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갑무림 2화
나는 이 사실을 아버지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고, 아버지는 재미있다는 듯 웃으셨다.
어린 내가 허황된 상상을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다 불현듯 무언가가 생각나셨는지 자세히 캐묻기 시작하셨고, 내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되셨다.
그때 아버지의 얼굴이란…….
‘망치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셨지.’
곧 이은 아버지의 표정은 매우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웠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그래, 그래서 그랬던 거야!」
「네?」
「지금껏 보물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가, 이 돌에서 나오는 빛을 보지 못해서였어!」
환희에 찬 나머지 강한 힘이 들어간 손아귀가 내 팔을 꽉 붙잡았다.
나는 여린 팔이 아팠으나 아버지의 모습에 놀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신의 눈’을 지닌 아이가 태어나다니! 드디어 우리 일족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아버지는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
마른입에서 긴 탄식이 터져 나왔다.
「……나는 볼 수가 없겠구나.」
남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염원이 이뤄진다 한들, 그곳에 자신은 없을 테니.
진씨가문에 내려진 육체의 저주는 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안타까움에 말아 쥔 뼈만 남은 두 주먹엔 핏줄이 도드라졌다.
「내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겠지.」
아버지는 눈을 들어 한동안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 무엇인가 결심하고는 차고 있던 목걸이를 천천히 빼내었다.
엄지손톱보다 약간 큰 크기의 붉은 돌이 달린 투박한 장식의 목걸이였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진씨 가문의 핏줄을 보호해 주는 비밀스러운 기물이었다.
「자휘야, 이 목걸이의 주인은 이제 내가 아닌 너다. 항상 잊지 말고 목에 걸고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건 가주들만 거는 목걸이잖아요.」
「내가 죽으면 동생이 가주가 되겠지. 하지만 그 아이는 진씨의 피를 잇지 않았으니 이 목걸이는 가질 수 없다. 오직 진씨가문의 진짜 핏줄만이 걸 수 있는 목걸이거든.」
어린 아들에게 목걸이를 걸어 주는 손과 목소리가 떨려왔다.
왜 이걸 나에게 주려 하시는 거지?
숙부는 새 할머니가 밖에서 데려온 자식이라 안된다는 걸까?
그리고 신의 눈이란 건…….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엄숙해 보여 입을 열 수 없었다.
「언젠가…… 이 목걸이가 푸른빛을 내는 순간이 온다면 넌 그 누구보다도.」
목소리는 떨렸으나 단단했고, 믿음이 서려 있었다.
「강해질 거야.」
마지막 말을 마친 아버지의 눈이 기이할 정도로 빛났다.
그러나 어린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의 두려움과 의문을 가진 채 나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제가 너무 약해서 무인은커녕 여자아이만도 못할 거라고 놀리는걸요.」
어렸지만 내 몸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무척 약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그 누구보다 강해지다니.
정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의문과 속상함이 담긴 내 눈빛에 아버지의 눈에 안쓰러움이 차올랐다.
아버지는 한동안 말없이 날 보시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지금은 네가 어려 설명하기 힘들지만 때가 되면 내가 했던 말들이 사실인 걸 알게 될 거란다.」
버석하게 마른 아버지의 품이 나를 감싸 안고, 부정을 가득 담은 말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러니, 이 목걸이를 소중히 여기렴.」
언젠가는 반드시 내 말대로 될 테니.
단언하듯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하루하루 생기를 잃더니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눈을 감으셨다.
홀로 남은 내게, 알 수 없는 목걸이 하나만을 유품으로 남기고서.
“강해지긴, 개뿔.”
상념에서 깨어나자 허탈한 비소가 새어 나왔다.
‘그냥 이걸 걸고 있었으면 좀 더 사셨을 텐데.’
나중에야 알았다.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신 건, 이 목걸이를 내게 주셔서라는 것을.
그것이 본인의 생명을 갉아먹는 일일지라도 나에게 희망을 거신 것이다.
닿을 수 없는 원망이 한숨에 섞여 목걸이에 닿는 순간.
위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숨어 있었네?”
고개를 드니, 사촌 형 진영현이 담장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술 가득한 입꼬리를 씰룩이면서.
‘저 새끼가 왜 날 찾아온 거지?’
나는 불길함을 느꼈으나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숨어 있긴. 그냥 힘들어서 앉아 있었을 뿐이야.”
“큭, 죽은 아비가 남긴 유품이나 보며 질질 짜면서 말이지?”
“남이야 무엇을 하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닐 텐데?”
