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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갑무림-6화 (6/200)

기갑무림 6화

현로는 현무학관으로 같이 갈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다른 가문에 들를 때마다 내 존재가 짐이 되기도 하려니와, 귀하게 자란 아이들과 비교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와 헤어진 후, 필요해진 것은 바로 돈이었다.

현무학관까지 가려면 마차로 최소한 보름을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가문의 지원은커녕 땡전 한 푼 받지 못한 나였기에 돈이 없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지.’

생각해 낸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비밀 금고였다.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께서 한 번 보여준 것을 기억해 낸 것.

외따로 위치한 별채 서재는 아버지가 가끔 들르시던 곳이었는데…….

문제는 몰래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어둠을 틈타 내 손안이나 다름없는 진가장으로 숨어들었고, 비밀 금고에서 약간의 돈을 빼 올 수 있었다.

“은자 10개면 학관까지 가는 데 충분할 테고. 이 목함은 뭐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깨어났던 동굴이었다. 동굴 안의 넓적한 돌 위에는 은자 10개와 작은 목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대략 반자 크기로 작은 자물쇠로 잠겨 있는 검은 목함.

나는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돌 중, 제법 날카로운 돌을 찾아 집어 들고는 자물쇠를 힘껏 내려쳤다.

달칵.

그러자 쉽게 열리는 목함.

기대를 품고 목함의 뚜껑을 열자, 노란색의 작은 돌 세 개가 나왔다.

‘돌……?’

보석도 아닌데 왜 비밀 금고에 몰래 넣어두신 걸까?

아버지가 몰래 두었다면 진가장에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이란 말인데.

아니나 다를까, 자세히 보니 많이 봤던 종류의 돌이었다.

‘목걸이에 있던 돌과 거의 같잖아.’

다른 점은 목걸이에 있던 돌이 붉은색이었다면, 이건 노란색이었다.

자세히 보니, 역시나 미세하게 황금빛이 나는…….

“어엇!”

순간, 몸이 휘청였다.

꼭 몸 안쪽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처럼.

이상한 음성이 몸속에서 울렸다.

[하급 마석을 발견했습니다.]

[흡수에 동의하십니까?]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러나, 작은 동굴 안은 서늘한 공기 말고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누, 누구냐? 당장 모습을 드러내라!”

혹시나 귀신일까 하여 소름이 돋는데, 귀신 목소리치고는 고저 없이 딱딱한 음성이 다시 몸속에서 들려왔다.

[당신의 몸속에 있는 기갑입니다.]

몸속에 있는 기갑?

순간 퍼뜩 떠오른 것은 명치 끝에 박혀 있었던 붉은 돌이었다.

‘혹시 이 돌과 기갑이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는 걸까?’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현재 기갑 동화율 25.]

[하급 마석 한 개 흡수 시마다 5씩 동화율이 올라갑니다.]

[동화율 30부터 기능이 하나씩 개방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자꾸 들려오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도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이 목소리가 귀신은 아니라는 것.

이질적인 목소리는 몸속에서 들리는 것이 확실했고, 말할 때마다 아주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환청인가?

“하아, 내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 보네.”

고개를 내저으며 검은 목함을 닫으려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동화율이 낮아 전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습니다.]

[마석이 필요합니다.]

……마석?

설마 목함 안에 있는 돌들을 말하는 건가?

환청이건 뭐건 간에 일관적으로 말을 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실제로 뭔가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 돌로 한번 시도나 해보자.’

나는 목함의 뚜껑을 열고는 노란 돌 하나를 꺼낸 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특별한 방법이 없다면 이게 제일 나은 방법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돌을 올려놓은 손바닥 부분에 열감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돌 안의 노란빛들이 손바닥 안으로 번져 나갔다.

스스스.

빛들은 몸속으로 녹는 것처럼 스며들더니 구석구석을 맴돌았다.

그리고 세맥 안으로 스며든 빛.

빛은 아주 작은 실뱀들이 온몸을 간지럽히는 느낌마냥 세맥 안을 돌아다녔다.

빛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움직임을 멈추고 몸집을 불렸다.

부풀어 오르는 세맥에 온몸이 뻐근하며 고통스러울 찰나.

곧이어 몸속에서 울리는 펑 하는 아주 작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진동과 폭발음이었다.

