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화>
현당의 품속에서 달기가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한껏 풀어진 눈빛으로 달기가 현당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지요?”
현당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 전에! 아버님이 달기를 안 찾나?”
달기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최근에는 전혀.”
“아버지를 시중드는 다른 사람도 없고?”
“저 외에 두 명 더 있습니다만, 전혀 부르지 않고 계십니다.”
“언제부터?”
어이없다는 듯이 달기가 미소를 지었다.
“몽니(夢尼)가 그러는데요. 아, 몽니는 저 말고 또 가주님을 모시는 다른 친구 이름입니다. 자고 일어나니 가주님과 몽니 머리맡에 소가주님의 도가 꽂혀 있더래요.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그날 가주님께서 글쎄…….”
“몽정을 했군.”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아는 수가 있지.”
현당은 알고 싶은 것을 다 알아냈다. 이제는 그녀에게 상을 주어야 할 때였다. 그래야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제꺽 현당에게 달려올 터였다.
“아, 또?”
달기의 목소리가 기대에 잠겨서 촉촉했다.
일을 시작하면서 현당은 남궁세가 안에 그만의 장소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안심하고 즐길 수 있었다.
* * *
“나를 만족시킬 수 있나요?”
밤이 되자 그녀는 어김없이 현당을 찾아왔다.
“물론!”
현당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미 그녀가 어디에서부터 찾아왔는지도 알고, 이것이 승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문제가 될 소지가 전혀 없었다. 이기지 못하면 그가 반대로 자신의 소유물에 소유될 것이라는 것도 잊지 않고 있었다.
이미 현당은 성욕이라는 본능을 벗어나 내가 먹느냐, 먹히느냐는 생존 본능의 경주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못 할 게 뭐 있나!
어제와 달리 현당이 먼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그녀를 덮쳤다. 현당은 손, 손톱, 혀, 이, 코, 콧김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해서 그녀를 달아오르게 했다.
“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를 희롱하는 동안 현당은 얼음 같은 냉정함을 유지했다.
오늘따라 그녀가 하룻밤 사이에 십 년은 더 늙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상관없었다. 성욕을 위해 그녀를 품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기기 위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일을 끝낸 그녀가 사라지고 있었다.
현당이 눈을 뜬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그의 미간을 노리고 허공에 떠 있는 도였다. 천인혈이었다.
현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천인혈을 노려보았다. 승부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쐐애액. 팍.
현당을 위협하던 천인혈이 소리를 내며 현당의 귓전에 날아가서 박혔다.
오늘도 천인혈이 패배를 자인하는 순간, 현당의 척추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후우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현당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오늘도 현당은 사정을 하지 않았다.
* * *
“잘 잤느냐?”
현당을 놀리듯이 남궁찬이 물었다.
“오늘따라 좀 피로하군요.”
현당이 정말 피로한 기색으로 눈을 깜박였다.
“그래서 되겠느냐?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마라. 수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다 안다는 듯 중얼거리는 남궁찬의 얼굴에는 너도 어쩔 수 없다는 고소함이 실려 있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
현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눈빛으로 남궁찬을 쳐다보았다.
약사발을 받아드는 달기의 얼굴에 걱정이 어렸다.
* * *
날이 어두워지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찾아왔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나요?”
“물론.”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면서 현당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그녀는 완전히 노파가 되어 있었다.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현당이 먼저 옷을 벗었다. 우람한 그의 분신이 자신 있다고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전위도 없이 현당은 바로 실습으로 들어갔다.
“아아아…….”
그날도 현당의 활화산은 터지지 않았다. 조용히 뜨거운 기운만 안으로 간직한 채였다.
눈을 뜨자 오늘도 천인혈이 허공에서 현당의 미간을 노리고 있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천인혈은 현당과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겁나지도 않았다. 천인혈이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가 주인이고, 아직 승부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만약 현당이 진다면, 천인혈이 현당의 미간, 인당혈(印堂穴)에 떨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물건이 주인을 해할 수는 없었다. 주인이기를 거부했다면 몰라도. 아직 천인혈과 현당 간의 기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현당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쐐애애애. 파.
다시 현당의 귓전을 스치며 천인혈이 침상에 박혔다.
또 하루, 승리했다.
쿨…….
현당의 코 고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 * *
“요즘 많이 피로해 보이는군.”
남궁찬의 말에 현당은 어지러운 척했다.
“꿈자리가 좀 안 좋았습니다.”
“이런…… 악몽을 꾼 게로군.”
