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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81화 (81/175)

# 81

<81화>

결승전이 열리는 비무장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예 안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도 듣겠다는 심정으로 경기장 주변을 빙 에워싸고 있었다.

이제는 수많은 시선이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현당은 어색해지는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전직(前職) 때문이야. 단지 전직이 남들 눈을 피해야 하는 도둑이었기 때문이지…… 내가 지금 긴장하고 있어서가 아니라고!’

현당은 애써 자신이 경직되는 이유를 찾았다.

생각해 보면 긴장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의 수준도 지금은 도신합일에 이르렀고, 단목기의 경지도 도신합일에 이른 것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터였다. 게다가 자신은 남궁세가의 대표이고, 상대는 세가 축에도 들지 못하는 단목가의 신임 가주에 불과하지 않은가? 여기에 자신에게는 자하기가 있고, 상대는 내공심법도 없었다. 고작해야 쉽게 구할 수 있는 운기토납 정도일 것이었다. 단목기가 자신보다 나은 것은 위조가 아니라 진품이라는 것뿐이지만, 그것도 단목기는 모르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 봤자 도신합일이야. 나 역시 도신합일이고…….’

생각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긴장되고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상하게 비무장에 들어서려고만 하면 떨려왔다.

‘시작을 잘못해서 그래, 시작을…….’

맨 처음 비무대에 오르던 때가 생각났다. 시작부터 얼어서 굳은 발걸음에 걸려 제 풀에 쓰러질 뻔하던 일들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애써 웃음 지으며 현당은 이성을 찾으려 애를 썼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단목기가 보였다.

“일찍 도착했군!”

단목기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들리는 목소리가 여유로웠다. 떨지 않는 단목기를 보자 현당도 오기가 생겼다.

“아니. 나도 지금 막…….”

순간적으로 굳었던 근육들이 이완되며 목소리도 가라앉았다. 현당 특유의 미소도 되찾았다.

“장유유서!”

현당이 손짓으로 길을 열었다.

“길도 넓은데, 같이 들어가지.”

단목기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답례를 대신했다. 그리고 둘은 누가 앞서는 것도 없이 나란히 들어갔다.

“와아아아.”

비무장 안에서 두 출전자를 환영하는 환호성이 울렸다.

*  *  *

왕륜이 비무대로 향하는 현당을 붙잡았다.

“조금 있다가 올라가시지요. 비무대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패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응?”

현당은 왕륜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큭…… 왕 총관께서도 그런 미신을 믿소?”

가볍게 웃어준 후, 느긋한 마음으로 비무대로 올랐다.

그리고 보니 맨 처음 비무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신이 나중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겠지. 우연일 뿐이야…….’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차라리 듣지나 않았으면 몰랐을까, 들은 이상 괜히 신경 쓰였다.

‘귀를 뽑아서 못 들은 것으로 할 수도 없고…….’

짜증이 밀려왔다.

정면으로 멀리서 철벽 단목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현당은 그가 왜 철벽이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마치 벽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벽이 흔들리면서 현당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자신도 모르게 천인혈의 도파에 손이 갔다. 옆에 서 있는 주재자가 당황하는 표정으로 현당을 쳐다보았다.

‘젠장…… 긴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현당은 도파에서 손을 뗐다.

시야에 다시 단목기가 들어왔을 때, 그는 비무대를 오르고 있었다.

차하앙.

현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를 뽑았다. 경기 시작은커녕 주의사항도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현당은 도를 뽑았다. 곁에 있던 주재자가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당은 그런 것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뽑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막상 도는 뽑았지만 이 가는 도로 단목기의 넓적한 언월도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도파를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았다. 마음속의 흔들림이 주재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떨고 있음을 단목기는 알 것 같았다.

‘이런 적이 언제지?’

시선은 고정한 채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현당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사형 언도를 받고도 떨지 않았었다.