싸늘한 답에도 불구하고 진영현은 아래로 가볍게 내려섰다.
곧이어 뱀 새끼처럼 주변을 살피는 눈동자.
“상관이 없긴.”
가느다란 눈이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좋아 보이던 낯은 한순간에 돌변했다.
“네놈 때문에 귀한 분 앞에서 콩가루 집안이 되었잖아! 내가 현무학관에 들어가게 된 게 싫어서 네놈이 지랄 떤 거 모를 것 같아?”
“하! 너희 가족이야말로 아예 대놓고 날 사람들 앞에서 물 먹인 거잖아? 정작 피해자는 나인데, 왜 난리인 거지?”
내가 독기 가득한 눈으로 쏘아보자 진영현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부모가 있던가. 자기 부모가 뒈진 걸 왜 우리한테 지랄이야, 고아 새끼 주제에.”
“……뭐?”
“네 어미는 재수 없는 널 낳다가 뒈졌고, 아비는 약해 빠져서 내 아버지가 가주가 되신 거잖아? 그런데 인정은커녕 병신 주제에 입만 살아서 빽빽거리기는.”
놈의 비아냥대는 욕설에, 시퍼런 분노가 타올랐다.
‘이 새끼가!’
감히 돌아가신 부모님을 건드려?
평소라면 하지 참았을 말들이 속에서 짓씹듯 흘러나왔다.
“너야말로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지만 않았다면 인정받지도 못했을 하녀의 자식 아니던가?”
비천한 하녀의 자식, 진영현.
자휘의 부모의 죽음을 발판삼아 진가장의 첫째 공자가 된 아이가 그였다.
“……!”
가장 큰 약점이자 치부가 눈엣가시인 자휘의 입에서 새어 나오자 그의 눈에서 시뻘건 분노가 피어올랐다.
“이, 벌레만도 못한 새끼가…….”
험상궂게 일그러진 표정을 짓는 그에게서 살기가 날카롭게 솟구쳤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곧바로 덤벼든 진영현이 자휘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희번덕대는 두 눈에 가득한 살심.
푸른 핏줄을 내보이며 금방이라도 목을 꺾어버릴 것만 같은 손에 비루한 몸은 휘청댔다.
“컥.”
목이 졸린 나머지 컥컥대는 숨.
그러나 자휘는 억지로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놈을 비웃었다.
“그래, 죽여봐. 거지 같은 몸으로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어……. 내가 죽으면 가문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잘할지 궁금하네.”
진영현은 오히려 죽음을 부추기는 자휘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미친 새끼 같으니!”
말마따나 굳이 제 손을 더럽혀 봐야 저놈 좋은 일 시켜줄 뿐이었다.
“……하, 씨발!”
그는 욕설과 함께 자휘의 멱살을 잡고 힘껏 내동댕이쳤다.
퍼억!
땅에 닿은 마른 몸은 곧바로 비명과 각혈을 토했다.
“……으윽.”
자휘를 내다 꽂았음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여전히 눈에 실린 살기는 잔악함을 더 빛냈다.
“네놈 따위 빨리 뒈지면 좋을 텐데.”
진영현은 뱀처럼 마른 입술을 축였다.
현무학관 자리야 빼앗았다 해도, 저놈은 진가장의 적자다.
언젠가는 치워야 할 존재.
‘그렇다면, 스스로 사라질 상황을 만들면 되잖아?’
모든 이의 시선이 무당의 도사에게 실리고 있는 지금, 저놈이 없어진다고 해도 찾을 사람 하나 없었다.
그의 신형이 자리에서 바로 튕겨 나갔다.
휙!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며 넘어져 있는 자휘의 목을 훑는 우악스러운 손.
자휘는 목걸이를 낚아채려는 놈의 의도를 파악하고 재빨리 피하려 했다.
그러나 날렵한 놈의 몸을 따라잡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안 돼!”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진영현의 팔뚝이 동시에 몸을 강하게 내려쳐지는 방향으로 밀려나 버렸다.
끊어지는 줄과 그 반동으로 인해 자휘의 몸은 또다시 쓰러지고.
목걸이는 그만 거친 그의 손에 강탈당하고 말았다.
“크윽!”
뻔히 보는 눈앞에서 목걸이를 빼앗겼다.
고통과 자괴감 속에서 힘겹게 일어서자, 진영현은 이미 오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놈의 손에서 빛나는 목걸이를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젠장……!’
놈을 경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감추려 노력했으나 목걸이를 차고 있어야만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기에 한계가 있었다.
