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67화 (167/175)

# 167

<167화>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문장미를 공생이 붙잡았다.

「잊었소? 기회는 찾아온다는 것을!」

서문장미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공생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있으면 남궁적이 현당의 모든 정기를 흡수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공생은 기다리라고만 하고 있었다.

「남편으로서 마지막 부탁이오. 제발 내 말을 한 번만이라도 믿어 주오. 당신의 유일한 부탁을 내가 들어주었듯이 당신도 당신을 위해서 내 부탁을 들어주오.」

「지금 저대로 두었다가는 죽을 텐데요?」

공생은 서문장미의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남궁적과 현당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셋이 있었다고 하오. 하난 남궁적의 생부인 남궁가주이고, 두 번째는 현당을 만든 문사 우희였소.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천인신수였는데, 천인신수는 이런 말을 했소. 남궁적을 보았을 때는 집안 다 말아먹고 객사할 놈이라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반면에 현당을 보고는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킬 영웅호걸이라며 앞으로 인생에 세 번의 위기가 닥치지만 귀인의 도움을 받아 슬기롭게 잘 넘길 것이라고 말이오.」

서문장미는 공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공생이 말하는 때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조용히 지하 감옥으로 스며들던 우희는 남궁적과 현당이 나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탓에 두 사람의 대화가 실내에 울리고 있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금 이곳에는 현당과 남궁적뿐이었다. 다 죽어가던 현당이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남궁적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순간, 우희는 입구에 죽어 있던 문지기를 생각해 냈다. 누군가가 들어 왔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당의 몸속에 진기를 불어넣어주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지만 떨쳐버렸다. 그게 누구인가보다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우희는 아직 그가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침입자의 목적이 현당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는 것인 만큼 아직 이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남궁적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는 현당을 데리고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문당이기 때문이다. 서문세가의 공생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당이었다.

우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남궁적의 등이 향하고 있는 벽을 노려보았다. 제발 그가 우희의 적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  *  *

“캬캬캬. 우캬캬.”

남궁적이 광포한 웃음을 토했다.

현당의 몸 구석구석 기경팔맥과 삼백육십오 혈에 붙여놓은 조련제마공의 빨판을 통해 현당의 몸속에 남아 있는 진기가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궁적은 속도를 높였다. 더욱 빨리 현당이 쪼그라들어서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지금이 바로 그 최적의 조건이었다. 조련제마공을 극성으로 끌어 올렸기 때문에 현당의 사지 백해 구석까지 조련제마공의 빨판이 닿아 있었다. 이렇게 하면 진기뿐만 아니라 독기를 비롯하여 생기와 현당의 몸속에 있는 오줌, 똥, 불순물까지 다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남궁적의 하단전에 차곡차곡 현당의 것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즐거움에 남궁적은 다시 한 번 웃음을 토했다.

“응?”

한참을 웃던 남궁적은 깜짝 놀랐다. 점차 말라서 강시처럼 되거나 목내이처럼 온몸이 꼬이고 부서져야 할 현당이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현당의 피부는 더욱 윤택해지고 은회색으로 변했던 머리도 점차 검은색의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놈이 쌓아놓은 내공이 도대체 얼마나 되기에…….”

중얼거리며 남궁적은 조련제마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더 이상 뻗어나갈 촉수도 없었고, 뻗어서 새로 붙을 곳도 없었다. 그가 올리는 것은 빨아들이는 힘과 속도를 더욱 높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현당의 몸속에서 가져온 진기가 쌓이는 족족 사라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서둘렀어.”

현당의 말에 남궁적은 너무 놀라 손을 뗄 뻔했다. 숨을 쉴 기력도 없어야 할 현당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라고?”

“자네는 내가 제련현마강을 수련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내가 제련현마강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나?”

그제야 남궁적은 손을 통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온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조련제마공의 빨판이었다. 현당의 정수리에서부터 뻗어 올라온 조련제마공의 빨판이 남궁적의 장심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와 남궁적의 하단전에 달라붙어 있었다.

“허어억. 네놈이?”

“자네가 조련제마공을 익힌 만큼 나도 익혔단 말이지. 왜냐고? 그래.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나도 천하의 현당이라고.”

남궁적이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뗄 수 없었다. 양쪽에 엉켜 있는 조련제마공이 서로 달라붙어 있었다.

“흐으으.”

