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10화 (110/175)

# 110

<110화>

하단전에서 새롭게 토하기가 올라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독맥을 가득 채우고 임맥으로 빠져나갈 준비를 하던 자하기가 현당의 의지대로 순식간에 토하기로 바뀌고 있었다.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또는 동전 뒤집듯이 토하기와 만나기가 무섭게 자하기는 토하기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현당에게 그것은 새로운 단계로의 전환이었고 또 다른 성장이었다.

‘토하기라…….’

현당의 체내에 가득 차 있는 진기는 단순히 그냥 자하기와 토하기가 아니었다. 또 자하기에 토하기의 성격이 가미된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하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토하기이기도 한 진기였다.

‘이것이 바로 조련제마공의 효능!’

현당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하기의 일주천을 따라 토하기도 일주천하고 있었다. 자하기가 알아서 토하기로 변화하고 있어 자하기를 일주천 시키자 토하기도 일주천하는 셈이었다.

전에는 자하기를 운공 하고 그것과는 별개로 토하기를 수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하기를 연공할 때 토하기를 떠올리면 동시에 토하기도 운공 하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전에는 자하기 따로 토하기 따로 수련해야 했지만 이제는 자하기를 수련하건 토하기를 수련하건 상관없었다.

이것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전에는 자하기가 일 갑자일지라도 토하기는 반 갑자가 안 될 수 있었다. 일 갑자의 내공은 자하기일 뿐, 토하기는 아니었다. 결국 전과 같다면 현당의 내공 수준은 최고가 일 갑자에 불과할 것이었다.

하지만 조련제마공까지 익힌 이상 상황은 달라졌다. 자하기 일 갑자, 토하기 반갑자는 별개가 아니었다. 자하기가 곧 토하기이고 토하기 또한 자하기였다.

자하기를 끌어 올릴 때 토하기 반 갑자도 함께 쓸 수 있고, 토하기를 일으킬 때 자하기 일 갑자도 같이 불러들일 수 있게 되었다.

곧 자하기 일 갑자 더하기 토하기 반 갑자, 도합 일 갑자 반의 내공 수위가 된 셈이었다.

현당은 재미가 붙었다.

이번에는 토하기에 이어서 자하기를 불러들였다. 토하기로 변했던 자하기가 다시 토하기에서 자하기로 바뀌고 있었다. 이건 자하기가 토하기로 바뀌는 것보다 훨씬 더 빨랐다. 아마도 현당의 신형이 자하기에 익숙해 있는 만큼 더 빨리 자하기에 적응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직 토하기의 일주천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하기는 쉼 없이 토하기의 뒤를 따라 두 번째 일주천을 하고 있었다.

‘워, 워, 워…….’

오히려 현당이 자하기를 말려야 할 지경이었다.

가득 찬 진기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순간, 현당은 그 진기의 파도 위로 포말처럼 일어나는 거품이 보였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운공을 할수록 거품의 양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건 마치 파도가 칠 때마다 쌓이는 것 같았다.

‘저건…….’

현당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문 밖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통평사께서는 일어나셨습니까?”

‘우희다!’

우희의 목소리였다.

현당은 황급히 진기를 거두어들였다. 현당의 주위를 맴돌던 은사들이 빠른 속도로 현당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직 휴식에서 돌아오지 않고 계십니다.”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태구의 목소리였다.

한 번 감았다 뜨는 현당의 눈빛은 바로 안으로 갈무리되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현당으로 돌아가 있었다.

“괜찮아요, 태 대협. 참찬보고 들라 하세요.”

느긋한 목소리로 현당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문이 열리며 우희가 들어섰다.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다.

“피곤해 보이는군. 왜 피곤할까?”

짐짓 현당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입가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우희도 맞받아쳤다.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에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군요. 여하튼…….”

앉으라는 말도 없었는데 우희가 현당에게 다가와 앉았다. 스스럼없는 행동이 오히려 우희에게는 당연한 듯했다.

