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104화 (104/175)

# 104

<104화>

현당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확인하려는 듯 확답을 요구했다.

“제 이 두 눈으로 확실히 본 것입니다.”

선기가 손가락을 들어서 제 두 눈을 가리켰다.

현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의 눈을 멀게 했어!’

확신이 들었다. 저잣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불한당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 누구보다 현당이 잘 알고 있었다. 한두 해 정도라도 체계적으로 무공을 익힌 자라면, 서너 명의 불한당쯤은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한데 모용세가의 양아들로 삼을 정도의 기재가 아무리 만취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맞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조작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조작이라는 증거는 또 있었다.

그렇게 매를 맞을 정도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모용탄이 모용곽의 손아귀에서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오죽하면 그게 재미있어서 선기는 그것을 미꾸라지 신공이라고 이름을 붙였겠는가!

게다가 모용곽은 십여 명의 수하를 거느리던 현당을 단 일수에 제압했다. 불한당에게 제압당할 정도의 실력이나 만취 상태의 모용탄이었다면 모용곽에게는 일초지적도 못 되어야 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면 쓰러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모용탄은 구경 나온 사람들이 모용곽을 보고 웃음을 흘릴 정도로 요리조리 잘 빠져나갔다. 그 때문에 분노한 모용곽이 모용탄을 버렸다.

‘모용탄이 그 상황에서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나뿐이었다. 확실하게 모용곽으로부터 벗어나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것! 그때부터 모용곽은 모용탄에 대한 관심을 접었고, 모용탄은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살았다.

“그 뒤로 모용탄 공자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남경 삼탕아! 뻔하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남경에서 버려진 불한당이라고 불리겠습니까? 하고 돌아다니는 짓이 하도 더러워 이제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 뒷감당하기가 더 더러우니까요.”

모용탄은 그렇게 해서 확실하게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따돌렸다.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모용가주는 뭐를 했지요?”

“뭐를 하다니요?”

“그래도 모용세가 아닙니까? 모용세가를 위해 뭔가를 했을 텐데요.”

“아!”

그제야 알겠다는 듯 선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어디를 가든 모용미 낭자를 데리고 다닌 것 외에는 없지요, 아마?”

“그때가 언제부터 입니까? 정확히…….”

“남부맹이 건립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입니다. 죽심거사께서 우희 나연희 소저와 철벽 단목기 공자를 정식 제자로 받아들인 직후로 기억합니다. 그 때문에 독고세가의 독고진, 남궁세가의 공자,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용탄 공자에서 일순간에 모용세가가 뒤로 처지게 되었으니까요.”

현당은 묵묵히,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남부맹의 전대 총사에게 두 명의 정식 제자가 들어가고 남부맹 내에 그들의 위치가 확고해질 때, 오히려 모용탄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시기부터 모용탄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흥미롭군…….”

현당은 모용탄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파의 시각이 아니라 저잣거리에서의 모용탄, 그리고 흑도에서 보는 모용탄의 모습이 알고 싶었다.

얼마나 진상(眞相)으로 굴었으면 저잣거리를 차지하고 있는 놈들이 모용탄과의 시비를 꺼릴 정도였을까? 어쩌면 그것에서 모용탄의 진짜 실력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당은 그 일을 하기에 적당한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지금 밖에서 현당의 지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그의 수하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현당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선기를 바라보았다.

남부맹에서 가장 뛰어난 신법의 소유자, 바로 선기였다.

“나를 위해 선 대협께서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선기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말씀만 하십시오. 유황지옥에 뛰어들라 할지라도 섶을 지고 뛰어들 테니까요.”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닙니다. 단지 남의 눈을 피하고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할 일이니까요.”

현당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확신이 들었다. 이제 선기는 현당이 시키는 대로 추완성을 찾아가 현당의 지시를 전할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  *  *

선기가 나가고 장 행자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이제부터 자네는 장 씨야!”

현당이 놀리듯이 입술을 이죽거렸다. 현당과는 반대로 장 행자의 얼굴에 불쾌감이 어렸다.

