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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13화 (13/200)

기갑무림 13화

현무학관에 들어서자, 안내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고개를 갸웃하던 남자가 물었다.

“어느 자제분의 시종이십니까? 시종들은 이곳에 못 들어오게 되어있어 말씀해 주시면 불러다 드리겠습니다.”

“저는 시종이 아니라,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서 온 학생입니다.”

“……네?”

안내인의 눈이 자휘의 아래위로 한번 훑었다.

덥수룩한 머리로 가리긴 했어도 생긴 것은 괜찮았다.

그러나 입은 옷은 일반 평민이 입는 평범한 무복.

현무학관은 유명하고 힘 있는 무림인의 자제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지금껏 자휘처럼 홀로 이런 복장을 한 온 사람은 없었기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인의 뒤를 따라가는 자휘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다른 이들은 수행원이 딸려오거나 가족과 함께 이곳을 왔기에, 보통 현무학관에 들어가기 전 객잔을 잡고 하루를 묵었다.

작별인사도 나눌 겸, 주변에서 필요한 여러 물품을 사면서 말이다.

그러나 같이 온 사람도 없을뿐더러, 현무학관에서 나눠주는 옷이 있는데 뭐하러 옷을 또 산단 말인가?

쓸데없이 꽃단장할 필요는 더욱 없어서 그냥 왔건만.

무시 아닌 무시를 처음부터 받게 되었다.

“교관님. 현무학관의 입학생분이 오셨습니다.”

공손하게 말하는 안내인의 목소리에 무언가 적고 있던 중년인이 고개를 들더니 자휘를 훑어보았다.

“새로운 입학생이라……. 무관의 입학생치고는 지닌 내력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만?”

“지닌바 내공은 변변치 못하나, 이곳에 이번에 입학하기로 한 건 맞습니다.”

그는 시큰둥한 얼굴로 입학계를 찾아보며 물었다.

“어디에서 온 누구인가?”

“저는 진현촌의 진가장에서 온 진자휘라고 합니다.”

“진현촌의 진가장……. 아, 여기 있군.”

그가 찾은 입학계의 끝부분, 붉은 줄이 쳐진 이가장 다음에 적힌 것이 진가장이었다.

“무림맹에서 추천한 중소문파 특별 전형이군. 그것도 원래 오려던 이가장의 아이가 낙마를 당해 대신 온 아이라니.”

중년인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무성의하게 입학계를 소리 나게 덮었다.

원래 이곳에 오려 했던 이가장의 아이가 다리가 부러져 못 오게 되자, 다시 뽑힌 곳이 진가장이었다.

중소문파의 반발을 없애기 위해 구색 맞추기로 대충 뽑은 아이.

그 아이가 진가장의 적자였을 뿐이다.

“진가장의 진자휘. 현무학관의 새로운 입학생이 맞긴 맞는구나.”

그는 다시금 원래 적던 것에 집중하며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

“증명할 수 있는 신분 패를 제시하고 안내인에게 설명을 들어라. 그러면 그가 ‘인(人)’반의 숙소로 안내해 ?줄 것이다.”

그는 나가라며 보지도 않은 채 손짓을 했다.

교관의 성의 없다 못해 무시를 담은 태도에 자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본래 현무학관에 오면 시험을 거쳐 반이 배정된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왜 아무런 시험도 보지 않는 것입니까?”

뾰족하게 날아든 질문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교관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곳은 실력에 따라 반이 배정되지. 실력에 따라 천, 지, 인으로 말이다. 그런데 넌 당연히 인반이 아니더냐?”

그가 동물을 감별하듯 자휘를 다시 한번 관찰했다.

“내공은 기껏해야 5, 6년 정도겠구나. 거기에 몸은 외공을 익힌 흔적은 없고, 고작해야 가전무공 약간 익힌 정도?”

평가를 마친 그는 냉담한 얼굴로 자휘에게 물었다.

“그것도 이름 없는 지방의 장원이라면 볼 것도 없이 인반이지. 어디 내 말이 틀린 것이 있나?”

“아니요. 틀리지 않습니다.”

교관이 입술을 비죽였다.

“그런데 바쁜 내가 굳이 시험을 봐야 하나?”

“…….”

자휘는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자신을 하찮게 보는 그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른 입학생들에게도 이렇게 무례하게 심사를 보십니까?”

“무례하다라……. 무림에서는 강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현무학관은 무림의 축소판과 같거늘, 네가 감히 무례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 건가?”

