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45화 (45/175)

# 45

<45화>

현당은 남궁찬이 왜 저렇게 놀라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노인이 비범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아도, 그를 만나고 온 것이 놀랄 정도로 대단한 일일 줄은 몰랐다.

“그, 그럼. 도병은 누가 만들어주더냐?”

“노옹께서 직접 만들어주셨습니다.”

“어허어억.”

남궁찬이 비틀거렸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노옹께서 직접! 그럼 날은? 날은 어찌 되었느냐?”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남궁찬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현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 번 그 도를 보자꾸나.”

현당은 보여주기 싫었다. 남궁찬의 내민 손이 왠지 탐욕으로 가득 찬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들한테 칼을 보여 달라는데 아들 된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었다.

현당은 말없이 내밀었다.

남궁찬은 칼은 뽑지도 않고, 도병과 도갑부터 바라보았다.

“흐음. 천인신수가 직접 만들어주었단 말이지? 천인신수가. 그것도 날은 손대지도 않고 도병과 도집만 만들었단 말인가!”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현당은 남궁찬이 탐을 낼 거라는 천인장의 노옹의 말이 번뜩 생각났다.

드디어 도신이 도갑에서 소리 없이 빠져나왔다. 여전히 거무튀튀하면서도 섬뜩하게 붉은 빛을 어지럽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처음으로 남궁찬이 고개를 들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면했다.

“아직 날이 안 서 있구나.”

“예. 제가 직접 해야 한다고…….”

“그러냐? 하지만 네가 도를 잡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가 날을 세워주마. 내게 맡겨라.”

천인장의 노옹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남궁찬이 탐을 내고 있었다.

노옹의 말대로 현당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합니다.”

흠칫 놀라던 남궁찬은 서둘러 몸을 돌렸다. 현당이 이렇게 쉽게 도를 넘겨줄 줄 몰랐고, 그 생각이 바뀌기 전에 서둘러 가지고 가려고 했다.

“알겠다. 내 나중에 갖고 오마. 아참. 그동안에 병기고에 가서 마음에 드는 물건은 아무 거나 가져다 써라. 내 미리 이야기해둘 테니.”

큰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한마디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현당은 불현듯 천인장의 노옹이 말한 쫌생이라는 말이 참으로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궁찬이 완전히 사라지자 현당은 혼자 중얼거렸다.

“믿을 놈을 믿어야지…….”

* * *

현당은 곧장 병기고로 향했다. 아니 그 옆에 있는 서고로 향했다. 본당에 있는 서고와 다른 서고였다. 본당에 있는 서고가 일상적인 모든 책들이 있는 곳이라면, 이곳 태사자원 안의 서고는 가주만 볼 수 있는 책들이 있었다.

경비가 병기고와 마주하고 있는 서고의 입구를 멈칫거리며 막아섰다.

“왜? 아버님께서 통보하지 않으셨더냐?”

“저어, 병기고는 말씀하셨습니다만…….”

“그 말이 그 말인 것을 모르느냐?”

현당은 경비가 멈칫거리는 사이에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들어간 현당을 다시 끌어내지도 못할 것이고, 들어가는 것을 막지도 못했으니, 경비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일절 발설하지 못할 터였다.

앞으로 가주가 될 사람이 가주의 독문무공을 좀 본다고 해서 그게 무슨 죄가 될 것인가! 경비는 그렇게 치부하면서 위안 삼으리라.

현당은 서둘러 서고에 꽂힌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 배우고 있는 남궁가의 독문무공을 뒷전으로 하고, 상단의 책들만 검색하기 시작했다.

“화련검주해(華蓮劍註解)?”

신기한 책이 눈에 띄었다. 화련검은 분명히 남궁가의 입문 검법인데, 그것을 풀어쓴 책이 또 그곳에 꽂혀 있었다.

망설이지 않고 책을 뽑았다. 놀랍게도 저자가 검맹 남궁덕으로 되어 있었다.

“이 책을 집어 드는 자는 남궁가에 흐르는 검법의 검리를 쫓는 진정한 구도자가 분명한지라 내 이를 어여삐 여겨 평생의 심득을 여기에 남기노니…….”

현당은 소리 내어 읽다가 그 책을 잽싸게 품속에 집어넣었다. 다른 어떤 책보다도 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궁찬은 이 책이 없어지는 것도 모를 터였다. 그 옆의 비폭연(飛瀑淵)이라는 책과 감리(監理)라는 책도 같이 뽑았다. 그래야만 들고 온 도검요결과 두께가 맞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내용을 다 외운 상태라 망설이지 않고 도검요결을 두고 나왔다.