폭발음과 함께 온몸에 청량감이 한순간 터지며 퍼져나갔다.

뻥 뚫린 세맥 안을 내달리는 알 수 없는 기운들이 전신을 휘돌았다.

“흐읍!”

몸 전체로 흐르는 전율.

놀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시원한 쾌감이 몸 안을 가득 채웠던 탓이었다.

이 소름 끼치는 느낌에, 온몸의 털들이 한순간 주뼛 서는 듯했다.

포만감이 몸속 가득 차올랐다.

[동화율 26…… 30.]

[기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목소리의 말에 의하면 이제 마석의 흡수란 것이 끝난 듯했다.

‘정말 끝내주는 느낌인걸?’

나는 방금 있었던 쾌감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손바닥 안을 들여다보았다.

손 위에 있던 노란 돌, 마석은 힘을 다했는지 재처럼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 붉은 돌도 마석이었겠구나.”

노란 돌이 하급 마석으로 불린 것을 보면, 붉은 돌은 더 높은 등급일 것이다.

그러니 내 몸속에 자리잡아 생명력을 끊임없이 나눠주는 것이겠지.

남은 마석의 재가 한 톨도 남김 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기능을 개방하기 위해서는 마석이 더 필요합니다.]

몸속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마석을 요구했다.

나는 다른 마석을 아낌없이 손바닥에 올렸다.

영약을 먹어본 적이 없기에 그 효과가 어떤지는 모른다.

그러나 마석이라는 것이 내 몸에 영약 이상의 효과가 있음은 방금 몸으로 직접 확인했다.

“자, 이번엔 두 개다.”

한번 마석을 흡수한 맛을 본 나이기에 이번엔 거침없이 남은 마석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기이하게 들리는 이 목소리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를 성장시켜 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으니, 지금은 모든 것을 던질 때였다.

[하급 마석 두 개를 흡수합니다.]

이번엔 두 개를 흡수해서인지, 아까보다 배는 되는 쾌감이 온몸을 휩싸고 돌았다.

내공을 쌓는 것이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 이뤄지는 것이라면, 마석 흡수는 영약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 즉시 효과를 주는 각성제를 넘어 강한 쾌감을 주는 돌이라니.

고작 세 개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31…… 40. 흡수 완료.]

순식간에 재로 화해 사라진 마석 두 개.

“하아-.”

나는 탄성을 내뱉고는 마석이 있었던 빈손을 바라보다 꾸욱 주먹을 쥐었다.

넘치는 활력과 힘.

새삼스레 기존의 내 몸이 정말 쓰레기였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동화율이 40이 되었습니다.]

목소리가 말하는 것들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십이란 숫자는 사 할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사할 정도의 힘을 흡수했다는 것인데.’

삼 할부터 기능을 쓸 수 있고, 오 푼마다 하나씩 기능을 얻을 수 있다는 말 같았다.

“마석이란 것도 충분히 흡수한 것 같으니 이제 네 정체에 대해 알려줘.”

마석을 세 개나 먹어서인지, 목소리가 제법 길게 말을 시작했다.

[기갑(機甲)이란 기계로 만든 움직이는 병기이며 저는 당신의 몸에 장착된 기갑의 안내 음성입니다.]

“내 몸 안에…… 기갑이 있다고?”

[네. 명치 부근의 마석 안에 내장되어 있습니다.]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니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마석 안에 기갑이란 것이 들어 있고.

그 영향에 몸이 멀쩡해졌다는 것 아닌가?

“그럼 내가…… 생체 무기가 되었다는 거야?”

[일부 그렇습니다.]

[동화율이 낮아 완전한 기갑의 기능은 개방되지 않는 상태입니다.]

기연임을 알지만, 너무 기이한 기연이었다.

생체 무기라니……. 무언가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을 수백 번 되돌린다 해도 내 선택은 동일할 것이다.

왜냐면 건강한 몸을 맛본 이상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게 생체 무기든 뭐든 간에 말이다.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물었다.

“아까 기능을 발현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내가 기능들을 선택할 수 있나?”

[아닙니다. 기갑의 기능은 위험한 순간, 최적화된 형태로 발현됩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너도 모르고?”

[여러 기능이 있습니다만 어떤 능력이 발현될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기능을 미리 알려주면 내가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되는 것 아니야?”

