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54화 (54/175)

# 54

<54화>

도를 잡아가는 남궁진의 손이 떨렸다.

새삼 천인신수라는 늙은이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스르르르…….

남궁진이 도를 뽑아보았다. 도갑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도신이 거무튀튀한 빛을 뿌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이 천인혈이라 했더냐?”

실눈을 뜨면서 남궁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명도를 가질 만한 실력인지 궁금하구나? 천인신수 옹께서 직접 도갑과 도병을 만들어주셨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으셨을 터!”

남궁진은 다시 도를 건네주었다.

“좋은 칼만 허리에 차고 있다고 해서 고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지?”

괜히 미소 짓는 남궁진이 얄밉게 보였다. 도를 받으면서 현당은 괜한 호승심이 일었다. 이 키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사람에게 자신의 갈고 닦은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졌다. 내가 이 꼬맹이 하나를 상대 못할까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보시겠습니까?”

남궁진이 깜짝 놀랐다.

“지금?”

남궁진의 말에 현당이 흠칫거렸다. 더욱이 놀라는 저 표정이 더욱 마음에 걸렸다.

‘이건…….’

함정이라는 생각이 번개가 되어 뇌리를 때렸다. 현당의 호승심을 건드려서 칼을 뽑게 만들려는 남궁진의 술책이라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자신이 먼저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은가!

현당은 순간,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다른 날을 잡겠습니까?”

“아아, 난 여행 때문에 좀 피곤해서…….”

현당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한쪽은 칼을 거두고 싶지만, 상대가 붙잡고 늘어지면 힘들었다. 양쪽 다 칼을 거둘 때, 싸움은 중지될 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이 그때였다. 다행이었다. 이것으로 비무를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그러시지요. 오셨으니 우선 쉬셔야지요.”

현당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우이.”

남궁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순간, 현당은 자신의 눈을 비비고 싶어졌다. 자신이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쉽게 물러나는 남궁진의 모습에 그의 진짜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만 싶어졌다. 갑자기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쉽게 물러날 이유가 없을 텐데 물러나는 것을 보니 무언가 켕겼다. 정말 고수라면 아무리 험한 여행이었을지라도 조카와 칼 한번 마주 댈 여력은 있을 터였다.

순간적으로 현당은 남궁진에 대한 모든 정보를 뒤적거렸다. 한데 어디에서도 남궁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현당은 빠른 속도로 사고 판단을 연산하기 시작했다. 왜 남궁진의 실력은 기록된 것이 없었을까? 그 진신지력이 미진(微塵)하기 때문에 기록할 만한 가치조차 없어서 안 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드러난 실력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닐까? 무게는 점차 십 년 전, 남궁진의 실력이 보잘것없다는 쪽으로 실렸다.

‘괜히 물러난 것은 아닐까?’

현당은 남궁진을 잡고 싶어졌다.

“정말 그냥 가시겠습니까?”

현당이 물러나는 남궁진을 불러 세웠다.

“가, 가야지. 그럼, 여기 수련동에 있으면 뭐 하겠나?”

현당은 남궁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작 남궁진의 독문병기라는 낫이 보이지 않았다. 갖고 있는 것은 오로지 검뿐이었다. 그것도 두 자루의 검을 한쪽에 모아서 차고 있었다. 한 자루에는 검 손잡이에 사자상이 새겨져 있고, 다른 검에는 검병에 상징이 될 만한 아무런 상이 없었다.

확실히 독문병기가 없었다. 현당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시면 제가 섭섭하지요. 뭐라도 대접해야 할 텐데, 대접할 것은 없고, 그동안 삼촌의 실력이나 감상하고 싶습니다.”

심증을 굳힌 현당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저어, 너도 알다시피 난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현당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럼 허리에 그 두 자루의 검은 그냥 장식입니까?”

“아아, 이거. 이건 그냥…….”

예상이 맞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현당이 득의의 미소를 지으면서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동시에 그는 오른손으로 왼쪽에 찬 천인혈의 도병을 잡아갔다.

