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62화 (162/175)

# 162

<162화>

“놈을 포섭한 직후입니다. 채 무공을 가르치기도 전에 정무련에서 포송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제련현마강이라…… 그렇군. 자하기와 제련현마강은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효능이 있는 거야! 바로는 아닐지라도 일정 단계가 되면 가능해지는 것이지.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이삼이 이해를 못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께서는 제련현마강뿐만 아니라 조련제마공도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남궁세가 출신이시니 자하기도 아실 테고…….”

불쾌한 듯이 남궁적이 인상을 찡그렸다.

“알잖나? 내 자하기는 굳어져서 다 녹여서 버린 것을 말이야. 그 뒤로 나는 조련제마공에 신경을 쓰느라 자하기는 수련을 안 했다고.”

이제부터라도 자하기 수련에 열중하겠다는 듯이 남궁적이 굳은 결의를 다졌다.

“역시 내공은 자하기야. 그럼, 그렇고말고!”

중얼거리며 문당의 내실로 향하는 남궁적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하고,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하거늘…….’

남궁적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삼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현당을 죽이지 않고 그의 내공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남궁적의 계산이 그대로 이루어질까 우려되었다.

이삼의 걱정은 또 있었다. 남궁적이 조련제마공에 빠진 나머지 다른 무공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반년이나 자하기의 수련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삼은 걱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농담을 했다.

“그나저나 그놈의 양물은 정말 대물이로군요. 그럼 놈과 똑같이 생긴 공자도…… 헙!”

순간, 이삼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남궁적의 시선이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했다.

*  *  *

우희는 남궁적을 보자마자 물었다.

“현당은 어떻든가요?”

“놈이 어떠냐고? 왜 그게 궁금하지?”

우희는 실언했음을 깨달았다. 남의 상태가 궁금하다는 것은 그가 염려된다는 것이고, 또한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것은 애정이 있다는 뜻이었다.

우희는 서둘러서 정정했다.

“상태가 어떠냐는 게 아니라 뭐라고 하냐는 말입니다.”

우희의 말에 남궁적이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아무 말도 안 했어. 아무 말도.”

우희는 현당에 대한 걱정 때문에 남궁적이 ‘걱정 마’라고 한 말의 뜻을 놓치고 말았다.

“아무 말도?”

“그래. 놈은 정말로 아무 말도 안 했어. 왜냐하면 내가 아무것도 묻지를 않았거든.”

우희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뻔한 것을 억지로 참았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던 남궁적이었다. 그에게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모른 척해야만 했다.

“그랬군요. 또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우희는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아니. 이제 가짜도 제거되었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모성애에 빠질 필요 있을까? 바로 눈앞에 진짜가 있는데 말이야.”

남궁적의 한마디에 우희는 정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온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냉정한 목소리로 남궁적을 대했다.

“모르시는군요. 당신은 현당이 아니라 남궁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현당이 남궁적이 될 수 없듯이 남궁적 역시 현당이 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볼일이 없다면 나가주시지요.”

우희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남궁적에게서 몸을 돌렸다.

“이런, 이런. 내가 또 당했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또 말하라고. 좁은 방에 갇혀 있으니 갑갑하겠지만 말이야.”

우희의 방을 나가면서 남궁적은 입맛을 다셨다. 머릿속으로는 그녀의 벗은 몸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정수리에 손을 얹고 조련제마공으로 내공을 모두 빨아들이는 상상을 하는지도 몰랐다.

*  *  *

남궁적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말했다.

“우희를 제거해야겠어.”

이삼이 깜짝 놀랐다.

“우희를 말입니까?”

“그래. 나도 그러기는 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자네도 봤지 않나? 우희랑 현당의 연인 같은 다정한 모습을. 게다가 단목기도 교의 명령을 무시했다고. 무사가 그랬는데 문사도 그렇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하지만 뚜렷한 증거나 교의 허락 없이 그랬다가는 저희 역시 문책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허락이 필요한가? 내가 현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까 딴소리를 하더군. 그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해? 두 연놈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이건 너무나도 명백하다고.”

“하지만…… 그러니까 남부맹 삼사의 활동에 제재를 가하는 수준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게다가…….”