순간, 현당은 전에는 느낄 수 없던 분 냄새를 맡았다.

우희가 달라져 있었다. 항상 맨얼굴이었던 우희가 오늘은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충분히 우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현당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현당이 오늘은 인사부터 농을 걸었다.

“무슨 일 있었어?”

“일은 무슨…….”

정색을 하는 우희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순간, 현당은 우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통평사께서 건강이 안 좋으신 관계로 오전의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 시켰어요.”

어느새 평소의 우희 목소리로 돌아갔다.

현당도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는 말은 비공식적인 일들은 계속 진행시켰다는 말인가?”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빴겠군.”

“누구 덕분에!”

“후훗…… 미안하군. 덕분에 나는 편하게 쉴 수 있었으니…….”

“알면 이제부터라도 일해서 갚아요. 누구는 병간호 하랴, 뒷수습하랴, 소문도 막으랴, 정신없이 뛰어다녔건만…….”

우희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현당은 확신을 가졌다.

우희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 화장을 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전에 없이 현당에게 다정한 척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그런 모든 것이 우희의 심경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분명 그것은 현당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일일 것이다.

현당은 모른 척했다. 감추고 있는 사실을 몰래 알아차리면 그 효과는 배가 되는 법이었다.

“그럼 무슨 이야기가 오갔나?”

우희가 머뭇거리다 답했다.

“……연맹지회(聯盟之會)!”

‘나에게 이야기 못 하는 이유가 이것과 관계있군.’

“그래? 연맹지회를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단판 비무로는 부족하다는 데 양쪽 다 동의를 했고…….”

“그건 예상했던 일 아닌가? 정무련 쪽에서 선봉을 하지 못했으니. 결국은 양쪽에서 몇 사람씩 나오는가가 관건이겠군.”

우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신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둘러대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다시 화제를 바꾸었다.

‘왜 말을 돌리지? 몇 명인지 이야기하기가 그렇게 힘이 든다는 말인가? 뻔하잖아! 하나가 아니면 둘, 많아야 셋일 테고, 그것도 정무련의 최종 후보가 셋이니, 결국 삼판이라는 소리인데…….’

방식도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남들 없는 곳에서 둘만의 비무는 양쪽 모두 다 사양할 것이 뻔했다. 아무리 정파라지만 상대가 암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이상 무작정 그것을 믿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피식.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는 듯 현당이 가볍게 웃었다.

“무엇하러 둘러대? 정무련이 나를 독살하려 했다고 우기면 되잖아.”

우희가 현당의 콧날을 손끝으로 눌렀다.

“당신이 독살될 뻔했다는 것은 증명이 되지만 그것이 정무련의 짓이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아무것도 없잖아?”

우희가 허리를 숙이고 몸을 앞으로 굽혔다.

“게다가 자기들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속삭이는 그녀의 숨결이 현당의 귓불을 간질였다.

현당이 독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현당과 우희, 그리고 남궁찬뿐이었다. 결국 정무련을 그 문제로 추궁할 이유가 없었다. 추궁해 보아야 혐의를 밝힐 수도 없었고, 정무련도 소문을 통해 그 이야기를 들을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부맹 쪽에서 아무도 이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는다면 정무련이 먼저 나서서 자기는 범인이 아니오 하고 변명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만약 남부맹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정무련이 변명을 한다면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세상 사람들은 정무련의 변명을 자복하는 말로 들을 것이 뻔했다. 결국 정무련 입장에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 끙끙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남부맹 입장에서도 현당이 독살될 뻔했다는 소문이 나면 당연히 그 혐의가 정무련에 집중될 것이고, 그것은 오히려 정무련을 상대로 단결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문제를 그냥 덮고 지나감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두 가지 이상이었다.

“그렇군. 그런 효과도 있을 수 있겠어.”

현당은 우희의 조심성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분명 실내에는 현당과 우희밖에 없는데 하독(下毒)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럼으로써 현당에게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동지의식을 은연중에 심어주고 있었다.