‘젠장.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서 죽음을 겁내는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찬이 수련동에서 현당이 보는 앞에서 시녀의 목을 벨 때도 떨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때 떨었던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다른 무엇 때문에 그는 떨고 있었다. 단순히 공포가 원인이 아니었다.

천인혈을 내려다보았다.

‘믿을 것은 너밖에 없구나.’

폭 한 치에 길이가 세 자가 넘고 도파만도 한 자나 되는 장도였다. 천인장의 천인신수가 명도라고 인정한 도였다. 그 도를 보자 그나마 안정이 되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단목기는 완전히 비무대에 올라서서 현당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당의 시야에는 단목기는 보이지 않고 그가 들고 있는 언월도만 보였다. 도파의 길이만으로도 네 자에서 다섯 자 정도였고 도의 길이는 한 자 반 정도에 도폭만 한 뼘이 넘는 도였다.

폭이 좁고 도신이 긴 현당의 도와는 도법이나 용도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 단목기의 언월도였다. 현당의 도는 단병기(單兵器)에 속하지만, 단목기의 언월도는 중병기(重兵器), 그리고 장병기(長兵器)에 해당했다. 게다가 현당의 도는 도법뿐만 아니라 검법의 변형도 가능하지만, 단목기의 언월도는 오로지 도법만 따른다. 간혹 긴 도파를 이용한 창법과 극법(戟法)을 쓰기도 하지만, 검법과는 거리가 먼 도가 단목기의 언월도였다.

현당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현당은 천인혈을 꽉 움켜쥐었다. 옆에서 주재자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주재자는 내려갔고 경기는 시작된 것 같았다.

비무대에 오른 단목기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이미 중단세를 취하고 있는 현당이기에 준비는 되어 있었다.

‘젠장…….’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욕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비무가 시작되자마자 뛰어들어 초전에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것이 현당의 작전이었는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현당은 기백에서부터 밀리고 있었다. 먼저 도를 뽑았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숨이 막혀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구경꾼은커녕 비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단목기마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현당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단목기가 들고 있는 것이 확실한 언월도뿐이었다.

‘우선 침착해야 해. 침착해야 해…… 흔들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알고 있었잖아. 단목기가 도신합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말이야. 나도 도신합일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똑같은 위치란 말이다. 침착해라, 현당…….’

현당은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자하기를 끌어 올렸다. 배운 검법들을 되새겼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긴장이 완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단지 느낌일 뿐이었다.

그제야 현당의 시야로 언월도 주변에 흐르는 기파(氣波)가 보였다. 주변의 모든 기운을 빨아들였다가 언월도를 감싸고 뒤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후우웁, 후우우…….”

마치 자신의 기마저 단목기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것처럼 현당도 기를 끌어 올렸다. 그에 따라 현당의 신형도 들고 있는 천인혈에 서서히 녹아들고 있었다.

처음으로 비무장을 찾은 남궁찬은 비무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씁쓸한 표정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곁에서 그를 보좌하고 있는 왕륜에게 말했다.

“가지…….”

“더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당황한 왕륜이 물었지만 굳은 얼굴로 남궁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랬었어. 그년은 말이지…… 우리 모두가 그년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구먼. 문사의 손에 사대 세가가 모두!”

남궁찬의 얼굴에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파아아아.

현당이 움직였다. 현당의 도망이 아주 살짝 위로 꿈틀거리는 순간, 현당은 안으로 뛰어들었다. 기회를 포착해서가 아니라 기회를 노리다가는 도 한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패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순간, 단목기의 언월도가 움직였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현당의 위에서 밑으로 내리긋는 천인혈을 막는 것 같았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두 사람의 간격은 결코 도와 도가 만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비무대에서 도를 마주하고 있는 현당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바로 현당의 눈앞에서 언월도는 그를 향해, 그리고 밑에서부터 위를 향해 현당을 두 동강 낼 것처럼 날아왔다. 현당과 단목기는 일 장 이상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단목기의 도는 바로 현당의 앞에서 그를 베고 있었다.