강하지 않은 자는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휘는 그의 말에 주먹을 한번 꾹 쥐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강해진다면 오늘의 무례를 사과하실 겁니까?”

사뭇 도전적인 물음에 교관의 눈썹이 꿈틀했다.

곧이어 터지는 웃음.

“하하! 네가 날 재미있게 만들어주는구나. 좋다, 네가 일 년 안에 지반으로 옮긴다면 내가 모두의 앞에서 사과하도록 하지.”

그는 돌연 웃음을 뚝 그치더니 말을 이었다.

“대신, 너 역시 일 년 안에 지반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 그래도 내 말에 응하겠느냐?”

순간적으로 서슬 퍼런 기세를 뿜어내는 그의 기운에 다리가 휘청였다.

그러나 애써 참으며 담담하게 답했다.

“네. 그러도록 하지요.”

자휘의 답에 교관의 눈이 잠시 묘하게 빛났다.

아무 힘도 없는 중소문파의 아이가 지반으로 간다는 것은, 닭이 학이 되어 날아간다는 말과 같았던 까닭이다.

“좋다, 그럼 오늘의 일은 일 년 뒤 다시 보도록 하지.”

그의 말이 끝나자 자휘는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 모습을 멍하게 보던 안내인이 허둥지둥 자휘의 뒤를 따랐다.

문이 닫히자, 교관이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번 입학생들은 재미있는 놈들이 많군.”

심심하지는 않겠어.

몇 마디 중얼거리던 그가 다시금 바쁘게 일에 집중했다.

* * *

“아이고, 신입생도님. 어쩌자고 교관님께 그러십니까?”

안내인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묻자, 자휘가 되물었다.

“여기 있는 교관님들은 다 저러십니까?”

“그게…… 그러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계시는데, 대부분 저렇습니다. 왜냐면 이곳은 무학을 수련하는 학관이다 보니 대부분 거칠 수밖에요.”

“거칠다는 거야 이해합니다. 그것 말고, 다른 힘 있는 세가 자제한테도 저러냐는 말입니다.”

“그거야…….”

당연하다 말하려던 안내인이 말을 멈추었다.

“에효. 어쨌건 생도님은 성질을 죽이실 필요가 좀 있겠습니다. 여기 다른 생도들도 다 한 성질 하거든요.”

안내인인 그가 보기에 자휘는 여리한 모습의 보기와는 달리 대가 셌다.

그런데 대가 센 것과는 달리 무공은 약하고.

이곳에 성질 더러운 놈들에게 밥이 되기 딱 좋았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자휘를 인반 아이들이 모여 있는 전각으로 안내했다.

“머무실 곳은 이 방입니다. 두 명이 한 방을 쓰게 되는데, 같이 쓰실 분은 아직 안 오셨군요.”

자휘는 안내된 방을 살펴보았다.

제법 깨끗하고 나름대로 격조 있게 꾸며진 방이었다.

가운데를 중점으로 반으로 나뉜듯한 구조는 두 사람이 생활하기에 알맞아 보였다.

“무복과 기본적인 생활용품은 생도님에게 지급된 서랍 안에 있습니다. 식사는 아까 오시면서 보았던 식당에서 드시면 됩니다. 씻는 곳은 수련장 앞에 있고요.”

“알겠습니다. 입학식까지 남은 시간 동안 주변을 돌아다녀도 됩니까?”

“네. 수업 중인 곳이나 천반, 지반이 아닌 곳은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다만, 수련 중일 때는 생도들이 예민하니 조심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휘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내인이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나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아니요,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에 나가려던 안내인이 멈칫하며 자휘를 돌아봤다.

지금껏 많은 안내를 해주었어도 감사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하긴요, 제가 할 일인데요. 한 가지 개인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입학식 첫날, 되도록 잠을 자지 마십시오.”

그는 씩 웃으며 방문을 닫았다.

“입학 첫날 잠을 자지 말라고?”

입학식이라면 이제 이틀 남았는데.

아무래도 이곳에 오래 있던 안내인이니 뭔가를 아는 듯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조심해서 나쁘진 않겠지.’

배정된 서랍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은 무복 세 벌과, 간단한 생활용품들이었다.

“인(人)자가 새겨진 흰 무복이라.”

인반에 속한 것처럼 무복도 나뉜듯했다.

흰 바탕에 검은색이 덧대진 고급 무복은 절도 있어 보였다.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띠까지 두르니, 확실히 무관의 생도 같았다.