“커험…….”

서고를 지나 맞은편 병기고로 향하는 현당은 슬쩍 경비의 손에 은원보를 하나 쥐어주었다.

놈의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졌다. 앞으로도 놈은 현당이 서고에 출입하는 것을 막지 않을 것이었다.

* * *

다음 날, 현당이 약을 다 들이켤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남궁찬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천인신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시던가?”

현당은 망설였다.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도를 보고 요도(妖刀)라던지, 살도(殺刀)라던지 하는 이야기가 없었나 말이네.”

“귀신이 붙었다는 이야기는 하셨습니다.”

남궁찬이 턱을 쓸었다. 무언가 개운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그렇군.”

자못 현당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니다. 하던 수련이나 마저 하도록…….”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고 남궁찬이 몸을 돌렸다.

언제나 마찬가지로 싸늘한 표정을 하고 시녀가 그 뒤를 따랐다. 마치 나는 네놈과는 볼일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당은 속으로 욕을 삭였다.

‘저런 괘씸한 년. 저 계집을 엎어버렸어야 했는데, 괜히 놔줬어. 언젠가는 저 계집도 눌러줘야지!’

* * *

아직 올 날도 멀었는데, 점심 무렵에 모용곽이 현당을 방문했다. 현당이 천인장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그것도 남궁찬이 수련을 지도하는 시간에 찾아와 밖에서 기다리다가 남궁찬이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보게, 적이…….”

모용곽이 안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뒤따르는 시녀가 양손에 커다란 쟁반을 들고 따라왔다. 하나가 아니라 세 명이나 되었다.

“끼니는 제대로 챙겨 먹고 있나? 수련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내 자네가 걱정되어 직접 아이들을 시켜 음식을 가져왔네.”

갑작스런 모용곽의 변화에 현당은 멈칫거렸다.

놀라는 것은 남궁찬도 마찬가지였다.

“모용가주가 우리 적아에게 이렇게 관심을 쏟아주시니 기쁠 따름입니다. 적아를 대신하여 내가 감사드리오이다.”

남궁찬이 안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웃지 않고 있었다. 모용곽의 속내를 읽으려는 눈빛이었다.

모용곽도 같이 인사를 했다.

“찬이 많으니, 같이 드십시다, 남궁가주.”

분명히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었다. 현당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찾아왔는데, 남궁찬이 끼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럼 그럴까요? 모용가의 숙수의 솜씨가 빼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오랜만에 맛 좀 보지요.”

그것을 모를 리가 없는 남궁찬이 바로 쟁반 하나를 끼고 앉았다. 결코 현당과 모용곽, 둘만의 독대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모용곽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모용곽은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 * *

평소보다 일찍 우희가 현당을 찾아왔다.

현당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자마자 다른 것은 하지 않고, 현당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현당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딸을 강탈해 가려고 침까지 바른 현당에게 모용곽이 음식까지 싸 올 리도 없었고, 우희가 이렇게 일찍 현당을 찾아올 리도 만무했다.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뭘 찾지?”

“천인신수를 찾아갔다면서요?”

또 그 이야기였다.

“찾아간 게 아니라, 천인장을 갔더니 그 노친네에게 안내된 거야. 어떻게 알고 있지?”

“남경은 넓고도 좁아요. 그래서 남부맹이나 정무련에 관계된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요. 특히나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천인장을 방문했다거나 하는 이야기일수록 더…… 이미 저잣거리에는 남궁적 공자에 대한 여러 가지 평이 나돌고 있답니다.”

“난 아무 말도 듣지 못했는데?”

“당신에게 이야기해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군. 난 그러니까 남들은 다 있는 눈과 귀가 없다는 이야기지!”

우희가 입술을 이죽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닫힌 것일 뿐, 당신에게 눈, 귀가 없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미 어제도 나갔다가 당신의 일당들과 연락을 했을걸요!”

“아니. 안 했는데…….”

“그러세요! 그럼 앞으로는 하도록 하세요. 당신이 하든 말든 우리는 당신이 수하들과 접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가 불리하군.”

“우리가 유리할 것도 없지요. 할 일이 그만큼 많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당이 밖으로 나간다 하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감시를 해야 하니, 그 인력과 비용, 시간이 쉽게 계산될 수 없으리라.

