 열불이 뻗쳐왔다.
칼보다 무서운 혓바닥을 가졌다 알려진 제갈세가.
제갈신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