“최소한 이 조카의 실력을 구경이라도 하고 가셔야…….”

“아아. 나는…….”

움찔거리며 남궁진도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도를 뽑을 현당의 자세 때문에 저도 모르게 수비식을 취했다.

남궁진도 검 손잡이를 잡았다. 이건 허락이나 마찬가지였다.

현당은 망설이지 않고 도를 뽑았다. 순간, 그는 남궁진이 자신보다 먼저 검에 손을 가져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여일섬…….’

현당은 그가 아는 가장 빠른 발도식을 구사했다.

화아아아…….

도갑을 빠져나오는 천인혈의 느낌이 현당의 신경을 타고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도신이 가늘게 떠는 저릿한 칼맛이 온몸을 관통하면서 전율이 흘렀다.

현당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른 도법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일순간에 검붉은 천인혈의 도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부채꼴을 그렸다. 이제 곧 완전한 반원을 그리면서 남궁진을 노리고 날아갈 것이었다. 완벽했다.

그때였다. 현당의 눈앞으로 점 하나가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한 점이었지만, 어느새 그 점은 현당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다. 현당의 검붉은 천인혈이 부채꼴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 그 점은 현당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갈 것만 같았다.

피하려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사지의 근육은 마비되고 있었고, 모든 사고 기능은 정지하고 있었다. 커다랗게 확대되면서 그를 향해 날아오는 한 점을 막거나 피하거나 달아날 방도가 없었다. 점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현당의 전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고 있었다.

그것은 살기였다. 일전에 남궁찬이 시녀를 죽일 때, 남궁찬에게 느끼던 살기와 똑같은 살기였다. 지금 살기를 품은 점은 현당의 두개골을 꿰뚫고 뇌도 관통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전혀 흔들림 없이 곧장 날아왔다.

현당은 다리가 후들거리고 팔에서 기운이 빠지는 것이 그냥 주저앉고만 싶었다.

털썩.

현당은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가 바닥에 닿았다.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제법이군.”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현당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자신을 무너뜨린 점의 실체가 드러났다.

검이었다. 꼬챙이처럼 날카롭게 생긴 검이었다. 그것도 검의 끝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검신을 가진 삼첨검(三尖劍)이었다. 가운데로 가장 긴 검신이 자리 잡고 있고, 도병의 양끝 쪽에 가운데 것보다 한 자는 짧고 꼬챙이같이 생긴 검신이 하나씩 있었다. 마치 삼지창의 창날을 길게 만들고, 손잡이 대신에 검병을 단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 삼첨검은 바로 남궁진의 손에 들려 있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다음 순간에 남궁진은 삼첨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우당탕쿵탕…….

현당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본능이 이끄는 대로 바닥에 몸을 굴렸다.

“뭐 하는 거야? 지난 십 년 동안 도망 다니는 것만 배웠나 보군.”

바닥을 구르는 현당을 따라 삼첨검의 검끝이 바닥을 긁으면서 현당을 옥죄였다. 열심히 도망가고 있건만 가면 갈수록 현당이 갈 수 있는 곳은 좁아졌다.

바닥을 집는 손에 벽이 닿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바닥을 딛고 일어섰다.

카항.

처음으로 금속이 충돌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손이 저려왔다. 천인혈을 놓치지 않은 것이 용했다. 용케 천인혈을 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이런! 도를 들어 막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나 보군. 아니면 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제 기억해 냈거나.”

취리리리…….

삼첨검의 끝이 마치 뱀의 머리처럼 꿈틀거리면서 현당의 가슴을 후비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현당은 저도 모르게 내공을 끌어올렸다.

카카카카…….

금속과 금속이 충돌을 일으키는 소리가 울렸다. 일순간에 현당의 앞자락이 걸레 조각처럼 찢어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천인혈이 삼첨검을 막은 것이 아니었다. 현당은 자신도 모르게 제련현마강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살고 싶다는 본능이 제련현마강을 불러들였다.