“그래도 현무학관이라는 건가.”

기본으로 나누어준 무복조차 내가 입고 있는 옷보다는 훨씬 나았으니 말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옷을 갈아입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결국 왔구나.”

이곳에서의 생활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것 같았으나 그래도 진가장보다는 훨씬 나았다.

최소한 현무학관은 노력만큼의 대가가 주어지는 곳이니 말이다.

“그럼 어디 한번 둘러볼까.”

자휘는 처음보다 멀끔해진 모습으로 밖으로 나섰다.

입학식까지 이틀이 남아서인지 인방의 팔 할 정도가 찼다.

자휘와 같은 복장을 한 아이들이 흘끔 자휘를 보았다.

중간에 있는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편이 남자아이들의 방이었고 왼쪽이 여자아이들 방이었는데…….

이상하게 여자아이들이 자신을 보면서 흘끔거렸다.

‘뭐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세수는 했는데.

뭐가 묻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지나치는데, 자휘를 본 여자아이들 얼굴이 살짝 발갛게 변했다.

‘어디 아픈가 보군. 무인이 저리 몸이 약해서야.’

자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실, 자휘는 미소년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는데 평소에 워낙 거지꼴을 하고 다니다 보니 주변에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급 무복으로 갈아입은 데다가 이마에 끈을 둘러 얼굴이 드러나자, 본연의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그 모습은 나름 현무학관에 들어오며 꿈에 들떴던 여생도들의 마음을 흔들기 충분했다.

‘와, 나 저렇게 잘생긴 애는 처음 봐.’

‘나도! 그런데 어디서 온 아이지?’

‘흠, 보니까 명문세가 자제는 아닌듯한데.’

‘명문세가든 아니든 뭔 상관이람. 우선 잘생겼으면 된 거야!’

‘맞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인걸.’

반면, 남자 생도들은 그런 자휘를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정작 자휘는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모른 채 유유히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확실히 좋긴 하네.”

밖으로 나가자 넓은 수련장이 펼쳐졌다. 천, 지, 인으로 나뉜 전각마다 각각의 수련장이 따로 있었는데, 제일 안 좋다는 이곳이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얼마나 좋을지 궁금할 정도였다.

주변을 한동안 눈에 담으며 현무학관에 왔다는 실감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비아냥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별 거지 같은 게 촌놈처럼 어슬렁거리긴.”

뒤돌아보니, 푸른 옷과 흰 띠를 한 소년 세 명이 자휘를 보며 비웃고 있었다.

‘지(地)반 생도들인가?’

푸른 옷에 자수된 지(地)자.

교관이 조건으로 말했던 지반에서 수학하는 생도였다.

“지금 내게 말한 건가?”

“풋, 그럼 너한테 하지 누구한테 했겠어?”

아이 중 하나가 내 앞에 서며 답했다. 큰 덩치에 힘 좋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을수록 반도 높게 마련이었는데, 덩치 큰 놈의 나이는 열일곱, 여덟은 되어 보였다.

“야, 너 어느 가문에서 왔냐?”

그들은 자휘에게 시비 걸기에 앞서 우선 가문을 물었다.

명문세가는 아닌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뒷배가 있거나 하면 곤란했으니까.

“내가 어디서 왔건 너희가 무슨 상관이지?”

“하! 인반 주제에 건방지게. 내가 물으면 재깍 답할 것이지 무슨 말이 많아?”

“그럼 너는 어느 가문에서 왔는데?”

그러자 덩치 큰 소년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하북팽가의 팽지휴다!”

“그래? 난 진가장의 진자휘라고 하는데.”

팽지휴가 자랑스럽게 외친 이름에도 뺀질한 얼굴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소년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게 왠지 짜증이 난 팽지휴는 더욱 시비조로 말했다.

“진가장? 거기가 어디야? 너희들은 들어 봤냐?”

“아니, 처음 듣는걸. 어디 먼 지방에서 올라온 촌뜨기 아니야?”

“아, 맞다! 잡 문파들이 현무학관이 유명세가들의 자제만 받는다고 엄청나게 항의했잖아.”

“그래. 나도 기억나. 그래서 특혜로 지방 몇 군데의 중소문파에서 입학생을 받기로 했다던데.”

생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일제히 자휘에게 쏟아졌다.

팽지휴의 입꼬리가 스륵 올라갔다.

“그럼, 저놈이 특혜자격으로 현무학관에 온 놈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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