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91화 (91/175)

# 91

<91화>

현당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포목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어제까지는 경장을 선택했지만 오늘은 그 대신 나가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포목점 안택(安宅)의 다른 문으로 인력거가 들어왔다.

금질 이건용이 미리 수배해 놓은 인력거였다. 인력거꾼은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었고, 점원은 인력거꾼의 옷을 가지고 방을 나갔다.

점원이 그 옷을 가지고 들어간 곳에는 현당이 옷을 벗고 대기하고 있었다. 현당은 점원이 가져온 옷을 챙겨 입었다. 어제까지의 현당은 신법도 아니라, 그냥 하체 단련을 위해 허리와 종아리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기를 했지만 오늘부터는 아니었다. 오늘 그가 할 일은 인력거를 끄는 것이었다.

인력거를 끌고 온 인력거꾼은 현당이 입었던 경장으로 갈아입었다. 옷이 딱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금질 이건용이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찾은 현당과 똑같은 체격의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인력거꾼이 입은 경장은 보름 이상 현당이 입고 달려서 현당의 땀 냄새가 물씬 묻어났다.

현당은 망설이지 않고 인력거를 잡았다. 현당이 문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금질 이건용이 인력거에 올랐다. 인력거의 좌우로 금질의 호위무사들이 무려 네 명이나 붙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건장한 체격에 하얀 피부, 그리고 파란 눈을 가진 색목인이었다. 너무 특이해서 한눈에 봐도 금방 눈에 띄는 사람들이었다.

인력거가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인력거 안에서 금질이 말했다.

“정무련으로 가세.”

“에. 때인.”

인력거를 잡은 현당의 입에서 혀 짧은 소리가 나왔다.

포목점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포목점의 맞은편 거각에서 나오는 인력거와 호위무사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물며 있더라도 그들이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인력거를 끄는 인력거꾼의 혀 짧은 목소리가 그들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인력거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당의 경장을 챙겨 입은 인력거꾼이 포목점으로 나갔다. 밖에서 유심히 포목점을 노리고 있던 몇 무리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경장차림의 그를 쫓기 시작했다.

*  *  *

정무련은 수많은 사람들로 매우 번잡했다. 남경에 돈깨나 있는 사업가라면 다 모인 것 같았다. 큰 거래가 있음을 암시했다.

금질을 태운 인력거는 최대한 사람들이 모인 마당 한가운데로 밀고 들어갔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간 후, 금질은 인력거를 세웠다.

“돌아올 때까지 예서 기다려라. 돈은 그때 계산하겠다.”

금질은 행여나 인력거가 그냥 갈까 교통비 지불을 미루었다. 물론 갈 생각도 없는 현당이었지만…….

인력거에서 내린 금질 이건용이 인파 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네 명의 호위가 이건용을 에워싸고 사람들 사이를 헤쳤다.

인력거꾼으로 변장한 현당은 그저 멍하니 인력거 손잡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던 금질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금(錦) 대인…….”

“오오, 연(燕) 대인! 여기에도 관심이 있어서 오셨소? 배는 다 어쩌시구요?”

“아니, 아니. 난 그저 신(申) 장주 쫓아 여기까지 왔지요. 아시지요? 전장을 운영하는 신 장주…….”

금질 이건용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돈 냄새를 풀풀 풍기는 대상들인 것 같았다.

현당은 머리에 쓰고 있는 방갓을 살짝 걷어 올렸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비무대 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거상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 거상의 호위무사들. 그리고 마지막은 입찰을 진행하는 정무련의 무사들이었다.

무사와 거상은 쉽게 구분이 되었다. 거상에게서는 알게 모르게 돈 냄새가 풍겼다. 진짜 냄새라기보다는 느낌이었다. 한두 명만 세워놓으면 몰랐겠지만 수십 명이 떼로 몰려 있으니까 확연하게 다른 사람들과 구분이 되었다. 특히 호위무사, 정무련 무사 등 강호인들의 분위기와는 뚜렷하게 달랐다.

그때였다.

“오오, 이 대인…….”

무사 한 명이 금질에게 다가와 아는 체했다. 반백의 머리에 중년의 나이에도 잘 발달된 체격을 한 홍안의 무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무복을 벗는데, 이 중년인은 아직도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집무실의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또한 건장한 풍채가 외가 무공을 중심으로 수련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아, 종(綜) 국주…… 사업은 여전하시지요?”

종 국주라고 불린 사람이 반갑게 금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럼요. 다아아, 이 대인이 뒤에서 우리 표국을 밀어주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순간, 현당은 머리에 쓴 방갓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제 이 반백의 중년 무사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단향표국(丹響鏢局) 국주 종리매(鍾離每).