삼첨검이 현당의 가슴팍을 노리고 살을 헤집었지만 옷자락만 찢었을 뿐, 현당의 흉근에는 검이 긁고 지나간 자국만 났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호신강기? 오호! 네놈이 검을 버리고 도를 택했다는 소리를 할 만 하군. 검으로 안 되니까, 이제는 다른 무공을 택했다 이 말이렷다? 도를 택했다는 소리는 정말 도가 아니라, 검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로군. 하지만 어쭙잖은 호신강기는 숙련된 상승 무공에는 전혀 소용없다는 것을 보여주마. 그럼 마지막이다.”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쩌러러러…….

자신도 모르게 현당은 손을 날렸다.

아무리 호신강기라 하더라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손이 저려왔다. 손에서 시작한 경련이 그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그 충격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낫이었다.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낫이 현당이 쥐고 있는 천인혈에 걸려 있었다. 드디어 구(鉤)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칼날을 막았다면 그것으로 끝났겠지만, 휘어진 남궁진의 기역자의 구를 현당이 막았어도 낫의 날은 현당의 목을 찍을 듯이 노리고 있었다. 조금만 늦게 막았더라도 낫은 현당의 멱을 갈랐을 것이다.

한데 목이 아려왔다.

막았다. 분명히 천인혈로 낫을 가로막았다. 그런데 구의 날이 가리키는 방향에 현당의 목 언저리로 칼날에 베인 것처럼 살갗이 터지고 피가 튀었다. 호신강기가, 현당이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제련현마강이 깨진 것이었다.

그때였다.

“진, 이놈. 십 년 만에 집에 왔으면 먼저 사당의 조상님 문전에 인사부터 여쭙고, 네 형인 나부터 찾아와서 문안 인사를 하는 게 도리가 아니냐? 오자마자 조카부터 잡으려 드느냐?”

현당과 남궁진의 눈빛이 마주쳤다. 순간, 현당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남궁진은 정말로 현당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남궁진의 죽어 있는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한순간, 남궁진이 웃는 낯으로 바뀌었을 때, 좀 전까지 현당을 질식시킬 것 같은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까뒤집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장난일 뿐이라고요. 십 년 만인데, 어린 조카가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가장 궁금한 게 그건데, 당연히 먼저 조카를 보러 와야지요. 안 그래요? 가주이신 형님이야 항상 아버지가 쓰시던 방에 있을 테니 안내 없이도 제 발로 찾아가면 되는 것이고, 말도 못하는 죽은 조상들이야 언제 인사드리러 가더라도 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말하는 사이에 그의 표정은 완전히 바뀌었다. 천진난만한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남궁진은 남궁찬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형님도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겠습니다. 삼도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아이구 우리 조카 놈 하고 좋아했는데, 실상 눈으로 보니까 저 녀석은 실력이 제자리인 것 같아요. 사내자식이 차(茶)나 홀짝거리고, 바둑이나 두더니, 그럴 줄 알았다고요. 저놈에게 남궁가라는 이 고래 집을 맡길 수 있겠어요? 차라리 어디 소실이라도 구해서 늦둥이라도 하나 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부딪쳤던 검과 구(鉤)가 서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제야 현당은 구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검의 손잡이는 검이 아니라 바로 구의 손잡이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현당의 실수였다. 검이라면 당연히 검파가 있고, 검신과 검병도 있어야 하거늘, 그냥 손잡이만 보고 검이라고 생각한 현당의 잘못이었다.

그동안 남궁찬이 현당을 노려보고 있었다. 눈길이 싸늘하다 못해 서슬 퍼런 날이 선 분노가 실려 있었다.

“상처부터 치료하거라.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자.”

싸늘한 목소리로 현당에게 한마디하고는 남궁찬은 몸을 돌렸다.

“너는 지금 당장 사당부터 찾아가거라.”

“뭐, 형님 말씀이니 들어야지요. 사당은 전에 그 자리에 있지요?”

