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123화>
“크악!”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놈들이 첫 번째 함정에 걸렸다.
땅 위에 굴러다니는 대나무 뿌리에 걸려서 쓰러지려는 것을 큰 걸음을 내디뎌서 균형을 잡았다. 순간, 발은 땅 위로 솟구친 대나무 송곳에 박혔다. 쓰러져서 대나무 송곳이 배나 얼굴, 가슴에 박히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었다.
현당은 역시 놈들이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당은 조심스럽게 놈들이 멈춘 곳으로 다가갔다. 두 번째 함정으로 유인할 차례였다.
두 놈이 한데 어울려 있었다. 남궁적이 보이지 않았다.
현당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 놈들도 현당을 발견했다.
“쥐새끼 같은 놈…….”
한 놈이 나는 듯이 현당을 쫓아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현당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에게 잡히려는 순간, 방향을 틀었다.
현당이 방향을 튼 곳까지 놈이 쫓아왔다. 속도를 줄일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조심해. 놈이 또 다른 함정을 만들어놓았는지도 몰라.”
쫓아오는 놈이 소리를 질렀다. 속도가 느린 것이 발을 다친 놈이 이놈이 분명했다. 하지만 주의를 주는 것은 늦었다. 현당은 이미 두 번째 함정을 발동시켰다.
슈슈슈.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빗방울이 아닌 대나무 송곳으로 만들어진 비였다. 우수수 떨어지는 댓잎 사이로 대나무 송곳이 섞여 있었고, 유연한 차이만 있을 뿐 날카롭기는 댓잎이나 송곳이 똑같았다.
파슈파슈.
역시 놈은 단순한 고수가 아니었다. 어느새 벌써 지팡이를 휘두르며 떨어지는 대나무 송곳을 쳐내고 있었다. 단지 눈이 어지럽고 느려서 표적을 제대로 쫓지 못할 뿐이었다. 그의 몸에 제대로 상처를 내는 것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놈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지팡이가 만드는 그림자는 마치 둥그런 방패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댓잎과 송곳을 거의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그때…….
파하!
핏줄기가 부채처럼 치솟았다. 대나무 송곳 사이로 현당이 하늘에서 뛰어내렸던 것이다.
눈을 보호하기 위해 놈이 고개를 숙였던 게 잘못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당에게 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현당이 놈의 정수리 부분으로 떨어지며 놈의 지팡이를 쳐내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 손으로는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손에 든 단도로 놈의 목을 긁고 있었다.
차학.
현당이 착지하는 순간…….
털썩.
놈이 쓰러지면서 피가 튀었다. 그 피는 고스란히 현당이 뒤집어썼다. 피 칠을 한 현당이 두 번째 놈을 노려보았다.
“찾았나?”
마침 남궁적이 나타났다.
사사아아아.
마치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현당은 다시 숲 속으로 사라졌다.
남궁적의 시야에 목이 잘려 쓰러진 놈이 보였다.
“젠장. 또 당했군…….”
하나 남은 놈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물었다.
“또, 또 당하다니?”
“모르나? 벌써 놈은 세 명째 우리 동료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아…….”
“뭐 하고 있나? 어서 놈을 쫓지 않고?”
“헙!”
다시 남궁적과 나머지 한 명이 현당이 사라진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피 칠을 한 현당이기에 쉽게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야. 놈은 이제 어디를 가든 자국을 남기게 되어 있어. 피 냄새다. 피 냄새…….”
남궁적이 웃는 소리가 숲 속을 헤집었다.
* * *
밤이 되자 이제는 현당의 세상이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근슬쩍 담장을 넘는 것은 이제 현당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무공도 없던 시절에 익힌 절기였지만, 이제는 내공과 무공까지 뒷받침이 되고 있었다. 구렁이가 담을 넘어 새집을 털듯이 현당은 소리 없이 나무에서 나무로 미끄러졌다.
전신에 피 칠을 한 현당은 놈들을 천천히 세 번째 함정으로 몰고 왔다. 첫 번째 함정이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놈들을 찢어놓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부상이 없는 남궁적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현당을 추격했지만 발을 다친 놈은 조금씩 뒤로 처지고 있었다.
현당은 크게 빙 돌아서 발을 다친 놈에게 다가갔다. 현당의 뒤를 남궁적이 쫓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놈이다. 놈이 여기 있다.”