“그럼…… 그건 그렇게 넘어가면 되겠고, 다음 이야기를 하지. 연맹지회에 나가는 후보는 셋이랬지?”

우희가 다시 멈칫거렸다.

“맞아.”

현당은 확신을 가졌다.

우희가 먼저 셋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그것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야기했다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셋이라…… 후보를 예상하고 있겠군?”

우희가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응!”

“좋았어.”

현당은 왜 우희가 머뭇거리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분명히 현당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후보 문제야…….’

현당 역시 노련하게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

현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후 일정에 대해 우희와 상의를 했다. 우희가 이야기한 대로 더 이상 현당의 독살설에 대해서는 없던 일로 치고 나머지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한다면 오늘 오후의 만찬을 치르고 내일이면 돌아갈 일만 남았다. 정무련에 왔던 일정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때마침 밖에 사람이 왔다.

“통평사 어른, 서문 부인이 약을 보내셨습니다.”

우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을 흘겼다.

“당신…… 또 솜씨를 발휘한 거야?”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라고.”

현당이 손사래를 쳤다.

“약을 쏟았거든.”

“약?”

“응.”

“오호! 서문 부인께서 일부러 약을 쏟았다는 말이지? 뭐를 밉보여서 그랬을까?”

우희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에서 단절되었다. 문이 열리고 약사발을 든 시비가 들어오고 있었다.

“두고 가시지요…….”

시비가 머뭇거렸다.

“저어…… 주모께서 약을 드시는 것을 반드시 확인하고 오라 하셨습니다.”

“훗. 부통평사께서 그리 이르시더냐?”

현당이 혀를 차며 약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는 소리가 나도록 우희와 시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약을 들이켰다.

“크으으…… 꽤 쓰군.”

시비가 고개를 숙였고 우희가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잖아요!”

빈 약사발을 든 시비가 나가자 이번에는 밖의 소란스러움이 실내까지 전해졌다. 덕분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아, 나는 통평사의 친구라니까…….”

“그래도 지금은 아니 되오. 통평사께서 참찬과 회의 중이라…….”

저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올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그가 맨 처음 남궁세가를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들라 하시지요, 태 대협…….”

현당이 문 밖을 향해 낮게 소리쳤다. 우희와 나누는 것을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감춰야 될 이야기라면 그렇게 흘릴 우희가 아니었다.

“이 사람. 또 독에 당했다면서? 어떻게 자네 같은 고수가 그렇게 쉽게 당하나? 자네가 방심한 건가, 아니면 상대가 치밀했던 겐가?”

흥분한 모습으로 포송이 들어왔다. 그가 흥분하는 것은 현당이 독에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남부맹에서 나온 통평사를 정무련에서 독살하려 했다고 수군거리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아는 현당은 오히려 포송에게 미안했다.

“아마 무엇을 잘못 먹었나 보네. 그게 다 내 불찰이지. 어찌 남을 탓하겠나!”

흥분해서 뛰어 들어오던 포송이 현당을 빤히 쳐다보았다. 현당의 말이 진심임을 깨달은 포송은 막상 할 말이 없었다. 현당은 추호도 정무련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눈치였다.

“커흠. 흠…… 그래, 좀 괜찮은가? 내가 우리 선종문에 부탁해서 탕약이라도 보낼까?”

포송의 말에 현당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되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서문세가에서 약을 지어줘서 말이야…….”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던 포송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러고 보니 문사와 이야기 중이셨군. 연회에서는 먼발치에서 뵈었습니다만 이렇게 가까이 뵙기는 처음이군요. 선종문의 포송이라고 합니다.”

아직 자리에 앉지 않은 포송을 향해 어쩔 수 없이 우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부맹의 문당을 맡고 있는 문사 나연희입니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뵈니 오히려 소문이 부족한 듯싶습니다. 과연, 과연…….”

포송의 말이 무슨 뜻인지 현당은 궁금해졌다.

“무슨 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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