남궁진의 말에 남궁찬이 멈칫거렸다.

“아시잖아요. 내가 남궁가 자리를 잘 모른다는 것. 어차피 나가서 나온 자식인데,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요. 일 년에 한 번이나 제대로 솟을대문 안으로 들어섰던가…….”

비꼬는 말투였다. 아무리 밖에서 난 자식일지라도 자기 집안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어디 있는지 모를 리 없었다. 단지 남궁가 자식으로서 대접받지 못했던 것의 비아냥거림이었다.

남궁찬이 남궁진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다시 남궁진의 비아냥거림이 앞서 나가는 남궁찬을 불렀다.

“검가인 남궁가도 이제 다 된 것 아닙니까? 형님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놈도 검을 버렸고, 나도 구를 잡았으니, 검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은 형님밖에 없는 꼴인데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검에 대한 고집을 꺾으시지요. 형님도 검을 버린다고 해서 남궁가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게 대세라고요. 밖을 나가 보면, 도 닦는 말코쟁이나 검을 쓰고 있지, 실용적인 무가 사람들은 모두 다른 병기를 잡고 있습니다.”

남궁찬이 불이 붙은 눈으로 남궁진을 노려보았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눈빛이리라.

“이따 태사자원으로 들거라.”

남궁찬이 현당에게 한마디 던지고 나갔다. 그제야 남궁진이 현당을 향했다.

“운도 좋네. 하필이면 그때 마침 형님이 오셨으니.”

마치 못된 장난을 치다가 어른한테 들킨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남궁진이 현당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를 보는 동안 현당은 소름이 돋았다.

“여하튼 명도 길어. 주화입마에 빠졌다가 일어서더니, 이번에는 또 이렇게 연명하는 걸 보니. 그나저나 형님도 걱정이 보통 아니겠어. 겨우 이런 놈을 붙잡고 후계자로 삼아야 하니 말이야. 그러게 욕심을 버리면, 피안이 바로 저기인 것을…….”

선인(仙人)이 지금 막 얻은 깨달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처럼 가볍게 중얼거리며 남궁진이 밖으로 나갔다.

현당은 그때까지 붙잡고 있는 천인혈을 도갑에 집어넣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생각했어도 꼼짝할 수 없었다. 천인혈을 움켜쥐고 있는 손의 손가락이 굳어서 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하찮은 수준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남궁진은 현당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수련동에 들어와서 일부러 살기를 드러내기 전에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때는 소리도 없이 죽일 수 있었으리라. 그 다음 현당이 천인혈을 뽑아들기 전에도 현당의 목을 벨 수 있었을 것이다. 남궁진이 낫을 뽑아서 베고 들어오는 실력은 현당의 발도술이 따라갈 수 없는 정도였으니까. 결국 생쥐를 잡은 고양이가 쥐새끼를 실컷 갖고 놀다가 흥미를 잃자 죽이려는 것처럼 남궁진이 현당의 목을 베려는 순간, 남궁찬이 들어왔던 것이다.

운도 좋다는 남궁진의 말이 그것을 증명했다. 남궁찬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시녀나 시위 중 한 명이었다면, 또는 우희 정도였더라도 남궁진은 망설이지 않고 구를 휘둘렀을 것 같았다.

“겨우?”

오늘에서야 현당은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깨달았다.

드디어 천인혈이 바닥에 떨어졌다. 힘이 없어서 도를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 그제야 굽은 네 손가락을 폈던 것이다.

힘없이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현당은 굳은 손가락 마디를 주무르면서 마저 펴려고 애쓰고 있었다. 굳어진 손가락은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동심이라도 얻은 것처럼 잘 펴지지 않았다.

“겨우? 그래, 겨우 이 정도였던 거였어.”

목 언저리에서 터진 살가죽을 타고 흐르는 피가 옷을 적시는 것조차 잊은 채 현당은 운 덕분에 겨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선 자신의 실력을 절감하면서 온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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