드디어 현당은 발을 다친 놈과 마주쳤다. 마치 도망가다 길을 잘못 들어 놈 앞에 나타난 것처럼 현당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세 번째 함정을 향해 달아났다.
“뭐 하고 있어? 쫓지 않고…….”
멀리서 남궁적의 고함이 들렸다. 둘을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현당은 망설이지 않고 세 번째 함정으로 발을 다친 놈을 유인했다.
현당이 숲 속의 모퉁이를 돌고 발을 다친 놈도 현당을 쫓는 순간.
슈슈슈. 촤하악.
횡으로 걸쳐졌던 대나무 등걸이 회초리처럼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등걸에 꽂혀 있던 대나무 송곳이 화살같이 날아갔다. 발을 다친 놈은 고스란히 그 표적에 노출되어 있었다.
순간, 놈의 신형이 뒤로 넘어가며 바닥에 미끄러졌다.
슈슈슈. 촤아악. 푸르르.
애꿎은 송곳은 허공을 갈랐고 표적을 잃은 대나무는 제 힘을 이기지 못해 몸서리를 쳤다.
의외의 상황에 현당은 멈칫거렸다. 이것만은 분명히 적중하리라 생각했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실패해도 이번에는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었다. 대나무의 복원력은 군(軍)에서 활을 급조할 때 사용할 만큼 탄력이 있고, 힘이 세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발걸음을 멈춘 현당과 놈의 눈이 마주쳤다.
촤좌촤.
다시 현당이 뛰기 시작했고 놈은 쫓기 시작했다.
함정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놈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이 실수였다. 이제 겨우 두 놈을 처리했는데, 아직 남궁적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걱정이 앞섰다.
현당은 잡념을 뿌리치며 놈을 네 번째 함정으로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쐐애애.
있는 힘을 다하여 하늘로 도약했다.
그리고 놈이 함정으로 진입하는 순간, 준비한 넝쿨을 잡아당겼다.
파하아.
기다렸다는 듯이 좌우에서 대나무 채찍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
“쥐새끼 같은 놈…….”
그놈이 소리쳤다.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퍼버버.
피가 튀었다.
‘젠장…….’
활과 화살이 준비된 곳에 도착한 현당은 속으로 욕을 했다. 놈들이 아닌 자신에게 퍼붓는 욕이었다. 차라리 이 시간 동안 달아났으면 벌써 달아났을 터인데,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 실력으로 이들을 상대하려던 자신이 어리석어 보였다.
현당은 활과 화살을 집어 들었다. 화살은 오로지 하나밖에 없었다. 망설이지 않고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놓치는 않았다. 화살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네 번째 함정은 아직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놈의 시선을 좀 더 붙잡고 있어야 했다.
“어디냐?”
남궁적이 다가오며 소리쳤다.
발을 다친 놈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는 찰나.
휘이익. 퍼허억.
놈의 머리에 정확히 돌이 떨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돌팔매 휘두르듯이 바위가 정확히 놈의 머리통에 날아가서 박혔다.
좌우로 날아오는 채찍을 쳐냈다고 생각하는 순간, 놈은 함정을 피했다고 방심하고 있었으리라. 방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최소한 현당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당이 노린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하늘에서 가속이 붙어 빠르게 회전하듯 떨어지는 바위는 그 어떤 암기보다 강력할 것이었다. 때마침 도착한 남궁적의 시야로 머리를 잃은 놈의 몸뚱이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는 것이 들어왔다.
현당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활시위를 놓았다.
쐐애애.
두 개의 활로 쏘는 힘을 가진 화살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파하아.
‘해냈나?’
순간, 현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자신도 그렇게 해서 남궁적을 속였다. 남궁적도 자신과 똑같은 방법으로 속이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현당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남궁적의 반응을 살폈다. 바닥에 쓰러졌던 남궁적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히죽.
놈은 죽지 않았다.
“이런, 이런…… 속을 줄 알았더니 안 속는군. 역시 그건 네놈 같은 도둑놈의 장기란 말이지?”
현당이 날린 화살은 남궁적의 손에 얌전히 들려 있었다.
“시도는 괜찮았어. 정확히 여기를 노렸으니까…….”