남궁적은 이삼이 말끝을 흐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은 명백하게 그곳에서 남경으로 보내진 사람 중에 최고의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무사의 경우는 생사여탈권까지 가질 정도의 폭넓은 권한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상’이라는 것은 뭔가? 속 시원히 말해보라고.”

“그러니까 공자께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책임이 있는 몇 사람에게는 교의 허락이나 당사자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뭔가? 우리 둘이 합의를 보고 우희의 처분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단 말인가?”

“둘이 아니라 넷입니다. 공자와 저, 장이와 공일까지. 하지만 저희는 직위의 상하는 있을지언정 역할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남부맹은 삼사가, 정무련은 우리가, 그리고 공자는 남궁세가를 맡고 본교에서 나왔습니다. 현당을 붙잡는 것은 우리 모두에 관계된 일이므로 공자의 지휘를 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문사나 무사를 징계하는 것은 저희나 공자의 권한 밖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사실은 문사를 가둬놓는 것 또한 저희의 권한 범위를 벗어난 일이라는 것이지요.”

“젠장…… 계급장이 좋아도 소용없는 일이 있단 말이지?”

이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남궁적이 인상을 찡그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방법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쳐들었다.

“그럼 문사를 징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남부맹을 책임진 사람이 삼사이므로 문사의 징계는 결국 삼사의 합의가 있거나 본교에서 결정해야겠지요.”

“자신의 징계를 자기가 결정한단 말인가? 또 문사보다 먼저 본교를 배반한 무사는 어떻고? 결국은 본교에 연락해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단 말인가?”

“그게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이보다 빠른 방법은 무사와 문사, 두 사람의 문제이므로 결국은 책사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이 파견된 것이지요.”

“흐음…… 맞아 책사가 있었군. 그런데 책사가 누구지?”

“누군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위해서 책사를 부르기 위해 연을 띄웠습니다. 아마 지금쯤 오고 있을 것입니다.”

“누군지 궁금하군. 어서 빨리 와서 결정을 내려줘야 할 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남궁적의 말에 이삼은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근혜가 들어섰다.

“저어, 책사가 도착했습니다.”

남궁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뭐 하나? 어서 빨리 안으로 들라 하지 않고?”

“저어, 그게 그런데…….”

주근혜가 얼버무리는 사이 문을 비집고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이게 누군가? 모용세가의 말썽만 부리던 공자가 아니신가? 응? 가만…….”

모용탄을 조롱하던 남궁적은 깜짝 놀랐다.

“그럼 자네가 바로 책사란 말인가?”

“무슨 일이오? 위급한 일이 아닌 이상 부르지 않도록 되어 있거늘…….”

모용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남궁적은 모용탄의 말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무공도 변변찮고, 남경에서 파락호 짓이나 일삼던 자네가 남부맹의 책사였단 말인가?”

남궁적은 확실한 것인지 묻기 위해 주근혜를 바라보았다.

“일치합니다.”

주근혜가 두 개의 빨간 가죽 팔찌를 꺼냈다.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문양이 정확히 일치했다.

“책사만 알아볼 수 있는 연을 띄운 것을 보고 이 팔찌를 가지고 온 것을 보면 모용 공자가 책사인 것이 분명합니다.”

남궁적이 이마를 두들겼다.

“아하…… 이런! 본교의 작업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들 있었군. 모르고 있었어! 이삼. 설명해 주게. 우리가 왜 책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 말이야.”

기운이 빠진다는 것처럼 남궁적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문사의 집무실에서 지금 남궁적이 앉아 있는 곳은 바로 문사 우희의 자리였다. 그러는 그를 모용탄이 노려보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부맹 사람들이 까맣게 속고 있었다는 것에서 충격이 꽤나 큰 듯했다.

“다행이야. 뒤늦게나마 내가 교를 따르게 되었다는 것이.”

그 말이 진심이라는 듯 남궁적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실내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따듯함보다는 능글맞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어쨌거나…….”

남궁적은 손을 비비면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필요한 사람들이 다 모였으니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반대합니다.”

모용탄의 말에 남궁적은 눈을 크게 떴다.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닌가?”

“못 들으셨다니 다시 말씀드리지요. 나는 반대합니다.”

“아하! 그러니까 책사, 자네가 지금 뭔가를 모르고 있나본데.”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남궁적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착각했다. 그는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했다.