[여러 경우의 수를 모의로 구동하여 가장 필요한 기능이 최적화되어 발현됩니다.]

[능력을 미리 알게 되면 최적화된 기능이 아니라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불필요한 기능이 발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갑이 판단한 게 아니라 내 판단에 따라 나타난 능력은 상황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어쨌든 최소한 목숨 두 번은 구할 수 있다는 소리네.”

목소리는 답하지 않았다.

하긴, 능력이란 게 한 번 쓰고 끝날 게 아닌 이상 최소 두 번 이상은 되겠지.

나는 미리 짚을 깔아둔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일부터 길을 떠나려면 조금이라도 잠을 자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다…….’

며칠 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인지,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쉽사리 잠이 들진 못했다.

한동안 눈을 끔뻑거리던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 * *

현로와 헤어지기 전에 현무학관으로 가는 표행을 추천받았다.

덕분에 지금 마차를 타고 현무학관으로 가는 중이었다.

“짐칸이 불편하진 않느냐?”

“견딜 만합니다.”

비록 제대로 된 마차가 아니라 짐마차이긴 해도 말이다.

내가 탄 마차는 표행으로 유명한 천하표국의 소유였다.

내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 또한 천하표국의 장씨 성을 가진 쟁자수.

“기다렸다가 제대로 된 마차를 타지 않고.”

짐칸에 실려 가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장 씨 아저씨가 계속 신경을 써주었다.

“제가 시간이 좀 없어서요. 그래도 덕분에 싸게 가잖아요.”

“짐칸이라 그런 것이지. 혹시라도 힘들면 얘기하거라.”

“네, 힘들면 말할게요.”

그는 한번 싱긋 웃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내 또래의 아들이 있다더니 신경 쓰이나 보네.’

오랜만에 받아보는 호의가 싫진 않았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소년에게 저런 호의를 베푸는 걸 보면 좋은 사람 같았다.

현무학관은 무림맹이 있는 무한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내가 있던 진현촌에서 꽤 거리가 멀었다.

현로의 서찰로 이 표행에 합류는 할 수 있었지만 남은 자리가 없었던 탓에 짐칸에 탈 수밖에 없었다.

“후, 앞으로 열흘 넘게 가야 하는데 벌써 엉덩이가 아프네.”

사실 짐마차 안에 타고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짐을 실은 마차가 크다 한들 여유 공간은 겨우 몸을 넣을 정도였고 어찌나 덜컹거리는지.

나무로 된 바닥엔 약간의 짚만 깔려 있었기에 온몸이 쑤셨다.

“그래도 은자 두 냥에서 한 냥으로 아꼈으면 됐지 뭐.”

인편 배달은 당연히 비쌌다.

가는 도중 식사며, 잠자리 등 모든 것들을 챙겨 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아직은 어른보다는 작은 체구이기에 남는 공간에 탑승했고 돈을 절약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최대한 돈을 아껴야 돼.’

현무학관에 들어간다고 해서 거기서 돈까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숙소와 먹을 것 정도는 나온다고 해도 다른 모든 것들은 사비로 처리해야 했으니까.

돈을 벌 방도를 생각해 내지 않는 이상, 돈을 아끼는 수밖에 없었다.

“자, 오늘은 노숙입니다. 각자 자리를 잡으십시오!”

깊이 넣어둔 전낭을 만지고 있는데, 밖에서 노숙을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나야 뭐, 먹을 것만 먹고 늘 짐마차 안에 있으니 밖에서 잘 필요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마차가 멈춘 김에 소피라도 볼 요량으로 밖을 나서려는데, 멀리서 두 인영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 밤에 누구지?’

꽤 빠르게 오는 걸 보니 경공을 익힌 무인이었다.

밤에 찾아온 무인이라니.

괜스레 불안감이 들었다.

나는 밖에 나가려던 것을 관두고 짐마차 안에서 조용히 밖을 내다보았다.

“모두 경계태세를 갖춰라!”

무공을 익힌 무인 두 명이 다가오자, 이 표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나섰다.

표사들도 표두의 명에 따라 즉시 하던 일들을 멈추고 그들을 경계했다.

그 모습에 두 인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에 무슨 일이신지요?”

정중하나, 날카로운 기세가 표두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앞에 있는 두 사람은, 노인 하나에 면사를 쓴 가녀린 체구의 소녀였다.

그러자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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