남궁찬의 얼굴에 고소(苦笑)가 걸렸다. 너도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남궁찬의 표정은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당은 그 얼굴 뒤에 가려져 있는 남궁찬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는 너와 다르다고 생각하며, 반드시 이겨 보이겠다고 다짐을 하고 또 다짐했다.
그때까지는 남궁찬을 속일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속여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 연맹지회가 네 달 하고도 보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 * *
수련동에서 한창 자하기를 익히던 현당이 눈을 떴다.
누가 들어오고 있었다. 달기였다. 정복을 입은 달기가 쟁반에 옥함을 받쳐 들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가주께서 내리는 물건입니다.”
달기가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쟁반을 든 손을 위로 올렸다.
“뭐지?”
“보천환(補天丸)입니다.”
“보천환?”
“예. 전하는 말로는 소림의 대환단만은 못하다 하더라도 천하의 어떤 영약에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썩어 들어가는 상처에도 새살이 돋고, 죽은 시체도 머리와 손톱이 자란다고 합니다. 특히 무공을 익히는 사람에게는 한꺼번에 한 갑자의 내공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영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주께서는 소가주가 요즘 수련에 전념하느라, 원기가 상하실까 걱정이 심하십니다. 그래서 저를 시켜 이렇게…….”
현당은 그게 남궁찬이 시킨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절대 가짜 남궁적에게 그런 귀한 물건을 내놓을 리가 없었다.
“정녕 아버님의 뜻이란 말이냐?”
“……예.”
대답을 하며 달기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차마 현당을 빤히 쳐다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행동이었다.
현당은 이제 완전히 달기의 마음을 훔쳤다는 데 확신이 들었다. 현당을 위해서 가주 몰래 이런 물건을 훔쳐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흡.”
현당은 이럴 때는 반드시 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는 상을 내려주었다. 그것은 또한 오늘밤을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
“아흑. 소가주…….”
현당의 등에 깊숙이 달기의 손톱자국이 남았다.
* * *
“나를 만족시킬 수 있나요?”
드디어 그녀가 실체를 드러냈다. 나흘만이었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산 사람 흉내를 내는 것을 포기했다.
뼈만 앙상한 시신이 그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해골 위에 뒤덮인 머리가 뿌리를 박을 곳이 없어 뭉텅뭉텅 빠지고 있었고, 썩어서 문드러진 입술 사이로 해골에 달라붙어 있는 치아가 보였다.
“당연히!”
그녀가 오기 전부터 벗은 몸으로 준비하고 있던 현당이 몸을 일으켰다. 그보다 먼저 며칠 동안 화산 한 번 터뜨리지 않은 그의 분신은 하늘을 향해 꼿꼿이 머리를 치켜들고 있었다.
현당은 성심성의껏 그녀를 달랬다. 이제는 저런 몰골을 하고도 성욕을 풀기 위해 찾아오는 그녀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아마도 남궁찬은 첫째 날은 즐거웠으리라. 하지만 둘째 날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셋째 날부터 남궁찬은 도망다녔으리라. 그러는 동안 그녀는 열심히 남궁찬을 쫓았을 테고, 밤새워 남궁찬과 그녀의 숨바꼭질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현당처럼 정면으로 승부를 벌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그녀의 실체를 생각지 않고 외모만 생각한 남궁찬의 실수였다.
현당은 더 이상 성욕이 일지 않았다.
저런 모습을 하면서도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신을 만족시켜 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그녀가 안돼 보일 따름이었다. 현당은 성심성의껏 그녀에게 봉사를 해주었다.
“아아아…….”
허공에서 그녀의 모습이 산산이 부서졌다.
“키이이 히히히. 히히히히…….”
꿈속 가득히 그녀의 귀기 어린 비명과 웃음소리가 진동을 일으켰다.
눈을 뜬 현당의 시야로 천인혈을 든 그녀가 보였다. 바람에 입고 있는 옷이 천막을 두른 천처럼 펄럭였다. 산발한 머리가 허공에 흩어졌다.
천인혈을 치켜든 그녀가 현당을 향해 천인혈을 내리찍었다. 현당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불쌍하기는. 누가 그렇게 네게 한을 심어주더냐?”
천인혈은 현당의 귓전을 때리고 베개를 갈랐다.
“푸우우…….”
현당은 곧바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 * *
현당은 무척 피곤한 척했다. 정심각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숯검정으로 눈 밑에 검은 재를 묻히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러다 몸이라도 상하는 것은 아니냐?”
자못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듯 남궁찬이 물었다.