일의 진행이 흥미로웠다. 장 행자가 돌아온 것은 그가 사라진 세 사람의 행방을 찾아냈거나 그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리였다. 현당은 탁자에 양팔을 괴고 허리를 앞으로 당겼다.

순간, 현당의 시야로 미세하게 떨고 있는 장 행자의 왼팔이 보였다. 허리를 당기기 위해 몸을 앞으로 숙이지 않았다면 못 볼 뻔했다.

현당은 실눈을 뜨고 장 행자를 올려다보았다.

“생각보다 일찍 왔군.”

말은 여유롭게 하고 있었지만 눈빛까지 느긋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현당은 세세하게 장 행자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얼굴뿐 아니라 그의 동작 하나, 눈짓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

아니나 다를까 현당의 시야로 다른 이상이 잡혔다.

정보라는 것이 하나씩 개별적으로 놓고 보면 의미 없는 동작이나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것들을 모아놓고 보면 미처 보지 못한 정보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의미 있는 정보를 검색하느냐 못 하느냐는 개별적인 사항과 사항 간에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능력에 달려 있을 뿐이다.

떨고 있는 왼손 끝. 그리고 그것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변화가 현당의 시야에 잡혔다. 장 행자의 눈두덩이 아주 약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공일이 가장 먼저 돌아왔습니다. 그를 정무련 밖에서 발견했습니다. 다음으로 둘째 장이가 돌아왔습니다만 밖에서 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당은 장 행자의 말 속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무련의 주변에 남궁세가의 눈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일이나 장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세 번째 이삼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곳이라니?”

“문사의 숙소 말입니다. 다른 곳에 가지 않고 그곳에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안 갔다…….”

현당은 그 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본 적 없는 세 사람이었다.

“결국 다시 네 사람이 모였겠군. 그들의 좌석 배치가 어찌 되던가?”

현당의 질문에 장 행자가 당황했다.

“좌석 배치?”

“그래. 네 사람이 한자리에 앉았을 것 아닌가? 어디에 앉았느냐 이 말일세.”

미처 그것까지는 분석하지 못한 듯했다. 잠시 생각을 되짚어보더니 대답했다.

“원탁이었습니…… 다.”

“이런 다탁이로군. 어떻게 앉던가?”

현당이 일어나 다른 의자 두 개를 끌어놓았다.

“이쪽에 문사가 앉았습니다. 왼쪽으로는 이삼이 앉았고, 오른쪽에 공일이 자리했습니다.”

“문사의 정면으로 장이가 앉은 꼴이로군.”

장 행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당은 둥그런 원탁에 네 의자를 배치해 놓고 한 발 물러서서 내려다보았다. 무언가 이상했다.

“원탁이라…….”

흔히들 원탁에는 상석이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단지 원탁만을 놓고 본다면 상석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탁자가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의해 자리가 결정될 것이고, 결국은 원탁이더라도 상전의 자리와 아랫것의 자리로 구분된다. 그 점은 원탁이 아닐지라도 마찬가지다.

주로 상석은 벽을 등지고 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상석의 왼편이 차석이 된다. 가장 하석은 문을 등지는 자리!

현당은 무엇이 이상한지 깨달았다.

분명히 상석이라고 생각되는 자리에 이삼이 앉아 있고, 이삼의 왼편으로 우희의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다.

“이삼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렇다? 그래, 그게 그렇게 된 것이로군.”

현당은 알 수 있었다. 문당의 일행 네 명을 우희가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삼이라는 자가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현당은 서둘러 손을 뻗어 뒤로 넘어가는 장 행자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태구. 태구. 지금 밖에 있나?”

우당탕…….

바로 개합문의 태구가 뛰어 들어왔다.

“당장 뛰어가서 서문 부인을 모셔 오게.”

“조, 존명!”

놀란 소리로 답하며 태구가 다시 뛰어나갔다.

*  *  *

“아니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놔두었지요?”