“잘 알고 있다고? 지금 알고 있다고 말하는 중인가?”

“그렇습니다. 이제 막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온 당신은 지금까지 당신 없이도 몇 년 동안 남부맹을 잘 지켜왔고, 당신이 돌아올 수 있도록 준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없는 동안에도 당신의 역할까지 성실하게 수행한 문사를 아무 증거도 없이 모함하고 있소.”

“증거가 없다고? 봐봐. 현당이 제 발로 걸어왔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일세.”

“그녀는 문사요. 본교에서 파견된 삼사 중에 한 명. 당연히 달아난 현당을 잡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또한 그녀의 임무. 그녀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 죄가 될 수도 없고 배반의 증거가 될 수도 없는 일이오.”

“좋아. 그럼. 그래. 게다가 우희는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 놈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고 말이야.”

“들은 사람이 있소?”

남궁적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 그건 아니지만…….”

싸늘한 시선으로 모용탄은 남궁적을 노려보았다.

“문사, 무사와 함께 남부맹에서 본교의 작전을 수행하는 책사로서 남궁 공자 당신의 월권행위를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구려. 당장 문사를 석방하시오.”

“서, 석방하라고?”

“그래요. 지금 당장!”

남궁적이 이삼을 돌아보았다. 모용탄이 말하는 대로 문사 우희를 풀어줘야 하는 것인지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이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그렇다는군요.”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이삼이 도리질을 쳤다.

“저희들이 맡은 영역이 아니라서요.”

“젠장…….”

순간, 남궁적과 주근혜의 눈빛이 마주쳤다.

“뭐야? 뭐 그렇게 고소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

은근슬쩍 미소를 짓고 있던 주근혜는 겸연쩍어 하며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하지만 남궁적이 자신보다 하급자인 책사 모용탄에게 무시를 당하는 모습을 보자 표정을 쉽게 감출 수 없었다.

“젠장. 결국은 뭐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잖아?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사방이 다 방해꾼이로군.”

남궁적이 팔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난 이제 현당이나 빨아먹어야겠어. 이것저것 다 안 된다니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내공이나 충전해야지.”

주근혜가 모용탄을 바라보며 눈짓으로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  *  *

“으아아.”

현당은 비명을 토했다.

이번에는 토하기였다. 자하기가 너무나 손쉽게 남궁적에게 빨려나가자 현당은 토하기를 운용하면서 저항해 보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남궁적의 조련제마공은 현당이 운공 하는 내공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다 빨아들이겠다는 것처럼 모두 흡수했다.

“크하핫. 캬카카.”

남궁적의 광포(狂暴)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현당은 또 정신을 잃었다. 단 며칠 사이에 현당은 십여 년은 늙어 보였다.

*  *  *

문이 열리고 우희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모용탄이 보였다.

“고마워요.”

“알고 있었소?”

자신이 책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질문이다.

우희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우희는 필요한 때에 책사가 나서서 문사를 도와줄 것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모용탄은 언제나 우희의 주변에 있었다. 단지 그 존재감이 미미해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었다. 우희는 그것이 단지 모용탄이 자신을 짝사랑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한 때는 남자가 할 일이 없어서 여자의 뒤꽁무니만을 쫓아다닌다고 생각하고 그를 더욱 같잖게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바로 책사였기에 모용탄은 남부맹이나 모용세가의 일의 정면으로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문사나 무사에게 중요한 문제가 생겨서 그를 찾기 전까지 모용탄은 숨어서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우희는 그제야 통평사단으로 파견 나갔을 때, 정무련에서 모용탄이 했던 말을 이해했다. 그때 모용탄은 “우희가 그곳에 가기 때문에” 자신도 간다는 말을 했었다.

모용탄이 책사로 낙점된 이유를 이제 대충 짐작했다. 단지 모용세가 속에 배교의 간세를 심기 위해 모용탄이 포섭되었다면, 그것은 배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일 뿐 모용탄의 입장은 아니었다. 모용탄은 우희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책사가 되어 숨은 그림자 같은 역할을 자임했던 것이다. 책사가 되면 언제나 문사 곁을 지키고 있을 수 있기에! 그게 모용탄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우희는 특유의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맙지만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군요.”

모용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무엇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니까.”

우희는 모용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 속에서 진실을 발견했다.

“이제 어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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