‘도기(刀氣)인가? 아니야. 도기는 나도 쓸 수 있어. 이건 결코 도기가 아니야.’

현당은 급히 도를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를 베고 들어오는 언월도를 막았다.

쿠하아.

현당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람에 떠밀렸다. 눈앞에 보이는 도는 막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 현당의 신형이 관중석 한가운데에 꽂혔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그만. 거기까지…… 단목기 공자, 승!”

경기 종료를 알리는 주재자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관중석에까지 들릴 것 같지도 않았다.

제28장 어디로 튈지…….

현당이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본 것은 낯익은 천장이었다.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인가?’

피식.

어이없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도신합일이라고? 큭…….”

같은 도신합일이라면 내공에서 앞서는 자가 이길 것이라고 판단했고, 내공에 있어서는 자신이 단목기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는 자하기가 있고, 단목기에게는 내공심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상대는 도신합일이 아니라 어도술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내공에서도, 그리고 무리(武理)에서도 어느 쪽으로 보나 현당의 완패였다.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깨졌다.

입맛이 썼다. 그리고 입 안도 깔깔했다.

“느낌이 있다는 것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다시 한 번 실소를 흘린 현당은 가만히 드러누운 채 사지에 힘을 주었다. 조금씩 감각이 돌아왔다. 사지 멀쩡하고 외관상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보았다.

“으윽.”

순간, 가슴으로 통증이 밀려왔다.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움직이지 마라. 무리를 했다가는 오히려 상처가 도질 뿐이다.”

남궁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들자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남궁찬이 눈짓을 하자 현당을 시중들고 있던 시녀들이 나갔다. 그녀들이 있었는지조차 현당은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느냐?”

남궁찬이 무엇을 묻는지 알 수 없어 현당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사 우희의 계획을 말이다. 그동안 누구보다 네가 우희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더냐?”

현당은 고개를 저었다.

“알았다면, 그냥 당하지 않았겠지요.”

현당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흥. 그 계집이 우리 사대 세가를 모두 농락했어.”

남궁찬은 우희를 생각하며 코웃음 쳤다.

“이번 후기지수 선발 대회를 통해 무사 단목기가 아주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했지. 그동안 맡은 역할은 없고 오로지 직책만 있는 남부맹의 참모였는데, 한순간에 사대 세가의 후손들을 모두 누른 절정 고수로 부상해서 이제는 차기 맹주감으로 사람들에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알고 있느냐?”

현당은 고개를 저었다. 알 리 없었다. 단목기를 본 것이 비무장이 처음이었다.

“바보 자식. 도신합일이라고? 놈의 단계는 도신합일이 아니라 어도술에 내공은 도기가 아니라 도강(刀罡)이었다. 그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냐?”

분통이 터진 사람처럼 남궁찬이 소리쳤다.

‘큭…….’

현당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속으로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도신합일을 처음 본 것도 단목기와 독고진의 비무 때였으니,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도신합일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어도술을 몰라보았냐고 한다면, 본 적도 없는데 그것을 어찌 알아볼 것인가! 어도술이 그럴 지경인데, 도강이라고 하는 것은 아예 말할 것도 없다. 현당은 그것을 도강이라고 한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남궁찬도 현당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우희에게 농락당한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화를 풀고 있는 대상이 단지 현당일 뿐이었다.

“모두가 그 계집의 농간이었어. 네놈을 모용가주와 내게 맡겨서 우리가 네놈을 키우는 동안, 그년은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어. 우리가 네놈 뒤치다꺼리를 하는 동안, 그놈은 표행을 다닌다는 명목으로 우리 시야를 벗어나서 힘을 키웠던 것이다. 잊고 있었어, 놈의 단목가 집안을. 그곳도 한때는 우리 세가와 힘을 겨루던 집안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어…….”

현당은 자신의 의문점을 내밀었다.

“하지만 단목가에는 내공심법이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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