서문장미가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현당에게 힐난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어투에서 느껴지는 것은 의술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응급처치가 잘 되어 있어서 망정이지 그냥 방치했다면 과다 출혈로 벌써 죽은 자였겠군요.”

생각 외로 장 행자의 상처는 심각했다. 장 행자의 벌어진 가슴 상처를 꿰매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소비되었다. 벗겨놓은 장 행자의 옷은 이미 빨아들인 피로 묵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어요. 피를 많이 흘렸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장 행자의 얼굴이 창백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현당도 장 행자의 상세가 걱정되었다.

“그래도 소가주를 먼저 찾아온 것을 보면 남궁세가의 법도가 엄하다는 말이 실감나는군요.”

힐끔.

자신을 흘겨보는 서문장미의 눈빛이 느껴졌다. 유달리 아프게 느껴지는 한 마디였다.

‘남궁세가는 가신들에게 이 지경이 되어도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는 소리로군.’

현당은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할 일이 다 끝나면 남궁세가의 가주가 자신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 입맛이 더욱 쓰게 느껴졌다. 남궁세가가 먼저 움직이기만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사대 세가의 저력을 파악하면 할수록 위축되는 자신을 느낄 뿐이었다.

울적한 기분을 달랠 요량으로 현당은 장 행자의 손을 잡았다. 맡은 신분의 차이일 뿐, 그나 자신이나 결국은 남궁세가의 소모품이라는 생각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곧 일어날 수 있을 것이네. 우선 요양부터 하게…….”

“듣지도 못할 텐데 뭘…….”

서문장미가 현당을 놀리듯이 입을 삐죽거렸다.

현당은 서문장미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이불을 끌어다 장 행자를 덮어주었다.

“신기하군요.”

현당이 뒤를 돌아보았다.

“뭐가요?”

현당을 바라보는 서문장미의 눈빛과 현당의 시선이 한데 뒤엉켰다.

“가주가 가신을 위해 자신의 방을 내준다니 말이에요. 우리 서문 세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가솔이 감히 어떻게 주인의 것을 탐할 수 있나요!”

서문장미의 말대로였다. 여기는 아직 현당의 방이었다.

즉 장 행자는 지금 현당의 침상에 누워 있었고, 현당은 잠자리를 장 행자에게 내준 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의자에서 자거나 장 행자의 숙소를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당의 처사가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했다.

현당은 한 번 더 장 행자의 이불을 살펴보고는 몸을 돌렸다.

“가신은 결국 자신의 수족과도 같다고 할 것이오. 만약 가신을 잃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팔다리가 잘리는 것과 같은 것. 그리고 나는 가주도 아니오. 그리고 이 사람은 내 수하도 아니고…… 그런 사람이 나를 위해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했다면, 그것은 결국 내 책임!”

현당의 설명에 서문장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입만 벌리고 현당을 바라볼 뿐이었다. 현당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말없이 서 있게 되자 어색하기만 했다. 그냥 그렇게 시간만 흘러갔다.

결국은 현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도와줘서 고맙소…….”

“아…….”

잠에서 깨어난 듯 서문장미가 고개를 들고 현당을 정면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제야 현당의 큰 키가 실감이 났다.

“그런데 왜 문당의 그 누구더라…….”

“이삼이오.”

서문장미는 건강과 군수를 담당하는 이삼이 기억나지 않는지 뒷말을 흐렸다.

“아, 맞아요. 통평사단의 건강관리는 이삼이 맡고 있는데, 왜 그를 부르지 않고 나를 불렀죠?”

거만한 목소리로 말은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현당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는 것이라오.”

현당의 솔직한 심정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묻지 않아도 장 행자의 부상이 이삼으로부터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이삼이 아닐지라도 결국은 공일이나 장이의 짓이다. 그런 이삼에게 상처를 치료해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당의 이런 생각은 서문장미에게 다른 뜻으로 비쳐졌다.

“그러니까 나와 비밀을 공유하고 싶다는 소리군요.”

서문장미가 슬쩍 눈을 흘겼다.

“역시 문당보다는 이웃사촌인 사대 세가가 믿을 만한 것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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