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16화 (116/175)

# 116

<116화>

다시 온몸을 감싸고도는 전율에 서문장미는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립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이런 느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껏 모르고 살았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만. 이제 그만…….”

두 손과 양 무릎으로 침상을 짚고 있는 자세로 서문장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말만 내뱉는 것뿐이었다. 이미 그녀의 몸은 그의 율동에 박자를 맞춰가고 있었다.

현당이 다시 손을 뻗자 서문장미는 뿌리치고 싶었다. 이제는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뿌리칠 수도 없었다. 그녀의 몸 한구석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아악. 아, 아파…….”

침상에 온몸을 내던지고 엎어져 있는 그녀의 마른 맨살을 비집고 남자가 밀고 들어왔다. 통증인지 쾌감인지 모를 격정이 그녀 안으로 파고들었다.

서문장미는 정말로 이제는 손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아까는 단지 움직이기 싫었지만 지금은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것을 그녀를 안고 들어온 이 짐승이 다 가져간 것 같았다.

하지만 짐승은 아직도 성이 차지 않은 게 분명했다. 다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회음부만 잡아서 끌어 올렸다.

“헉…… 헉…… 헉…… 헉…….”

그녀는 그저 짐승이 두들기는 박자에 호흡을 맞추는 것이 전부였다.

인간에서 짐승까지 강등되었던 현당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뱉고 나서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후우웁. 후우우…….”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하게 남아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간밤의 격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개운했다. 몸속에 남아 있던 오염물에 그 찌꺼기와 불순물을 만드는 모든 인자까지 모두 배출한 것 같았다. 다 털어버린 홀가분함이 그의 전신을 가득 채웠고, 그것은 새로운 동력원이 되어 오늘의 현당을 창조하고 있었다.

기지개를 켠 현당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린 후에 방을 나섰다. 방문은 어제 밤에 열어놓은 그대로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서문장미는 가까스로 눈을 뜰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이 닫히자 그녀의 눈은 도로 감겨버렸고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동안 자본 적 없는 깊은 잠에…….

*  *  *

우희의 설명은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장고 끝에 이삼이 결정했다.

“제거하도록 하지.”

이삼이 결정하자 장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틈도 주지 않고 우희는 장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니오. 전해진 계획에 따르면 아직 아니에요. 남궁 공자가 나오기 전까지 현당은 있어야 합니다.”

이삼이 공일을 바라보자 그가 답했다.

“남궁 공자는 가까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저희와 합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희는 깜짝 놀랐다. 남궁적의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벌써 남궁세가로 돌아갈 만큼 회복되었을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들과 합류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정상의 모습을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당을 빼고 남궁적이 제 역할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그럴 리가…….”

우희는 공일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서너 달 전에 보았을 때만 해도 의식불명이었던 남궁적이었다.

“한 번 의식을 차리자 빠른 속도로 회복했습니다. 머리가 좋은 만큼 포기해야 할 것은 포기하고 취할 것만 취했으니까요. 단념이 빠르다고 해야겠지요.”

“그럼…….”

“귀갓길에 정리하기로 한다.”

우희가 뭐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장이는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남궁적을 부르러 가는 것이었다.

*  *  *

방으로 돌아온 현당은 흠칫 놀랐다.

빈 방일 줄 알았는데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현당의 수하들, 바로 태구와 선기, 그리고 장 행자가 그의 방을 지키고 있었다.

“아니 뭣들 하고 계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현당이 들어서자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소가주!”

“공자…….”

“아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현당이 사라져서 걱정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사람들의 얼굴에서 불안감이 가셨다.

“하루 전만 해도 의식이 없던 공자이신지라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무뚝뚝한 태구가 하는 걱정스러운 말에 지금까지 불안해했을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선기가 격앙된 목소리로 현당을 추궁했다.

“그래도 그렇지, 문 밖에서 지키고 있던 태구한테 한마디 해주시면 어디가 덧납니까? 갑작스런 소리와 함께 공자께서 사라지셔서 우리가 놀라는 것은 생각도 않으시고…….”

현당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전혀 생각지 못했다. 잊고 있었다. 자신만의 문제라는 생각에 그를 더 이상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

이제 현당은 현당 혼자가 아니었다.

남경 저잣거리에는 과거 그의 패거리들이 현당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여기 태구와 선기도 있었다. 아직 확신은 안 섰지만 장 행자도 현당의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흑산벽도 현당을 돕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남부맹 안에는 모두 적일지라도 조금만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현당의 사람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킁킁…… 그런데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뭐 즐거운 시간을 보내신 것 같은데…….”

이제 긴장이 풀렸는지 선기가 코를 벌름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현당의 몸에서 나는 분 냄새로 대충 눈치를 챈 게 틀림없었다.

현당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기 대협,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공자를 위해서 못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정무련을 나가면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제 봤던 사람 말이지요?”

현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입니다. 그를 보면 이렇게 전해주십시오. 제가 돌아갈 테니, 본가에 연락을 하라고 말입니다.”

선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현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만사 불여튼튼이라고, 미리 말하려는 것입니다. 부탁합니다. 소식을 들은 본가에서 다음 준비를 할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현당이 몸을 돌리자 태구가 보였다.