현당이 눈을 빛냈다. 달기가 아니라 다른 시녀가 보였기 때문이다.
“몽니라고 합니다. 달기는 지금 몸이 안 좋아서…….”
약사발을 내밀며 몽니가 살짝 눈웃음을 쳤다.
약을 들이켜며 현당은 정말 달기가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무슨 일이 있다면, 몽니가 저렇게 현당을 유혹할 리가 없었다. 달기가 어찌 되는지를 보고도 그럴 리는 없을 테니까.
맛은 전과 똑같았다. 우희가 가져다준 천년하수오였다.
현당의 몸속에서는 이제 남궁찬이 준 설삼과 우희의 천년하수오가 분해되면서 흡수되고 있었다.
* * *
“나를 만족시킬 수 있나요?”
“그럼.”
대답하면서 현당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그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주변에 수많은 잡귀들까지 끌고 와 있었다.
목 없는 귀신, 손발이 잘린 귀신, 배가 갈라져 내장이 쏟아지고 있는 귀신, 할복을 하는데 뒤에서 목을 잘라 잘린 목을 달랑거리면서 뛰고 있는 귀신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귀신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그 귀신들이 전장(戰場)을 만들고 있었다.
현당이 그녀를 품는 동안 귀신들은 전쟁을 벌였다.
“흑흑흑…….”
그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한이 현당의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눈을 뜬 현당은 천인혈을 들고 그의 미간을 노리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눈썹 바로 위에 칼끝을 대고 그녀가 몸을 숙였다.
현당의 코앞에서 입김을 불었다.
현당의 이마를 가른 도가 귓전을 때렸다.
손을 들어 이마를 쓸어보았다. 분명히 도가 그의 이마를 가르며 지나갔는데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역시 칼은 직접 현당에게 피해를 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현당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협박까지 해서라도 현당을 이기고 싶은 그녀가 안쓰럽기만 했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으로 그녀가 다가올지 궁금했다.
“쿨…….”
* * *
“허어억.”
남궁찬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며칠간에 걸쳐 꾸었던 악몽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전신이 식은땀으로 척척했다.
“가주, 왜 그러시옵니까?”
옆에서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몽니가 몸을 일으켰다.
벗은 몸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흥이 안 났다. 벌써 며칠 째, 그의 분신은 힘을 잃고 있었다. 분명히 그 귀신에게 양기를 다 빼앗긴 탓이리라.
서둘러 남궁찬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행여나 천인혈이 이 방에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다행이다. 안 보였다.
“괜찮다. 아무 일도 아니다. 어서 자거라.”
말은 그렇게 해도 잠자기가 무서웠다. 또 악몽을 꿀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저도 모르게 좀 전에 꾸었던 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첫날 밤은 좋았다.
너무나 젊고 이국적인 여인이 그를 즐겁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십여 세 때 처음으로 몽정을 한 이후, 처음으로 몽정을 했다. 그의 일생에서 딱 두 번째였다. 첫 몽정 이후, 굳이 몽정을 할 시간이 없어서다. 하지만, 이번 몽정은 정말 즐거웠다.
두 번째 꿈은 좀 달랐다. 그대로 기분은 좋았다. 십대의 아리따운 미소녀가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한 층 요염해 졌달까? 만족스러웠다. 그날도 몽정했다.
세 번째 날은 징그러웠다. 다 늙어서까지 밝힌다고 속으로 욕을 하면도 도망다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쌌다는 것을 알았다.
네 번째 날은 그 때부터 공포 그 자체였다. 삐걱거리며 죽어서 뼈만 남은 시체가 밤새워 만족시켜 달라고 그를 쫓아다녔다. 자고 일어난 남궁찬은 서둘러 요를 감추었다. 요변인지, 정액인지 모를 것으로 요가 잔뜩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날은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악귀들이 서로 자기를 만족시켜 달라고 달려들고 있었다. 밤새 허우적거리다 깨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요 속에서 훈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만 있었다.
여섯 번째 날, 그 귀신에게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사정했다. 그러자 수많은 악귀들이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붙잡고 늘어졌다. 남궁찬은 꼼짝 할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 어느새 머리는 없고 온 몸이 침과 정액과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시신이 남궁찬을 올라타고 그의 정기를 빨아내고 있었다. 깨어났을 때, 남궁찬은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하고 표피 속으로 도망쳐버린 자신의 분신을 발견했다. 요는 온갖 오물 냄새로 진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건더기까지 섞여 있었다.
날이 밝자, 남궁찬은 망설이지 않고 현당에게 도를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