남궁적이 검지로 왼쪽 가슴을 두들겼다. 한 줄기 핏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깊이 박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십자표가 남궁적의 흉근을 파고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다음에는 여기를 노리도록 해…….”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남궁적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오른쪽 얼굴만으로 웃는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뿌직.
말은 그렇게 해도 남궁적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말 대신 행동으로 기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어때, 응? 고작 이런 것으로 나를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남궁적은 화살을 두 토막으로 부러뜨리고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팽개쳤다.
“나와라. 나와 단둘이 겨루자.”
그때였다.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곳곳에서 횃불이 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여기 또 시체가 있습니다. 오구행입니다. 수급을 잃고 난자당했습니다.”
순간, 현당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릴 뻔했다. 분명히 놈은 현당에게 나오라고 말했다. 남궁적은 지금 현당이 어디 숨어 있는지 못 찾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현당은 최대한 움직임을 자제한 채 남궁적의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 남궁적은 현당이 숨어 있는 곳을 알아차렸다. 역시 급조한 은신처라 남궁적 같은 고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쥐새끼 같은 놈…… 거기 숨어 있었구나!”
남궁적이 말하는 순간, 현당과 남궁적의 시선이 엉켰다. 다시 두 사람의 눈빛이 교차되는 순간, 기습을 하려던 남궁적이 움찔거리고 물러났다. 현당이 활을 치켜들었기 때문이다. 급조한 화살이지만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거리가 가까워진 만큼 효력은 배가 될 터였다. 그 효과는 남궁적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의 어투가 바뀌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자네의 임기응변은 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 그래, 그 활도 마찬가지야.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강력한 활을 제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네 실력이 뛰어나다는 소리겠지.”
남궁적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네는 화살이 없어. 그건 내가 장담하지. 지금 내게 날린 화살도 비표행의 십자표로 만든 것 아닌가?”
남궁적이 현당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시험해 보지?”
기다렸다는 듯이 현당은 활을 남궁적에게 겨누었다. 마치 모든 준비가 다 끝나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조금이라도 남궁적이 다가선다면 바로 화살을 날릴 것처럼 활시위를 당겼다.
“남궁 공자…… 남궁적 공자…….”
사방에서 외치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현당이 아닌 진짜 남궁적을 찾는 소리였다. 놈들의 일행이 지척에 이르러 있었다.
남궁적이 다시 한 번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운이 좋군. 알아? 갑자기 말이지…… 나는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어졌어. 대단해. 실력이 좋다는 것도 인정해 주지. 이번에는 그냥 놔주겠다. 대신 다른 놈에게 잡히지만 마라. 다시 나를 만날 때까지,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중얼거리며 남궁적이 몸을 돌렸다.
“여기다.”
현당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조직에서 현당을 잡기 위해 내보낸 놈들이었다.
남궁적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비표행, 오구행뿐만 아니라 철권행에 수장행(手杖行)까지 모두 다! 한 명도 빠짐없이 놈에게 당했다.”
“철권행까지 말입니까?”
소리치며 달려오는 놈이 보였다.
이삼이었다. 놈이 남궁적을 데리고 온 게 틀림없었다.
“그래. 도대체 놈의 실력에 대해서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 게냐? 분명히 오구행 정도의 실력이라 하지 않았더냐?”
남궁적이 소리쳤다.
“죄, 죄송하외다, 공자. 한데 놈은 어디로…….”
남궁적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른다. 놈을 찾느라 여기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놈은 더 이상 여기에 없는 게 분명하다.”
“그렇군요. 그래도 기왕 왔으니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여봐라.”
순간, 남궁적이 인상을 찡그렸다.
“자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겐가?”
이삼이 머뭇거렸다. 남궁적이 왼손으로 허리에 찬 검을 두들기고 있었다. 이삼이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하면 금방이라도 검을 뽑을 것만 같았다. 이삼은 생각해 보았다. 남궁적이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죽일 것인가…….