소림사 나한전(羅漢殿)의 전주인 혜방(蕙芳)선사의 속가 제자이자, 죽림백호 포송의 사부. 하지만 실제 포송은 종리매에게 무공을 배웠다기보다는 소림에 가서 직접 무공을 전수받고 왔다고 했다.

현당은 잽싸게 방갓을 내렸다. 찰나였지만 종리매가 현당을 향해 시선을 돌렸던 것이다. 그를 보는 눈빛을 느낀 것이리라.

‘뭐야? 내가 그 정도로 기를 발산할 정도가 되었단 말인가?’

현당은 더욱 조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곳은 말 그대로 용담호혈이었다.

현당은 종리매와 금질이 흔드는 손 사이로 반짝이는 물건 하나가 오가는 것을 보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눈에 띌 정도로 그 물건은 빛을 받아 손가락 사이로 광채를 발했다.

‘작아서 휴대가 간편하면서도 값어치가 있는 물건! 그게 뇌물의 기본 조건이지.’

“아아, 이 대인. 이러시면 안 되는데…….”

“아이구, 종 국주.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게 돈 말고 뭐 있습니까? 그것도 다 종 국주가 지켜주셔서 이렇게 떵떵거리고 이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나저나 어떨 것 같습니까? 최종 승자가…….”

“그걸 내가 어찌 알겠소?”

“허어. 참…… 이미 저잣거리에는 종 국주의 제자인 죽림백호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한데…….”

현당은 귀가 솔깃했다.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게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오.”

순간, 종리매의 말이 끊겼다.

다른 사람이 금질 이건용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이번에는 완전 백발의 노도사였다. 그가 금질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한동안 뭐 하시느라 우리 도관에는 발길을 끊으셨소, 이 대인!”

멀리서도 현당은 백발 도사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파를 느낄 수 있었다. 칼로 베는 듯 날카롭게 날이 서 있었다.

현당은 행여나 자신의 기가 드러날까 잔뜩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었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아, 고(高) 문주. 아니 여기까지는 웬일이십니까?”

“웬일은요! 이 대인 보려고 일부러 들렀지요.”

“아! 이런, 미안할 데가…… 도원문은 어떻습니까? 찾아오는 헌향객(獻香客)들이 많지요?”

“에잉…… 그 사람들을 백 사람, 천 사람 묶어야 뭐 합니까? 어디 이 대인 한 분만 하겠습니까?”

“아이구,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금질의 말을 듣고 있자니 현당도 그가 누구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도원문의 문주인 홍건(紅巾) 고경(高慶)이었다.

홍건은 홍건역사(紅巾力士)의 준말로, 높은 도력과 심후한 내공에도 아무 말 없이 남들이 시키는 일만 한다 하여 붙은 별호였다. 신화 속에서 신선들이 부리는 의식 없는 일꾼인 황건역사(黃巾力士)에서 따온 별호였다. 힘을 쓸 때 얼굴이 더욱 붉어져 홍건역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별호 속에는 생각 없이 사람이 단순하다는 비아냥이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런 단순한 사람이 어느덧 정무련의 다섯 기둥 중 하나인 도원문의 문주가 되었다. 그의 아들도 남경 제일의 역사로 거론되고 있는 장사(壯士)였다.

현당의 시선은 금질 이건용이 만나는 사람들을 쫓았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경매가 시작되었다. 참가한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금액을 적은 종이를 자신의 배첩 속에 담고 그 배첩을 어린 진인(眞人) 한 사람이 들고 다니는 함에 넣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명이 끝나고, 안에서 미리 기표한 금액을 확인하고, 최고 금액을 쓴 사람을 호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정무련의 금룡(金龍) 선발 대회의 대회장 건설 공사의 최종 낙찰자는…….”

발표를 하는 진인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금전당(錦錢堂)의 금질, 이 대인!”

여기저기에서 박수를 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금질 이건용에게 집중되었다. 격려하는 사람들, 축하하는 사람들 모두가 금질 이건용이 기표한 금액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읍을 하는 금질 이건용이 서둘러 인력거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공사를 시작하려면, 오늘은 서둘러 돌아가서 사람부터 뽑아야겠소이다. 인사는 나중에! 그럼, 또…….”

다시 인력거에 오른 금질이 인력거꾼에게 신호를 보냈다. 인력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  *  *

“어떻게 된 걸까?”

포목점의 맞은편 전당까지 인력거를 끌고 온 현당이 싱긋 웃으며 물었다.