둘이 동시에 멈추기 전에는 절대 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남궁적은 기를 쓰고 조련제마공을 극성으로 연공하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 놈이 가져가기 전에 빼앗아오면 되었다. 적어도 남궁적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궁적과 달리 현당은 느긋했다. 현당의 생각은 남궁적과는 달랐다. 현당과 남궁적은 지금 서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양쪽에서 퍼 올리는 원리는 조련제마공, 양쪽이 똑같았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더 이상 진기가 이동하지 않게 되는 것은 한 가지, 바로 양쪽의 높이가 같아지는 경우뿐이었다.

두 개의 물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 수면의 높이가 같아질 때까지 물이 흐르고, 물높이가 같아지면 더 이상의 흐름 없이 멈추는 것과 똑같았다.

현당이 생각하는 양쪽이 조련제마공을 동시에 운용했을 때의 상황은 그러했다.

그리고 현당의 예측대로 남궁적이 퍼가는 진기의 양보다 현당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진기의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남궁적은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우물물을 끌어올리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낮은 쪽에서 높은 쪽의 것을 끌어 올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그와 반대로 높은 곳의 물은 자동으로 낮은 쪽으로 흘렀다.

결국 남궁적이 현당의 진기를 퍼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공을 소모해야 하지만, 남궁적의 진기가 현당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은 가만있으면 자동으로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끄으으, 네놈을, 네놈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현당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바로 그때였다.

“허어억!”

현당은 숨이 막혔다.

‘너무 서둘렀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었다. 곧바로 현당의 눈이 뒤집어졌다. 기혈이 뒤집어졌고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벌써 세 번째 경험이었다. 한 번은 남궁찬이 그의 몸속에 독을 구석구석 섞어놓을 때, 두 번째는 정무련에 파견 나갔을 때 어떤 놈인지 보려고 뒤집어보았다가 지금과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이다.

현당이 내공을 끌어 올렸기 때문인지, 남궁적의 조련제마공이 건드렸기 때문인지 현당의 몸속에 남아 있던 독이 발작을 일으켰다. 독은 빠른 속도로 현당의 기혈을 따라 돌며 중독 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당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독이 발작을 일으키면서 중독 반응을 일으킬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조련제마공을 안으로 돌려서 독기를 진기로 전환시키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밖으로 뻗은 조련제마공을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했다.

현당의 낯빛이 바뀌자 남궁적은 기회를 느꼈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당에게 고갈되어 버리고, 자신이 희생될 것만 같았다. 어찌 된 일인지 현당이 조련제마공에 조예가 더 깊어 보였다. 어쨌든 지금의 이 기회를 이용하여 현당의 조련제마공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다.

때마침 현당의 정수리에서 뻗어 나온 조련제마공의 촉수가 걷히기 시작했다. 남궁적은 남은 한 손으로 현당의 가슴을 두들기며 그 반동을 이용하여 뒤로 물러났다.

“푸학!”

남궁적은 현당으로부터 한 발 떨어지면서 손도 뗄 수 있었지만, 충격으로 현당이 토하는 피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그때 그의 등 뒤 벽이 갈라지면서 공생이 튀어나왔다. 그가 남궁적의 허리를 잡고 엎어졌다.

“어서 빨리 현당을 구해서 빠져나가시오.”

놀란 서문장미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그녀의 굼뜬 동작으로는 바닥에 발버둥치는 남궁적을 피할 수 없었다.

의외의 기습에 당했을 뿐 남궁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공생! 당신이군. 본교에서 포섭된 사람들의 목록을 봤을 때 놀랐지만, 그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어. 한 번 배반한 사람은 또다시 배반한다고 말이야.”

쿠당.

남궁적의 손길 한 번에 서문장미가 휙 날아갔다. 이미 현당에게 진기의 상당량을 넘긴 후라 힘이 없었다.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틈을 놓치지 않고 남궁적은 공생을 낚아챘다. 마침 맑은 진기가 필요하던 차다.

“잘 되었어. 그렇지 않아도 피곤하던 차였는데, 내 공생 네놈의 진기를 이용해서 기운을 차려야지. 현당, 기다려라.”

망설이지 않고 남궁적은 공생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공생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백회혈을 통해서 남궁적의 조련제마공이 공생의 체내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보…….”

서문장미가 비명을 지르자 공생은 자신의 정수리에 얹어진 남궁적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뭐 하시오? 어서 빨리 놈을 데리고 달아나지 않고!”

그때 우희가 뛰어들었다. 잽싸게 남궁적의 허리춤에서 열쇠를 낚아채고는 현당을 향해 날아갔다. 우희의 예상대로 열쇠는 딱 맞았다. 현당의 수족을 얽어매고 있는 족쇄의 열쇠는 남궁적이 갖고 있었다.