“태구 대협은 좀 쉬시기 바랍니다. 오늘 경호는 장 행자에게 부탁하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아니요. 제가 안 괜찮습니다. 가서 쉬시지요.”

태구는 현당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서 절대로 명령을 철회할 뜻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싱긋.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태구도 자리를 비웠다. 이제 실내에는 장 행자와 현당만 남았다.

“앉으시지요.”

당장 현당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였다. 우선 외부에 있는 현당의 일당에게 현당이 돌아간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건 선기의 몫이었다.

현당이 남궁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선기는 현당의 말을 남궁세가로 돌아간다고 해석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현당이 남궁세가를 나와 다시 그들 일파에게 돌아갈 것이니, 흑산벽에게 소식을 전하라는 말이었다. 현당이 말하는 본가가 흑산벽을 가리킨다는 것은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우타 추완성은 알아차릴 것이었다. 이제 현당이 나가기만 하면 사라질 수 있도록 그들은 준비를 해줄 것이었다.

다음으로 현당은 누구를 데려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태구나 선기에게는 선뜻 말할 수가 없었다. 현당이 혼자가 아니듯이 그들 역시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사대 세가 덕분에 먹고살고 있는 가족들이 있었다.

하지만 장 행자는 가능성이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장 행자를 밀령(密令)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가족이 있을 리 만무했다. 볼모가 있을 거라고 가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는 법이었다.

“자네에 대해 말해보게.”

장 행자가 물끄러미 현당을 바라보았다.

“그냥…… 우리 서로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일 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닐세.”

장 행자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남궁세가의 가주 전용 호법이 생기게 된 것은 검맹 남궁덕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는 흑도인 한 명을 죽음에서 구해주면서 감화시켰고, 그가 검맹 남궁덕에게 충성을 약속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남궁덕의 사후 남궁찬에게도 몇 년간 더 봉사를 해주었다. 이때 남궁찬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유용성에 대해 깨달았고, 남부맹의 결성 후에는 더욱 그 필요성을 절감했다. 총관이 보이는 팔다리라면 호법은 보이지 않는 수족이었다.

장 행자는 자신의 진짜 이름도 몰랐다. 전임자가 그를 찍었을 뿐이었다. 고아 출신인 그는 평생을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을 제공한다는 말에 무작정 전임자를 따라나섰다.

피식.

현당은 실소를 흘렸다.

당장 장 행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가 우습습니까?”

“아니, 자네 때문이 아니라 남궁…… 아버지 때문에 우스워서!”

“가주 때문에 우습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느 누구보다 신뢰와 충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장…… 편의상 장 행자라 부르지. 장 행자일 것이네. 하지만 남궁세가에서는 장 행자의 행동을 제지할 아무것도 있지 않잖은가? 일점혈육도 없는 장 행자를 무엇을 믿고 일을 맡기지? 장 행자가 남궁세가의 비밀을 다른 곳에 팔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임무 수행 중에 달아나도 그것을 막을 방법도 없지 않은가!”

장 행자는 현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독이요.”

“독?”

장 행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에 한 번씩 해독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나는 한 줌의 핏물로 녹아버릴 것입니다. 제 사부가 그랬습니다. 내공으로 중화시킬 수도 없고, 방법은 계속해서 공급되는 해독약을 먹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해독약?”

장 행자가 품속에서 작은 옥병 하나를 꺼내 현당에게 내밀었다. 안에는 몇 알의 벽곡단(辟穀丹)처럼 생긴 환이 들어 있었다.

한 알 꺼내 손바닥 위에 놓는 순간, 현당은 몸속에서부터 살아서 꿈틀거리는 독 기운을 감지했다. 마치 자석이 서로 끌리듯 현당의 몸속에 들어 있는 독기들이 반응을 보였다. 동일한 독이거나 최소한 동종의 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감적으로 현당은 알 수 있었다. 이건 해독제가 아니라 더 독한 독약이었다. 현당의 체내에 있는 독은 독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독으로서의 기능 발휘를 위해서라도 독은 더 많은 독을 공급받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세를 불리기 위해 동종을 끌어들이듯이 말이다.

현당이 환을 집어 들었을 때, 체내의 독기가 반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나?”

“뭐가 말이오?”

“해독제를 복용한 지 말이네.”

잠시 장 행자는 말을 끊었다. 기억을 더듬는 것 같기도 했고, 대답하기 적당한 말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알 수 없소.”

“알 수 없다니?”

“어느 순간 보니 나는 이미 독에 중독되어 있었고, 중독되었다는 것을 안 때부터 해독제를 복용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럼 중독되었다는 것은 언제 알았나?”

다시 장 행자의 대답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소. 사부와 함께 임무를 나서기 보름 전부터 먹기 시작했으니까. 사부께서는 자신의 운명을 아셨나 보오.”

그가 혼자 임무를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 행자가 사부라고 부르는 전임자가 얼마 전에 한 줌 혈수(血水)로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전임자와 함께 강호로 나갔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혼자 맡은 일을 수행해야 했다.

현당은 생독진언의 내용을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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