“어디 한번 소패의 그 뛰어난 머리로 맞춰보시게! 내가 얼마를 써 냈을까?”

현당은 당연하다는 듯이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무슨 뜻인가?”

“아마도 금질 이건용은 아무런 금액도 쓰지 않은 종이를 넣었을 거야.”

“호오!”

“개표 작업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더군. 그럼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찌 아나? 자네는 미리 가장 높은 금액을 쓴 사람보다 돈을 더 내기로 약조를 했겠지. 얼마일까? 글쎄, 한 천 냥?”

“잘 아는군.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닐세.”

현당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나? 자네는 그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했겠지. 그게 힘들었을 거야. 그것은 대략 백지 위임 제안을 할 만한 사람들을 살펴보았고, 그래서 그들이 얼마를 제시했는지 미리 알아내야 했을 거야. 누군가? 최소한 도원문의 문주 정도는 되어야겠지?”

금질 이건용이 손을 흔들었다.

“젠장…… 천하의 소패라더니, 앉은자리에서 천리를 보는군!”

“이런, 찍었는데, 다 맞춘 셈인가?”

“그런 말 말고, 빨리 돌아갈 준비나 하게. 달리기를 나갔던 아이도 슬슬 돌아오고 있을 테니까…….”

현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공사는?”

“내일 당장 시작이야. 더 일찍 오는 것 잊지 말라고.”

“고마우이…….”

“흥!”

금질이 코웃음을 치면서 시선을 돌렸다.

현당은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현당이 금질에게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은 충분했다.

*  *  *

“요즘도 남궁 소가주는 달리기만 한다더냐?”

“예…….”

모용곽은 더 이상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그만 철수시켜라. 더 볼 것도 없으리라.”

“예, 가주!”

총관이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다시 실내에 홀로 남자 모용곽은 머리를 흔들었다.

“당최 내가 왜 그놈에 대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야. 놈이 사절로 나가게 되어서?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에잉…….”

뭐가 안 풀리는지 모용곽은 부채를 흔들었다. 더 이상 현당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무언가가 계속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현당과 연관된 무엇이……. 지금도 꼭 무언가를 현당에게 빼앗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있을 것은 다 있는데, 도대체 놈이 무엇을 가져갔지?”

*  *  *

현당은 남궁찬의 방문을 받고 욕조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서둘러 수건을 둘렀다.

“편히 쉬어라.”

통지보다 한 발 늦게 들어온 남궁찬이 현당의 위아래를 눈으로 훑었다.

‘잘 발달한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엉덩이까지. 신법 수련에 힘을 쓰는 것은 분명한데…… 그런데 왜 하필 신법인가? 놈이 노리는 것이 뭐지?’

“이곳까지 웬일이십니까, 아버지!”

“허헛. 아비가 아들 목욕하는 곳에도 오지 못하느냐? 등도 밀어주면 얼마나 좋으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남궁찬은 현당의 등을 밀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현당의 위아래만을 훑을 뿐이었다.

*  *  *

한두 차례 더 현당은 금질 이건용을 쫓아서 정무련 금룡 선발 대회장의 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금질을 통해서 정무련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현당이 정무련을 방문하는 동안, 현당의 대역은 부지런히 남경 시외의 산하(山河)를 오르내렸다.

“대충 내가 아는 정무련의 고수들은 다 만나본 것 같군. 어떤가, 소감이…….”

금질 이건용의 질문에 현당은 고개를 흔들었다.

“글쎄…… 직접 힘을 겨루지 않으면 모르겠는걸. 고수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난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서 말이야!”

“하!”

금질이 코웃음을 쳤다.

“나이 스물 좀 넘어서 도기를 다루는 천하의 현당이 고수가 아니라면, 누가 고수인가?”

현당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보다야 철벽 단목기가 고수지!”

금질 이건용이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꽤나 깊이 가슴속에 새기고 있군그래.”

현당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움찔거리며 양 손바닥을 하늘로 하고 치켜들었다.

“알지 않았나? 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는 것을!”

그런 현당을 보고 금질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  *  *

파악할 만큼 파악했다고 생각한 현당은 더 이상 공사 현장을 가지 않았다. 대신에 정말로 달리기에 신경을 썼다. 하체 단련이 지금의 현당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유운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유운신보와 유운보보가 생명인데, 그것을 펼치기 위해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하체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부드럽게 흐르지만 흔들리지 않는 중심. 그것이 유운검의 생명이었다. 현당이 달리기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오늘도 열심이네!”

한창 달리고 있는 현당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백색 면으로 남자들이 좋아하는 장포를 걸친 미녀, 우희였다.

“언제까지 달리기만 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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