“우희!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네년이 배반하는 거였나?”

남궁적은 공생의 정수리에서 손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공생이 그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어서 가시오. 왔던 비밀 통로로 되돌아가면 들키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오.”

남궁적이 소리쳤다.

“이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순간, 남궁적의 낯빛이 바뀌었다. 빠른 속도로 잿빛을 거쳐 검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독이네, 남궁 공자. 현당이 복용하고 온 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내 몸속에 녹아 있는 독 또한 그에 못지않을 거야. 현당 덕분에 난 당신의 약점을 알아냈지. 당신이 현당의 독기를 빨아들이고, 그것을 해독하느라 한나절을 소비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네.”

공생이 미소를 지었다.

“공 부인. 남들은 당신을 서문 부인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당신은 내게 시집 온 공 부인이오. 여보, 사랑하오. 부디 행복하기를…….”

그 말을 끝으로 공생의 신형은 빠른 속도로 쭈그러들었다. 일순간에 체내의 수분이 빠지는 것처럼 공생은 말라갔다.

동시에 남궁적의 전신이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네, 네놈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린 게……?”

말하다 말고, 남궁적은 피를 토했다. 시커멓게 죽은 피다. 지금 상태라면 남궁적은 결코 움직이면 안 된다. 피를 토하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독이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눈 앞에서 난리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남궁적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살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 없었다.

우희는 서문장미를 일으켜 세웠다. 서둘러야 했다. 이 자리에서 서문장미와 공생을 만날 줄은 몰랐지만 잘된 일이었다. 그녀 혼자서는 현당을 빼내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루만 더 지나면 현당이 죽을 것 같아 무작정 이곳으로 내려왔는데, 운이 좋게도 서문장미의 일행과 마주칠 수 있었다.

“여보…….”

계속해서 서문장미가 흐느끼고 있었다. 항상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른다더니, 서문장미의 처지가 딱 그랬다. 자신을 부축하는 우희를 보더니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이 우희의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서 이미 목숨을 잃은 시체였고, 다른 하나는 독에 중독되어 체내에 들어온 독을 해독하느라 정신이 없는 의식 불명의 환자였다.

우희는 혜타원 원주 공생이 제조한 독인 만큼 그 독이 쉽게 해독되지 않을 거라 장담했다.

“좋은 수가 있어요.”

묘수를 생각해 낸 우희는 서둘러 움직였다.

“뭐야? ……보다 작잖아!”

우희는 남궁적과 현당 사이의 또 다른 차이를 발견했다. 아마도 그것은 동시에 두 사람을 놓고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우희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우희는 서문장미와 함께 지하 감옥을 나왔다. 안에서 들려온 소란을 듣고 벌써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현당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직 의식은 없었지만 남궁적으로부터 주고받은 내공의 거래에서 이득을 많이 봤는지 예전의 얼굴과 체격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었다.

“문을 닫아라.”

망설이지 않고 문밖에 몰려드는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이 독기로 지쳐 있는 남궁 공자를 기습했어.”

“뭐, 뭐라고?”

다가온 주근혜가 우희의 명령을 따랐다.

“어서 문을 닫아.”

주근혜까지 명령하자 수하들이 움직였다.

달려온 이삼이 소리쳤다.

“놈이 족쇄를 풀고 탈출했어요.”

“탈출? 어떻게?”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탈출한 놈이 남궁 공자를 공격하는 바람에 남궁 공자가 타격을 입었어요. 다행히도 놈도 양패구상을 입었지만 놈의 상세는 미미해요. 언제 일어나서 다시 달려들지 몰라요. 놈은…….”

이삼이 현당의 얼굴을 들추어보았지만 그는 구분하지 못했다.

우희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놈은 남궁 공자를 부상시킬 정도로 회복하고 있었어요.”

“정말인가?”

우희가 대답했다.

“보고도 몰라요? 현당이 어떤 처지였는지!”

그 말에 이삼은 할 말이 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현당은 발가벗긴 채 벽에 매달려 있었고 지금은 옷을 제대로 다 걸치고 있는 남궁적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서 빨리 안으로 모시게.”

우희는 서문장미와 함께 남궁적이라고 믿고 있는 현당을 부축하면서 인파를 헤치고 밖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모두들 안에서 남궁적을 쓰러뜨리고 양패구상을 당한 현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남궁적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우희와 현당의 뒤를 따라 빠져나가는 서문장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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