가능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틀어지면 남궁적은 능히 그럴 수 있는 자였다. 주화입마에 빠지면서 근골이 뒤틀리고 뇌에 제대로 혈액이 공급되지 못하던 남궁적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사지가 괴하게 돌아가고, 몸을 가누는 것은커녕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의 인성이 쉽게 파괴되었다. 항상 예의 바르고, 거친 말 한 번 할 줄 모르던 삼도절 남궁적은 사라지고, 파괴적이고 제 성질에 제 스스로 격분하는 패왕 남궁적이 나타났다. 꼭 그동안 고분고분하게 지내느라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다 한꺼번에 폭발한 것 같았다. 어쩌면 주화입마에 빠지기까지 그는 거짓 인생을 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다시 무공을 찾을 때까지 반년여……. 남궁적은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지냈다.
그랬던 남궁적을 알고 있기에 이삼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가 죽게 될지라도 하고 싶은 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궁적이었으니까.
덕분에 그의 명령도 도중에 끊겼다. 그의 명령에 움직이던 사람들도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내 이삼이 결정을 내렸다.
“공자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놈은 여기 없겠지요. 그럼 놈은 어디로……?”
“그것을 내가 어찌 아나? 놈을 찾아 죽이는 것은 당신들 일 아닌가? 덕분에 함께 남궁세가로 들어가려던 네 사람만 잃지 않았나?”
이삼이 화들짝 놀랐다.
“맞습니다. 어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가자, 얘들아.”
이삼이 소리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주변을 수색하려던 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궁적과 현당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그리고…….
히죽.
남궁적이 웃는 바람에 드러난 하얀 치아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이빨처럼…….
남궁적은 손가락을 한 번 눈가에 갖다 붙인 후 떼면서 현당에게 인사를 하고 앞서간 일행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 * *
남궁적마저 사라진 후, 한참이 지나도록 현당은 활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현당은 빈 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굳은 팔을 풀었다. 아직 손이 떨리고 있었다.
제39장 계산은 해야지?
현당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직사각형의 평탄한 지붕이 아닌 세모꼴로 위로 올라가는 모형이었다. 눈을 돌리자 바닥을 따라 조그맣게 나 있는 창이 보였다.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지만, 밖에서는 안에 누가 있는지 분간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과거 현당이 구속되기 전에 사용하던 은신처였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소리, 누구를 찾는 소리였다. 누워 있는 현당의 침상 바로 아래였다.
“정말 안 왔나?”
“반년 전에 죽었다던 사람이 어찌 살아서 온답니까?”
현당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남을 속이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자신마저 속이는 일이라고 했다. 현당은 바로 그것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집주인도 현당이 여기 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모를 터였다.
문제는 집주인이 아니었다. 현당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 조직이었다. 그들은 구속되어 있는 현당을 찾아와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빼냈다. 그 말은 곧 남궁적이 쓰러지기 전에 이미 현당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현당이 전부터 사용하던 은신처를 모르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때에는 남몰래 움직여야 하고 우희를 통해야만 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남궁적이 돌아온 이상 굳이 숨어서 남부맹 소속 행세를 할 필요도 없을지 몰랐다.
그러할진대, 그들이 이곳으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리라. 때문에 집주인이 전혀 모르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했고 현당은 집주인 몰래 이곳에 들어왔다.
밑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계속 들렸다.
“위에는 뭐가 있소?”
“위요? 지붕이지 뭡니까?”
“큭…… 올라가는 길은?”
“지붕이야 사다리 타고 올라가면 되는 것이지, 길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밑에서 아무리 찾아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 현당의 은신처 입구는 이 집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옆집을 통해서만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 집주인도 현당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어쩌면 현당이 임대하고 있는 동안 자신의 집을 개조했다는 사실마저 집주인은 모르고 있을 터였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기와를 들추고 지붕을 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현당은 느긋한 마음으로 바깥의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한 그들은 제풀에 지쳐서 돌아갈 터였다.
마음이 느긋해지자 머리가 맑아졌다.
현당은 편한 마음으로 지금의 정황과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상하고 대처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과연 우희라면 나를 찾으려고 저렇게 쑤시고 다닐까?’
아니었다. 저런 식으로 소란을 떨면 두더지는 더욱 깊은 곳으로 숨기 마련이었다. 우희라면 분명히 몰래 숨어서 현당이 나타기만을 기다릴 것이었다. 그녀는 영리했다.
‘그럼…….’
우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통평사단들도…….’
현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적 혼자 돌아온 것이었다.
우희 없이 남궁적 혼자라면 행동에 제약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그동안 현당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남궁적은 자세히 모르고 있을 테니까…….
현당은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