“당장 내놓지 못해!”
놈에게 소리치자 진영현이 보란 듯 목걸이를 설렁대며 흔들었다.
“뭐야? 그냥 싸구려 돌로 만든 조악한 물건이잖아. 별것도 아니구만 왜 그렇게 발광하는 거지?”
“네 눈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유품이야. 그러니 어서 내놔!”
내 조급한 마음과는 달리 그는 느긋한 표정을 짓더니, 손가락에 목걸이를 걸고 돌리기 시작했다.
“내가 이 목걸이로 뭘 어떻게 했어? 단지 좀 보는 거잖아?”
빙빙 돌아가는 목걸이를 보는 속마음은 타들어 갔다.
‘어떻게든 되돌려 받아야 해.’
난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놈이 이러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겐 필요 없는 물건이니 이제 그만하고 주는 게 어때?”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라…….”
돌연 목걸이를 돌리는 것을 멈춘 진영현.
그의 손아귀에는 붉은빛의 목걸이가 바스러질 것처럼 위태해 보였다.
“크큭.”
곧 깨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에 내 얼굴도 일그러져갔다.
“이걸, 돌려받고 싶어?”
평정이 깨지는 내 모습에 놈은 즐겁다는 듯 그럼 그렇지 하며 입가를 비틀었다.
[그럼 진가장 뒤편에 있는 사당으로 와.]
진가장의 뒤편에는 절벽 위에 있는 오래된 사당이 있었다.
워낙 음습하고 위험해 진가장의 사람은 물론 다른 이들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거기는 이미 폐가나 다름없잖아. 그런 곳으로 왜 오라는 거지?”
“목걸이를 받기 싫어? 그럼 오지 말든가.”
진영현은 안 오면 목걸이를 없애겠다는 시늉을 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즐거운 표정을 짓던 그가 담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정문을 통해서 사당으로 와. 사람들에게 말하면 알지?]
빠르게 사라지는 진영현의 뒷모습을 보며 욕설과 함께 이를 까득 깨물었다.
놈은 나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머리를 굴릴 틈도 없이 이렇게 강제로 몰아치는 것일 테다.
‘지금은 원하는 대로 해주마.’
중요한 것은 빨리 아버지의 유품을 찾는 것이었다.
정문을 지나 이각 정도 걷자 저 멀리 쓰러져 가는 사당이 보였다.
“헉, 헉.”
얼마 걷지도 않았음에도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다.
그나마 목걸이가 있어 견뎠는데 그것조차 없으니 더욱 힘들었다.
“왔냐?”
빨리 온다고 왔건만 놈은 기다린 지 좀 되었는지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분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다.
“네 말대로 여기 왔으니 이제 아버지의 유품을 줘.”
“누가 안 준대?”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일어서더니 목걸이를 꺼냈다.
줄이 끊어진 것을 빼고는 멀쩡해 보이는 목걸이가 보였다.
‘목걸이는 무사해서 다행이지만…… 저놈이 여기까지 날 불러낸 건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경계하며 다가갔다.
실실 웃는 놈의 얼굴에서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낄 무렵.
그가 갑자기 목걸이를 높게 들었다.
‘이런……!’
불안감을 사실로 증명하듯, 명백히 비웃는 표정을 지음과 동시에 오른팔을 뒤로 젖혔다.
“자아, 여기 있으니 받아가 봐!”
어떻게 할 틈도 없이 놈의 손에서 절벽 쪽을 향해 목걸이가 던져졌다.
경악으로 새하얗게 물드는 내 얼굴과 손.
“아, 안 돼!!”
손을 뻗어 목걸이를 잡으려 했으나,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은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휙-!
이미 목걸이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절벽 위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사당이 위치한 절벽 위에서 붉은빛을 내뿜은 목걸이가 까마득한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두근―
심장이 뛰었다.
순간, 시간이 멈추는 느낌과 함께 내 눈에 푸른 빛이 들어왔다.
목걸이를 제외한 모든 사물이 흐릿하게 뭉개지는 찰나.
파앗.
놈이 던진 목걸이가 허공에서 찬란한 푸른빛을 발했다.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시리게 빛나는 환한 빛.
‘이것이었나? 그래서, 그동안 푸른빛을 보지 못했던 거였어?’
당연했다.
그 누가 소중한 가보를 절벽 아래로 내던질까.
오랜 시간 동안 푸른 빛을 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아버지의 말은 진짜였어!’
그러나, 멈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떨어져 가는 목걸이의 빛 또한 줄어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