“그것도 그렇군. 그럼 비긴 건가?”

“아직까지는…….”

“그런데 무슨 이야기가 돌고 있는데?”

현당이 정작 묻고 싶은 말을 꺼냈다. 우희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지는 관심 없었다. 남부맹의 문사, 우희 정도의 능력이라면 당연히 파악하고 있어야 할 일이니까. 알고 싶은 것은 무슨 이야기까지 나왔고, 잘못된 정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천인신수께서 도병과 도갑을 만들어주셨다더군요.”

현당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지?”

우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고 있어요?”

현당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당의 얼굴에서 거짓이 없음을 확인한 우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요. 돼지 목에 진주라더니, 딱 그 꼴이군요. 남경천하 삼대신검(南京天下三代神劍)이 있어요. 독고룡이 사용하던 귀무갑(鬼舞鉀), 정무련 현도장(玄道場) 장주 웅진(雄鎭)이 사용하는 우진령(羽震鈴), 그리고 정무련 련주이자 선종문의 문주인 남진권(南震拳) 포덕(蒲德)이 보관하고 있는 수호정기(守護正旗). 이 모두가 천인신수가 만든 병기들입니다.”

“그중에 검은 하나도 없군.”

“여기에서 검이라는 표현은 병기를 통칭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구요. 이것들은 천인신수가 직접 만들었는데, 당신의 도는 천인신수가 도병과 도갑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현당은 깜짝 놀랐다.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어차피 만들어주려면 도신까지 만들어줄 텐데, 도신은 빼고, 도갑과 도병만 만들어주었다. 결국 현당이 가진 도신이 천인신수라고 불리는 그 늙은이가 만드는 것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거나,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천인신수는 아무에게나 함부로 만들어주지 않아요. 관상을 보고, 물건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한 후에 그에게 알맞은 물건을 만들어줍니다. 하다못해 남경총독도 천인신수를 찾아가 일주일을 졸랐지만, 여자들이 노리개로 쓸 수 있는 비수 하나 들고 돌아갔지요. 그에게서 병장기를 얻었다는 것은 영웅호걸의 자질이 보인다는 소리입니다. 그것도 일세를 풍미할! 한데 당신에게는 당신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천인신수가 직접 도병과 도갑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죠.”

현당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행운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지 믿기지가 않았다.

우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수상도 봤다죠?”

현당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군.”

우희가 자못 자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모두 다.”

며칠 전, 현당이 우희에게 한 말이었다.

모용미와 만난 날, 고서점 앞에서 우희에게 전부 이야기하라고 하면서 협박하듯이 한 말이 바로 그 한마디였다. 지금은 우희가 현당에게 그 말을 되돌려주고 있었다.

“그럼 설명이 필요 없겠군. 문사가 설명해 줘.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찍이 남궁 공자가 어렸을 때, 남궁가주가 공자를 데리고 천인장을 찾아갔어요. 당시에 자식이 있으면, 천인신수에게 관상을 보여주고 평을 듣는 게 유행처럼 번져 있던 때였죠. 그때 천인신수는 남궁 공자를 보더니, 집도 절도 다 팔아먹을 놈이라고 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었죠. 나중에 그의 아들이 물어보니 아, 지금 천인장의 장주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아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다 남에게 빼앗기고 젊어서 거리에서 요절할 상이라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흘렸지만, 사람들 머릿속에는 그 말이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죠. 당신이, 아니 남궁 공자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천인신수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현당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간 남궁적을 천인신수는 그를 찾아간 것도 아닌데, 불러다 관상에, 수상에 도병까지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대걸이라고 칭하면서!”

현당은 모용곽이 그를 찾아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인신수의 말대로라면 이제 이곳에서 일가를 이루고 살 사람이 바로 현당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죠. 사람도 살아가면서 운명이 바뀐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남궁적 공자가 남부맹을 대표할 후기지수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소리까지 다 나오고 있습니다.”

현당은 묵묵히 팔짱을 끼고 손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나쁜 일은 아니군.”

우희가 눈을 빛냈다.

“그렇죠?”

“덕분에 정무련의 신경이 온통 내게 집중할 테고, 당신은 진행하는 작업을 전혀 남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할 수가 있겠어. 게다가 나는 내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고!”

우희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것을 준비했습니다.”

“뭔데?”

우희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물건을 내놓았다.

“내가 매일 챙겨줄 수 없으니, 당신이 알아서 달여 드세요.”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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